안녕.
우리가 헤어진 지도 벌써 1년하고도 5개월이 흘렀어.
우리가 처음으로 연락한게 13년 7월 7일,
너의 입대일은 14년 2월 17일,
그리고 우리가 헤어진 날은 15년 3월 6일.
이렇게 짧다면 짧고 어쩌면 길다면 긴 기간 동안,
처음부터 나는 너한테 군대 기다릴 수 있다고 좋아한다고 먼저 마음을 보였고, 그 마음 그대로 1년 1개월 간의 네 군생활 동안 최선을 다했어.
너의 입대와 함께 내 수험생활은 시작되었고,
그래서 다른 대학생이나 직장인 곰신들처럼 물질적인걸 많이 해줄 순 없었지만 훈련소 때 인터넷 편지며, 야수교 때나 자대배치 이후에 손편지며 시간 나는 틈틈이 몇 장씩 길게 써서 보내곤 했었지.
아침 7시 40분에 등교를 하고 밤 11시에 야자를 마치고 집에 가는 거의 학교에서 살다 싶이 한 생활이라 전화를 받는 것도 야자 시간에 몰래 빠져나가서 화장실에서 받고, 페메를 하는 것도 3개월 동안 휴대폰 압수 당할걸 감수하고 몰래 몰래 했어야 했어.
나는 내 수능 공부 보다 네가 우선이었고,
내가 받는 몇 만원 안되는 용돈도 아껴서 네가 좋아한다는 젤리에 과자, 그리고 편지지까지 사서 점심시간에 우체국에 달려가서 택배를 보내곤 했었어.
아마 너도 잘 알거야.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했었는지.
네가 말하는건 말이 안되는 것도 다 믿으려고 노력했고,
나한테 말하는 말투가 조금만 달라져도 민감하게 반응했었지.
그래서였을까.
그래서 나 모르게 날 그렇게 속이고 있었던걸까, 너는.
내가 활동한다던 곰신 카페, 네가 가입해서 가입인사글 올렸던거 내가 실시간으로 보고 당황스러워하니까 그 글 지웠던거.
그러고 내가 물어보니까 자기는 아니라며 발뺌했었지.
사실 아닐 수가 없었는데도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어.
믿었으니까.
그런데 좀 이상하더라?
어떻게 너는 그렇게 여자 마음을 잘 알았을까.
내가 약간 마음이 꽁기한게 있거나, 우리가 싸웠을 때나
너는 어떻게 내가 싫어하는 포인트를 정확히 알고 그 부분에 대해 사과하고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고 모범답안을 말했을까.
내가 알기로 네 눈치는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는데 말이야.
나중에야 깨달은건데,
너는 어차피 거기서 활동하는 내 닉네임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싸지방에 갈 때마다 종종 그 사이트에 들어가 본 것 같더라.
그게 아니면 설명이 안되는 일이 있었거든.
너, 나한테 여자 상관이 은근히 스킨십 하거나 다가오는 것 같아서 좀 그렇다고 얘기했었지? 그리고 나는 그런 내용의 글을 카페에 올렸었어.
그리고 하루인가 이틀인가 지나고서 네가 갑자기 페메로 오늘 기무대에서 전화가 왔다며 혹시 그 카페에서 여자 상관에 관련된 일을 말한 적 있냐고 물었지.
그러고선 거기서 여자친구가 그런 얘기를 한 것 같은데 군사 기밀에 해당된다던가 여튼 그런 글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얼른 지우라고 말했다며. 앞으로도 그런 얘기는 하지 말라고.
나는 순진하게도 네 말을 다 믿었어.
하도 그때 군사기밀에 관해서 곰신들이 인터넷이나 SNS에 함부로 뭔가를 올리는 게 대대적인 문제로 떠오를 시점이었어서 그럴 수도 있겠구나, 내가 실수했구나 하고 생각했어.
그런데 웃기더라.
그 카페는 가입할 때 이메일과 비밀번호만 입력하게 되어있어.
그리고 친목의 위험이 있어서 개인정보는 올릴 수 없고,
카페 내에서는 닉네임을 사용하고.
