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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

익명 |2016.12.31 23:25
조회 383 |추천 0
  9072시간을 사랑했던 우리가 영원한 이별을 하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2시간이었다. 이제 다시는 만날 수가 없는데. 네 손을 잡을 수도, 네 품에 안길 수도, 네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을 수도 없는데. 단 2시간만에 우리는 9072시간을 뒤로 하고 이별을 했다.

  믿기지가 않았다. 네가, 사랑하는 네가, 그렇게나 건강했던 네가, 검은 띠를 두른 액자 뒤에서 웃고 있다는 것이. 그게 내가 볼 수 있는 전부라는게. 누가 쉽게 믿을 수 있겠어. 네가 이젠 내 곁에 없다는데. 너무나도 건강했던 네가 급성 백혈병으로 죽었다는데. 삼류영화에서 흔히 다루던 진부하디 진부한 스토리가 너의 이야기라는데. 이게 우리 이야기라는데. 어떻게 그렇구나, 쉽게 믿을 수가 있니 내가.


  첫 연애였다. 파릇파릇한 신입생일 때 넌 나보다 몇학번은 더 높았던 이른바 하늘 같은 선배였다. 갓 군대를 제대해 까까머리 밤톨같은 너에게 첫 눈에 반했던 나였지만, 이른바 모태솔로였던 나는 네게 인사 한번 건네는 것도 어려웠다. 그런 서툰 나와 연인사이로 발전했던건 여름의 한 가운데서였다. 한참 후에 네가 했던 말이지만, 그때 내가 너무 소극적이어서 자기를 안좋아하나 많이 걱정했더랬다. 괜한 걱정이었지. 난 너에게 고백을 받았던 2015년 8월 15일, 하늘을 날고 있었으니까.

  서툴고 어린 나를 아껴주고 보듬어주며 너는 사랑을 알려줬다. 너로 인해 배울 수 있었다. 사랑이 뭔지, 사랑 받는게 뭔지. 대학 오기 전 이루지 못했던 오랜 첫사랑으로 인해 바닥을 쳤던 내 자존감을 바닥부터 함께 쌓아올려준 사람이었다, 넌.

  너와 함께 했던 그 모든 순간들이 행복이었고 사랑이었는데.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행복했다. 너를 사랑함으로써 내가 완성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어린 마음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너와 함께 할 미래를 꿈 꾸며 하루를 살았다. 친구들에게도 농담반 진담반, 내가 가장 먼저 시집 갈거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지금은 다 물건너간 이야기지만. 그만큼 너를 아주 많이, 진심을 다해서, 열렬하게, 사랑했다.


  1주년을 조금 넘긴 어느 날, 너는 갑작스레 쓰러졌다. 감기 한번 걸리지 않던 네가 응급실에 실려갔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그 보다 더 믿기지 않았던건 그 후였지만. 급성 백혈병이랜다. 네가, 그렇게 건강하고 튼튼했던 네가, 백혈병이랜다. 곧 죽는댄다. 너무 믿기지가 않아서 웃음이 다 나더라. 너와 죽음. 너무도 안어울리는 말이었다. 그 이질감과는 무색하게 너에게 죽음은 너무도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네가 진단을 받은지 3주가 조금 넘은 날, 너는 나를 떠났다. 그래도 참 고마워. 잘 버텨줘서. 이 말을 못건넨 것이 가장 미안하다.

  너무도 착했던 너를 증명하듯, 장례식장은 3일 내내 너의 친구와 가족, 지인들로 북적였다. 평소에 인기 많다며 떨던 너스레를 이런식으로 확인 시켜줄 필요는 없었는데, 진짜 인기 많긴 하더라. 몇십명이 네 앞에서 눈물을 흘렸는지 몰라. 사실 이건 여담이지만 네 전여친도 왔더라. 그 와중에 기분이 묘했던건 비밀이야.

  네가 떠나고, 함께 맞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2017년이 다가오고 있다. 힘들었던 9월이 어느새 지나고, 벌써 12월의 끝자락이 보인다. 그런데 왜 이다지도 다가올 새해가, 내 22살이 안예뻐보이는건지. 왜 이렇게도 눈물이 나는건지.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 언제나 그랬듯 보고싶다며 애교섞인 카톡이 올 것만 같아서, 난 아직도 너와의 카톡을 지우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난 괜찮아. 웃으며 친구들에게 말한다. 덤덤하게 말하지만 떨리는 볼을 친구들은 안다. 그래도 말이 씨가 된다길래, 오늘도 괜찮다고 웃는다. 이렇게 9072번을 말한다면, 진짜 괜찮아질 수 있지 않을까?


  사랑했고, 사랑하고, 사랑할 너. 사랑을 알려줘서 고맙고, 9072시간 동안 행복하게 해줘서 고마워.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빠를 사랑했던 지난 1년이 내 21년 중에서 가장 예뻤던 해였을거야. 가장 빛나는 청춘을 선물해줘서 고맙고, 평생 웃음 지을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줘서 고마워. 그 추억때문에 지금은 많이 힘들겠지만, 그래도 없었으면 많이 슬펐을거야. 사실 지금도 믿기진 않아. 차라리 꿈이었으면 하기도 해. 오빠와 만났던 그 순간들도 꿈이어도 되니까, 오빠가 살아있기만 했으면 좋겠어. 근데 안되잖아. 그럴 수 없는거잖아. 그래서 오빠가 만들어준 추억을 안고, 하루 하루 잘버텨보려고. 예쁘지도 않고 애교도 없는 나를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예뻐해주고 아껴줘서 고마워. 우리 참 찬란했다, 그치? 사랑해. 정말 사랑해. 오빠 정말 많이 사랑해. 오늘 밤 꿈에 나타나줬으면 좋겠다. 나중에 보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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