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챠트를 대충대충 넘겨보던 의사가 고수를 보면서 심드렁하게
"이환자야?"
그러자 맞은편에서 동료의사가
"어..한번봐라..."
"보고 자시고 할게 뭐 있냐? 장사한두번 하는것도 아니고..
화상에 다리쪽에 복합골절에 척추골절에 뇌진탕까지면
골고루 갖출것은 다 갖추었구만 뭐..
동공반사도 해보고 여기저기를 대충살펴보더니
"브레인데드 (brain death:뇌사) 맞네.."
"그렇다니깐...누가 봐도 브레인데드가 맞는데..
그런데 같이온 애인인지 뭔지 여자보호자가 인정을 안하는거야..
그러니깐 내가 미치겠다니깐 아무리 말을 해도 씨알도 안먹히는거야.
일이 많아서 바뻐죽겠는데...내일꺼리 좀 줄여주면 얼마나 좋아..
예쁘장하게 생긴게...말은 더럽게 안들어요.."
"어디 갔는데?"
"몰라...아까까지 있었는데.."
"그러면 내가 올때 복도에 지나쳤던 그 여자인가보다...정말 예쁘던데...
내가 작업한번 걸어볼까? 내가 다년간 겪어본바로는 여자들은 이럴때가
가장 흔들기 좋지.. 아까 잠깐보니깐 참 맛나게 생겼던데..쩝~"
하면서 입맛을 다시자
고수는 옆에서 듣고 있다가
"뭐야 이자식이 어디서..."하면 그의사의 뒷통수를 힘껏 쳤지만 그냥 통과해버렸다.
"어어..뭐야..그냥 통과해버리네.." 믿기지 않는듯 자기손을 보다가
옆에 있는 꽃병을 집으려고 했으나 잡히지 않았다.
고수는 한숨을 휴~하고 깊게 쉬고 침대에 누워있는 자신을 보면서
"고수야..너 어쩌다 이렇게 됐냐?"
"아저씨...의사선생님이 뭐라세요?"
"으응..앞으로 치료만 잘받으면 깨끗하게 낫는다고 하더라.."
"정말이요?..휴~ 다행이다..제가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그래..다행이지.."
승미아빠는 힘없이 말했다.
"아참 그분은 어떻게 되니? 승미 구해주신분..."
"글쎄요..저도 어떻게 됐는지 궁금한데 아직 연락이 없네요.."
"내가 그때는 경황이 없어서 변변하게 인사도 못했는데... 정식으로 인사라도 해야지..
선영이 너가 나중에 한번 자리좀 마련해라.."
"네에 그렇게 할께요."
"그리고 여기는 내가 있을테니깐 너는 그만 가봐라..어짜피 깨어날려면 시간도 걸리고..."
"그냥 승미가 깨어날때까지만 여기 있을께요."
"아니야..그만가봐라...선영아~ 오늘 정말 너무 고맙다."
"뭘요..제가 한게 뭐있나요.. 그러면 승미 깨어나면 전화주세요..그럼 가보겠습니다."
선영은 목례를 하고 병원을 나섰다.
선영은 병원문을 나와서 승미가 있는 병실을 쳐다보면서
'승미야 얼른 낫아서 우리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자구나.'
병원앞에서 어디로갈까 망설이는데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났다.
'그러고보니깐 하루종일 제대로 한끼도 못먹었네.'
하고 음식점으로 향해가는데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은진언니? 언니 괜찮아? 다친데는 없고?
어..다행이네..그런데 언니 지금 어디있어? 밥은 먹었어?
나 지금 밥먹으러 가는데...
언니 울어?
은진언니 왜 무슨일있어? 무슨일인데..
뭐야..정말이야? 정말이냐구...지금 어디야?
어 알았어..내가 지금 갈께"
선영은 급히 택시를 잡아서 고수가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선영이가 떠나고 얼마 안있어서 승용차하나가 병원앞에 도착하고 형사로 보이는
남자들이 차에서 내린후 그뒤를 중년부인이 손을 양복상의로 가리고 양쪽으로
남자둘이 붙어서 병원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김형사가 가서 알아봐..이선영이라고 있는지.."
