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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후반, 장녀. 가족과의 관계를 끊고 싶습니다.

ㅇㅇ |2016.09.11 02:02
조회 3,872 |추천 15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20대 후반 여자입니다.

평소 네이트판을 눈팅만 하다 용기를 내서 글을 적어 봅니다. 이렇게 툭 터놓고 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어, 글을 쓰는 것임에도 많이 떨리고 어렵지만... 그리고 다소 긴 글이 될 수도 있겠지만 현명한 댓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희 가족은 부모님과 저, 5살 차이 나는 여동생, 7살 차이 나는 남동생. 이렇게 다섯 명입니다. 제 글의 요지는 아버지와 관계 개선을 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매몰차게 가족들을 잊어야 하는 것인가입니다.

 

 

1. 아버지는 가부장적이었고, 이직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에게 일을 시키는 것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절대 일을 하지 못하게 해 저희는 어려운 가정에서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단칸방에서 다섯 명이 잠을 잤고, 화장실은 문 밖을 나가야 있었고, 쌀을 살 돈이 없어 라면을 먹으며 살았습니다. 저는 초등학교만 네 번을 다녔고 학교에 적응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새 친구들과의 만남도 그랬지만, 더 어려웠던 것은 제 이름 때문이었습니다. 반려동물에게나 어울리는 이름이 제 이름이었고, 그래서 저는 새 학기나 전학을 갔을 때 이름을 말하는 것을 몹시 두려워했습니다. 아이들의 놀림에 저는 위축 됐고, 학창시절을 조용히 보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이름은 아버지가 지어줬고요. 지금은 다행히 개명을 했지만 개명하기 직전까지 반대가 컸습니다. 고등학생이 된 저는 결국, 스스로 개명 서류 준비를 했고, 엄마가 밤새 사전을 뒤져 만들어준 이름으로 개명을 했습니다.

 

 

2. 결국 어머니는 제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쯤, 붕어빵 포장마차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집에 돌아와서 빨래, 청소 등 동생들의 밥을 해서 먹이고는 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짜리가 뭐 얼마나 대단하게 했겠느냐만은... 저에게는 나름 힘들고 고된 시간이었습니다. 이 때가 가장 힘이 없고 힘들었는데, 아버지는 밥상 앞에서 조금만이라도 울상을 지으면 엎드려뻗쳐를 시켰고 반찬이 없으면 밥상을 뒤엎었고, 숟가락으로 제 머리를 때리기도 했습니다. 어린 동생이 저에게 대들어서 제가 동생을 째려보거나 툭 치기만 해도, 언니가 되어 동생에게 그런다고 윽박질렀고요. 그런 것은 다 감내했으나, 어머니가 아픈 것은 조금 힘들었습니다. 추운 곳에서 계속 있다 보니 무릎이 안 좋아졌고 엄마는 거의 무릎을 쓰지 못하게 되어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포장마차를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3. 중학생이 되어 꿈이 생겼습니다. 너무 이루고 싶었는데, 현실적인 제약이 많았습니다. 이 형편에 대학교는 꿈도 못 꿀 것 같아 실업계로 진학했습니다. 밑에 동생이 둘이나 있는데... 우리 집은 당장 등록금을 낼 형편도 안 되었거든요. 부모님은 매일 싸웠고... 아니, 일방적인 아버지의 고함이었지만. 보통 주제는 삶의 고됨과 돈 문제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참 사춘기 시절, 친구들은 옷을 사고 같이 짝을 지어 놀러 다니기도 했는데 저는 그런 추억이 거의 없습니다. 부모님에게 용돈을 달라고 하지 못 했으니 돈이 없었거든요. 자연스레 소외가 됐고, 친구들을 부러워하면서만 살았습니다. 수련회도 못 갈 형편이었는데... 제가 보내 달라 떼를 쓰다 어머니에게 뺨을 맞았습니다. 어머니는 결국 친구에게 돈을 빌려서 수련회를 보내줬고요.

 

 

4. 시간이 흘러 고 3이 되었는데 어머니는 대학은 꼭 가야 한다며, 대학을 지원하라고 했습니다. 결국 가고 싶은 학교를 정리하여 지원을 했고 3군데 중 2군데는 합격을 했습니다. 제가 가고 싶은 곳은 서울에 있는 예대였습니다. 그렇지 않은 친구도 많았겠지만 학원을 다니는 친구도 있었고 과외를 하는 친구도 있었는데 저는 나름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을 했습니다. 제가 빚이라도 내서 가고 싶다고 하니 아버지는 ‘학자금 빚 못 갚으면 내가 갚아야 되지 않냐. 가까운데 가라.’ 강요를 하여 결국 가까운 국립대로 진학을 했습니다. 대학에 붙고 한 달 동안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중학생인 제 여동생... 다른 친구들 다 있는 핸드폰, 혼자만 없답니다. 안쓰러워서 핸드폰 사주고 제가 요금 낼 테니 신경 쓰지 말라 하고 요금도 내주었습니다. 그러니 조금 빠듯하더라고요.ㅎㅎ 월급날이 조금 늦어서, 개강 첫 날 머뭇거리다 통학비를 빌려 달라 하니 어머니가 화를 내면서 그냥 휴학하랍니다. 설레는 첫 날, 그런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5. 대학 때도 주말에 14시간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통학비며, 생활비며, 핸드폰 요금이며 다 벌어가며 학교를 다녔습니다. 용돈은 못 받았고요.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컴퓨터로 뭘 해달라고 했는데 그게 될 수가 없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여러 번 안 된다고 하니 갑자기 자기를 무시한다며 뺨을 때렸습니다. 그 길로 저는 집을 나와 친구네 집에서 살다 독립을 했습니다. 방학 때는 공장 아르바이트를 하고, 개강을 하면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평일에는 과사 아르바이트를 하며 장학금을 받으면서 살았습니다.

