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흰 사람들과 접촉하기전에 인디언들이 지니고 있던 영적인 삶을 나는 말하고자 한다. 사실 오래전부터 그렇게 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누구도 진지하고 진실되게 그것을 이야기 하지 않기때문이다. 다른 모든 것 들은 둘째 치고라도 우리 얼굴붉은 사람들의 종교를 얼굴 흰 사람들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인디언들은 이런 심오한 문제에 대해선 잘 이야기 하지 않는다.
말보다는 믿음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잘못 말하거나 가볍게 말한다. 또한 우리가 설령 말한다 해도 얼굴 흰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인종적 편견이 진정한 이해를 가로막게 마련이다. 처음에는 우리에게 온 백인선교사 들은 좋은사람들이긴 했지만 매우 편협한 시각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이교도라는 딱지를 붙이고 악마를 숭배하는 사람들이라고 우리를 몰아 세웠다. 우리가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우리가 믿는 신은 전부 가짜이니 빨리 내던져 버리고 자신들의 성스런 제단 앞에 무릎을 꿇으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심지어 우리가 자신들의 믿음과 방식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영원히 멸망할 것이라고 협박하기 까지 했다.
우리는 안다. 모든 종교적인 열망 모든 진실한 예배는 똑같이 하나의 근원과 하나의 목적을 갖고 있음을, 우리는 또 안다. 학식있는 자의 신 어린 아이의 신, 문명화된 사람의 신, 원시적인 사람의 신이 결국은 모두가 같은 것이고. 신은 결코 생김새가 어떻게 다른가를 놓고 우리를 판단하지 않는다. 신은 이 대지 위에서 올바르게 살고 겸허하게 행동하는 모든 이들을 자신의 품안에 받아들인다.
우리를 둘러싸고있는 위대한 신비 그 영원한 존재에 대해 인디언들은 매우 분명하고 고귀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위대한 신비는 인디언들에게 더없이 중요한 것이 였으며 이 삶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기쁨과 만족의 기준이 그것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였다. 그 위대한 신비에게 바치는 인디언들의 예배는 침묵과 홀로있음 속에서 행해졌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이기적인 욕망으로 부터도 자유로웠다.신과의 만남이 이렇듯 침묵속에서 이루어지는 이유는 모든 언어가 어쩔 수 없이 불완전하고 진리에 훨씬 못미치기 때문이다.따라서 인디언들의 영혼은 말없는 찬양속에서 신에게로 올라가곤 했다. 신과의 만남은 홀로있음 속에서 가능하다고 우리 인디언들은 믿었다.
신은 우리가 홀로 있을 때 우리와 더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만드신 이와 우리 사이에 어떤 성직자도 끼어들 필요가 없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종교적 체험에 대해 참견하거나 간섭하면 안된다. 우리들 각자 신이 창조한 자식들이고 모두가 그 안에 신성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인디언 사람들의 종교는 어떤 특정한 교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였다.
또한 받아 들이길 거부하는 사람에게 그것을 강요하지도 않았다.그러므로 우리의 종교에는 설교도 없고 개종이나 박해도 없으며 다른 사람의 종교를 무시하고 비웃는 일도 없었다. 무신론자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우리의 종교는 교리가 아니라 마음상태였다. 자연을 제외하고는 우리에게는 사원도 신전도 없었다.
자연의 자식들이기 때문에 인디언들은 매우 시적이였다. 말할 수 없이 신비한 원시림의그늘진 오솔길에서 처녀와도 같은 평원의 햇빛 비치는 가슴 위에서 현기증 나는 산 정상과 벌거벗은 바위가 오뚝솟은 뾰족한 산봉오리 위에서 보석박힌 드넓은 밤하늘에서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만날 수 있는 그 거대한 절대자를 위해 손바닥만한 집을 짓는다는 것은 우리가 보기엔 신을 모독하는 일이나 다름 없었다.
우리의 증조 할아버지인 태양이 저녁모닥불을 피우고 있는 세상 가장자리에서 그름의 엷은 옷을 입고는 위대한 정령, 북쪽의 혹독한 바람을 타고 다니는가 하면 남쪽의 향기로운 공기들 속에 영혼의 숨결을 불어넣는 그분. 거대한 강들과 육지속 바다에 불어넣는 그분 거대한 강들과 육지속 바다에 배를 띄우고있는 그런 이에게 인간이 운 보잘것 없는 교회와 성당이 필요할 리 없다.
홀로있음 속에서 그 보이지 않는 절대 존재와 침묵으로 소통하는 일 이야말로 인디언들의 종교적인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였다.함베데이라는 인디언 말로 어느정도 그것을 설명할 수 있으리라. 그것은 문자 그대로는 신비한 체험이라는 뜻이며 금식수행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또는 자신안의 신을 체험하는 일로 풀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첫번째 함베데이 곧 생애최초의 종교적인 수행은 인디언들의 삶에 큰 전환점을 가져다 주었다.때가 되면 인디언 아이는 먼저 땀천막에서 뜨거운 수증기로 자신의 몸을 정화했다.그런다음 모든 인간적인 욕구나 육체적인 욕망을 멀리한채 그 지역에서 가장높은 산꼭대기로 혼자 올라갔다. 위대한 정령이 물질적인 것에 가치를 두지 않음을 알기 때문에 아이는 어떤 재물이나 희생양을 가지고 갈 필요가 없었다.
다만 겸허한 마음으로 위대한 정령앞에 나아가기를 원하기에 모카신 허리에 두르는 천 외에는 옷도 가져가지 않았다. 해가 뜨고지는 장엄한 시간에 아이는 산꼭대기에 위치를 정하고 서서 드넓은 대지를 내려다 보면서 위대한 신비와 마주했다. 그곳에서 그렇게 벌거벗은 채로 미동도 하지않고 서서 침묵속에 위대한 정령의 힘앞에 자신을 내 맏겼다.
