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다듣다 어이가 없어서 씁니다. 제 얘기는 아니고 저랑 가장 친한 친구 얘기인데, 듣고있자니 왠지 내가 더 화나고 억울하고 흥분돼서 참을 수가 없네요. 화를 주체하기 어려우니 그냥 음슴체로 가겠음.
내 친구는 강남 모 학교에 다니는 학생임. 얘를 돼지라 하겠음. (내 친구 뚱뚱하지 않음!!! 다만 그 학교에서 별명이 돼지라길래 알아보는 사람이 있길 바라며 씀) 같은 학교를 나왔는데 고등학교는 친구들끼리 특목고랑 자사고로 빠지게 돼서 뿔뿔이 흩어짐. 그나마 나는 학교가 서울이라 기존에 같이 다니던 애들 중에서 비교적 얘랑 교류를 훨씬 자주하는 편임.
얘가 다니는 학교는 비교적 부유한 계층이 많은 학교임. 강남이기도 하거니와 그냥 지역적으로 강남 중에서도 그런 특색이 강한 동네임. 사건의 전말을 소개하자면 이럼. 돼지가 학교에서 친하게 지내던 애가 둘이 있음. 그 둘 중 하나가 주인공인데, 걔를 영서라 하겠음.
영서는 유라언니급까지는 아니어도 대기업 고위 간부 집 딸인데다 막내임. 다른 말로 하면 엄청 사랑 받고 자랐음. 저번에 돼지 생일날 영서네 집에 갔는데, 열일곱살짜리 애를 심지어 다른 애도 있는데 우리 애기 우리 애기하면서 뽀뽀하고 난리가 났었다고 함. 그래서 그런지 굉장히 자기본위적이고 사랑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는 듯 했음. (내 친구가 한 말은 아님. 그냥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서 내가 종합한 내용)
돼지랑 친한 애가 둘이라고 했잖슴? 셋이 같이 다니는데 영서는 다른 애보다 돼지를 더 좋아했음. 솔직히 왜 그런지는 정말 이해가 불가능하지만 그냥 그랬음. 그래서 학기 초반에 셋 다 같은 반인데도 불구하고 맨날 돼지만 따로 붙잡고 운동장 벤치에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고 함.
돼지는 평소에 자기 얘기 잘 하는 편이 아님. 하긴 하는데 자기 감정이나 느낀 점 같은 얘기는 잘 안하고 그냥 팩트만 얘기하는 이상한 애임. 그런데 친해진 지 3일도 안 된 영서가 돼지한테 갑자기 과거 이야기를 하는 거임. 중학교 때 애들이 자기를 괴롭혔었다, 자기가 입원한 사이에 남자친구한테 자기랑 헤어지라하고 바람핀 여자애가 지금 같은 반이라는 둥 별 얘기를 다 함. 돼지는 자기랑 상관 있는 얘기 아니면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서 그런갑다 하고 말았음.
학구열 좀 센 곳에 살면 알 사람은 다 알거임. 엄마들끼리 모여서 반모임하고 자기 자식 자랑하는 그런 흔한 모임이 당연히 돼지네 학교에도 있었고, 그 중 영서네 엄마는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주요 멤버 중 하나였음. 하루는 반모임 다음 날이었는데, 영서가 돼지랑 나머지 한 마리-얘 안쓰러우니까 을이라 하겠음. – 한테 갑자기 반 애들 부모님 이야기를 함. 그 때가 학기 초반이라 1학기 회장이 막 처음 뽑힌 때였는데, 회장의 어머니께서 반모임을 주도하는 게 보통 일반적인 분위기임. ‘00이네 엄마 완전 짜증난다고 우리 엄마가 나한테 화내~ 왜 그렇게 나대는지 모르겠어.’ 뭐 대충 이런 류의 내용이었음. 이때부터 우리 돼지는 아 말을 아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함.
문제는 그 때가 마지막이 아니었음. 그 후로 정말 많은 부모님들의 험담을 들을 수 있었는데, 처음에는 친하지 않아서(돼지 주제에 친구 기준은 높음 ㅡㅡ;) 그냥 넘기다가 나중에는 이건 정말 아니다 싶어 매번 하지 말라고 했다함. 부모님 이야기뿐 아니라 중간기말고사 시험이 끝나면 돼지네 반 애들 성적을 이야기하고 다녔음. 누가 29점이라더라, 누구는 몇 등이라더라. 문제는 여기서 웃긴게 ‘누군지는 말 못하지만 내 앞 번호야’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는 거임. 우리 돼지 그런거 듣고 가만히 있을 성격이 못됨. 맨날 뭐라고 했음.
