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가끔 심심할 때 판을 기웃거리며 슬픈 일, 기쁜일, 화나는 일, 어이없는 일 등을 읽으며 누군지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같이 웃기도하고 화도 내기도 했어요. 그런데 오늘은 처음으로 제 이야기를 해보고싶어 글쓰기 버튼을 눌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익명의 공간에서 제 이야기를 하고싶었던 큰 이유는 이 글을 씀으로써 오랜 기간의 사랑이 조금이나마 머릿속에서 정리가 될 것 같은 마음과 또 내 스스로에게 절대 잊지 말자는 다짐 같은 우스운 마음에서 시작 되었어요. 아무도 모르는 개인 일기장이 아닌 이곳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면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었던 모든 것들을 시원하게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
참 못된 남자를 사랑했습니다. 제가 바보였단걸 저만 모르고 있었습니다. 삼류 소설보다도 더 소설같은 일들이 지나갔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 많은 빨간불들이 있었어요. 눈에 띄는 바람이나 폭력 같은게 없었기에 참 더디게 깨달았습니다. 멀리 돌아오는 동안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던 시간들. 잠깐씩 켜지던 그린라이트에만 눈이 멀고 저를 아프게할 레드라이트는 모른 척 했던 바보같은 세월과 내 청춘.
이 글은 순전히 저를 위해 쓰는 글 입니다. 그가 보내온 많은 빨간불들을 절대 잊고 싶지 않아서 쓰는 글 입니다. 요즘에도 문득문득 그가 그리워지는 제게 화가 나기 때문에 쓰는 글 입니다. 내가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를 자책하고 반성하기위해 쓰는 글 입니다. 저 역시 그를 만난 세월동안 쌓인 허물들이 있겠지만 그에 관한 이야기만 쓰고자합니다. 이 글을 읽는 분이 계시다면 여러분에게 어떤 판단이나 정의를 요구하는 글이 아니니 날카로운 말은 삼가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긴 글이 되겠지만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을 칠 때 저는 몇 그램이라도 가벼워지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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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처음 만난건 10년전 서울. 우연히 걸린 한 통의 전화로 그와의 인연이 시작 되었습니다. 그는 당시에 회사 기숙사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제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고, 제 목소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아니면 너무 심심했는지 지금은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으니 10분 후에 다시 전화를 걸어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스무살의 저는 재미있는 인연이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과 또 모르는 사람에게 걸려온 전화를 재치 있게 받아주고 다시 전화를 걸어 줄 수 있는지 물어보는 낯선 목소리에 약간의 설레임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10분후 저는 다시 전화를 걸었고 그렇게 우리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일주일간 전화로 그리고 문자로 참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서로의 싸이월드 주소를 주고받았고 누군지 모르던 낯선 남자가 조금씩 실체가 있는 존재로 다가왔지요. 다섯번째 되는 날에는 밤을 새워 이야기를 하다 그는 잠 한숨 못자고 출근을 할 정도로 빠르게 가까워졌습니다.
그리고 처음 맞는 주말에 우리는 만날 약속을 했습니다. 당시 휴학생이던 저는 그보다 자유로운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그의 집에서 가까운 지하철역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약속 시간에 맞춰 나갔지만 첫 만남에 그는 40분정도 늦게 나오게됩니다. 도착 후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고 문자도 없는데 저는 그 자리에서 왜 그렇게 오래 기다렸는지 모르겠습니다. 걱정이 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을꺼에요. 싸이월드에서 서로의 사진을 봤기 때문에 인상착의를 알고 있었지만 그가 제 앞에 나타났을 땐 그만 보이더군요. 반짝반짝 빛이 났어요. 저와 밤새 이야기를 나눈 후 이틀 뒤였기 때문에 수면 싸이클이 망가져 퇴근을 하고 잠깐 쉰다는게 깜빡 잠이 들어 40분이나 늦게 나오게 되었다며 많이 미안해했습니다. 어색한 첫 인사와 첫 사과를 들은 후 너무 배가고파 지하철역 바로 앞에 있던 롯데리아에 들어가 햄버거를 시켜먹었어요. 내 앞에 마주 앉아 있던 그 남자는 처음 부터 끝까지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고 햄버거도 반밖에 못 먹으며 제 눈을 마주치는 것도 힘들어했습니다. "너 너무 이쁘다.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이쁘다." 라는 말을 반복하며 제 앞에서 어쩔줄 몰라하던 그의 모습에서 아이같은 천진함과 제게 들려주는 달콤한 말들에 저는 제가 느끼기에도 참 빠른 속도로 그에게 푹 빠져버립니다. 우연히 걸린 전화 한통으로 시작된 사랑- 엄청나게 작은 확률로 시작된 우리의 인연은 제 속에서 운명이라는 간지러운 말로 덮을 수 있을 만큼 포장되어 있었습니다.
