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교(日鮮敎)
6.
한참 말하던 대이노사는 별안간 심상치 않은 기색을 띠었다. 귀를 솔깃하더니 살며시 일어나서 창가로 다가갔다. 대이노사는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는 고영과 자야를 향하여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에그, 할망구가 나를 찾아온 모양이다. 할망구가 나를 찾거든 모른다고 하여라. 알았지?”
대이노사는 몸을 슬쩍 날려서 창문 밖으로 나갔다. 순간 고영은 지붕 위를 단숨에 뛰어넘는 기운을 느꼈다. 벌떡 일어나서 창밖을 내다보자 어이쿠 하는 대이노사의 외마디 비명이 들렸다. 뒷마당을 가로지르던 대이노사를 향하여 붉은색 비단의 채대(彩帶)가 파공음을 내며 날아왔다. 여자들이 허리띠로 사용하는 채대는 가끔 여자의 무기로 쓰였다. 내공을 실은 채대는 매서운 채찍처럼 상대를 파고들며 변화무쌍하게 움직인다.
대이노사의 손목이 채대에 감기면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흥, 미친 늙은이야, 내 동생의 따귀를 마구 때리고 귀한 보석을 뺏다니, 내가 가만둘 줄 알고?”
고영과 자야는 창문 아래서 채대를 휘두르는 사람을 보았다. 칠십은 되어 보이는 할머니가 뚱뚱한 몸을 흔들며 채대의 끝을 두 손으로 밀고 당겼다. 참으로 신기한 채대의 운용이었다. 할머니가 손을 위로 펄쩍 돌리며 채대를 휘두르자 손목이 감긴 대이노사의 몸이 허공을 한바퀴 휙 돌아서 바닥에 쿵 떨어진다.
“아구구...... 이 할망구가 노망이 들어도 분수가 있지, 나를 이렇게 마구잡이로 휘두르다니,”
“뭐라고?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하나 뿐이 없는 내 동생의 재물을 뺏는 못된 버릇을 오늘은 단단히 고쳐 놓고야 말겠다. 흥, 매서운 맛을 보여주마.”
채대를 힘껏 당기자 대이노사는 힘없이 쭈르르 밀려오더니, 다시금 땅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아구구, 나 죽겠다. 나는 맹도곡이 남의 물건을 훔쳐서 그 물건을 주인에게 돌려준 것뿐인데, 무슨 물건을 내가 뺏었다고 그러냐? 미친 할망구야.”
할머니는 흥 하는 냉소를 흘리면서 다시 채대를 휙 휘둘렀다. 대이노사의 손목을 감은 채대는 마치 강력한 쇠갈고리처럼 단단하였다. 채대를 풀려고 하였지만 그 때마다 밀고 당기는 힘에 의하여 대이노사는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형편이었다.
“거짓말도 잘한다. 동생에게 뺏은 물건을 몽땅 내놓기 전에는 내가 가만히 안 두겠다.”
“정말이라니깐, 재물은 모두 표국에 돌려주었단 말이다. 에구구.”
이번에는 용틀임하듯 긴 채대가 붉은빛을 번쩍하며 펄럭였다. 대이노사의 몸이 허공을 다시 휙 날더니 저쪽의 나무 아래로 쿵 떨어졌다. 또 다시 대이노사는 애처롭게 비명을 질렀다.
고영은 신묘한 채대의 운용에 깜짝 놀랐다.
(부드러운 비단자락이 쇠사슬보다도 더 질기며, 번쩍이는 검보다도 더욱 날카롭다. 한번 휘감기면 누구도 빠져 나오지 못하겠구나. 맹도곡이 당한 분풀이를 대신해 주는 것인데, 할머니와 대이노사는 어떤 사이기에 노사님이 반항할 생각을 하지 않을까,)
“호호호, 노사님의 말씀이 사실이옵니다. 맹도곡이 훔쳐온 패물은 모두 표국사람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저러다가 노사님께서 목숨을 잃겠습니다. 그만 멈추어 주세요. 할머니,”
자야의 청아한 목소리였다. 할머니는 움찔하면서 자야를 보고 물었다.
“너는 누구인데 저 늙은이 편을 들고 그러지?”
“저는 노사님의 옛 친구인 황노인의 손녀인 자야라 하옵니다.”