한 가지 다른 문제점도 있었음. 애가 너무 사랑 받고 자라서 자기밖에 모른다고 했잖슴? 돼지는 학교를 저엉말 멀리 다님. 왕복 3시간 30분을 날마다 통학하는 대견한 돼지임. 그러다보니까 애가 주말에도 수업을 듣고, 자습실에 있는데 (학교에다 살림 차림) 영서가 맨날 약속을 잡는거임. 영서는 외로움을 참 많이 타심. 화장실도 절대 혼자 못 가고 교무실도 혼자 못 가고 절대 자기 친구가 다른 애랑 놀아도 큰일나고 대신에 자기는 모든 애랑 놀아야 함. 저번에 한번은 을이 영서 남사친에게 볼일이 있어서 말을 건적이 있는데, 영서가 계단으로 을을 밀어버리고 본인이 얘기하심.
당연히 밥도 혼자 못 먹음. 그래서 맨날 돼지를 부르는데, 문제는 2시쯤 점심약속을 잡았다 치면 1시 50분쯤 연락을 해서 ‘나 귀찮아.. 미안해 너무 힘들어ㅠㅠ 못 갈 것 같아’ 이런다는거.. 한두번도 아니고 매번 반복되니 그 다음부터는 돼지가 뭐라고 했나봄. 그럼 ‘미리 말했잖아!’ 이러고.. 얼마나 심각했냐면 여름방학 기간 동안 돼지는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주말까지 학교를 나갔는데, 19번의 약속 중에 제대로 약속을 지킨 것이 단 한번임. 게다가 그 한번도 미리 가기로 한 식당이 있었는데, 오기 전에 그 식당을 다녀왔다고 하는 센스를 발휘해주심. (돼지가 평소에 이런걸 찌질하게 하나하나 세는 타입은 아님. 다만 아이큐가 161이라 그냥 막 외우심..똑똑한 돼지)
이것뿐만이 아님.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왜 애정결핍 증세가 나타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볼 때 영서 얘는 정도가 심함. 돼지가 좀 신기한 캐릭터인데, 똑똑하고 성격 괴팍한데 특이하고 많이 병약한 스타일임. 얘는 진짜 어렸을 때부터 많이 아팠는데, 세브란스 기준으로 가보지 않은 과가 없음. 심지어 성모병원은 vip로 다니고 의료사고도 몇번 겪은 애임. 애가 워낙 많이 아파봐서 그런건지, 그냥 성격이 그런건지 아픈걸 잘 티를 안 냄. 사실 잘 못 느끼는 것 같기도 함. 저번에 한 번은 커피포트 끓인 물을 실수로 떨어뜨려서 발에 쏟았는데, 그냥 ‘아 뜨겁네’하고 별로 서두르는 기색도 없이 슥슥 닦음. 쓰다가 생각난거지만 뼈에 철심박았을 때도, 아데노이드 제거술하고 코에서 고정 철사를 빼냈을 때도 아프단 소리조차 하지 않았었음. 안 아프냐고 물어보면 항상 아픈데 이상하게 티가 안 난다고만 했었던 것 같음. 아무튼 이 얘기를 이리 장황하게 한 건 다른 이유가 있음.
영서는 그냥 하는 말이 징징대기 또는 욕하기 둘 중 하나임. 남자 얘기도 하긴 함. 맨날 머리가 아프다, 배가 아프다, 어지럽다 등등 온갖 아프단 소리를 많이 함. 거기다 대고 어떻게 하라는 조언을 해주면 아니 그건 이래서 불가능하고 저건 저래서 큰일나고 이런 타입임. 이것도 한두번이지 하루종일 하는 얘기가 저것 밖에 없음. 심지어 하루는 영서가 돼지한테 아프다고 찡찡대는 데 그 날 돼지가 정말 아팠음. 그냥 그대로 병원 갔는데 그 순간까지도 영서는 돼지한테 난리를 침.
말하자면 끝이 없지만 대충 이쯤에서 끊고 이야기하겠음. 을은 비록 을이지만 사진을 보면 참 예쁘장하고 완벽한 서구형 미인임.(왜 돼지랑 놀지) 그래서 그런지 선생님들이 을을 엄청나게 갈구심. 얘가 피부도 하얗고 눈썹도 진한데다 머리도 노란 갈색이어서 그냥 숨만 쉬어도 잡힘. 하루는 점심시간에 아예 화장 잡을라고 한 선생님이 대기를 타셨는데, 틴트를 바른 을만 잡혀서 깨지고 전부 다한 영서는 그냥 프리패스. 을이 화를 내는데 영서가 거기다 대고 ‘니가 잘못했잖아’ 이랬음. 눈치 없는 거 하난 국가대표임. 정말 사소한 일이었는데 영서가 일을 키움. 사과를 안하고 적반하장으로 나온거임. 돼지는 말 나온 김에 그 동안 쌓인 감정을 전부 얘기함.
문제는 영서가 그냥 씹고 다음날부터 돼지랑 을을 무시하기 시작했단거임.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돼지랑 을이랑 둘이 다니는 구도가 됐음. 근데 분위기가 좀 영서랑 돼지랑 멀어진 것 같으니까 몇 명 애들이 돼지에게 그간의 일들을 전해옴.