하루낯과 하루밤 또는 이틀 낯과 이틀밤 동안 가끔은 며칠씩 그렇게 서있는 경우도 있었다. 떄로는 절대 고요속에서 신에게 바치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이 신성한 명상상태 또는 환희의 체험을 통해 어린 인디언 신비가는 자기 존재의 최고의 행복과 근원이 되는 생명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을로 돌아오던 아이는 잠시 사람들과 거리를 두었다.
다시 땀천막에서 몸을 정화하는 의식을 치를 때 까지 그 다음에야 비로소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자신이 산꼭대기에서 본 환영이나 암시에 대해선 부족전체의 운명과 관련된 내용이 아니면 절대 입밖에 내지 않았다. 때로 영원히 가장자리에 선 늙은 인디언은 선택된 몇몇 사람에게만 자신이 오래전 어렸을 때 산꼭대기에서 보았던 계시에 대해 말하곤 했다.
얼굴흰 정복자 들은 우리 인다언들을 가난하고 단순하다고 경멸해 왔다. 아마도 그들은 우리의 종교가 재산 축적과 사치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음을 잊은 모양이다. 모든 시대 모든 종족의 영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듯이 우리 인디언들 역시 소유를 탐하는 것을 하나의 덫으로 알았으며 복잡한 사회가 안겨주는 많은 짐들을 쓸데없는 유혹과 고통의 근원이라 여기며 살아 왔다.
나아가 우리가가진 기술과 성공의 열매를 우리보다 행운이 덜 찿아온 형제 자매들과 나눠 가져야 한다는 것이 우리 삶의 변함 없는 규칙이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자만심과 탐욕 시기심이라는 장애물로부터 벗어나 우리가 믿는 신의 뜻을 따를 수 있었다.이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였다.
따라서 인디언들이 지속적으로 도시를 발전시키거나 물질문명을 발달시키지 않은 것은 무지하거나 미래에 대한 생각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였다.소박한 인디언 인디언 현자의 눈에는 수많은 인구가 한곳에 집중해서 모여사는 것은 모든 악의 원인이였다. 육체적으로도그렇고 도덕적으로도 그러했다.
인디언들에게 음식은 신성한 것이지만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는것은 죄악이였다.사랑은 좋은 것 이지만 탐욕은 사람을 망치는 것이였다. 사람들이 밀집한 불결한 환경에서 생겨나온 온갖 전염병보다 인디언들이 더 무섭게 여긴것은 다른 사람들과 너무 자주접촉 하므로써 어쩔 수없이 영적인 힘을 잃어버리게 되는 일이였다.
자주 자연속으로 들어가 혼자 지내본 사람이라면 홀로있음 속에는 커져가는 강한영적인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하지만 집단을 이루어 생활하다 보면 그 힘이 금방 사라져 버린다. 인디언들을 적대시한 얼굴흰 사람들조차 우리 얼굴붉은 사람들이 어떤 상황아래서도 변함없는 내적인 힘과 정신적인 균형을 지니고 있음을 인정하곤 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그 점에서 탁월한 존재들이였다.인디언들은 전통적으로 마음을 영적인 마음과 육체적인 마음두 부분으로 나누었다. 영적인 마음은 사물의 본질과 관련된 순수한 정신이다. 금식과 힘든일로 육체를 단련하듯 우리가 영적인 기도를 통해 키우고자 하는 마음이 그것이였다.그리고 그런 형태의 기도는 간절히 도움을 청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였다.
두번째의 육체적인 마음은 더 낮은 차원의 일이였다. 이 부분은 사랑이나 전투에서 성공하고 병을 치료하고 소중한 목숨을 보호하는 것과 같은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것들과 관계가 있었다.위험을 피하고 행복을 지키기 위해 의식을 행하고 주문을 외우는것 모두가 이 육체적인 자아에서 나오는 것들 이였다. 우리가 물질적으로 의식을 행하는 것은 모두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얼굴흰 사람들이 십자가를 찬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디언들은 태양을 숭배했다.태양과 대지는 인디언들의 눈에는 명백히 모든 생명의 원천이며 과학적인 진리이면서 동시에 시적인 은유이기도 했다.우주의 아버지인 태양은 자연의 원리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그리고 어머니인 대지의 인내심 맑고 비옥한 자궁속에는 모든 식물과 인간의 숨겨진 태아가 있다.
번개 바람물 불 서리.와 같은 자연속의 장엄한 요소들을 우리는 영적인 힘을 지닌것들로 여겨 경외감을 갖고 바라보았다.그 신비의 영이이 세상 만물속에 두루 존재하고 있으며 모든 생명체들이 어느정도는 영혼을 갖고 있다고 우리는 믿었다. 비록 어떤 영혼은 자신을 의식하지 못할 지라도 나무 폭포 회색 곰 등은 각각 위대한 힘의 표현이며 존경의 대상이였다.
인디언들은 동물나라에 있는 우리의 형제와 누이들에 대해 동정심을 갖고 영적인 교감을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그들은 분명하게 말을 하지 못하는 영혼들이지만 순진 무구한 아이들 처럼 우리를 위해 티없이 맑은 순수성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는 저 위쪽에서 내려오는 신비의 지혜를 믿듯이 그들이 가진 본능 또한 믿었다.
우리의 생존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몸을 바치는그들의 희생을 겸허히 받아 들이고 정해진 기도문과 제물로써그들의 영혼에게 경의를 표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그것을 믿는 사람들의 순수한 이유에 따라 각기 다양하게 초 자연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인디언들은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안의 문제들에 대해 나름대로 논리적이고 분명한 생각을 갖고 살아 왔다.
하지만 광대 무변한 자연의 세계와 그것이 지닌 수많은 경이로움들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측량하지 않았다. 원인과 결과에 따른 제한된 사고방식은 인디언의 방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우리는 모든 것 속에서 기적을 발견했다. 씨앗과 알 속에서 생명의 기적을 번개와 불어나는 강물에서 죽음의 신비를. 어떤 불가사의한 현상에도 우리는 놀라지 않았다.