"네에.." 라고 대답하고 김형사라는 사람은 병원쪽으로 뛰어갔다.
"반장님 괜찮으시다면 저쪽에 앉아도 될까요?"
중년부인 가리키는 야외휴게실을 벤치를 보더니
"그래도 아직 날씨가 차가운데 안에 들어가시는게..."
"아니 저는 괜찮습니다..다른분들께서 괜찮을런지.."
"저희는 괜찮습니다.그러면 그쪽으로 가죠."
다들 발길을 야외휴게실로 향했다.
형사반장은 담배를 꺼내고 중년부인에게 권하자
고개를 가로젓자 반장은 담배한개피를 꺼내물고 불을 붙이면서
"아시겠지만 원래 이렇게 피의자를 데리고 이렇게 나오는게 안되는겁니다.
그래도 저도 자식을 키우는 입장이라서..."
중년부인은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하면서
"네에..고맙습니다. 반장님.."
그리고 얼마 안있어서 병원에 갔던 김형사가 돌아와서 반장에게
"경기도 천일창고화재사고로 들어온 이선영이라는 환자는 없다는데요.."
"사망자쪽에도 확인해봤어?
"네에..확인해봤는데요..너무 많이 훼손되서 신원파악이 불가능한것을 제외하고
나머지에는 없습니다.."
"그래 알았어..수고했어."
"아마도 딸님께서 그쪽창고에는 안갔나봅니다. 천일창고화재사고로 부상자는
아까 전에 간 병원이랑 여기 병원 두군데뿐인데 둘다 명단에 없으면
어디에 무사하게 잘있다는거죠 ."
"네에.."
하고 중년부인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제 그만가실까요?"
"네에..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별말씀을 그럼.. "
하면서 그들은 차로 향했다.
선영엄마는 무엇인가 알수없는 아쉬움에 병원을 뒤돌아보았다.
그때 갑자기 매서운 돌풍이 불자 양손을 가리고 있던 양복상의가 바람에
바닥으로 떨어지고 양손에 찬 수갑이 햇빛에 차갑게 빛났다.
선영엄마는 차에 올라타고 바깥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거리의 풍경은 뒤로뒤로 뒷걸음치고 기억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선영이가 염의원에 농락당하고 병실을 나갈려고 할때 황급히 병실화장실로
몸을 숨기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선영엄마였다.
선영이가 병실을 나가자 그때서야 화장실문을 열고 나와서 염의원이 있는
침상으로 걸어갔다.
"어...당신이 여긴 왠일이야?"
"갈아입을 속옷이랑 몇가지 옷가지좀 가져왔어요."
"필요하면 여기서 그냥 사면되는데 뭐하러 그런 쓸데없이.."
선영엄마는 가져온 옷가지를 옆에 옷장에 넣고 침상옆에 있는 의자 앉으면서
"저어기..당신께 몇가지 물어볼께 있는데요?"
"뭔데?"
"당신 요즈음 선영이에 대해서 뭐 좀 아시는것 없나요?"
염의원은 속으로 뜨끔하면서 태연하게
"아니 없는데.."
"솔직히 말해주세요...정말 없어요?"
"정말 없다니깐 이사람이 어디서 무슨소리를 듣고와서 이러나?..."
"방금 나간사람은 누군가요? 선영이 아닌가요?"
"그..그게 말이야..."
염의원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래 정말 내가 솔직하게 다말할께.
선영이가 오긴왔는데...찾아와서 뭐좀 도와달라고 해서 도와줬는데
선영이가 자기가 찾아온것 당신한테 말하지 말라고 해서 그래서 말하지 않고
숨겼는데...이렇게 됐는데 숨기고 자시고 할게 뭐있나?"
"음...어쩌면 당신이라는 사람은...어떻게 그럴수가 있나요?"
선영엄마는 호흡이 거칠어지고 꽉쥔 주먹이 분노로 떨렸다.