돼지 집이 절대 못 사는 편은 아님. 막 엄청난 재벌 이건 아니더라도, 꽤나 잘 사는 축에 듬. 그럼에도 불구하고 돼지는 만년 알바를 함. 다른 이유라기보다는, 의료보험료 청구와 각종 세금 납부를 돼지가 맡아서 하는데, 매번 억대로 나가는 병원비를 보면 죄책감이 들어서 차마 노는 데 돈을 쓸 수 없다고 함. 얘는 법에서 제한두는 것 빼고는 안 해본 알바가 없는데다가, 일도 곧잘 하는 편이라 시급도 꽤 높게 받고 일했었음. 다만 요즘은 학업에 정진하시느라 그냥 아빠 회사 일 받아다가 함.
돼지는 돈을 막 쓰는 편은 아닌데, 절대 돈을 아끼지 않는 곳이 책이랑 옷임. 돼지네 방 가면 혼자 방 2개나 쓰면서 침구도 없고 한 방은 옷 방, 나머지 하나는 책장만 있음. 아 왜 얘기가 일로가는지.. 아무튼 요지는 돼지가 어디가서 무시 받을 만한 애는 아니란거임! 근데 영서가 평소 돼지가 알바하는 모습을 보고 ‘쟤 집이 어려운 것 같다, 반모임에서 어머님 얼굴 뵈니 고생 많이 하신 것 같더라’ 이런 이야기를 함. (차마 원래 그대로는 못할 것 같아서 많이 순화시킴) 문제는 이게 ‘돼지가 저소득층 사배자로 입학했다더라’로 와전된거임.
돼지가 많이 아프다고 했잖슴. 최근에 돼지가 난소에 혹이 생긴 걸 진단받았음. 그냥 약먹고 어찌저찌 지내는 중인데 그걸 영서가 또 ‘쟤 불임이더라, 불쌍한 애다’로 전달하는 바람에 그건 그것대로 소문이 났음.
그냥 이런 식의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퍼졌음. 돼지가 알게되고 영서한테 이야기하기 전에 나랑 이야기한게 백배는 많을 거임. 돼지는 정말 거듭거듭 생각도 많이하고 그러다 결국에는 점심시간에 조용히 둘이 이야기를 하려고 시도함. 그런데 영서가 ‘자기는 그런적 없다. 기억이 안난다.’ 그래버리는 거임. 웃긴건 돼지가 직접 들은 것도 있고, 들은 증인도 있고 통화녹음본도 있어서 ‘그래? 그럼 이거 애들 다 듣는데서 틀어도돼?’ 이랬더니 ‘그건 내 인권 침해니까 안된다’라고 했음. 다음 시간이 남녀합반 수업이었는데, 점심시간 내내 그러다가 남자애들이랑 선생님이 들어오니까 갑자기 영서가 태도를 바꿔서 서럽게 우는거임. 결국 반애들이랑 선생님은 돼지보고 그만 좀 하라고 말리는 지경에 이르렀음. 나 같았으면 끝까지 난리를 쳤을텐데 우리 돼지 니가 뭔데 피해자 코스프레냐고 한마디만 하고 끝냄.
그러다가 그날 저녁에 장문의 사과문이 왔음. 일단 사과문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기억은 안 나지만 내가 미안해. 오해일 수도 있지만 내가 다 잘못했어. 그런데 녹음본 좀 보여줄 수 있니?’임. 어후 정말 보는 내가 다 암걸릴뻔 했음. 당연히 돼지는 사과를 받지 않음. 자기는 용서할 생각이 없으니 다시는 사과하지 말라 함.
다 적지는 못하지만 그러고나서 일이 더 크게 벌어짐. 결국 반 애들 대부분이 영서의 일에 대해서 알게 됨. 그런데 한 두명을 욕하고 다닌게 아니라서 서로서로 묻고 알려주고 뭐 이런 시간을 보냈음. 그러다 다른 반 애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는데, 다른 반 애가 자신이 욕을 들은 것을 알고 화가 나서 영서한테 따짐.
그랬더니 영서 왈 ‘00아 나 진짜 너에 대한 나쁜 말을 한 적이 없어. 아마 돼지한테 들은 것 같은데 돼지가 요즘 나랑 사이가 안 좋아서 나를 괴롭히려고 그렇게 얘기 한 것 같아. 난 너에 대해 그렇게 얘기한 적 없어.; 이래버린 거임. ㅋㅋㅋㅋㅋ..? 돼지가 한 말 아니고 돼지 친구들이 들었다고 한 말임. 돼지 옆에서 열뻗쳐 하고 나는 나대로 보면서 암걸릴뻔 했음. 잘못한 것은 없는데 애들한테 사과는 왜 할까? 왜 들은 사람은 있는데 말한 사람은 없을까? 결국 그 다른 반 애가 영서에게 결국 전화를 해서 따지는데, 영서 어머님이 나서서 통화를 하는 내용은 정말.. 그리고 결과적으로 내일 돼지랑 삼자대면하기로 했다함. 쓰다보니 너무 길어져서 급 마무리 짓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한 가지임. 돼지가 뭘 해야할까?
나도 조언을 해주고 싶지만 나나 돼지나 만년 문제나 풀던 아이라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