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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만 받았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내가 고등학생 1학년, 당신은 대학생이 된 20살이었지.

 

집 안 형편이 어려워진 나는 무작정 알바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 곳에서 만난 당신의 첫인상은 꽤나 개구졌다.

 

아이스크림을 뽑아 고객에게 건네는 날 보며 초면인데도 불구하고

잘한다고 칭찬하며 무심하게 지나가는 당신이 아직도 선명하다.

 

 

 

 

 

큰 키가 콤플렉스였던 나는 매장에서 들려 오는 나의 키에 대한 얘기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굳이 티내진 않았다.

 

그 것이 화근이었는지, 다행이었는지 당신은 컨디션이 굉장히 안 좋았던 나에게

계속해서 키를 언급하였고 나는 어린 마음에 일 하다 말고 울음을 터뜨렸었지.

 

당시엔 너무 창피해서 일이 끝나자 마자 매장을 나왔던 기억이 난다.

 

예나 지금이나 은근히 여린 당신은 나에게 그 날 밤 연락을 했지. 밥을 사준다고.

그렇게 인연이 닿아 101일을 사귀었다.

 

 

 

 

 

101일은 우리에게. 아니, 나에겐 좋은 기억은 찾기 힘들었다.

101을 사귀었지만 통화를 했던 것도, 만난 횟수도 열 손가락 안에 꼽았으니까.

 

그렇게 첫번째 이별을 겪었고, 당신은 우리가 사귈 무렵 알바도 그만 두었기에 만날 수 없었지.

 

사랑이 받고 싶었던 나는  날 좋아한다는 동갑인 친구를 사귀었지만

내가 그 친구와 당신을 비교하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당신은 177이란 키를 가진 날 자신 보다 작다며 종종 귀엽다 말해주었지만

그 친구는 자신이 더 커보이겠다며 날 인도가 아닌 도로에 세웠었으니까.

 

당신도 고작 나와 3cm 차이면서 자신이 더 크니 됐다며 처음으로 나의 콤플렉스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주던 사람이었다.

 

 

 

 

당신을 잊지 못 하고 고등학생 2학년 생활을 그렇게

당신을 생각하고 잊고를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고등학생 3학년이 되던 해에

퇴사했던 당신이 다시 입사를 했다.

 

당신의 얼굴을 보자 모든 게 무너지는 듯 한 기분이었다.

"안녕." 하고 인사하는 당신의 얼굴을 보자마자 다시 심장이 두근댔다.

 

그 날 부터 모든 게 손에 잡히지 않았다.

며칠 내내 당신 생각 뿐이었고, 새로운 여자친구가 있진 않을까 슬펐다.

그렇게 매장에서 마주쳐도 시큰둥 한 척 하다 한 번은 미친 척 하고

당신의 생일에 연락을 해 버렸다. 다행히 당신도 날 잊지 못했기에

 

우리는 또 겨울을 함께하게 되었지.

 

 

 

 

 

일 년 전과 다르게 당신은 날 많이 아껴주었고, 나 또한 당신에게 온 마음을 쏟았다.

 

사람이 거의 없던 영화관에서 당신과 첫 키스를 하던 날

나에게 첫 키스 맞냐며 놀라던 당신의 표정,

 

추운 날이면 전기장판 틀어 놓고 함께 잠들던 나의 방,

 

찾는데 꽤나 애썼지만 서울에 있는 일식집에 갔던 것,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갔다가 돌아 왔던 그 날도

 

생일 선물 안챙겨 줬다고 장난으로 툴툴대던 당신의 표정과 말투가

 

그 밖의 모든 것들이 이렇게나 선명하다.

 

 

 

 

 

 

정말 좋았다. 정말.

겨울엔 서로 볼이며 귀며 시뻘개져도 손 잡고 걷는 그 거리가 좋았다.

봄엔 한강에 가서 치킨을 시켜 먹기도 하고,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가족들을 보며

우리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도 좋았다.

여름엔 돗자리도 없어서 종이 가방 찢어 앉아 불꽃놀이를 보는 것도 말이다.

 

하지만 여름 무렵부터 같이 일하던 당신의 이모님이 날 반대하기 시작하셨지.

이모님은 당신의 부모님께도 나에 대해 다 말씀하셨는지

나는 반대 당했다. 당신도 애썼지만 집이 너무 엄했던 탓일까.

부모님은 우리 집 안 사정도 내가 미성년자인 것도 종교도 마음에 안들어하셨다.

 

당신은 날 숨기기 시작했다.

그 흔한 연애 중도 못 띄워보고 남들 다 하는 태그도,

프로필 사진을 서로의 사진으로 장식하는 것도 못했다.

심지어는 애정 가득히 핸드폰에 저장해 둔 내 이름도 그저 다른 사람처럼 저장되었지.

