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그냥 어디에도 말할 곳 없어서 쓰는 글이다.
나이 27 먹어가면서 늘 받는 사랑에만 익숙해왔고, 상대가 주는 사랑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난 항상 '갑'이었다. 어떤 행동이든 내가 떠날까봐 나에게 말도 쉽게 못하는 상대들을 보며 즐겼고, 그리 큰 일이 아님에도 기분을 상하게 한다면, 나는 이 사이의 강자라는 입장에서 권력을 휘둘러왔다. 잘못됐다고 생각해본적 없다. 내 앞에서 전전긍긍 하는 그들을 보며 항상 '그래봤자 넌 끌려오게 되있어.' 하며 그들의 순수한 사랑을 이용하며, 어떻게든 무언가 얻어 낼까 계산만 해왔다.
어느 순간 지루해졌다. 더 이상 그런 모습을 보는게 즐겁지도 않았고, 계산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아무 생각이 안들었다. 내 입에서는 쉽게 이별통보가 흘렀고, 상대방은 늘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얼굴로 내가 잘 할테니 제발 떠나지 말라 애원해왔다.
난 이해하지 못했다. 이별이라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작게는 지갑속의 사진부터 크게는 손에 끼워져있는 반지에 깃들어 있는 추억과 의미가 이별 하나로 얼마나 사람을 엉망으로 만드는지. 늘 한발짝 떨어져서 관조하듯 상대가 열심히 내 마음에 들려고 달려오는 것을 보며 비웃었다. 내가 하는 사랑은 항상 상대만 노력하는 관계가 전부였다. 한번도 사랑 받으려고 노력한 적이 없고, 사랑을 준 적도 없다. 무덤덤한 목소리로 사랑한다 말할 때,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 내 마음을 느끼면서도 흔들리는 눈으로 그저 그거면 됐다고 만족하는 사람을 속으로 바보 같다 비웃었다.
나와의 미래 하나 꿈꾸며, 아침 저녁으로 일하는 그를 보며 별로 감동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쭉 그래왔듯, 당연하다 생각했다. 나 정도와 함께하려면 그정도는 해야 한다고, 내 콧대는 점점 하늘 높은지 모르고 치솟았다. 이런 얘기를 친구들에게 자랑삼아 할 때마다 넌 정말 나쁜년이라고 욕하는 모습을 그냥 걔들은 이런 사랑을 받지 못해 질투하는 것이라고 역시 신경쓰지 않았다.
지겨웠다. 그냥 혼자 편하게 지내고 싶었다. 평소 같이 일방적으로 이별통보를 하고 전혀 만나주지 않았다. 공사판에서 일하다가 다쳤다는 말을 들었을 때 잠시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그 몸으로 우리집 앞에 찾아와서 얼굴 한번만 보여달라고 애원하는 그를 아주 쉽게 무시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하늘에서는 눈이 내리는 일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그는 여전히 아픈몸으로 아침 저녁으로 일을하고 새벽녘쯤에 찾아와서 내가 좋아하는 간식이랑 손편지를 현관문에 걸어두고 새벽내내 우리가 자주 갔던 놀이터의 그 자리에서 망부석 같이 기다렸다. 나는 집착한다고 더 싫어했고, 오히려 어머니가 그가 얼어죽는건 아닐까 걱정해 우리집에 데리고 들어와도 나는 그를 보려 내방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는 점점 말라갔고, 심지어 어머니와 아버지 마져 나를 정말 질린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냉정해야 그사람도 정리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났다. 내방의 하얀서랍장 한칸은 그가 쓴 편지로 수북했고. 그는 마지막 편지를 내가 좋아하는 치즈케익과 함께 두고 다시는 찾아 오지 않았다. 일주일 째 오지 않는 그에게 의아함을 느낀 나는 그동안 읽지 않았던 편지를 하나씩 뜯어 읽었다. 구구절절 그렇게 애절 할 수 없었다. 아무리 내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아파하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고, 그의 모든 감정이 실려있는 편지들은 내게 죄책감을 심어줬다. 총 백 몇장이 되는 편지에는 단 하나도 나에 대한 원망이 실려있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만 부족하다 자책하는 글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자동으로 머릿속에 연상됐다. 