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고수가 있는 병원에 도착한 서희는
"휴~ 겨우 찾았네..."
"어... 왔냐? 왜 이렇게 늦었냐?"
"애기하면 길다."
서희를 이래저래 보던 고수는
"짜식 칠칠맞게 왼손은 어디다가 잊어버리고...여자애가 옷꼬라서니 하곤
여기저기 찢어지고...쯔쯧..개네들은 잘처리했냐?"
"그럼 확 쓸어버렸지..뭐"
"그래 잘했다...장해."
고수는 강아지머리 쓰다듬는것처럼 서희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선영은 고수옆에 서있는 서희를 발견하고
"어..서희언니 언제왔어?..은진언니 서희언니 왔어."
고수: 뭐냐? 너는 보이고 나는 왜 다른사람한테 안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거냐?
서희: 너는 지금 어느쪽에도 속하지 않잖아..나는 지금 천계를 밀어낸
공간이라서 보이는거지...
고수: 쳇~ 불공평해..그런게 어디있어?.. 나도 천계 밀어줘..
서희: 바보..천계가 무슨 미닫이문이냐?
은진은 한걸음 앞으로 나오면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서희야~ 우리 고수씨 어떻게 하니? 그냥 저렇게 끝나는것은 아니지. 글치?"
서희는 고개를 저으면서
"아니...나도 어떻게 할수 없어. 다만..."
"다만?"
"아니다..우리 그냥 이렇게 순리대로 흘러가자.."
"방법이 있는거지? 뭐던지 하겠어..알려줘.."
"뭐던지라...그러면 목숨이라도 내놓을수 있다는거냐?"
고수: 얌마~ 무슨소리하는거야?..
서희: 고수 넌 가만히 있어..
"그렇게 할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어..대신 고수씨 다시 살려줘.."
"감동적이기는 한데 그렇게 쉽냐? 네 목숨이..."
"어짜피 그때 고수씨가 아니라면 내가 저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그래 나도 죽는게 무섭고 두려워 하지만 이게 너가 아까 말한 순리야..제자리로 가는.."
고수: 은진씨..그런말이 어디있어요? 서희야..은진씨가 제정신이 아닌가봐..
그냥 무시하고 우리 떠나자..
서희는
"그래? 그게 너가 원하는것이라면 그렇게 해주지..."하면서 한손을 앞으로 뻗어서
은진의 목을 잡을듯이 한걸음씩 앞으로 다가가자
선영이는 울먹이면서
"서희언니 무서워 이러지마..언니 그런 사람이 아니잖아? 제발 이러지마..."
서희는 선영을 차갑게 노려보면서
"선영이 너는 나가 있어.."
"언니"
"나가있으라면 나가있으란 말이야.."하고 소리를 질렀다.
평소에 헤헤거리면서 웃던 그런 서희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마치 얼음처럼 차갑고 무표정한 모습이 사람을 질리게 만들었다.
"언니 갑자기 왜이래?"
서희는 뻗었던 팔을 선영이쪽으로 향하자 선영을 스르륵 뒤로 밀어서 문밖으로
내보내고 문이 안으로 찰칵하고 잠겼다.
선영은 문은 열려고 손잡이를 당기고 문을 두드리면서
"언니..서희언니 문열어줘..서희언니..."
서희가 은진쪽으로 한걸음 더 다가서자 고수는 팔을 벌려서 앞을 막자
서희는 고수의 몸을 통과해버리고 서희의 목을 잡았다.
"은진아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물어보자...왜 고수냐? 직장도 별볼일없고
그렇다고 집안이 좋은것도 아닌데.. 왜 고수 대신 죽을 결심을 했냐?
그만큼 사랑하는것도 아니잖아?"
"사랑? 그래 나는 아직 사랑이 어떤건지 잘몰라. 하지만 그냥 좋아.
무슨무슨 이유로..
무슨무슨 조건때문에 이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한다는게 아니라 그냥 좋아.
마치 공기나 물처럼...고수씨는 내게 그런 존재야..
내가 지금 죽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도 아까운것은 없는데...
다만 그동안 여행도 같이가고 남들처럼 데이트도 하고 싶었는데..
바쁘다는 핑계만 되고 못했는데 그것이 아쉽다."
"그래도 너가 죽으면 한사람은 살릴수 있다는걸로 위로로 삼아라..
준비는 됐냐?"
은진은 눈을 꼭 감으면서 고개를 끄덕이자 서희는 잡은손에 힘을주자
은진은 괴로운듯 몸을 움직였다.
그러자 고수가
고수: 서희야 그만해.. 은진씨는 아무상관도 없잖아.
너가 왜 이러는지 난 알고 있어."
"뭘 안다는거야?"
고수: 내가 4번째잖아...내가 죽으면 넌 다시 환생할수있잖아.