인디언들의 세계에서는짐승들도 사람들처럼 말하고 태양이 운행을 멈출 수도 있었다.동정녀의 잉태는 세상으로 나오는 모든 아기들의 탄생에 비해조금도 신기할 것이 없었다. 빵과 물고기의 기적은 옥수수 한알을 수확하는 일보다 더 경이로울 것이 없었다. 누가 인디언의 이러한 사상을 미신이라 비난할 수 있는가?
성경의 기적들이 말 그대로 사실이라고 가르치는 카돌릭 신자들이나 기독교 선교사들은 결코 우리를 비난할 수가 없다. 논리적인 사람이라면 모든 기적을 부정하던지 아니면 전부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아메리카 인다언들의 신화와 영웅이야기들은 고대 히브리의 이야기들에 비해조금도 손색이 없다.
잊지 말아야 한다. 자연의 경이로움과 장엄한 법칙을 발견하더라도 과학이 모든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우리 모두는 생명의 원리를 간직한 궁극의 기적과 마주해야 한다. 이 궁극의 신비가 바로 기도의 본질이며 그것 없이는 종교가 존재할 수 없다. 이 신비 앞에서 모든 사람은 인디언과 같은 자세를 지녀야 한다.
인디언들은 모든 창조물 속에서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갖고 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본래의 철학을 간직하고 있던 시절에는 얼굴흰 사람들의 눈부신 성공을 질투하거나 모방하려는 욕망을 가진 인디언이 한 사람도 없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우리가 얼굴흰 사람들 보다 훨씬 우월했다.
내심 그들을 경멸하기까지 했다. 인디언들은 쾌락이나 쫓는 부유한 이웃의 빈둥거리는 생활과 화려한 음식 푹신한 침대들을 물리칠 수 있는 고결한 영혼들이였기 때문이다.우리가 보기에 참된 인격과 행복은 그런것 들과는 거리가 먼 것이였다. 초기 기독교 속에는 인디언들의 사상과 매우 비슷한 것들이 많다.
부와 부자들에 대해 예수가 한 말들은 특히 우리 인디언들의 충분히 공감하는 내용들이다.하지만 우리에게 많은 설교를 늘어 놓으면서 한편으로는 잔혀 다르게 행동하는 선교사들과 그 신도들을 지켜 보면서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들의 종교에 대해 냉담한 마음을 갖기에 이러렀다. 그들은 자신을 과시하고 권력을 추구하며 무조건 남을 개종시키려 들고 자기 종교를 제외하고는 다른 종교는 들어내 놓고 무시한다.
우리가 보기엔 직업적인 목사들 돈을 받고하는 설교 물질을 모으기에 급급한 교회들은 영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것 들이였다.따라서 우리는 그들에게서 아무런 감화도 받을 수가 없었다. 정복과 약탈 독한 술 등으로 우리의 정신과 육체를 무너뜨리기 훨씬 전부터 이미 선교사들은 도덕적인 진실성을 잃어 버렸다.
이상하게 들릴른지 모르지만 우리 자랑스런 야만인들의 영혼은 우리를 개종 시키고 개화시키려고 찿아온 그들을 은근히 경멸했다. 얼굴붉은 사람들을 상하게 한 것은 그 낯선 종교가 자기선전에 열을 올리면서 위선적으로 행동하기 때문만이 아니였다.인디언들이 가장 충격적이고 믿기 어려운 점은 얼굴흰 사람들이 자신이 누구보다도 우월한 종이라고 주장하면서 사실상 그들중 대부분이 종교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들은 신앙인인채 행동 하지도 않았다. 믿음을 갖기는켜녕 세속적이고 불경스런 말들로 쉬지않고 신에게 욕을 퍼 부었다. 우리 인디언들은 가장 경건한 순간에 조차 신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았다. 경박하거나 불경스럽게 신의 이름을 들먹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였다.
나아가 종교를 내세우는 얼굴흰 사람들 속에서도 우리는 수많은 모순된 행위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입으로는 영적인 것을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물질적인 추구에 몰두해 있다. 얼굴흰 자들은 모 든것을 사고 판다. 시간 노동 개인의 자유 여인의 사랑 심지어 자신들의 신성한 목사직까지도! 이론적으로는 맨 첫번째에 속하는 고결하고 영적인 삶은 실재로는 맨 나중의 문제였다.
돈과 권력에 대한 추구 그리고 남을 정복하려는 욕망은 못배운 인디언 세계에서도 비난을 면치 못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남을 지배하려 드는 얼굴 흰 자들의 그 두드러진 성향이 온유하고 가난한 예수의 정신과 너무도 대비된다는 사실을 느꼈다. 얼굴흰 자들 중에는 술주정뱅이에다 방탕하기 짝이없는 자들이 너무도 많다. 그들의 종교에 비추어 봐도 비난받아 마땅하며 큰 망신거리나 다름없다.
이나라 전체의 타락한 신앙생활은 입이 열개라도 변명할 수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워싱턴의 얼굴 흰 대 추장은특별히 국가적인 명예를 걸고 우리 인디언들과 조약을 맺도록 여러 인디언들을 보냈다. 그들중에는 성경을 손에든 목사와 주교들도 있었다. 그들은 기도를 하고 자신들의 하느님을 들먹이면서 우리에게 조약서에 서명하라고 했다.
하지만 일단 조약서가 작성되면 그들은 즉각적으로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이 그 조약을 어겼다. 그런데도 그들이 전혀 처벌을 당하거나 문책을 받은적이 없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닌가? 백인 역사학자들 조차도 인디언이 먼져 약속을 어긴적은 한번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인디언은 생을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종교적이였다.