그때라도 돌아갔다면 상처받은 마음을 조금이라도 어루만져 줬겠지만 난 마지막 편지까지 읽으니 더더욱 그럴 수가 없었다. '마지막 예의'다. 물론 내가 돌아가면 그는 기쁘겠지만 내 마음이 여기까지 인데 다시 간다고 한들 그는 내 옆에서 더 말라갈 것이고, 계속 상처 받을 것이다. 그렇게 이주가 더 흐르고 직장 동료가 어떤남자가 전해주라고 하던게 있었는데 잃어버린 것 같다고 미안하다 계속 사과했다. 어떤남자..? 누구인지 예상이 갔지만 차라리 잘 됐다. 그는 나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무엇인가를 보냈고, 내 동료는 그걸 받았고, 전해준다 했고, 난 받지 못했다. 그는 내가 그것을 보고도 연락이 없는 것이라 절망한 눈치였다. 나는 이왕 나쁜년 된거 그냥 끝까지 나쁜년이 되기로 했다. 차라리 나 말고 그런 사랑을 감사해하는 좋은 여자를 만나길 진심으로 빌었다. 그렇게 몇년이 지나고, 나는 그사람에게 받은 애정 때문인지 항상 비슷한 연애를 했다. 상대가 처절하게 목을 메야 그때서야 한번 흘끗 돌아보는, 결국 첫사랑과 같은 사랑을 반복했다. 3년전 암투병 하시는 우리 어머니를 위해 금전적 지원을 포함해 온갖 병수발을 들던 그 착한 사람에게 더이상 널 사랑하지 않으니 그만 헤어지자고 또 일방통보를 하고는 쭉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나이가 먹을수록 나는 누구를 만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늘 상처만 주니까. 사랑을 해보려 노력해본 적도 있지만 늘 나는 내가 먼저였고, 상대는 2순위도 아닌 10번째 순서정도 됐다. 그래.. 늘 날 사랑해주는 사람들에게 상처만 주는 연애 그만하고, 그냥 나 편한대로 살자. 독신주의로 마음을 굳히기 시작했다. 일에만 매달리니 어느새 나는 꽤 인정받는 여자가 되있었다. 남들보다 낮은 학력이나 부족한 외모는 업무능력 하나로 전혀 문제 삼아지지 않았다. 그렇게 별 문제없이 살다가 일년전 한 사람을 만났다.
그 남자는 늘 냉담한 나의 태도에도 굴하지 않고 꾸준하게 다가왔다. 나는 솔직히 말했다. 나를 뭘 보고 좋아하는지 모르겟지만 난 아주 나쁜여자고, 날 만나면 그쪽은 상처만 받을 것이니, 그냥 좋은여자 만나라고, 세상에는 참 좋은여자가 많다고 계속 밀어냈다. 하지만 그는 그래도 굴하지 않고 계속 다가왔다. 점점 그 모습에서 누군가가 비춰 보이기 시작했고, 마지막으로 그가 내미는 살구색 편지를 보며 나는 말을 잃었다. 정확히 나에게 마지막 편지를 내밀던 첫사랑을 떠올리게 됐다. 그 때도 이런색이었다. 아니 이 색이었다. 왜일까 제어 못할 정도로 그 남자에게 끌렸다.
그는 늘 바빴다. 프로그래머가 그렇게 바쁜 직업인지 몰랐다. 처음에는 첫사랑의 향수에 불가항력으로 끌렸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그만의 매력에 끌렸다. 처음 3개월 간의 짧은 연애로 난 내 마음을 모두 뺏겼다. 늘 바쁜 그의 연락을 기다렸고, 주말에 만나지 못하는 것에 투정이라는 것을 부리기 시작했다. 보고싶어서 일산에서 천안까지 회사를 결근하면서까지 찾아가 늦게 퇴근해서 밤에 10분 얼굴보고 자는게 다였지만 그래도 가서 그를 봤다. 그는 점점 내게 미안해했다. 늘 나를 기다리게만 한다고, 나는 괜찮다고 웃어줬다. 우리는 껴안고 서로 마냥 웃었다. 하지만 그런시간이 점점 길어지자 나는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무슨 견우와 직녀도 아니고 21세기에 얼굴도 일주일에 한번 얼굴도 보기 힘든 생이별이라니... 점점 보고싶은 마음은 투정으로 변해갔고, 난 또 아무 죄책감 없이 헤어지자는 말을 했다. 그는 나와 결혼하려고 이렇게 지옥같은 스케줄을 소화하는 거라고 기다려 달라 계속 부탁했지만 나는 지금 얼굴을 보는게 중요했다. 비싼거 좋은거 안해줘도 되니 그 사람과 같이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계속 어필했다. 처음에는 헤어지자는 말에도 난 널 절대 못 놓는다 하던 그 사람이 점점 지쳐가는게 느껴졌다. 아마 일과 나중에 균형을 맞추고 싶은데 안되는 현실에 나보다 두배는 힘들었을 것이다. 2달이라는 시간동안 1주일에 한번씩 커다란 충돌이 생겼다. 아니 충돌이라기 보다는 일방적으로 코너에 몰았다 내가. 그날도 고개를 저었다. 정말 이렇게는 이사람과 관계를 이어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이별통보를 했다. 처음으로 그는 그래, 그렇게 하자며 수긍했다.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게 아닌데...' 