처음 한달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꿈속에 사는 듯 모든 것이 꿈결 같았어요. 그를 만나기전 남자친구의 바람으로 이별을 경험했기 때문인지 사람에 대한 믿음과 나만을 아껴주길 바라는 강한 사랑을 갈구하던 저에게 넘칠정도로 사랑을 받고있구나 느꼈습니다.
그 사랑에 푹 빠져있던 어느날 밤 놀이터에서 그가 힘들게 말을 합니다. 내게 하지 못한 말이 있다고.. 언제 어디서부터 어떻게 얘기를 해야할지 몰라서 말할 시기를 놓쳤는데 이제는 꼭 해야겠다며 뱉은 말은 그가 유부남이라는 소식. 부인과는 나를 알게되기 한달 전부터 별거중이며 현재 이혼진행 중이라는 소식. 법적으로 아직 유부남이었던 그가 이 얘기를 처음부터 내게 한다면 내가 안만나 줄 것 같아서 말하지 못 했다고 사과하던 그. 어이가 없고 화도 나고 무섭기도 했지만 깊어진 사랑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이혼이 진행중이라는 말에 무게를 실었고 저는 그냥 기다리면 되는 일이구나 생각했습니다. 모든일에는 양면성이 있지만 저에겐 그의 말만 들리고 그의 말만 믿고싶어 했어요. 그에게 들은 이혼사유는 부인의 정신이상 그리고 폭력. 다중인격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고해요. 가끔은 목소리도 눈빛도 말투도 달라지는 그 여자와 1년을 채 못 살았다고 합니다. 아픈 환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많이 참고 맞았다고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그 여자가 이성을 잃고 가위를 들고 그의 성기를 자르겠다 난리를 쳐서 그 여자를 제압하고 결혼 반지를 식탁위에 두고 그렇게 집을 나왔다고해요. (이 부분을 글로 쓰면서 처음으로 머릿속에 의문이 드네요. 그녀는 왜 하필 그의 '성기'를 자르려고 했을까?) 그녀의 존재를 알게 된 후부터 그는 제게 그녀를 얼마나 증오하는지 말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 그들의 법적인 관계가 깨끗히 정리 됩니다.