아이가 어머니의 자궁에서 잉태되는 그 순간부터 젓을 떼는 두살 무렵까지 아이에게는 어머니의 영적인 영향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우리는 믿었다. 인디언 어머니는 아이를 임신하는그 순간부터 순결한 언행과 명상을 통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열려있는 영혼에게 그가 위대한 신비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가르쳤다.
인디언의 아이의 교육은 그렇게 시작 되었다. 그래서 장차 어머니가 될 여성은 사람들로부터 떨어진 고요하고 한적한 곳에서 홀로 생활하는 것을 첫번째 규칙으로 삼았다. 그 장엄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눈동자에 새기면서....그녀는 거대한 산림의 정적속에서 또는 인적이 드문 평원의 가슴위에서 홀로 산책을 하곤했다.
그리고는 시적인 마음을 통해 장차 위대한 영혼이 자신의 몸 속에서 태어 나리라고 상상했다.원시의 숨결이 어린 대 자연속에서 상상의 날개를 펴는 것이였다. 아무도 그 상상을 방해하지 않았다.가끔씩 들리는 소나무의 한숨소리나 멀리 떨어진 폭포소리 만이 그녀의 상상을 일깨울 뿐이였다.
마침내 그녀의 삶에 새로운 순간이 열리고 새로운 삶이 그녀를 통해 지상에 나오는 순간이 찿아 왔을 때 그녀에게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녀혼자서 새 생명을 받을 몸과 마음의 준비를 다 했다. 인디언 어머니는 그것을 자신의 가장 신성한 의무라 여겼다. 인디언은 아이의 출산을 혼자서 맞이하는 것이 최상의 길이라고 여겼다.타인의 호기심과 동정심은 방해만 될 뿐이였다.대자연의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대고 소리쳤다. 이것은 사랑의 힘이다!
이것은 생명의 완성이다! 마침내 침묵을 깨고 한 성스런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두개의 눈이 야생의 자연속에서 그녀를 바라볼 때 그녀는 자신이 위대한 창조와 함께 자신의 분신을 탄생시켰음을 기쁜마음으로 알게 되었다.그녀는 이내 신비하고 사랑스런 포대기를 안고 마을로 돌아왔다.아이의 사랑스런 온기를 느끼고 부드러운 숨소리를 들으면서, 아이는 아직 그녀의 일부분이였다.
어떤 사랑하는 이의 시선도 아이의 깊고 신뢰하는 눈보다 더 매혹적이지 않았다.아이를 인디언의 천막으로 데려 오면 그때 부터 어머니의 영적인 가르침이 시작되었다.그러나 그 가르침은 대부분 침묵으로 이루어졌다. 손가락으로 아이에게 자연속의 사물들을 가리켜 보일뿐이였다.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새처럼 노래를 속삭여 주었다.
어머니와 아이는 새를 사람과 똑 같은 존재며 위대한 신비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살고있는 존재로 바라 보았다.아이가 성급하게 행동 할라치면 어머니는 부드럽게 주의를 주었다. "쉿! 그렇게 하면 영혼이 혼란스러워 진다" 그리고는 조용히 자작나무의 수런대는 소리 사시나무의 은빛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했다.
밤이며누 소리없이 여행하는 별들의 대장정을 손짓해 보였다.침묵 사랑 경외감 이것이 아이를 가르치는 세가지 기준이였으며 아이가 좀더 성장하면 자비심 용기 순결의 기준이 뒤따랐다.인디언 어머니는 언제나 자신의 일에 충실했다.우리 부족의 이름난 어떤 추장은 자주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남자들은 서로를 죽일 수 있지만 여자를 이길 순 없다.
왜냐하면 여자의 편란한 무릎에 아이가 누워있기 때문이다. 그 아이를 없애 버릴수도 있겠지만 똑같은 무릎에 또 다른 아이가 나타날 것이다.그것은 위대한 정령이 주시는 선물이며 남자는 단지 협력자로써의 역활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야생의 어머니는 그녀의 어머니나 할머니의 경험 그리고 부족 사람들이 오랬동안 받아 들여온 관습 뿐만 아니라. 개미 벌 거미 비버 오소리 등으로 부터도 겸허한 자세로 배움을 얻었다.
새들이 어린것들을 키우는 것을 관찰하므로써 강한 애정과 헌신적인 인내심을 배웠다. 그리하여 그녀의 가슴속에는 우주적인 모성이 맥박치게 되었다. 때가 되며누 아이는 스스로 기도하는 자세를 배우고 절대의 힘에 대해 존경심을 갖고 다가갔다. 아이는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이 피를 나눈 형제이며 누이라고 느꼈다.
아이에게 폭풍우치는 바람은 위대한 신비가 보내는 소식이였다.인디언들에게 학교 건물과 책과 정기적인 수업시간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하지만 인디언 아이들은 자연의 방식으로 교육을 받았다.언제나 자연세계와 가까이 접촉함으로써 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모든 생명체들과 마음 이 담긴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인디언 아이에게는 영적인 세계가 더 없이 실재적인 것이였으며 생명의빛이 다른 모든 것들 보다 우선했다.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존재들 속에 풀리지 않는 그리고 풀릴수도 없는 위대한 신비가 깃들어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인디언들은 말과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아이들을 가르쳤지만 직접적인 경험에 더 무게를 두었다.
왜냐하면 모든 배움이란 간접적으로 그것을 전해듣는 사람에게는 죽은 언어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신체 단련도 철저하고 합리적이였으며 도덕적이고 영적인 측면에 대한 가르침은 그 어떤 종족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훌륭했다.우리는 가르침의 예술을 인격의 상징으로 여겼다. 그리고 교육의 근본이 위대한 신비를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들과 대지를 사랑하는 데 있음을 잊지 않았다.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삶을 사는 인간이라 여기는 사람이라면
누라도 인디언과 한 부족이라고 할 수 있다.우리는 자연과 가까운 학생들 이였다.얼굴흰 사람들이 책을 갖고 공부하듯 인디언들은 자연속의 여러 행동방식들을 통해 배웠다. 인디언 아이들은 부족의 어른들을 지켜봄으로써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배웠다.