내가 이런말을 하면 달래주며 다시 붙잡아야 맞는데, 그는 완고했다. 나는 처음으로 자존심을 버리고 울고불고 처절하게 매달렸다. 절대 헤어질 수 없다며 그 새벽에 택시비 15만원을 지출하며 그의 집으로 가서 매달렸다. 내가 집으로 들어서자. 씁쓸한 얼굴로 술을 마시던 그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래 그거면 됐다. 나는 흔들리는 그의 눈을 보며, 무작정 달려들어 스킨쉽을 퍼부었다. 말 할 시간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의 나아질 것 없는 상황과 애정을 갈구하는 나의 입장은 좁혀지지 않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나무가 쓰러지듯이 힘 없이 내가 미는대로 밀린채로 날 밀쳐내지도 못하고 마주 안았다. 나는 집착하듯이 계속 애정을 확인했고, 내 욕심은 그를 재우지도 않았고, 그는 나와 세시간을 함께 하다가 쉬지도 못하고 출근했다. 주말내내 아침일찍 출근하고 새벽에 퇴근하는 그를 기다리며 행복했다. 그곳은 몇시간만 기다리면 그가 돌아오는 집이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 나는 일하는 중이라 데려다 주지도 못한다며 미안해하는 그에게 괜찮다고 말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월요일이 되니 다시 연락이 안되는 그 때문에 힘들어졌다. 하지만 헤어지자는 소리는 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거렸다. 잘 때도 진동과 벨소리를 최대화로 해놓고, 휴대폰을 손에 쥐고 귀옆에 대고 자지 않고 전화를 기다렸다. 4일째 통화를 못했다. 미칠것 같았다. 연애를 하고 있어도 사랑받지 못한다는 외로움이 사람의 마음을 좀 먹게 했다. 그저 무기력하게 기다리는 것 갈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내 입장이 서글퍼지기 시작했다. 지금 그는 해외출장을 통보받은 상태다 1년 이상 지금보다 더 연락이 안될것이라며 더이상 힘들어하는 널 볼 수가 없다며 이별통보를 받았다. 나는 그에게 차단당했다. 하지만 밉지가 않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해가 가고, 이렇게 보내주는게 둘을 위해서 최선의 선택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아직도 못 놓고 있다. 매일밤 속을 버릴 정도로 술을 마셔야 잠이오고, 혼자있을 때는 울기만 한다. 주위의 어떤 위로에도 마음이 나아지지 않고, 그냥 버티고 있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내가 벌을 받고 있는구나. 이 정도인거구나.
- 오빠, 그 동안 고마웠어. 처음부터 빨리 결혼하고 싶어하는 걸 쭉 이해 못 했었는데, 이제 왜 빨리 결혼하고 싶어하는지 알겠어. 오빠의 직업 특성상 이런연애가 반복 될 것을 알기도 하고, 늘 외로운 오빠의 일상에 묵묵히 옆에서 기다려주는 동반자가 필요했겠지. 뭐가 맞든 아니든, 독신주의자였던 내가 오빠랑 결혼가지 생각했어. 오빠랑 결혼하고 싶었어. 행복 할 것 같았어. 하지만 우리는 여기까지 이겠지. 미안해 내가 그 동반자가 될 만큼 기다려주는 사람이 되질 못해서, 늘 내 앞에서 마음 약한 사람이 그렇게까지 단호한거, 날 위해서라는거 알아. 오빠는 더 나에게 신경 써 줄 수 있는 좋은 남자를 만나라고 했지만, 나는 이제 그게 안될것 같아. 이제 사랑 안하고 싶거든. 당분간 힘들것 같아. 차단 풀지마.. ㅎㅎ 어제처럼 술먹고 전화해서 둘 다 흔들리면 또 반복 될거 잖아. 오빠는 날 위해서 헤어지자 하는거고, 나는 오빠를 위해서 헤어지자는 거니까 서로를 위한 이별인가. 오빠가 하는 사랑해서 하는 이별, 나도 해주려고. 나중에 몇년이 지나서 오빠가 안정적으로 되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ㅎㅎ 아니겠지? 그 때는 다른여자 있을꺼야. 괜히 희망 가질 뻔했다.
좋은여자 만나지마, 아직은 그 생각만으로 속이 뒤집어지고 미쳐 버릴 것 같으니까. 나 그리워해줘, 다시 만났으면 좋겠어 나는... ㅎㅎ 역시 안되겠지? 그럼 좋은여자 말고 예쁜여자 만나, 나보다 덜 사랑하고. 오빠를 잊는데 얼마나 걸릴까. 짧았으면 좋겠다. 아무리 지난사랑의 벌이라도 이정도면 많이 받은 것 같은데. 그래도 후회는 없다. 우리 함께하는 동안은 늘 서로만 쳐다봤고,늘 진심이었으니까. 남들이 오빠를 뭐라고 욕하던 난 오빠 말을 그대로 믿고, 그대로 사랑해.
잘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