개인정보라고는 하나도 드러나지 않은 내 글을 보고,
내가 어느 사단 어느 부대 어느 중대 어느 계급 누구의 여자친구인지를 바로 알았다고?
아무리 국가기관이라지만, 그 짧은 기간 내에 내 모든 글과 댓글을 다 읽었다고해도 찾아낼 수 없을 정보들을 그렇게 쉽게 알아낼 수 있다고?
운영자도 그 말을 듣고선 어이가 없다고 자기가 군생활 해봤지만 이런 경우는 말이 안된다고 네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게 아닐까 그러던데, 그때는 네가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오히려 화를 내며 남자친구가 나한테 왜 그런 짓을 하냐고 따져 묻기도 했었어.
그땐 아무래도 내가 너한테 정말 미쳐있었나봐.
이렇게 단순한 사고가 불가능할 지경이라니.
말도 안되는 여자 얘기를 일부러 꺼내서 질투하게 하고, 곰신 카페에서 네 동기 여자친구랑 나랑 알고 지내는걸 아니까 그 사람이 그 글을 보고 네 동기한테 진짜인지 물어볼까봐 그리고 나한테 진실을 알려줄까봐 걱정되서 미리 잔머리를 굴렸던거, 아니야?
내가 너를 만나면서 가장 속상했던 때가 언제인지 알아?
바로 휴가 때야.
남들은 빨리 휴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계획세우면서 두근두근 기다리던데 우리는 일단 장거리에 내가 수험생이니까 만날 생각은 일단 접었었고.
그래도 나는 너랑 페메가 아닌 카톡을 하고, 오전 오후 시간에도 자유롭게 언제든 연락을 하고, 네가 전화를 하지 않더라도 내가 언제든지 전화를 걸 수 있고 이런 사소한 것들도 행복이라고 생각했었어.
근데 나는 정말 네 휴가 때만 되면 우울하고 섭섭했던게,
편지도 자주 써주고, 항상 네 연락을 기다리고,
매일 네 걱정을 하는 여자친구가 바로 나인데
너는 어떻게 휴가 나오기 몇 주 전부터
친구들과 술자리를 빠짐 없이 잡아두고, 나는 항상 뒷전이더라.
이해하려고 했어.
친구들도 많이 보고싶었겠지.
매일 부대 안에서 자길 갈구는 사람들만 보다가 간만에 자기 친구들 만나서 술도 한 잔하고 놀고 싶었겠지.
근데 왜 술자리에만 가면 연락을 안해?
한 번 논다하면 오후나 저녁쯤 나가서 새벽 3~5시가 되서야 집에 들어가면서, 다음날 오후 2시는 되어야 일어나면서
그 시간 동안 계속 걱정하면서 카톡 하나 받으려고 몇 시간씩 기다리는 사람은 왜 생각을 안해줘?
한 번은 너무 서운하니까 이런 생각까지 들더라.
친구들이 편지를 써주니, 매일 같이 연락을 해주니, 자기 시간 다 바쳐서 남은 복무일을 하나하나 세고 있니.
나는 그렇게 너한테 최선을 다했는데도 그 사람들보다 못한 존재인걸까. 대체 나랑 왜 만나는걸까, 나는 군대용 여자친구인건가.
매 휴가 때마다 같은 문제로 따졌었고, 너는 미안하다고 했고
근데 다음에 봐도 변하는건 하나도 없더라.
나는 차라리 네가 군대에 있는게 훨씬 낫다고까지 생각했어.
클럽도 술도 친구도 좋아하는 네가 나오기만 하면 연락도 안되고 오히려 나한테는 집중하지를 못하는 것 같아서.
휴가 때만 되면 마음이 우울하고 그랬었어.
언제였더라.
언젠가 내가 너한테 욕까지 하면서 밑바닥을 보인 적이 있었어.
나는 그때 알았어. 우리는 이제 끝이란걸.
네가 매번 내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게 하고, 그때 마다 너는 의미 없는 사과를 하고.
그게 한 두번이 아닌 수십 번이 되니까 내 인내심도 바닥을 보이더라. 내가 생각해도 그땐 이성을 놓고 화를 냈었어.
그때였나.