 

그래도 당신은 날 사랑하기에 이 만남을 끊지 않는다 말했다.

난 수긍하고 이해했다. 나도 당신이 좋았으니까.

 

그러다 당신이 어머님 회사에서 인턴 비슷한 생활을 하게 되면서

당신의 연락은 더 느려져갔고, 나도 지치기 시작했다.

그래, 당신이 신경 쓸 일이 많았다. 하지만 전 보다 줄어 든 애정표현이 날 미치게 만들었다.

 

연락 느릴 수 있지, 못할 수 있지.

그런데 왜 애정표현 조차 줄어드는거지? 라는 생각이 날 사로잡았고

난 당신에게 애정을 갈구하기 시작했다.

그 것에 당신은 지쳐갔고 우리는 320일 즈음에 시간을 갖기로 했다.

 

 

 

 

 

너무 보고싶었다. 헤어질까 두려웠으며 그럼에도 당신이 너무 좋았다.

한 번은 당신을 찾아갔지만 너무나 차가운 모습에 상처만 받고 돌아 온 기억에 아직도 마음이 저리다.

 

그러다 다른 사람에게 당신이 이별을 결심했단 이야기를 듣고 참을 수 없어 전화를 걸었다.

통화를 하는데 '이 사람이 정말 날 사랑하긴 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차가웠다.

정말 한 시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몇 분 동안은 정말 시덥잖은 이야기도 했지만 그 순간 순간이 나에겐 너무 소중했다.

당신을 놓기 싫었고 이 순간이 끝을 위한 시간이 아니길 바랐다.

 

하지만 휴학중이던 당신은 복학을 결정했고, 올 해 대학을 조금 멀리 가게 된 나였다.

우리의 사이가 계속 되면 서로가 더 지쳐가는 길이라고 당신은 말했다.

 

아직도 마음에 박히는 말 들.

"너도 알잖아. 우린 너무 안맞아."

"너의 스무살을 나에게 쓰기엔 아까워. 대학 가서 너에게 잘 해 줄 수 있는 남자 만나."

"난 일이 제일 중요한 사람이야."

 

그 말들에 지금도 울 정도니 통화 중엔 정말 숨 넘어갈 듯이 운 것 같다.

한참을 울다가 끝을 정말 맺으려는 당신의 간다는 한마디에 정신을 차렸고

한 마디 한 마디 말 하기 시작했다.

 

 

"오빠가 처음 보다 처한 상황이 많이 다른데 처음과 같길 바라서 미안해.

그 동안 어린애처럼 군 것 미안해.

생일 선물 못 챙겨 준 것도 미안하고

데이트 비용 많이 못낸 것도 미안해.

생각해보면 오빠가 해준 것도 많은데 그런 것 생각 못해줘서 미안하고,

항상 나 힘든 것 먼저 생각해서 미안해.

그 동안 잘해줬던 것, 나 사랑해 준 것 고마워.

나는 일보다 중요한 게 세상엔 많다고 생각해.

그게 오빠였고 그래서 더 노력하려고 했는데 독이 될 줄 몰랐어.

무리하면 바로 아프니까 무리해서 일만 하지 말고

친구도 자주 만나면서 스트레스도 풀어.

나 정말 오빠 사랑했어."

 

 

 

 

 

생각보다 덤덤하게 말하던 나와는 달리 당신은 울음을 터뜨렸지.

정말 만감이 교차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당신이 우는 것은 처음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울음을 진정시키려고 했던 당신의 심호흡이 아직도 귓가에서 맴돈다.

당신도 많이 힘들었구나. 미안해.

 

 

 

항상 깍지 껴서 잡아주던 손.

함께 침대에 누워서 서로 바라보던 눈빛.

가끔은 나에게 안겨 세상 모르고 잠들어 쓰다듬던 당신의 머릿결.

당신의 집으로 걸어가던 길.

집 앞 버스 정류장.

나랑 헤어지면 누가 자기 찾아주냐던 말들이 이제야 떠올라 눈물이 난다.

 

우린 나름 잘 맞았어. 행복했고 함께 있으면 즐거웠으니까.

 

오빠 말대로 화도 좀 줄이고 짜증도 안내고 대학교 가서 좋은 남자 만나보려고도 할게.

근데 너무 보고싶고 함께 했던 101일, 329일이 너무나도 소중해서

당분간은 잊기 힘들 것 같아. 미안해.

오빠는 괜찮지? 이기적이지만 안괜찮았으면 좋겠어.

날 많이 춥더라 따뜻하게 입고

혹시라도 내 생각 나면 나한테 연락해줄래? 반겨 줄 자신 있는데.

아프지 말고 난 아직 오빠 사랑해.

우린 겨울이 문젠가보다. 항상 겨울에 헤어지네. 더 춥게.

이제 그만 쓸게. 그 동안 너무 고마웠고 몰라줘서 미안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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