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에서 노래 한 곡을 부르고 나면.. 남들에게 꼭 듣는 얘기가 있다..
"너.. 웃겨보려고 일부러 그렇게 부른거지?"
언제부턴가.. 난 내가 부르고 싶은 곡을 부를 수 없는 놈이 되어버렸다..
내가 좋아하고, 부르고 싶어하는 노래는 가벼운 가사와 경쾌한 리듬의 노래가
아니고.. 절로 두 눈이 감기며 가슴이 저려오는 그런 노래였지만..
그러한 노래들 역시.. 내가 부르고나면.. 코미디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만큼 난 노래를 못부른다..
그래서 난 집에서 가끔 허리케인블루가 될 때가 있다..
머리에 헤드폰을 쓰고 자리에서 일어나.. 두 눈을 감고..
숟가락을 손에 들고.. 열창을 하는 것이다..
물론..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입만 벙긋하는 것이지만..
그 때 만큼은 정말 가수라도 된 것 같은 황홀한 상상속으로 빠진다..
가끔 옆집 창문에서 벙찐 눈으로 나를 보는 아가씨와 눈이 마주친다거나..
불러도 대답없는 나의 뒤통수를 솥뚜껑같은 손으로 줘패는 어무니땜에
상상에서 깨어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상상에 자주 빠지는 이유는.. 감은 눈 틈새로 보이는 얼굴
하나를 쉽사리 잊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노래 연습을 무진장 했던 기억이 있다..
창문을 닫고.. 故김현식의 '어둠 그 별빛' 이란 노래를 목이 터져라고 불러댔다..
방 벽을 부딪혀 내 귀에 울리는 노래는.. 스스로도 짜증이났다..
혹시나.. 녹음기에 녹음을 하고 다시 들어보았지만.. 더는 듣지 못하고
스톱을 눌러버렸다..
이렇게 부르지도 못하는 노래를 연습해 봤던 것도.. 특히 '어둠 그 별빛'
이란 노래에 그렇게 열중했던 것도..
어느 한 사람이 그 노래를 좋아했다는 이유 하나였다..
누구나 좋아하는 사람을 나 역시 좋아한다는 것..
정말 맥빠지는 일이다..
빌어먹을 감정이란 놈은.. 내 의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날 점점 그 애에게
빠지게 만들었다..
술 한 잔 들어가면.. 누르지도 못하는 전화기 앞에서 서성이다가.. 머리를
두 번 쥐어박고 돌아서야했다..
밤새 한숨을 쉬다보면.. 짧은 새벽별이 어느덧 여명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혼자 흥얼거리는 노래가 있었다..
어둠 그 별빛..
동아리 선배와 술을 한 잔 마셨다..
그리고 그 선배의 넋두리를 들어줘야했다..
결국은.. 주사였는지 모르지만.. 선배가 흘리는 눈물까지 보아야했다..
사랑에 빠졌는데.. 용기가 없어서 고백을 못하겠다고..
자신은 그 애에게 너무 깊이 빠져버렸다고..
빌어먹을.. 도와준다고 했다..
'선배.. 나도 실은 그 애를 좋아해요..'
그 딴 소리를 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왠지..
먹이 하나에 달려드는 수많은 개 중의 하나로 보이고 싶지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개들과는 뭔가 달라보이고 싶었던 욕심과 그런 식의 경쟁에 끼어들어
어쩌면 추한 모습까지 보여야 할만큼..
내가 그 애를 좋아하는지 확신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수많은 사람속에 둘러싸여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며.. 애써 그 애를 외면해야하는 내 모습이 가증스러웠다..
3초를 그 애를 바라보고.. 3분을 주위를 둘러봤다..
아예 외면하기도 우숩고.. 아예 바라보고 있을 용기도 없었기 때문에..
내 계산된 행동이 더 한심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리고 얼핏 내 눈에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그 애를.. 멍청히 바라보고 있는 선배의 모습..
그 선배의 그런 모습은.. 나를 더 씁쓸하고 안스럽게 만들었고.. 난 결국..
그 애를 마음에서 버려야한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물론.. 그런 확신따위는 또.. 금방이라도 무너질 수 있는 유치한
발상이었다..
내 의지와 감정은 완전히 따로 놀았으니까..
그 자리에서 그 애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낮게 불렀지만.. 모두가 그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김 현식의 어둠 그 별빛..
집에서 노래를 불러댔다..
립씽크가아닌.. 정말 노래를 불러댔다..
이웃집들의 소리나게 창문 닫는 소리도 무시하고.. 어무니의 온갖 살벌한
경고에도 꿋꿋이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를 부르면 부를수록.. 그 애 생각이 간절해 졌지만..
또 노래를 멈출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 후유증은.. 내가 언제 어디에 있더라도.. 나도모르게 그 노래를
흥얼거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버스 안에서도, 길을 걸으면서도, 학교 잔디에 누워 잠을 자면서도..