야생의 평원에 사는 아이들 만큼 오감을 잘 사용하기란 또 잘 보고 듣는 것 만큼 깊이 느끼고 깊이 맛보았다. 야생의 생활보다 기억력을 발달시키는 생활은 없다. 어렸을 때 부터 나는 침묵과 과묵함을 배웠다.그것들은 인디언들의 성격을 특정짖는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다.사냥꾼과 전사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으며 그것은 인내심과 자기를 다스리는 힘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인디언 아이들은 문명세계의 이들이 법률가나 대통령이 되기를 희망하듯이 용기있는 인간이 되기를 희망했다. 인디언의 삶 속에는 단 하나의 의무만이 있었다.그것은 기도의 의무였다. 기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존재를 날마다 새롭게 인식하기 위한 방법이였다.우리에게는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는 것이 음식을 먹는것 보다 더 중요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면 인디언은 모카신을 신고 물가로 걸어 나갔다.그곳에서 맑고 시원한 물 한웅큼을 얼굴에 뿌리거나 아니면 물속에 몸 전체를 담갔다.몸을 씻고 난 뒤엔 밝아오는 새벽을 향해지평선위로 춤추며 떠 오르는 태양에게 말없는 기도를 드렸다. 우리의 아내나 남편이 우리보다 먼져또는 나중에그곳에 나와 기도를 올릴수도 있지만 우리는 함께가 아니라 각자 홀로 기도했다.
모든 영혼은 각자 아침의 태양과 만나야 한다.새롭고 부드러운 대지 그 위대한 침묵앞에 홀로 마주서야 한다. 사냥을 나간 인디언은 너무도 아름답고 장엄한 대 자연 앞에서 말을 잃을 때가 있었다.바위산 위에는 검은 먹구름과 함께 무지개가 드리워지고 푸르른 계곡 심장부에서 하얀 폭포가 쏟아져 내렸다.
드넓은 평원에서는 석양빛이 하루의 작별을 고했다. 그런 것 들과 마주치는 순간 우리는 그 자리에 멈추어 서서 예배하는 자세를 갗추곤했다. 그러기에 인디언들은 굳이 일주일 중 하루를 신성한 날로 정할 필요가 없었다.그에게는 모든 날이 곧 신이 준 날이기에! 아름다움을 볼줄 아는 눈은 종교적인 마음과 깊은 관계가 있다.
그 점에서 인디언들은 누구보다 탁월하다. 우리는 위대한 예술가인 신의 작품을 똑같이 흉내 내거나 모방이 불가능한 그것을 모방할 수 있다고 가장하지도 않았다.아름다운 것은 상품으로 만들어 거래를 해선 안되며 오직 존경받고 찬양 받아야 한다. 그것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정신이였다.우리는 자연을 완성된 아름다움으로 여기며 그것을 파괴하는 것을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했다.
한번은 내가 수우족 추장들에게 워싱턴을 구경시켜준 적이 있었다. 나는 추장들의 마음속에 현대 문명이 이뤄낸 놀라운 성과물들에 대해 깊은 인상을 주고자 노력했다. 미 의회 의사당과 유명한 건물들을 방문한 뒤 우리는 이름난 미술관으로 갔다. 그것에서 나는 얼굴흰 사람들이 그곳에 걸린 그림들을 뛰어난 천재의 작품이며 훌륭한 예술품으로 여긴다는 것을 설명했다. 그러자 한 늙은 추장이 말했다.
정말로 얼굴흰 사람들의 철학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은 자부심과 위엄을 간직한 채 수세기동안 서 있어 온 숲들을 넘어뜨리고 어머니 대지의 가슴을 마구 파 헤치며 은빛 물줄기들을 더러운 시궁창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신의 그림들과 걸작품들을 가차없이 파괴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작은 사각의 종이에 수많은 물감을 발라 그것을 걸작품이라 찬양한다.
여기에 인디언들의 문명세계의 예술적 기준에 못미치게 된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창조적인 상상력이 모자라서가 아니였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타고난 예술가들이였다.다만 관점이 다를 뿐이였다.우리의 눈에는 아름다움이란 언제나 새롭고 살아있는 것이였다.위대한 신비인 신조차도 매 계절마다 세상을 새옷으로 갈아 입히지 않는가.
진정한 의미에서보면 인디언에게는 삶의 모든것이 하나의 종교적인 행위였다. 그는 모든 만물속에서 영혼을 자각했으며 그것들로 부터 영적인 힘을 끌어낼 줄 알았다. 유일한 생을사는 형제인 동물들에게 존경심을 갖고 사냥한 다음에는 동물의 시신을 편안히 누이고 상징적인 깃털이나 물감으로 동물의 머리를 장식한뒤 신성한 담뱃대를 손에들고 기도하는 자세로 서 있곤 했다.
그렇게 하므로써 동물의 영혼은 자유를 얻고 그 육신은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바쳐질 수가 있었다. 어렸을 때 나는 남에게 나누는 법을 알았다.그런데 문명인이 된 다음부터 그 아름다움을 잊어버렸다.그때는 자연스런 삶을 살았으나 지금은 인위적인 생활을 하고있다.그때는 조약돌 하나도 가치있게 여겼으며 나무를 봐도 놀라워 할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는 얼굴흰 사람들과 더불어 액자에 넣어진 풍경화 앞에서 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고 있다. 바위를 갈아서 생긴 돌가루로 벽돌을 만들고 그 벽돌로 문명사회의 인위적인 벽을 쌓듯이 내안에 있던 인디언은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아메리카 인디언은 무엇보다도 겸허함을 최고의 덕목을 삼았다.