 

 

6. 아버지와 사이가 단절되니 어머니가 힘들어 했습니다. 더 길어질까 위에 적지 못한 과거들 때문에 너무 힘들었는데... 어머니가 힘들어 하니, 밖에서 살면서 조금씩 연락을 하며 억지로 마음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다 4학년 2학기 때쯤 관계가 조금 풀려 어머니 10만원, 아버지 10만원 해서 20만원 정도 용돈을 받게 되었습니다. 억지로 아버지에게 사랑한다 하고, 억지로 보고 싶다 했습니다. 어머니가 사이가 안 좋은 부녀 때문에 힘들어 하니까. 저는 하나도 용서가 되지 않고, 그 상처가 아직도 생생한데. 학교 다닐 때 너무 괴로워 우울증 치료를 받으며 다녔는데. 저는 맏딸이니까. 참아야지. 하면서 억지로 감정을 만들었습니다.

 

 

7.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했습니다. 여동생이 대학 갈 때가 됐는데, 2년제긴 하지만 사립대학을 보내주더라고요. 동생은 아르바이트도 한 번 해본 적 없는 아이입니다. 등록금도 다 내주더라고요. 섭섭했지만, 동생이라도 편하게 다녀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말 못했습니다. 제 4년 대학 등록금이 동생 2년보다 한참 적었는데... 나는 그 돈이 없어 학자금 대출을 받으며, 밥 사먹을 돈이 없어 라면만 먹으면서 그렇게 악착같이 버티며 살았는데. 맏딸이니 그러려니 했습니다. 취업을 위해 다니고 싶은 학원도 못 다니고 꾹 참았는데. 남동생은 조금 엇나가는 애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밴드를 한다고 하니 피아노도 사주더라고요. 그 돈이면 저 학원 다닐 수 있었을 텐데... 제가 더 열심히 할 수 있는데...

 

 

8. 남들보다 스펙이 없으니 악착같이 더 열심히 살아야 했습니다. 출발선은 느렸고, 미리 출발한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죽어라 열심히 했습니다. 결국 운이 좋게도 좋은 곳으로 이직할 수 있었고요. 그러다 제 생일에 집에 내려갔습니다. 생일이니까 그 날 만큼은 정말 행복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일이 밀려... 집에서도 못 다한 일이 있어서 해야 하는데, 아버지가 퇴근 했습니다. 얼른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하는데, 제가 일이 늦어 1시간 정도 뒤에 먹자고 하니 화를 냈습니다. 그럼 왜 일찍 들어오라 했냐며. 결국 회를 먹으러 가는 길에, 아버지는 그게 배가 차냐, 뭘 그런 걸 먹냐. 내내 이야기를 해서 참고 참던 저는 그럼 집에 가라고 했고 아버지는 뒤도 안 돌아보고 갔습니다. 다른 날도 아니고 생일인데.. 먹고 싶다고 하는 것 먹는 게 그렇게 어려웠던 걸까요.

 

 

9.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더 이상 저는 아버지와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싶지 않다고요. 나만 노력하고, 나만 애 쓰고, 나만 참아야 하는 일방적인 관계. 이제 신물이 났습니다. 다음 날 아버지가 말 거는데 대답도 안 하고 서울 올라왔습니다. 그러니 밤만 되면 전화가 옵니다. 술 먹고 하는 거겠죠. 어머니는 아버지가 힘들어 한다며 연락을 하라고 했습니다. 나도 참고 사는데 너도 좀 참아라, 아버지가 미안해 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정말 지겹도록 자주 있던 일이었습니다. 매일 화를 내고, 때리고 그 다음날 술 먹고 미안하다고 하는 패턴. 저는 너무 화가 나서, 왜 나만 참아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예전 일까지 다 들춰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는... 기억이 안 난답니다. 언제 그랬냐고. 제가 자꾸 어머니가 이러는 거에 지쳐서... 말투가 좀 날카롭습니다.

 

 

 

 

 

 

 

 

 

 

그런데 이제 추석입니다. 어머니랑 동생은 집에 내려오라고 하는데... 가긴 가야 하는데, 아버지가 꼴도 보기 싫어 가기 싫습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또 다시 못 이기는 척 받아줘야 하는 건가요? 더 이상 상처 받기 싫습니다. 집에 가면 부딪힐 텐데.. 저는 어떻게 하죠?

네이트판에 올라오는 다른 아버지보다 덜 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너무나 괴롭습니다. 여태까지 숨도 못 쉬고 살아왔던 지난 날이 모조리 그 사람 때문인 것 같아서. 자꾸 탓 하게 되고 자꾸 원망하게 됩니다. 그런 제가 너무나도 싫습니다. 다들 잊었는데... 저만 기억하고 있다는 것도. 조금만 의견에 반하는 이야기만 하면 강압하고 윽박지르고.. 그것이 두려워 덜덜 떨며 살아야 했던 때가 잊히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엄마는... 지금 서울에서 사는 집 보증금 일부를 보태주기도 했고.. 그래서 엄마와 동생을 위해서 가야되는 것 같긴 한데...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도요.

 

현명하신 댓글.. 부탁드립니다. 긴 글, 정말 죄송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추천수15
반대수1
베플|2016.09.11 02:20
관계 끊으셔도 될듯 추석때도 가지마세요 다른 가족들이야 자기들이 당하는게 아니니까 니가 참으라 쉽게 말하는거고 쓴이 없으면 자기들이 타겟이 돼서 아버지 진상 감당하는게 싫어서 그런건지 뭔지 쓴이 알바 아니에요 관계 유지해서 좋은게 누군지는 몰라도 쓴이한테 좋은건 하나없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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