그 사이 그의 부인이 싸이월드에서 제게 쪽지를 보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와 함께 놀이공원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때 찍은 사진들을 그가 싸이월드에 올리는 바람에 저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고해요. 온갖 욕설과 앞뒤가 맞지 않는 횡설수설한 이야기들.. 저를 술집 여자라 생각하더군요. 정신이 이상한 여자라고 들었기 때문에 그녀가 이상하게 보였는지 아니면 정말 이상한 여자였던건지 그 당시에는 저 역시 그 여자가 밉고 싫었습니다. 그때 그 둘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그 여자에게서 한번쯤 들어봤다면 조금 더 객관적으로 큰 그림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혼이 끝난 후 그녀는 친정이 있는 지방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둘의 이혼이 정리되고 다시 평화로운 날들이 왔습니다. 그가 일을 하던 주중에는 전화, 문자, 그리고 화상채팅으로 시간을 보내고 주말에는 제가 내려가거나 그가 올라와 데이트를 했습니다. 우리집에 그가 처음 오던 날 약속시간 보다 늦게온 그에게 상한 마음은 수줍게 내밀던 꽃뭉치앞에 눈녹듯 사라졌습니다. 우리집 근처에 꽃 집이 없어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걸어오며 길가의 꽃들을 꺾어오느라 조금 늦었다고 말하는 다정한 얼굴을 마주할 때면 앞으로의 모든 길이 꽃길일 것 같아 마음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 통화를 하던 중에 그가 제게 부탁을 하나 합니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학교를 다녔던 그에게는 많은 미국인 친구들이 있었고 그는 그들과 Myspace라는 소셜네트워킹 싸이트에서 소통을 했었는데 컴퓨터를 하고 있었던 저에게 로그인을 부탁합니다. 메시지함에서 친구의 이메일 주소를 찾아 알려달라는 부탁 이었는데 영어로 소통을 하는 이야기들이 재미있기도 했고 또 동시에 내가 모르는 미지의 부분이라는 불안함도 있어 로그인 후에 그의 페이지를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모르는 그의 친구들과 내가 모르는 소통들이 찝찝했습니다. 그의 메시지함을 보던 중 어떤 미국인 여자와 주고 받은 메시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저의 영어실력으로는 모든 맥락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의 이혼 소식에 관하여 나누는 대화는 제일 먼저 눈에 띄더군요. 이혼을 축하해주는 그의 미국인 친구와 고맙다고 대답하는 그. 그리고 그가 제 이야기를 언급합니다. 한국에서 만나는 여자가 있지만 사랑까지는 아니라고. 충격 이었습니다. 저에게는 너무나 커져버린 사랑이었고, 그 역시 저를 많이 사랑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혼란스러웠습니다.
모르는 척 해야하는건지 고민을 하다 그에게 털어놓았어요. 메시지들을 읽어봤는데 그런 내용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고. 그는 사과했습니다. 변명도 했어요.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금방 이혼을 했는데 이혼을 하자마자 다시 사랑에 빠졌다는 말에 친구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할까 두려웠대요. 그리고 젊은 나이에 결혼에 매여 있다 이제 자유를 얻은 기분인데 본의 아니게 나를 만나게 되어서 가끔 그 자유와 나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낀다고. 본심이 아니고 아무일도 아닌 거라며 저를 달래줬어요. 정말로 감추고 싶은게 있었다면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메시지함을 확인해 달라는 부탁도 못했을 거라며 오해하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들을 진심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괴리감을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어린 나이에 결혼했다 이혼으로 받은 그의 상처들.. 그럴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조금씩 그를 이해하는 방법을 알아갔습니다. 어릴때부터 외국 생활을 해온 그였기 때문에 조금 다른 정서를 가지고 있구나, 마음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머리로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야 살 것 같았습니다.
주중에는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도 가끔 친구들을 만나곤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저에게 해주었고 그가 회사 여자 동료들과 어울리는 것도 그에게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마음 속으로는 싫었지만 그에게 괜찮은 일들이었기 때문에 저도 괜찮은 척 했습니다. 어느 주말 그와 저는 그의 기숙사에서 데이트를 하며 뒹굴 거리다 낮잠을 잤습니다. 기숙사 침대였기 때문에 성인 둘이 누워 뒹굴기엔 침대가 조금 작았어요. 침대 사이즈에대해 이야기를 하다 그가 얘기합니다. 그와 가깝게 지내던 여자 동료가 한명 있는데 저도 몇번 이야기를 듣고 한두번 마주친적도 있던 여자였어요. 그 여자 역시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고 며칠전에 그 친구와 둘이 술도 마시고 수다를 떨다 그 여자가 그의 방에서 자고 갔다는 이야기를 듣게됩니다. 너무 놀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다시 물었어요. 그의 방에서 낯선 여자가 밤을 지새고 갔다고? 그렇다고 했습니다. 떨리는 마음을 추스리고 물어 봤습니다. 그 여자는 어디서 잤고, 너는 어디서 잤는지.. 한 침대에서 잤다고 합니다. 서로 손 하나 안 건드리고 그 여자는 벽을 향해 눕고 본인은 그 바깥을 향해 몸을 웅크리고 잤다고 합니다. 바람을 피거나 다른 사건이 있었다면 저에게 하지 못할 이야기 였겠지만 그런게 아니기 때문에 하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괜히 오해가 커질까봐 그리고 자신은 당당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그 때 저도 알았을거에요. 이 남자는 항상 나를 상처 줄 사람이구나. 나와 너무 다른 사람이구나..