특히 영적인 자만심은 인디언의 성격이나 가르침 그 어디에서도 찿아볼 수없었다. 인디언은 자신의 말솜씨가 뛰어 나다고 해서 얼굴흰 사람들처럼 상대방을 어리석은 야만인으로 취급하지 않았다.오히려 그것을 위대한 재능으로 여겼다. 그 대신 우리 인디언은 침묵의 힘을 믿엇었으며 그것을 완전한 평정의 표시로 여겼다.
침묵은 육체 정신 영혼의 절대적인 조화속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삶의 어떠한 폭풍속에서도 나무 잎사귀하나 떨리지 않고 물결하나 일지 않듯이 그 영혼이 흔들리지 않고 변함없이 평화로움을 유지하는 것. 그 본성속에 변함없이 삶의 이상적인 자세와 행동을 간직하는 것을 인디언은 생의 최고의 목표로 삼았다.
만일 침묵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대답할 것이다. 침묵은 위대한 신비 그 자체이다 성스런 침묵은 신의 목소리니까. 또 만일 당신이 그 침묵의 열매가 무엇인가? 하고 묻는다면 우리는 대답할 것이다. 침묵의 열매는 자신을 다스리는 힘 진정한 용기와 인내 위엄 그리고 존경심이다. 침묵은 인격의 받침돌이다.
늙은 추장 와바샤는 말했다. 젊었을 때 그대의 혀를 잘 지키라. 그러면 늙어서 그대의 부족에게 도움이 될 한가지 생각이 그대 안에서 익어갈 것이다.우연하고 균형잡히고 기품있고 참을성있는 완전한 신체를 상상하는 순간 이미 인디언은 도덕적인 삶의 기초를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고 육체적인 쾌락에 자신을 내 맏기는 사람은 결코 영혼이 머무는 신전을 늙어서 까지 건강하게 유지할 수 없다.
그러한 진리를 바탕으로 인디언들은 엄격한 신체 단련과 함께삶의 규범이 되는 도덕률울 세웠다.인디언은 어려서부터 마음속에 남성다운 강인한과 아름다움에 대한 이상을 키워왔다.그것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음식과 성적인 관계에 대한 엄격한 자제 그것과 더불어 지속적이고 격렬한 운동이 필요했다.인디언 남자는 이따금씩 짦은 기간동안 금식을 행했으며 격렬한 달리기와 수영 또는 땀천막 의식등으로 넘쳐나는 기운을 소모시켰다.
특히 금식수행과 함께 육체를 지치게 함으로써 지나친 성적 욕망을 치유할 수 있었다. 우리 인디언들은 어려서 부터 강한 자기 존중과 함께 가족과 부족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절제된 생활에 대한 훈련을 받았다. 그것은 태어나면서 부터 줄곧 부족사람 모두가 그 아니를 지켜보고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였다.
특히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가 세상에 도착했음을 마을의 목청큰 사람이 모두에게 알렸다. 이날 아이의 부모는 노인들과 도움이 필요한사람들에게 선물을 돌렸다.아이가 처음으로 걸음마를 했을 때 라든가 귀를 뚫었을 때 또는 처음으로 사냥을 해왔을 때도 마찬가지로 마을사람 모두에게 그 사실이 공표되었다.
그러므로써 아이가 어떤 공로를 세우고 어떻게 성장해 가는가를 부족 전체가 한 가족으로써 지켜 볼 수 있었다. 따라서 아이는 자신의 명성을 잃지 않기위해 감정과 욕망을 절제하면서 어른으로 성장해 갔다.인디언들은 아이들이 일찍부터 남을 위해 봉사하는 일에 참여하고 부족의 지도자가 되거나 자치를 베푸는 사람이 되려는 건강한 바램을 갖도록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용감할 뿐만아니라 진실되고 자비롭지 않고서는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음을 아이에게 일깨워주었다. 또한 자신의 명예와 절제된 태도를 지키지 않으면 그런것은 불가능한 일이였다. 도덕적인 생활에 영향을 주는 많은 의식과 풍습들이 있었다. 여성은 일정기간 동안 엄격히 홀로 생활해야 했으며 전투에 나가거나 종교적인 일에 참가하는 남자는 여자를 가까이 하는것이 금지 되었다.
자신의 부족사이에서 공적인 위치를 차지하려면 반드시 그것에 버금가는 덕과 인격을 갖춰야 만 했다. 그는 자기 혼자 사는것이 아니라 부족을 위해 살고 있음을 결코 잊지 않아야 했다. 이렇듯 우리 인디언들은 어려서부터 완벽한 자기절제 훈련을 쌓았으며 얼굴흰 사람들이 밀려오기 전까지는 부자연스럽거나 지나친 욕망에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소유에 집착하는 것이야 말로 인간의 가장 큰 약점이라는 것이 우리 인디언들의 믿음이였다. 물질적인 길을 뒤 _으면 머지않아 영혼이 중심을 잃는다. 따라서 인디언 아이는 어렸을 때 부터 자비심의 미덕을 배웠다.자기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남에게 주도록 가르침을 받았으며 그래서 일찍부터 주는 것의 기쁨을 알았다.
만일 아이가 작은 물건에 너무 집착하거나 혼자서 모든 걸 독차지 하려는
성향을 보이면 베풀줄 모르는 욕심많은 사람이 어떻게 손가락질 받고 멸시 당하는가를 말해 주는 설화나 우화들을 들려주었다.인디언들의 모든 중요한 의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서로 나누는 일이였다.생일이나 결혼 죽음등의 경조사가 있을 때면 사람들은 초대해 음식을 나눴으며 어떤 인물이나 사건을 기념하는 특별한 날에도 나눔을 빼놓지 않았다.