처음으로 시간을 좀 갖자는 말이 나왔던게.
그걸 헤어지자는 말로 알아들었던 나도, 그 반응에 더 놀랐던 너도 서로 당황해서 어찌할 줄을 모르다가 결국엔 또 어찌어찌 그대로 만남을 이어갔던 것 같아.
그때는 헤어지자는 말을 꺼내기만 해도 마음이 아프고,
내가 너를 너무 좋아했으니까.
그러고나서 또 몇 달 뒤였나 며칠 뒤였나.
너는 내가 남사친이랑 연락하는걸 보고 눈이 뒤집혔었지.
별 얘기도 아니고 간만에 연락와서 한 번 보는거 어떻냐길래 남자친구 있어서 둘이서는 못만나겠다고 친구한테 얘기하는 중이었는데.
그때 별 의미도 없이 DVD방이라는 얘기가 우연찮게 나왔다고해서 괜히 혼자 이상하게 꼬아서 생각하다가 얼굴도 모르는 내 친구한테 쌍욕했던거.
평소에 아무리 나랑 다퉈도 항상 좋은 말로 해결하고 욕을 할 바에야 아예 침묵하던 너인데. 그런 모습도 나한테는 낯설긴 마찬가지였지.
물론 나도 네가 여사친들 만나는거 엄청 신경쓰이고 질투가 많긴 했지만, 너는 좀 다른 면에서 점점 사람이 이상해지는 것 같더라.
질투를 넘어서 집착으로 느껴질 정도였어.
내가 친구 만나러 간다 그러면 남자냐고 묻고, 내가 누구 페북에 댓글이라도 한 번 달면 이름을 언급하면서 쟤 누구냐고 묻고.
내가 그 정도로 처신을 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오히려 너랑 만나던 시기에 남자친구 있다고 연락 끊고 그러는 바람에 좋은 친구들까지 다 잃었다는걸, 너는 알까.
그 뒤로도 한참을 매일 같이 싸우는 시기가 있었지.
서로 지쳐서 번갈아가며 권태기 한 번씩 겪고, 그걸 또 이겨내고.
이후에 네가 몇 달간 긴 훈련을 간 동안 나는 수능을 봤고, 입시 준비를 하고.. 그래 그때도 문제가 있었지.
내가 어려서 그랬겠지만,
나는 정시 원서를 쓸 때도 너를 고려했어.
네 학교랑 가까운 곳으로 쓰고 싶어서 그 학교에 가면 가끔씩 서로 만나고 하면 되겠다고 그렇게 얘기하니까 네가 갖은 핑계를 대면서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결국엔 들려주지 않더라.
"그래, 가끔씩 서로 학교를 찾아가서 근처에서 놀기도 하고 중간지점에서 만나는 것도 좋겠다." 이 한 마디가 그렇게 어려웠니?
나는 널 만나지도 못한 채 2년 가까이 기다리기만 하다가 네가 전역하면 뻥 차일 운명이었니. 그래서 미래는 생각하지 않았던거야?
크리스마스 때 네가 여기로 와서 1박2일로 지내다가 갔었지.
그게 나랑 처음 보낸 휴가였고.
근데 너 그 날 나한테 무슨 짓을 했니?
아무리 우리가 오래 만났고 서로 그리워했다지만..
만약 그때 내가 울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분명 나는 그 날을 엄청 후회했겠지.
사실 아무 일도 없었던 지금도 후회가 될 정도거든.
당시에 네가 너무 멘붕인 것 같아서 괜찮다고 아무렇지도 않다고 너를 위로했었는데.. 내가 위로 받아 마땅할 상황이었지만 어이 없게도 내가 되려 너를 안심시키고 달래야 했었지.
내가 왜 그 날을 싫어하는지 알아?
넌 내가 울고 나니까 행동을 멈추더니 가장 처음으로 한 말이,
"아.. 역시 OO이(생활관 동기)말이 맞았어.. 그래." 이거였어.
그게 무슨 말이었을까.
친하지도 않은 네 동기랑 네가, 나에 대해서 무슨 말을 했길래 네가 그 상황에 그런 말을 해?
