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이를 낳지 않겠다.
내머릿속 가장 오래된 기억엔 10평대 투룸 이있다.
수도꼭지를 열면 새끼강아지 오줌같은 물줄기가 나오고 하수구냄새가 화장실 가득 채웠다.
차 뒷자석을 떼어낸 시트가 우리집 소파였고
해가 지나갈수록 천장위 곰팡이는 구역을 넓혔다.
그리고 곰팡이를 보며 잠들었다.
우리 부모님은 맞벌이를 했다.
우리집은 유선티비 시청료를 내지않았지만 이웃집에서 새어나오는 전파덕에 흐릿하게 만화채널을 볼 수 있었다.
흐릿한 화면속 만화가 꼬마의 외로움을 달랬다.
천성인걸까 나는 걱정, 긴장, 불안을 달고살았다.
걱정없는 시간이 단 1초도 없었다.
물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있다.
수업시간 발표가 가장 두렵고 무서웠다.
단원평가 70점을 맞은날은 놀러온 친구앞에서 매질을당했다.
엄마는 나에게 점수가 부끄러워 얼굴을 들고다니질 못하겠다고했다.
뭐든지 완벽해야했다.
선생님이 내준 숙제의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고치고 또고치고 그래도 성에차지 않으면 눈물이 터져나왔다.
유난히 많이 맞았던건지 부모님께 맞았던기억이 많다.
손 발 구두주걱 수건 자 단소 파이프...
물론 안맞아본 부위도없다.
난 단 한번도 대들지 못했다.
부모님이 말하길 한번도 사고친적없는 착한딸이였다고 한다...
시험전날엔 세상이 망했으면 좋겠고 또 항상 자살을 기도했다.
그리곤 시험날 아침엔 구역질을했다.
심장이터질듯 두렵고 무섭고 숨고싶었다.
그런날 부모님은 항상 유난스러운애 취급을 했다.
미칠듯한 성적압박에 도망치듯 실업계 고등학교로 도피하였다.
한달용돈 3만원남짓 대학교에 가기싫었다.
돈
돈을벌어야했다.
한참 놀나이 19에 취직을했고 더러운 사회생활에 뛰어들었다.
바닥인 자존감, 불안함, 우울감에 개같은 사회까지 맛보니 온 정신이 너덜너덜해지는것 같았다.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참으라는대답 뿐이였고 고통스러워하자 귀를 닫아버리곤 그저 실업계를간 내탓이라했다.
결국 버티지못하고 나가떨어져버렸다.
내부모님은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들에겐 내딸은 남부러울것 없이 취직해 여태 잘다니고 있다고 말한다.
나를 부끄러워한다.
죄책감이들었다.
외출을할때면 동네사람이 날알아볼까 부리나케 단지를 빠져나가곤한다.
내자신이 한심하다.
동시에 나의 부모가 환경이 돈이 증오스럽다.
나는 부모가 될 수없다.
동시에 별볼일없는 집안에서 아이를 낳음으로써 얻어지는 기쁨보단 허리띠를 졸라매는 고통이 더 크다는걸 잘안다.
나는 부모가될 자격이 없다.
나는 아이를 낳지 않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