그런 날이면 자신이 가진것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나눠주는 경우도 허다햇다. 마음이 순수하고 단순한 인디언들은 말 그대로 자신이 가진 모든것을 친구나 다른 부족에서 온 손님들에게 나눠 주었다. 그 중에서도 가난하고 늙은 사람에게 먼저 나눠 주었다. 그러고는 절대로 돌려받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위대한 정령에게 바치는 종교적인 재물은 그다지 중요하게 느끼지 않았다. 다만 그것을 바치는 사람에게만 어떠한 의미를 지닐 뿐이였다.부모가 없는 아이들이나 늙은 사람들은 가까운 친척 뿐만아니라 부족 전체의 보살핌을 받았다.인디언 부모들은 딸들을 보내 돌봐 줄이가 없는불행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음식을 갖다주고 머리를 벗겨주고 옷을 수선해주는 일을 자랑으로 삼았다.
맏딸에게 주어지는 웨노나라는 이름은 특별히 그런 의미를 갖고 있었으며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소녀는 그런 이름을 받을 자격이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많은 전투에 참가해 얼굴이 흉터로 얼룩진 한 늙은 인디언 전사가 한 말을 나는 기억한다.그때 나는 수우족 샤이엔족 크리족 오지브웨족 등 여러 부족에서 온 젊은이들과 함께 작은 통나무 교회에서 예수의 삶과 인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잇었다.
그때 그 늙은 전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햇다.우린 지금 당신이 말하는 그 게율을 이미 수천년동안 지키며 살아왔다.우린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살아 왔다.왜냐하면 모든것이 창조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먹을것도 그냥 주어졌고 해빛이나 비처럼 땅도 무상으로 주어졌다.그런데 이 모든것을 누가 바꿔 놓았는가? 바로 얼굴흰 사람들이다.
그러면서도그들은 신을 믿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아버지이신 신의 그런 특성들을 조금도 물려받지 못한듯 하다. 뿐만 아니라.자기들의 형제인 그리스도 조차도 본받지 않는다.또 다른 이디언 노인은 의견을 묻자 한참동안 침묵을 지켰다. 마침내 그가 말했다.나는 그 예수라는 사람이 인디언 이였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는 물질을 손에 넣는것 나이가 많은 소유물을 갖는 것에 반대했다. 그리고 평화에 이끌렸다. 그는 인디언들과 마찬가지로 계산적인 것 과는 거리가 멀었고 사랑으로 일한것에 대해 아무 대가도 요구하지 않았다. 얼굴흰 사람들의 문명은 그런 원리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 인디언들은 예수가 말한 그 단순한 원리들을 늘 지키며 살아왔다.
그가 인디언이 아니라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모든 종교는 그 나름대로의 성서를 갖고 있다. 우리의 성서는 시 역사 예언 격언 민간설화등이 뒤섞여 있으며 기독교의 성경책에 적힌 것과 비슷한 가르침 들을 우리역시 갖고있다. 인디언들이 가진 문학전체가 곧 우리의 성서이다.그책은 가장 지혜로운 성자들에 의해 소중한 씨앗이 뿌려지고 어린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입술과 호기심에 찬 눈동자 속에서 새롭게 되살아 나는 살아있는 책이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전해지며 성스럽게 간직되어 온 금언 우화 신비한 전설과 설화들을 바탕으로 우리의 문화와 철학이 세워졌다. 인디언은 천성적으로 관대하고 마음이 열려있기 때문에 위대한 정령이 인간에게만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안의 모든 존재들이 그것을 만드신 이의 불멸성과 완전함을 나눠갖고 있다고 믿었다.
진정한 인디언은 자신의 재산이나 노동에 값을 매기지 않았다. 자신이 가진 힘과 능력으로 베풀 따름이였다. 힘들고 위험한 일에자신이 선택되는 것을 영광으로 받아들였으며 그것에 대해 보상을 요구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그렇다고 인디언들이 소유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은것이 아니였다.
물건을 훔치다가 발각되면 도둑이라는 뜻의 와마논이라는 이름이 평생동안 붙어 다니며 씻을 수 없는 오점이 되었다. 단 하나 예외는 음식을 훔치는 일이였다. 배가 고픈데 아무도 먹을걸 주는 사람이 없으면 언제던지 자유롭게 음식을 가져다 먹을 수 있었다. 인디언 공동체에는 도덕적인 규범 말고는 방범체계가 따로 있지 않았다.
집에는 문도 자물쇠도 없었으며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모든것이 활짝 열려 있었다. 얼굴흰 사람들은 인디언들이 천성적으로 잔인하고 복수심에 불타 있다고 헛소문을 퍼뜨렸다. 그것은 우리의 철학과는완전히 반대되는 것 들이다. 인디언들은 전투를 젊은이 들에게 남자다움을 심어주기 위한 하나의 놀이로 여겼다.
영토를 확장하거나 형제인 부족을 완전히 말살하겠다는 생각은 한번도 가져본적이 없었다. 전에는 전투를 벌여도 하루종일 서로의 대담무쌍함과 말타는 기술을 과시하면서 시간을 보내는것이 일반적이였다. 따라서 서로를 죽이는 일은 극히 드물었고 대학에서 미식축구시합을 하다가 부상당하는 정도밖에 다치지 않았다.
부족간에 전투가 벌어져 누군가를 죽게하면 그 전사는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산발한채 30일동안 슬픔에 잠겨 지냈다. 물론 적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 큰 죄는 아니였지만 그렇듯 참회의 의식을 행하는것은 떠나간 영혼을 존중하는 마음의 표시였다. 인디언들에게 무분별한 잔인함과 훨씬 야만적인 전투방식이 생겨난 것은 얼굴흰 사람들이 총과 칼과 독한 술을 갖고 온 다음부터다.
그들이 우리에게 복수의 감정과 물욕을 심어준 장본인들이다. 부족안에서 살인을 저지른 자는 큰죄를 범한것이 되기 때문에 부족회의의 판결을 받아야만 했으며 종종 자신의 목숨으로 죄값을 치루어야 했다. 인디언들은 죄를 지었을 때에 달아나거나 교묘히 법을 피하려 하지 않았다. 그 죄가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산속 깊은 곳에서 이루어졌던 한밤중에 이루어졌던 아무 차이가 없었다.