왜, 그 사람이 내가 너랑 자지 않을거라고 했니?
너는 그때 네가 이성을 놓았던 거에 대해서 자책하고 멍때릴게 아니라, 나한테 진심을 담아 사과를 하고 미안하다고 내 몸을 위해서 만나자고 한게 아니라고 나를 이해시켜야 했었어.
그 일이 있었던 이후로 내가 누구한테 말도 못하고 이걸로 얼마나 마음 고생을 했는지 너는 모르겠지.
어른인 척 했지만 그때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너는 휴가나와서 처음 본 여자친구한테 그러면 안됐던거야.
그 이후로도 새해부터 울고불고 싸우기도 하고 여러모로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그 뒤로 드디어 네가 나한테 잘하려는 노력이 조금씩 보였어.
근데 문제는, 내 마음은 점점 식어갔다는거야.
2월 말에 있던 내 생일에 맞춰 나온 휴가.
그때 사실 휴가가 기다려지지도 않았고,
너를 만나는게 솔직히 조금은 귀찮기도 하고 그랬어.
네가 작년 내 생일을 잊어서 그 뒤로 내가 하도 쪼아대서인지 이번엔 열심히 준비했다는걸 알았으니까, 나도 여기까지 와주는 널 위해 예의상 뭔가는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간만에 손편지를 쓰려고 했어.
근데 매번 내가 편지지로 쓰던 A4 사이즈 패드를 보니까 도저히 그걸 채울 수가 없을 것 같은거야.
웃기지, 정말?
매일 매일 몇 시간씩 조잘대도 할 말이 많아서 연락을 아쉬워하고 편지도 꽉꽉채워 여러 장을 쓰던 나인데, 이젠 너한테 할 말이 없더라고.
오랜 시간 고민하다가 작은 메모지 하나를 꺼내서 '우리가 요즘 자주 싸우긴 했지만 그건 또 다시 잘 지내기 위한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하자'라고, 정말로 나도 그렇게 믿고 싶어서 그런 내용의 편지를 썼었어.
그 날 너랑 네 친구들을 만났을 때, 누군가 나한테 물었었지.
네 어디가 좋아서 만나냐고.
그래서 내가 대답했었어.
아니에요~ 하나도 안좋아해요, 하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너는 다시 부대로 복귀했고, 또다시 긴 훈련을 떠났어.
그리고 나는 신입생OT 때문에 미리 학교 기숙사에 가서 지냈어.
예전 같았으면 이렇게 혼자 있는 동안
너한테 페메도 보내놓고, 비밀그룹에 뭘 잔뜩 공유해놓고,
글도 좀 써놓은 다음에 네가 오기만을 기다렸을텐데
이 중에서 아무 것도 하고 싶지가 않더라.
완전히 깨달았어.
우리는 여기가 끝이구나, 우리의 끝은 여기구나.
먼저 너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
내가 먼저 좋아서 기다리겠다고 시작한 관계인데,
그랬던 마음이 변해서 끝내 헤어짐을 결심했다는게 미안했어.
나는 꼭 꽃신을 신겠다고 다짐하면서,
중간에 포기하는 다른 곰신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내가,
이 사람이 가장 힘든 시기에 상처를 주고 버리는 것 같아서 내 자신한테도 인간적으로 실망하기도 했고.
기분이 참 이상했어.
또 한편으로는 드디어 이 관계에서 벗어나는구나 하는 생각에 해방감을 느끼기도 했었던 것 같아.
서로가 서로의 바닥을 본 상태에서 끝이 보이는 관계.
아마 둘 다 이별을 직감하고 있었겠지.
'어떻게 말을 해야 너한테 최대한 상처를 주지 않을까.
얼굴 보고 얘기하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로 전화로 목소리 들으면서 말하는게 좋겠지.'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나는 너를 기다렸어.
그동안 나는 입학식을 하고, 수업도 듣고, 과행사도 나가고,
그러다보니 드디어 그 날이 왔어.
훈련 중에 무슨 생각을 했고 어떤 안좋은 꿈을 꾸었는진 모르겠지만,
너는 돌아와서 그 긴 시간동안 페메 하나 보내지 않은 나를 원망해서였는지 나한테는 연락도 안하고 페북에 글을 썼더라.