그 말을 듣자 할머니는 채대를 거두어들이며 놀라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황노인이라고? 그 말이 사실이냐?”
“네. 사실입니다. 맹도곡이 훔친 재물도 분명히 표국에 돌려주었습니다.”
“그러면 연아(蓮雅)의 손녀이기도 한즉, 네가 분명히 연아의 손녀란 말이지?”
“네, 연아님은 저의 할머니에요. 지금 할아버지와 농사지으며 심산에 은거하고 계십니다.”
별안간 할머니는 자야를 와락 끌어안고는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에구, 나하고 어렸을 적에 같이 자란 연아가 살아있다는 말이지? 그리고 네가 분명히 연아의 손녀라고?”
채대를 휘두른 할머니와 대이노사는 부부지간이었다. 맹도곡은 대이노사의 처남이였다. 맹도곡은 대이노사에게 당한 울분을 누이인 매궁(梅窮)에게 하소연 하였고, 이에 분개한 매궁이 대이노사에게 치도곤을 놓았다. 매궁은 자야의 말에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러자 대이노사는 투덜거리며 다가와 소리를 버럭 질렀다.
“미친 할망구야, 듣기 싫으니 그만 울어. 처남의 나쁜 손버릇을 고쳐주려고 했는데 개를 바닥에 패대기치듯 나를 이리저리 패대기치다니, 쯧,”
매궁은 자야의 옆에 서 있는 소년이 천봉자의 아들이라는 소리를 듣자 더욱 크게 통곡했다.
“정말이냐? 그러면 네가 바로 설선녀(雪仙女)의 아들이 분명하다는 말이지? 에구, 오래 살다보니 이렇게 만나보게 되는구나. 흑흑”
고영의 얼굴을 손으로 더듬어 보는 매궁의 울음소리는 더욱 처량하게 변했다.
넷이서 찻잔을 앞에 두고 앉았다. 대이노사와 매궁은 고영과 자야를 자신의 손자로 대하듯 다정하였다. 차를 마시는 대이노사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음울한 표정으로 침묵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일선교(日鮮敎)에 관하여 자세한 이야기를 해 주겠다. 천봉자를 폐인으로 만든 집단이 바로 일선교다. 일선교의 마각이 드러난 계기가 바로 신오산에서 자혈검을 탈취한 사건이고, 뒤이어 피비린내 나는 죽림장의 혈투로 인하여 그 세력이 알려지게 되었다. 일선교의 교주는 여자라고 알려졌으며 그들의 세력은 강호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은밀한 집단이다.”
일선교가 각종비급을 수집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그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강호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상승무공을 갖춘 고수들이 존재한다는 소문이 현실로 밝혀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 첫 번째 표적이 된 것이 바로 검의 본산인 무당파의 무형비급(無形秘級)이었다.
무당파(武當派)는 장삼봉이 소림사에서 누명을 쓰고 쫓겨난 후에 무당산에 세운 강호의 정파였다. 불가에 속했던 장삼봉이 늙어가면서 도교(道敎)의 노장(老莊)사상에 심취했다. 이에 무당파는 강호에 우뚝 선 도교의 본산이 되었으며, 그에 걸맞게 수많은 도인들을 배출해 냈다. 이에 무당파의 검법도 도교적 색채를 띠우게 되었으며 눈에 보이는 검보다는 마음의 검을 중요시하게 되었다.
중후하고 강맹한 소림사의 무공과는 대조적으로 부드러움과 섬세함을 특징으로 하는 무당파의 무공은 태극(太極)과 무극(無極)을 절정으로 한다. 태극은 무극의 다른 말이다. 유(有)의 극치는 무(無)다. 반대로 전체가 없다는 것은 전체가 꽉 찼다는 말이다. 음양오행을 따라서 흐르는 무공은 흡사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무당파는 장문인 진인(眞人)을 정점으로, 사현(四賢), 오현(五賢), 칠현(七賢)이 있다. 또한 무당산 72개의 봉우리 각처에는 도관이 있으며 각 도관에는 무공이 출중한 도인(道人)이 기거하고 있다. 사방의 둘레가 오백 리가 넘었으며 주봉인 천주봉(天柱峰)은 일년 내내 구름에 가려져 있었다.
천주봉에 있는 태화관(太和館)에는 무당파의 각종 비급이 모셔져 있다.