인디언은 위대한 신비가 모든것을 내려다 보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희생자 부족의 어른들과 현자들 앞에 나타나 자신의 죄를 고백했다. 죄를 저지른 이의 가족들도 그를 옹호 하거나 방어하기 위해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심판관들은 모든 상황을 세심하게 살펴그 살인이 자기 방어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상대방이 심하게 감정을 자극한 나머지 일어난 일인지 명확히 확인했다.
자기방어를 위한 것이였다고 판단될 경우엔 죄인에게 홀로 30일동안 슬피 울라고 판결을 내린후 풀어 주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살인자의 가까운 가족에게 그를 사형에 처할 권한이 주어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족이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족에서 추방되는 것으로 벌을 대신했다.
독한 위스키가 들어와 술에 취해 난동부리는 일이 없던 시절 인디언 사회에서는 고의적인 계획적인 살인이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인디언들은 폭력적이거나 다툼을 일삼는 사람들이 전혀 아니였기 때문이다. 우리 인디언들은 배신자 피에 굶주린 자들 잔인한 야만인들이 전혀 아니였기 때문이다. 우리 인디언들은 배신자 피에 굶주린 자들 잔인한 야만인들이라고 왜곡시키는 얼굴흰 자들 조차도 인디언이 가진 용기를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는 우리의 용기가 단지 무지하고 야만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으로만 보인다. 인디언들은 용기를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그들에게는 용기가 공격적인 자기과시가 아니라 완벽한 자기절제로 이루어진 것이였다.진정한 용기를 가진자는 어떤 두려움과 분노 욕망과 고통에도 자신을 내 주는 법이 없다.
그 모든 상황에서 자기 자신의 주인이그리고 그의 용기는 타인과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진정한 영웅의 높이에 까지 이른다. 어떤 추위와 배고픔 어떤 고통과 두려움 그리고 이빨을 곤두 세우고 덤벼드는 위험과 죽음 앞에서도 선한 일을 하려는 그대의 의지를 포기하지 말라. 한겨울에 굶어 죽어가는 자신의 부족을 위해 들소를 찿아 떠나는 한 인디언에게 부족의 늙은 추장이 한 말이다.
이것이 얼굴흰 자들이 유치하다고 여기는 인디언들의 용기이다. 죽음은 삶의 큰 시험이다. 언제나 삶의 뒤편에 따라 다니는 죽음을 대하는 인디어들의 마음의 자세는 우리의 인격과 철학과 깊은 관게가 있다. 인디언들에게 죽음은 전혀 두려운것이 아니였다.우리는 단순하고 평온하게 죽음과 만났으며 자신의 가족과 후손에게 마지막 선물이 될 수 있는 명예로운 최후를 맞기를 원했다.
그래서 우리는 전투에서 죽기를 자처했으며 개인적인 싸움에서 목숨을 잃는 것을 불명에로 여긴다. 집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는 전통에 따라 마지막 순간에 침대를 집밖의 마당으로 내간다. 우리의 영혼이 툭트인 하늘 아래서 떠나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확실히 인디언들은 인간영혼의 불멸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세에서 좋은 상태나 조건을 얻기 위해 안달하지도 않았다.인디언들은 천국을 행복한 사냥터 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최근에 생긴 개념이다. 아마도 그것은 얼글흰 사람들이 지어냈을 것이다. 삶이 다하면 우리의 영혼은 처음에 생명을 불어 넗어준 위대한 신에게로 되돌아 가며 그 다음에는 육체로부터 자유로워져서 모든곳에 있게 되고 모든 자연물들 속에 널리 존재하게 된다고 우리는 믿는다.
자연스런 삶을 살다가 문명이라는 인위적인 삶으로 옮겨 감으로써 우리는 영적이고 도덕적인 것들을 많이 잃었다. 우리의 땅으로 얼굴흰 사람들은 말하곤 했다. 당신들 인디언들은 어린아이와 같다. 무엇을 만들 줄도 발명할 줄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유일신이 있으며 그 분은 우리에게 땅위의 모든 사람들 을 가르치고 다스릴 권한을 주셨다.
그 증거로 우리에게는 초 자연적인 안내자이며 그것에 적힌 모든 단어들은 진실되고 구속력이 있다. 우리는 선택받은 사람들이고 우월한 종족이다. 우리에게는 모든 이교도와 불신자들은 결코돌아 갈 수 없는 황금문을 가진 찬국이있다. 또한 그런 영혼들이 영원히 고통받는 지옥이있다.우리는 존경받을만 하고 진실되고 세련되며 종교적이고 평화로운 사람들 이다.
우리는 잔인함과 불의를 미워한다. 우리가 할 일은 사람들을 교육하고 그리스도교인으로 만들며 약하고 미개한 사람들의 권리와 재산을 보호하는 일이다. 이 선교사들의 말을 귀담아 들은 우리들은 얼굴흰 사람들만이 진정한 신을 갖고 있으며 인디언들이 지금까지 신성시 해오던 것들은 죄다 마귀가 만들어 낸 것이 라고 강요 당하게 되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우리의 철학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 사람의 인디언이다. 나는 얼굴흰 자들의 문명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으나 옳은것과 공명정대한 것에 대한 인디언의 감각을 한번도 잃지 않았다. 인디언들의 민주적인 정신속에서 어머니 대지는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열려있으며 누구도 다른 사람을 가난하게 하거나 노에로 만들지 않는다.
대지의 좋은것들은 우리 혼자만 독차지할 것들이 아니라 우리의 누이와 형제들과 즐겁게 나눠 가져야 할 것들이다. 나눠 갖는것 그것이 우리가 가진 특권이다.
-인디언의 영혼 - 오히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