[배신감 느낀다.
정말 배신감 느껴진다.
뒤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이런 내용의 글을 말이야.
직감했어.
이거 내 얘기구나 하고.
그리고 네가 무슨 망상을 하고 있는지도 대략 알게 됐지.
내가 다른 남자와 바람이라도 났다고 생각하는건가, 하고.
물론 그런 일은 없었고, 상식적으로 입학식이 2일인데 6일이면 단 4일 만에 누구랑 눈이 맞아서 깨를 볶고 그러겠어. 서로 알아가기도 바쁜데.
하도 어이가 없었지만, 그 댓글을 보니 더 가관이더라.
내가 너 만나는 동안 여자 관계 때문에도 꽤 힘들어했었지.
신경 쓰이는 2명의 여사친 중 한 명이 거기 댓글을 달아놨던데,
그 댓글이 우리를 헤어지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될 줄은 너는 몰랐겠지, 아마.
[내가 생각하는 그 문제라면 내가 대신 욕해줄게.
넌 미안해서 못하잖아.]
네가 휴가 때마다 날 버리고 친구들과 술로 쌓은 의리가 헛된 것만은 아닌가보다. 얼굴도 모르는 남의 여자친구를 욕해주겠다고 나서주는 사람도 있고.
저거 보고 진짜 돌아버릴 것 같았는데, 그래도 아무 일도 없는 척 너한테 훈련갔다왔냐고 전화해달라고 평소처럼 말 걸었어.
어차피 저 문제로 추궁하게 되면 너는 내 얘기 아니라고 둘러대며 그 글을 지우겠지. 나는 너를 너무 잘 알고, 그 뻔한 레파토리를 반복하는 것도 이젠 지쳤어.
우리의 마지막 통화가 된 그때.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 어렵게 헤어지자는 말을 꺼냈고,
너는 네가 잡아주길 원하는지, 아니면 정말 끝내길 바라는지 물었어.
나는 후자를 선택했고, 너는 헤어지는 이유를 물었지.
나는 더이상 너한테 마음이 없다고 말했어.
그게 진실이었고 그 이상의 답은 없었어.
근데 너는 끝까지 사람을 돌게 만들더라.
마음이 식은거면 이제는 다른 사람을 더 좋아하게 된거냐고?
어떻게 결론이 그렇게 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게 아니고 그냥 마음이 없어진거라고만 했어.
넌 결국엔 답정너였더라.
다른 사람이 생긴게 아니면 그게 헤어지자는 이유가 되냐고 물었지.
응, 돼. 그게 내가 너랑 헤어지는 이유였거든.
난 네가 날 그런식으로 전여자친구가 너한테 헤어짐을 고한 이유를 나한테 갖다붙이며 우리가 헤어지는 이유를 내탓이라 합리화하는게 어이가 없었어.
그래서 물었지, 그 사람이랑 헤어질 때도 다른 사람이 생겼을거라고 네가 지레짐작했던거냐고. 그 사람도 나처럼 이렇게 억울한 누명쓰고 있는거냐고.
그건 또 아니라며. 그 사람이 직접 다른 사람이 더 좋아졌다고 얘기한거라며. 근데 난 그런 말을 한 적도 그런 행동을 보인 적도 없는데 너한테 왜 이런 말을 듣고 있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더라.
안그래도 헤어지자고 말하는게 너무 미안해서 내내 울먹이면서 말했었는데, 이렇게 끝까지 너를 생각했던 내가 너한테 그런 이상한 오해를 받는다는게 어이가 없어서 더 울었어.
그러니까 그럼 생일날 줬던 그 편지는 뭐냐고 거짓말이었냐며 물었고, 나는 그때는 진심으로 잘 지낼 수 있기를 바랐으니까 아니라고 말했지.
우리집에서 내가 너랑 편지를 주고 받는걸 알고 그만 만나라고 반대했을 때, 그때 내가 받은 편지도 모두 돌려주고 그때 어쩌다가 친구가 나한테 보낸 편지까지 같이 넣어서 줘버렸지.