몇달 후면 그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어요. 한국에서 계약직으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저를 만난 후 1년더 계약 연장을 하고 싶다 말 했었지만 막판에 저에게 그러더군요. 나를 많이 사랑하지만 나 때문에 그런 큰 결정을 하기는 힘들다고. 우리에게 몇달 안남은 시간을 상처주고 싸우면서 보내고 싶지 않아 앞선 일도 제가 이해를 하고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둘이 처음 맞이하는 크리스마스 이브. 술도 마시고 데이트도 하고 재미있게 놀다가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술에 취해 피곤해 하는 그에게 피로를 풀라고 거품목욕을 준비해 주었어요. 그가 목욕을 하는 사이 저는 방에서 꼼지락 거리고 있었는데 그의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모르는 지방 번호가 떴어요. 한번도 그의 전화를 제가 받아 본 적이 없는데 그 때는 받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는 욕실에 있었기 때문에 전화기를 가져다 주기전에 제가 먼저 받았어요. 그의 이름을 대며 물어오는 낯선 여자의 목소리. 누구냐고 되물었습니다. 이름을 말해주더군요. 그의 전부인과 똑같은 이름. 왜 전화 했냐고 제가 물었습니다. 전화를 건 이유는 간단하더라고요. 그가 전화 하라고 했답니다. 전화기를 들고 욕실에 들어가 그에게 전화기를 내밀었습니다. 네 전부인한테 전화 왔다 받아라. 저는 문앞에 서서 그가 통화 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어색한 분위기에 통화는 금방 끊겼고 제가 물었습니다. 그 여자한테 왜 전화가 온거냐고. 왜 전화를 하라고 한거냐고. 그 여자랑 연락을 하고 지냈다는 것을 왜 말 안했냐고. 그의 대답은 (혹은 변명은) 이랬습니다. 자기가 책임을 전부 지지 못한 죄책감이 가끔 들어서 그 여자의 안부가 걱정이 되었다고. 그 여자는 어릴 적에 친아버지에게 성적인 학대를 당한 적이 있는데 자기와 이혼 함으로써 다시 그 아버지가 있는 고향으로 내려가게 된 것이 가끔 너무 걱정이 된다고.
아.. 모두 제가 들은 얘기이고 겪은 이야기 이지만 참 삼류 소설 보다도 더 소설같네요. 전 무엇에 그렇게 눈이 멀었던 걸까요. 처음 맞이한 크리스마스 이브는 그렇게 냉랭하게 지나갔습니다. 저는 마음이 많이 상해 있었고 그가 달래주길 바랬지만 제가 한마디도 하지 않자 그 역시 한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서로 등을 돌리고 말이 끊긴채 성탄절 이브가 지나갔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제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을하니 제게 사과를 했습니다. 성탄절을 함께 보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약 두달후면 미국으로 건너가는 그의 스케쥴을 생각하며 앞으로 함께 나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부글부글 끓는 마음을 머리로 식혔습니다. 그에게 받은 상처 보다도 그를 사랑하는 마음과 그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습니다. 사랑에 빠지면 모두 바보가 된다고 위로 아닌 위로를 스스로에게 퍼 부으며 이겨나갔습니다. 둘이 함께 있을 때, 모든것이 핑크빛일 때면 이렇게 완벽한 사랑은 또 받아보지 못할 거라는 스무살의 종잇장 같은 마음 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미국으로 출국 해야하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3월 초 한국에서도 새 학기가 시작되는 때 였습니다. 저도 학교 복학을 하고 그도 미국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하며 장거리 연애를 계획 했습니다. 여름 방학 때 꼭 놀러오라며 눈물을 그렁거리며 공항에서 그가 안아주었습니다. 참 이상했어요. 왠지 그게 그의 마지막 모습인 것 같아서요. 그를 보내고 홀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저는 이별을 경험 한 것 처럼 마음이 깨졌습니다.