그 중에서도 무형비급은 진검(眞劍)의 절정인 심검(心劍)의 묘법을 기술한 무형검의 비급이다. 무당파는 검법의 본산으로 자타가 인정하고 있었다. 강호의 모든 검을 망라하였으니, 그 극치를 이룬 것이 바로 무형검이라는 심검이었다.
마음이 검을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검이 마음을 따라간다. 외검(外劍)은 한계가 있지만 내검(內劍)은 자유롭다. 모든 무공은 마음으로 절정을 이룬다. 무심한 경지를 노니는 검이라야 비로소 이름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자유자재한 검은 형태와 이름을 거부한다. 그래서 무형검이다.
어둠을 타고 두 개의 그림자가 천주봉을 향하여 나르고 있었다. 흑의를 입고 두건을 쓴 그림자는 곧바로 무형비급이 모셔져 있는 태화관을 향했다. 천주봉에 자리한 태화관의 주위에는 동서남북의 방향으로 향한 도관이 지어져 있었고, 그곳에는 태화관을 호위하는 태허사현(太虛四賢)이 있었다.
천주봉에 올라선 두 그림자는 소리 없이 태화관으로 스며들었다. 바람처럼 하나의 그림자가 문을 열고 들어서더니 잠시 후에 대나무 조각을 엮어 만든 비급을 옆구리에 끼고 나왔다. 돌계단을 미끄러지듯 내려서는 순간에 두 사람의 앞을 가로막는 그림자가 있었다. 바로 태허사현 중의 한 사람인 백호현(白虎賢)이었다. 무당파의 장문과 태허사현 이외에는 아무도 이곳을 출입하지 못한다. 누구를 막론하고 이곳에 발을 들여 놓으면 태허사현의 손에 목숨을 잃는다.
쨍~ 하는 소리와 함께 백호현의 양쪽으로 갈라선 두 사람은 등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오른쪽에 있던 사람의 검이 백호현의 허리를 두 동강 날 기세로 날았다. 백호현이 검을 아래로 세우며 날아든 검을 막는 순간에 왼쪽에 있던 흑의인의 검이 번쩍하며 백호현의 목을 쳤다. 쿵하며 백호현이 쓰러지는 순간에 태화관의 지붕을 단숨에 넘으며 세 명의 그림자가 날아들었다.
청룡현(靑龍賢), 봉현(鳳賢), 현무현(玄武賢)이었다.
백호현이 단숨에 죽음을 당한 것을 본 세 명은 분노가 폭발했다. 살기를 품으며 세 개의 검이 두 명의 흑의인을 향하여 일제히 파고들었다. 앞에 있던 흑의인의 검이 원을 그리며 세 개의 검을 봉쇄하는 순간에 강력한 힘에 밀려 검을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
쨍그랑~
검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 순간에 청룡현의 검이 흑의인의 가슴을 꿰뚫었다. 어억 하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뒤에 있던 흑의인은 옆구리에 비급을 낀 채로 몸을 날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실로 비호같은 신법이었다. 단숨에 멀리 보이는 소나무 숲 속으로 뛰어들었다. 세 명의 무당파 고수들도 소나무 숲 속으로 몸을 날려 그림자를 쫓았다.
안광을 높여 어둠 속을 더듬던 무당파 고수들은 섬뜩한 장면에 등골이 오싹했다. 쫓아가던 흑의인이 커다란 소나무 뒤에서 죽어있었다. 머리부터 가슴까지 예리한 검이 파고들었으니, 단숨에 사람을 두 쪽으로 갈라놓은 검의 위력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실로 무공이 최고의 경지에 있는 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대단한 위력이었다. 물론 그가 가지고 도망치던 무형비급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었다.
과연 숲 속에서 머리부터 가슴까지 사람을 가른 자는 누구인가,
그 사건이 벌어진 후, 얼마 되지 않아서 똑같은 사건이 아미산에 있는 복호사(腹虎寺)에서도 일어났다. 복호사는 아미파의 본산이며 비구니들만 있다. 이곳에는 아미파의 묘검(妙劍)이라고 일컫는 옥허비급(玉虛秘級)이 모셔져 있었다. 짧은 두개의 검으로 강호에 명성을 날리는 옥허쌍검, 남자의 강함에 맞선 여자의 약함이 신묘한 경지를 펼치는 검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