그 봉투를 말하며 그건 어떻게 하냐고 네가 물었고, 나는 그냥 다 버리라고 얘기했어. 어차피 이렇게 끝내는 마당에 미련은 없었고 내가 너한테 보낸 편지들도, 네가 나에게 써놓은 편지들도 언젠간 다 버려질테니까. 너도 알겠다고 담담히 대답했었지.
그렇게 우리는 끝났던 것 같아.
난 사실 좀 많이 찜찜한 기분이었어.
마무리가 내 생각과는 달랐고, 오히려 내가 상처를 많이 받았으니까.
너는 되려 예상한 일이라는 듯 아무렇지 않아보였고,
나는 펑펑 울게 되었으니까.
그래서 더 오기가 생겨서 누구는 친구 없냐며 친구한테 전화 걸어서 사정 다 얘기하고 위로 받고, 너랑 관련된 사진이 2천 장 정도 있던 폴더 하나를 과감히 지우고, 그동안의 통화 녹음 파일이랑 저장했던 음성메시지도 다 지우고, 페북 친구도 끊고, 페메도 카톡도 대화를 모두 나가기하고, 연락처도 지우고, 곰신 카페 글도 댓글도 다 정리하고 탈퇴했어.
더이상 나한테서 네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어.
학교 생활도 아주 스펙터클해서 거기 적응하느라 정신 없이 보내고,
그렇게 이해를 못하던 술자리도 매일 같이 약속잡아서 나가고,
좋은 친구들도 만나서 여기저기 놀러다니다보니
시간이 약이라고, 이제 너는 서서히 잊혀지는 것 같더라.
며칠 전에, 카톡을 정리하다가 어떤 선배랑 너랑 헤어지기 전에 연애상담한걸 봤어.
그걸보니까 다시 이런저런 기억들이 하나 둘 떠오르더라.
네 번호도 이제는 기억이 안나고, 어떻게 헤어졌는지도 다 기억 속에서 휘발시켜버렸는데. 너랑 만났던 일들이 요약되서 설명되있고, 내가 그 당시에 어떤 고민을 했고, 우리가 어떤 이별을 했는지가 거기에 다 나와있더라.
나는 내 마음을 모두 보여주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했어.
너를 만난 것도 후회하지 않고, 헤어진 것도 후회하지 않아.
어떠한 미련도 없어 나는.
그치만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건,
헤어진 지도 한참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내 마음이 불편한게
너와의 찝찝했던 마무리 때문이라 그걸 매듭짓고 싶어서야.
이제와서 너한테 연락해서 나 사실은 그때 이랬었다 하는건 너무 미친 짓인 것 같고.
그냥 우연히 아주 우연히라도 이 글을 네가 언젠가 보게 되었으면.
그래서 내 이별통보가 순간적인 결정은 아니었음을, 서서히 내 마음이 식어갔던게 사실이었음을, 그 과정 속에서 나도 많이 힘들었고 너를 인간적인 면에서 배려하고자 노력했다는 걸 꼭 알아주었으면 좋겠어.
남은 8개월의 복무 기간 함께 해주지 못해서 전역 때까지 매번 마음이 쓰였었고, 제대한 후에 친구들이 함께해주는걸 보고 그래도 친구들이 곁에 남았구나 하는 생각에 다행이다 싶기도 했어.
고생 많았고, 이제 복학했을텐데 열심히 해서 꼭 네가 가졌던 큰 꿈도 이루었으면 좋겠어.
내가 수능 준비로 힘들었을 때 곁에서 바로 잡아주고 위로해주고 격려해줬던게 너라서 진짜 힘이 되었고 고마웠어. 덕분에 원하던 좋은 학교 오게된 것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나는 예전과는 다르게 나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하고 나를 더 아끼고 사랑하고 있어. 자존감도 많이 높아졌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학점도 신경써서 관리하고 있고, 다른 것도 많이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어.
그때 둘 다 힘들었던 연애로 배운게 많았을거라 생각해. 서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거쳐갔던 아픔이라고 생각하자.
13년 7월부터 16년 8월까지.
3년 만에 널 마음에서 제대로 떠나보내는 것 같아.
잘 지내고, 그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