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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못된 남자를 사랑했습니다. -첫 이별-

가을하늘 |2016.10.27 15:46
조회 1,109 |추천 3
그에게 헤어짐을 통보 받고 솔직히 처음 한달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한달이라는 시간이 어찌보면 짧은 시간이 아닌데 학교 수업 출석도 엉망 이었을 것이고 사람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독어독문을 전공했는데 당시 스터디를 같이하던 원어민 친구가 있었습니다. 스터디 모임이 저 때문에 한달 가량 무산이 되어 저를 많이 걱정 해주더라고요. 간단히 상황 설명을 했습니다. 이별 직후라 정신을 두고 지내고 있다고.. 주말에 미술관에 가자고 하더라고요. 밖에 나가 바람좀 쐬고 새로운 사람들 속에 섞이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싶어 응했습니다. 

그와의 이별 후 제 상태는 지독한 숙취가 지속되는 것과 비슷한 상태 였습니다. 속이 울렁 거렸고 쉽게 머리가 아팠습니다. 나를 스쳐가는 모든 것들에서 그의 잔재를 발견했습니다. 제 앞에 걸린 저 유명한 그림들을 보는 건지 마는건지.. 그동안 너무 못먹고 지냈던 탓일까 마음만큼 몸도 지쳐있었습니다. 저녁을 먹으러 자리를 옮겨 큰 창문이 있는 일식집에 들어갔습니다. 밥을 씹는 건지 돌을 씹는 건지도 모를만큼 모든 감각이 정지한 듯한 심정 이었는데 고개를 돌려 밖을 쳐다보니 길가의 무표정한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당황스러울 정도로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나는 왜 저 사람들처럼 아무렇지 않을 수 없는 것인지 서러웠습니다. 그와의 이별 후 그에게 이별의 말을 들었을 때에만, 그리고 그가 보고싶어 무작정 전화를 걸고 그의 목소리를 들을 때에만 울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처음으로 온전한 그의 부재 안에서 주저 앉아 울었습니다. 너무 울어 헛구역질이 나오고 식당안 손님들의 시선이 저에게 쏟아졌습니다. 

이것이 그와의 이별 후 한달이라는 시간사이 저에게 남겨진 유일한 기억 입니다. 이별의 슬픔과 배신감이 제 영혼과 기억들을 통째로 갉아 먹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죽음같은 한달의 시간이 지나고 그에게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내가 너무 보고싶다고 말합니다. 나를 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나를 죽일 듯한 그의 이름을 다시 입 밖에 내는 순간 저는 또 무너졌습니다. 그를 잊을 수 없어 힘들어하던 시간들이 내 앞에 다시 돌아온 그의 존재 앞에서 보상받는 기분 이었습니다. 그 역시 나를 떠날 수 없는거라며, 그 역시 나만큼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했습니다. 

여전히 먼 물리적 거리가 존재 했지만 그와의 재회로 제 생활은 천천히 다시 원래자리를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아니, 원래 자리를 찾아가기 보다는 하루의 시작부터 끝까지 온통 그로 물들기 시작했어요. 수업 시간중에도 그에게 전화가 오면 강의실 밖으로 나가 수업이 끝날 때까지 그와 통화를 했습니다. 이별의 원인 중 하나였던 불확실한 미래를 모르는 척 하고자 농담반 진담반 결혼 하자는 얘기까지 나왔던 시기였습니다. 사랑에 눈도 멀고 영혼까지 멀었던 시간들. 

그러나 그 해 여름이 오기전 그는 저에게 다시 이별을 고합니다. 처음 이별을 고할 때와는 달리 그의 변명들이 지금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또 한번의 배신감과 왜 그를 또 믿었는지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들로 괴로운 시간들이었습니다. 내 뱉는 가는 숨조차도 제 심장을 찢어내는 것 같은 고통의 연속 이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상처 받은 피해자가 된 동시에 그를 세상에서 제일 미워하는 증오자가 되었습니다. 그런 그를 잊지 못하고 괴로워 하는 스스로를 미워하며 가학하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절대 전화하지 말아야지, 절대 전화하지 말아야지 하루에도 수백번 다짐을 해보았지만 그리움을 견디지 못하고 전화를 걸곤 했습니다. 그렇게 그 날도 그리움을 참지 못하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전화를 받은건 낯선 목소리 그리고 낯선 언어. 웬 여자가 건네던 hello.

당황하고 화도 나고 어쩔 줄 몰랐습니다. 먼저 그의 이름을 대며 그의 전화가 맞는지를 물었더니 맞다고 합니다. 그를 바꿔달라고 하자 지금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전날 밤에 그 여자 집에 전화기를 두고 갔다고합니다. 거기까지 듣고나니 상황 파악이 되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내게 또 이별을 고한 그 남자.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된 여자의 존재. 

제가 누군지 아냐고 그 여자에게 물었습니다. 알 것 같다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자존심을 팽개치고 물었습니다. "네가 생각하기엔 그 남자가 나를 다 잊은 것 같니?""I don't think so."

이제 그와 저 갈 때까지 갔구나, 더 이상 우리 사이에 희망은 없는 거구나 느끼며 매일매일 그를 잊을 힘을 찾았습니다. 그가 미국으로 떠난지 벌써 반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그래서 그런지 두번째 이별은 처음보다 흡수가 빨랐습니다.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열심히 그를 잊어갔습니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혼자인 시간엔 슬금슬금 피어오르는 그에 대한 생각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그럴 때면 그 당시 그가 열심히 활동하던 Myspace 소셜 네트워킹 페이지에 들어가 그의 생활을 구경했습니다. 잘 지내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 그를 미워할 힘이 더 생기는 것 같아 고통의 무게만큼 방어의 옷도 두꺼워졌습니다. 

그러다 한 동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와 그의 친구들이 불꽃놀이를 하던 짧은 동영상 이었습니다. 내 것인줄로만 알았던 그 환한 미소로 손에 작은 불꽃을 들고 있는 그를 보았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그의 모습에 마음이 울렁거렸던 것도 잠시. 동영상 끝 부분에 그가 작은 불꽃을 들고 누군가에게 건내는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OO야, 너도 해볼래?"

눈을 의심했고 귀를 의심했습니다. 한국에서 이혼하고 간 그의 전 부인이 그 동영상안에 있었습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건지 정리가 되질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그에게 전화를 걸어 물을수도 따질 수도 없었습니다. 그와 저는 이미 끝난 사이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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