서희는 놀라면서 은진을 잡았던 손을 풀자 은진은 콜록콜록하면서 숨을 고른다.
"아니..너가 그걸 어떻게 알았어?"
고수: 예전에 미국에 사는 너의 언니한테서 전화왔을때 그때 알게되었어.
"언니는 참.. 뭐하러 그런 쓸잡데기 없는 애기하고 그러냐? 그래서 뭐라고 했냐?"
고수: 그냥 목숨이 하나더 여분이 생기면 그때가서 생각해보겠다고 했지 뭐.
"그런데도 왜 너 도망가지 않고 나랑 같이 살았냐?"
고수: 뭐 딱히 갈데도 없고...너랑 있으면 심심하지는 않고 해서...
"죽을수있다는 생각은 안해봤냐?"
고수: 해봤는데...설마 죽이겠냐했지...나 같은 꽃미남을...하하하..
"그소리를 듣으니깐 없던 살의가 다생긴다.
휴~ 참내 너희둘은 어쩔수없나보다.."
고수: 자~ 그러면 이제는 어떻게 해야하니?
"은진이가 대신 죽으면 그것으로 너를 살릴수는 있는데...
그것은 싫겠지?..그러면 할수없다. 그냥 원래대로 해야겠다. 미안하다..."
고수: 아니 나는 괜찮아..도리어 고맙다..은진씨가 아니고 나라서...
"그러면 내가 너의 몸이랑 이어져있는 령사를 끊을께."
고수: 그러면 어떻게 되는거야?
"영원히 소멸하는거지.정말 말그대로 없어지는거야. 다시는 세상에 못와."
고수: 휴~ 정말 마지막이네...저어기..있잖아..서희야~
"왜 떨리냐?"
고수: 떨리는것은 아까부터 떨렸어..그게 아니고...
"무르고 싶냐? 무르고 싶으면 그렇다고 말해..늦지 않았어.."
고수: 무르긴 뭘 물러? 무슨 내기장기도 아니고..
그게 아니고 마지막으로 은진씨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안되겠지?
"직접은 안되고 내가 중간에 전해줄수는 있어."
고수: 그러면 그렇게 해줘..
서희는 은진을 보면서
"은진아~ 고수가 너한테 한말이 있단다. 직접은 말할수 없으니깐 내가 대신
전해줄께."
은진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고수씨가 여기있어?"
"어..은진아 잘들어..어쩌면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깐..."
고수는 주저주저하면서 입을 연다.
"은진씨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음..뭐라고 해야하나?
드라마나 영화에 보면 주인공들이 멋진말을 술술 잘하던데...
막상 내가 말을 할려고 하니깐 그냥 막막하네요...
어릴때 학예회하면 항상 지나가는 사람2였는데
지금도 어딘가 주인공은 따로 있나봐요..후후..
누군가 그런말을 하던데..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하나를 잃는다고...
그 하나가 저에게는 전부이지만 그래도 한가지 약속은 지켰죠?
끝까지 지켜준다는 그 약속...
은진씨
제게 꼭 한가지만 약속해주세요.
제가 이세상에 없어지면 빨리 잊어주세요..
아니 처음부터 저같은 놈은 없었다고 생각하시고
은진씨를 정말 아끼고 끝까지 지켜줄수 좋은사람만나서 행복하게 살아주세요.
우리은진씨는 똑똑하니깐
무슨 삼류영화에 나오는 그런 유치찬란한 짓은 절대안하리라고 봅니다.
은진씨가 있어서 세상이 아름다웠습니다.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그럼 행복하세요..안녕.."
말이 끝나자 은진은 어리둥절해서 서희를 보면서
"아니..서희야 이게 무슨말이야?"
서희가 아무말도 하지 않자 은진은 서희에게 다가오면서
"무슨말이냐고 묻고 있잖아...내가 대신한다고 했잖아..그런데 고수씨가
하는 말은 무슨말이야?"
고수: 서희야...은진씨 좀 내보내줘..은진씨한테 내가 떠나는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
"그래 알았다."
서희는 한쪽팔을 들어서 은진쪽으로 향하자 은진은 문쪽으로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은진은 안나갈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옆에 있는 탁자를 잡았다가 놓치고
뭐든 잡으려고 손을 휘젓어지만 마땅히 잡히는 것이 없이
뒤로 뒤로 밀려나가서 간신히 방문턱을 잡고 은진은 비명을 지르면서
"서희야..제발 이러지마..흑흑..제발...
서희야 제발...내가 대신하게 해줘..그리고 우리 고수씨 살려줘...서희야..서희야"
서희는 눈물을 감추려는듯 고개를 돌리고 고수는 흐느꼈다.
다시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에 은진은 견디지 못하고 잡고있던것을 놓치자
방문은 닫히고 잠기고 은진은 넘어졌다가 곧바로 일어나서
닫힌 방문손잡이를 잡아당기고 문을 두드리면서
"서희야~ 문열어...서희야 문열어...