그가 미국에 무사히 도착하고 연락이 왔습니다. 예전처럼 화상채팅, 전화, 그리고 문자를 주고 받으며 하루 그리고 이틀이 지나갔어요. 3월 이었기 때문에 그는 바로 학교 생활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미국은 학기가 1월에 시작하더군요) 시차적응, 생활적응 등을 하며 자유롭게 지냈습니다. 그가 돌아간 곳은 예전에 그가 학교 생활을 하고 오랫동안 살았던 지역이었기 때문에 알고 지내던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남자친구들 보다는 여자친구들이 많더군요. 삼일 째 되는 날 어느 날 처럼 그에게 하루 일과를 물었습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고 그 친구와 마리화나를 피웠다고 대답합니다. 너무 놀란 저를 안심시키려 미국에서 그 정도 마리화나는 많은 사람들이 피운다고, 한국처럼 큰 범죄로 취급되지 않는다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함께 마리화나를 피운 친구에 대해 물어보니 역시 여자.. 더군다나 예전에 학교 다닐 때 만났던 전 여자친구 (미국인) 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소화 시켜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 남자를 그냥 미국인이라 생각한다면 저런 일들이 정말 아무렇지 않은 일인건지.. 혼란 스러웠지만 너무 멀리 있는 그였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미국 시간으로는 오후 시간 이었기 때문에 그는 외출중 이었습니다. 전 날 그에게 마음 상하는 말들을 듣기도 했고 그가 많이 보고싶었기 때문에 아침일찍 일어나 전화를 했지만 그의 목소리가 냉랭했습니다. 친구들과 테니스를 치고 있는데 지금 자기가 통화를 하고 있었어 모두들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빨리 가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때전 딱 한가지만 물어봤었어요. 그 친구들 여자니? 미국인 여자친구들이라고 했습니다. Myspace에서 자주 보이던 이름들과 사진들.. 그 친구들과 테니스를 쳐야 한다며 바삐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그에게 이별을 통보 받았습니다. 미국으로 건너간지 채 일주일이 안돼 그가 울면서 이별을 얘기했습니다. 서로의 떨어진 거리와 불확실한 미래를 들먹거리며 서로를 위해 헤어지는게 좋을 것 같다는 그의 얘기.. 그동안의 사건들로 제 머리속에선 이 남자에게서 멀리 멀리 떨어지는 것이 내게 좋은 일이다라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마음은 항상 더뎠습니다. 그만큼 깊게 사랑해온 시간을 혼자 견뎌내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가 떠난 후 저는 다시 복학한 학교 생활도 그리고 일상 생활도 정상적으로 할 수 없었습니다.
겨우 10년전의 이야기를 쓰는데도 두시간이 넘게 걸렸네요. 그렇게 헤어졌을 때 모든 인연이 끝났으면 좋았을 것을... 이 지독한 인연은 약 4년후 우리를 다시 한 곳에 데려다 주었고 3년간의 동거 그리고 3년간의 결혼 생활로 이어집니다.
모든 이야기를 한번에 쏟아내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엄청 걸리네요. 묻히는 글이 되더라도 끝까지 써보고 싶습니다. 오늘은 시간 때문에 여기서 줄여야겠네요.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이 계시다면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하게 될 운명을 어떤 주어진 사람을 사랑할 운명과 더이상 혼동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