"내가 뭘 어쨌다고?"
"어떻게 자기딸을...짐승보다 놈..."
염의원은 버럭 성을 내면서
"딸? 딸은 무슨 딸? 선영이랑 나랑 피한방울이라고 섞였나?
그리고 그것이 먼저 나한테 와서 꼬리친것지 내가 먼저 그런게 아니라니깐..."
"거짓말마..우리 선영이가 그럴리가 없어."
"흥..우리선영이 우리선영이..
에미년은 살인자이고 자식년은 창녀라..
잘 어울리네..."
"말조심해...누구보고 창녀라는거야? 선영이 지금 어디 있어?"
"글쎄 지금쯤 죽으러 가고 있겠지."
선영엄마는 염의원의 멱살을 잡고
"선영이 어디있어? 빨리 말해..."
염의원이 독사가 있는 창고를 말하자 멱살을 풀면서
"나는 어떻게 되어도 좋지만 만일 하나 선영이한테 무슨일이라도 생기면
가만히 두지 않을거야."
염의원은 빈정대는듯이
"빨리가야할걸...
그쪽 아저씨들이 조금 무서운사람들이라서...후후.."
선영엄마가 서둘러서 병실을 나갈려고 하자 등뒤에서 염의원의 한마디
"역시 영계가 좋다니깐...아니 그것도 나이가 먹었나봐..
예전 고등학교때보다 못하더구만...야들야들한 속살 맛이 없어..하하하.."
낙타의 등의 부러뜨리는것 마지막 짐이라고 했던가?
그것이 염의원의 마지막 말이 되었다.
선영엄마는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 염의원 침대로 와서 옆에 있던
과도를 들어서 염의원을 찔렀다.
사방으로 피가 튀고 염의원이 축늘어질때까지 칼질이 계속되다가
선영엄마는 칼을 떨어뜨리고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그렇게 한참을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러다가 마침 환자체크를 할려고 들어온 간호사가 병실에 들어왔다가
그 광경을 보고 비명을 지르면서 나가고 곧 선영엄마는 경찰에 체포가 되었다.
선영은 고수가 있는 병원에 도착해서 고수가 있는 중환자실로 갔다.
고수가 누워있고 은진이 그옆에서 고수의 손을 잡고 있었다.
고수의 몸에는 튜브랑 여러 의료기기에서 나온 줄들이 어지럽게 붙어있었다.
"언니 이게 어떻게 된거야?"
은진은 선영을 보자 울음을 터트렸다.
"선영아~"
선영은 아무말없이 은진을 안고 등을 토탁였다.
어느정도 울음이 잦아들자 선영은
"아니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아침까지 멀쩡하던 사람이 이게 무슨일이래?
어떻게 된거야?"
은진은 창고에 있었던 애기를 하면서
"그때 나를 구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텐데..."
"휴~ 의사들은 뭐래?"
"뇌사라고 하면서 오늘밤이 고비가 될거라고 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더라..."
"흥..마음의 준비? 웃기고 있네..개네들이 고수오빠를 알긴 알어?
고수오빠는 핵전쟁이 나도 동물원 원숭이우리에 숨어서 살아날 사람이야..
이정도로 죽을 사람이 아니라고.."
고수: 원숭이우리? -_-;;;;
은진은 눈물을 훔치면서
"그런데 핵전쟁나면 원숭이우리에 숨어있으면 살수 있는거야?"
고수: 어이~ 은진씨...
"글쎄 고수오빠는 얼굴에 검정칠하고 원숭이랑 끽끽거리면서 같이 살다가 혹성탈출처럼
원숭이세상이 되면 거기서 한자리 하겠지..뭐"
둘은 얼굴을 마주보면서 깔깔대면서 웃는다.
그런 모습의 은진을 보면서 고수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고수: 그래요..은진씨 웃어주세요. 지금처럼...
은진씨는 웃는 모습이 예뻐요. 마지막에도 그 예쁜 모습보면서 길떠날수 있게
그때도 지금처럼 웃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