야~ 최고수...
끝까지 지켜준다면서 이게 뭐야...
이게 끝까지 지켜주는거야? 바보 해삼 멍게 말미잘..."
서희는 고수를 보면서
"어이~ 바보 해삼 멍게 말미잘 아저씨.. 왜 마지막인데 사랑한다는 말도 안했냐?"
고수: 그말이 족쇄가 되면 안되잖아..
휴~ 시작해라..비록 바깥이 시끄럽지만...갈길은 가야지..
자 시작해라.
몇번 심호흡을 하고 눈을 감고 서있는 고수를 서희는 빤히 쳐다보다가 무슨 생각인지
고수의 령을 잡아서 고수의 몸으로 넣고 봉해버렸다.
고수: 얌마 뭐하는 짓이야~
그리고 서희는 아무말없이 골절된 부분에 손을 올려놓자
푸른빛이 나오면서 치유가 되자 다음에는 머리에 가만히 손을 올려놓고 치유를 했다.
"고수 짜식아~ 잘살아라..난 그만 간다.
아참 은진이한테는 미안하다는 말좀 전해줘라.
은진이가 대신하면
너를 살리고 다른 사람 몸에 환생해서 너를 찾으려고 했는데...
그것도 이제는 글렀네.."
"서희야 너는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거야..어쩔려구?"
"아마도 지금 버티고 있는 이막이 사라지면 나도 같이 타버리겠지..
고수야~ 설마 내가 너를 어떻게하고 다시 환생하겠냐?
그럴 생각이면 진작에 그렇게 했지..
고수 너가 조금만 나쁜놈이라면 간단했는데...
왜 그런눈으로 보냐?
우냐? 하여간 울보라니깐 사내놈이 툭하면 울고..
너가 우니깐 나한테도 눈물이 전염되잖아..바보."
고수: 바다에 같이 가자고 했는데...그 약속 못지켰네..미안하다..
"괜찮아..
고수야~ 은진이 절대 놓치지 말아라..정말 좋은애인것 같다.
세상에 누가 너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겠냐? 너도 마찬가지고..
정말 둘은 잘만났네...그렇게 억지로 만나기도 힘든데..
정말정말 아주아주 행복하게 잘살아라...
아참 그리고 이것 좀 그사람한테 전해줘"
하면서 서희는 손가락에 있는 반지를 빼서 고수의 손에 쥐어주면서
"정우오빠 원망하지 않는다고 떠난 사람한테 발목잡혀서 자신의 인생까지 갉아먹는
그런 짓하지말고 제대로 살아달라고 전해줘..그리고 선영이한테도 내애기 잘해주고..
음...이제는 대충 끝났나?
아~ 그리고 이것은 그동안 나랑 재미있게 놀아줘서 주는 선물이다."
서희는 고개를 숙여서 고수에게 키스를 했다.
고수가 놀라서 눈이 동그렇게 뜨자
"얌마..키스를 하는데 눈을 감아야지..무드없기는...
고수야~ 나 너 좋아해..
헤헤 고백해버렸네..아이 쑥스러워...짜식 뭘 웃냐?..좋으냐?"
고수: 그럼..나같은 꽃미남을 누군들 안좋아하겠냐?
나도 너 좋아..서희야~
울먹울먹하던 고수는 아이처럼 엉엉울었다..
"울지마..울지마라고...너가 울면 내가 어떻게 가냐..바보야..울지말라고..."
서희도 터지는 울음을 어쩔수없었다.
고수의 몸속으로 령을 봉하고 치유하는데 너무 많은 기를 소모해서 밀어놓은 공간이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별이 정해진 사실이라고 하나
그 이별이 훗날 다른 형태로 만날수 있다는 기약이 있다면 이렇게 아프지 않을텐데...
서희는 고수의 손을 꼭잡았다.
밀어놓은 공간이 점점 줄어들어서 완전히 사라지자
천계는 마치 서희를 잡아먹을듯이 지지직거리면서 서희의 몸을 태웠다.
서희는 고통 때문에 비명을 지르면서 몸을 뒤틀었다.
서서히 서희가 사라지자..
고수: 서..서희야...서희야..안돼 가지마..서희야~
"고수야..."
서희는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하고 밝은빛과 함께 사라져갔다.
서희가 사라짐과 동시에 잠긴문이 열리고 은진이 고수에게 달려오자
"서희가...서희가 나를 살리고.. 바보같은 기지배가..서희가.."
고수는 울면서 더듬더듬 말을 하자 은진은 고수를 안으면서
"네에....알아요..아무말도 하지마세요.."
창밖에는 소담스럽게 밤하늘을 가르면 흰눈꽃이 내렸다.
모든 슬픔과 아픔을 모두 덮어버릴듯이 그렇게 하염없이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