노래를 부르면.. 얼굴 하나가 떠올라.. 그 얼굴에 취한 채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노래가 익숙해 질 수록.. 그 애에 대한 내 맘 또한 주체치 못할
만큼 커져만 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분명.. 내 의지는 아니었지만..
선배, 나, 그 애,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에 섞여 엠티를 가게되었다..
비땜에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방 안에 갇힌 채.. 술 잔을 돌리고 있었다..
술이 어느 정도 얼큰하게 취할 무렵.. 돌아가면서 노래를 불러댔다..
뽕짝, 댄스곡.. 가끔은 민중가요도 그 사이 사이에서 힘찬 팔동작과 함께
버티고 있었다..
"야! 중현아!! 니 차례야. 불러!!"
"푸하!! 다음이 중현이 부를 차례야?? 얌마!! 너 또 가사, 박자 무시하면
죽여뿐다!!"
"쟤 왜 얼굴이 저렇게 빨게졌어? 혼자서 술 다 마셨나.."
노래를 불렀다..
사람들의 웃음은 그칠 줄 몰랐고.. 난 노래를 불렀다..
술기운 속에서도 분위기 파악 못한다는 것도 알았고.. 지금 노래가 완전히
음정 박자를 무시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노래가 끝나고.. 뒤통수를 몇 대 두들겨 맞고.. 발길질 몇 번 당한 후..
구석에서 술이나 마셨다..
"중현아.. 니 차롄데.. 이번에는 잘 부를 수 있겠지?"
"네.. 선배님!!"
"오호라.. 그래? 그리고.. 아까처럼.. 우중충한 노래 부르면 죽여뿐다..
어둠 그 별빛.. 그런거 말고 신나는 노래 불러.. 알았지?"
"네!! 선배님!!"
'노~~나~~ 공부~~ 하나~~ 마찬가지다~~~ 노~~나~~ 공부~~하나~~
마찬가지다~~ 아니다~~ 노는 게~~ 더 좋다~~~ 그래서~~ 우리는~~~ 논다~~~
오늘의 할 일은~~~ 내일로~~ 미루고~~~ 내일의 할 일은~~~ 안해버린다~~~~'
사람들의 웃음 속에 노래를 불러댔다..
내게 어울리는 그런 곡을..
엠티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도와 준 결과.. 선배와 그 애는 무척 가까워졌다..
나 역시 도왔다..
그런 내 모습이 실망스러웠지만.. 그런 가면 속에서라도..
난 내 속마음을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어떤 후배 하나를 만나게 되었고.. 도서관에서 식당에서..
항상 그 후배와 함께 하게 되었다..
이런 식의 만남은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누군가를 잊기 위해.. 다른 누구를 만나는 이딴 만남.. 나 역시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어? 너 안들어가고 여기서 뭐 해?"
"선배님.. 나 속이 좀.. 잠깐 바람쐬고 있어요.."
"응.. 그래.. 그럼 나 먼저 들어갈께.. 바람쐬고 들어 와.."
"선배님.."
"응?"
사람들이 기다리는 술자리를 벗어나.. 그 애와 벤치로 갔다..
내 눈은 밤하늘을 보고 있었지만.. 마음의 떨림..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을 줄 알았는데.. 막상 그 애와 단 둘이 남게 되자..
잊고있었던.. 설레임이 일었다..
"선배님.. 지금 혜린이랑 사귀시는 거예요?"
"응? 음.. 뭐 사귄다기 보다는.. 자주 보는 편이지.."
"네.. 그런데.. 선배님.."
"응?"
"그냥 솔직히 말할께요.."
"뭘?"
"나.. 선배 좋아했어요.. 정말로.."
"잉? 니가 날? 농담하지 말구.."
"정말로요.."
"히히.. 별난 취미를 갖었네??"
그 날 밤..
난.. 어둠 그 별빛이란 노래를 불렀다..
다시는 부르지 못할 줄 알았던.. 그 곡을.. 그 애와 함께 불렀다..
그 애의 머릿결 향기에 취한 채.. 난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더는 부르지 못하고.. 노래를 멈춰야했다..
너무 가슴이 저려 왔기에..
"선배님.."
"아니.. 내가 말할께.."
"...."
"희야.."
"네.."
"난 너를 그냥.. 후배 이상으로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한 동안..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한 동안..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내 마지막 노래는 가슴이 찢기우던 그 날 밤.. 모두 끝났다..
시간 속에서..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겨지는 얼굴이 있다..
이제 다시 떠올리면.. 설레임보다는 눈물처럼 적셔오는 사람..
오늘도.. 허리케인블루가 된 나의 무대에서.. 나의 열창을
감상하는.. 그런 슬픈 얼굴이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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