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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스토리 눈 -불량품 한놈 으로부터 시작 된 일

다음 지난 글에서 이어서 씁니다

사실 방송에 나온부분은  워낙 졸속으로 제작 되다보니  그 인과관계가 분명치도 않고  나로서는 터무니없이 억울한 점도 있었고 하여 , 원 제보자의 설명이 반드시 필요 하다고 생각 합니다.

 재미 없고 복잡하지만  인생은 모르는 겁니다. 누구라도 이런 일 당 할 수 있는 겁니다.

 

3)최농민씨: 호담리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토박이로서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 이면서 상당한 토지들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분이 이고소 씨에게 한 일이라고는 200평이라는 배산임수 명당자리를 저렴한 값에 좋은 마음으로 양도하였고 나름대로 신뢰 할 수 있는 유목수를 소개한 죄 밖에없습니다. 이분의 특징은 평생토록 어느 누구와도 큰 소리로 다투거나 하지를 않은 사람입니다.

미스테리한 일이 또 하나 잇는데 처음 이고소는 최농민씨를 아우님 아우님 하면서 형제처럼 몇 달을 지내다가 어느날 갑자기 그 대하는 태도가 얼음처럼 냉랭해지더니 급기야는 몇 차례인가 형사 고소를 하고 별 소득이 없이 기각이 되니까 이제는 약점을 찾아 혈안이 되어서는 자기 딴에는 치명상을 입히려는 의도로 면. 시. 도.는 물론 심지어는 감사원에 까지 민원을 넣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왜 이고소의 태도가 돌변하게 되었는가는, 따로 또 한 사람인 김불량품 이라는 사람이 절대적 작용을 합니다.

뒤에 설명 하겠지만,

이 김씨의 모사로 인하여 근 3년간의 고소고발 민원사건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밖에 없읍니다

 

4) 정상품(이 글 작성자); 본인 정상품은 처와 세 자녀를 가진 가장으로2007년부터 호담리 76번지에서 살아 오고 있으며 , 그 전에는 양평 강상면에서 애완견과 염소 사육을 10년이상 하다가 철저하게 파산을 하고 2005년부터는 궁여지책으로 고물 모타등 중고기계들을 인터넷 중고나라등에 광고하여 판매하여 근근히 버티며 노년을 맞이 하였네요.

학벌도 재산도 배경도 없이 어느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기에 ,

오로지 고리의 카드론이나 캐피탈등을 밑천으로 삼아서

아내와 둘이 정말 열심히 살면서 큰놈둘은 남들만큼 가르쳐 놨고 늦둥이 하나만 중학교에 다니고 있구요 , 억대가넘는 담보가잇긴 하지만 집도 장만 하였습니다.

 

원래 우리 호담리 마을은 전체 100호가 넘는 아주 큰 마을인데 내가 살고있는 이 70번지 일대는 마을 외곽의 좀 동떨어진 곳입니다.

 

앞에는 개울이 흐르고 뒤에는 병풍같은 험산이 있어 풍광좋고 한적한 곳입니다. 지금은 다섯가구가 살고 있지만 2007년 여기에 컨테이너를 갖다놓고 우리가족만 살 적에는 길도 없었으며 전기도 간신히 들어올 정도로 .. 컨테이너에 살긴 하였지만 정말 자유롭고 행복한 몇 년간 이었습니다. 그2년쯤후에 처형이 옆에다 집을 지어서 이주하여 와서 이 골짜기는 2가구가 되었고. 얼마후 처형네가 사정상 광주로 이사를 가고 그집에 김불량품 이라는 나와는 동갑인 사람이 5000만원 전세로 2011년도에 이사를 왔습니다.

그 당시 나는 한 은인의 배려(최농민씨)로 싼 자투리 땅을 구입하여 집을 짓고 잇었습니다. 다행인 것은 하천부지가 350평정도 딸려 왔으니 나처럼 없는사람이 활용하기에 안성맟춤이었고요, 가진게 없다보니 나와 아내 두 사람의 노력만으로 일년여에 걸쳐 대충 얼개는 완성하여 내집을 짓고있었을 때 김씨부부가 옆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처형집)

외롭게만 살다가 갑장의 이웃이 오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는데 . 아 ! 이 잔인하고 황당한 불량품으로 인하여 급기야 나정상품이는 일생일대의 치명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한테 2년간 식사 대접을 받은횟수가 아마 50회에서 100회 가까이는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일방적으로 얻어 먹기만 한 것은 절대 아니고 큰 돈이 들어갈적에는(4,50만원) 두어번 내가 계산한 기억도 납니다.

 

이 김씨가 처음 이사와서 하는 말이 자신은 안기부의 과장으로 퇴직하였으며(실질적인 장관이상직급) 연금으로 월 400만원이상 수령 한다고 하엿습니다.

 

이곳 시골로 오게된 연유는 친구들이 너무도 많다보니 사는게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급기야는 전화번호도 싹 바꾸고 도망치듯 잠적했다는 것입니다.

 

그 친구들이라는 것이 대개는 장관이나 국회의원으로부터 시작하여 심지어는 서울역 노숙자들에 이르기 까지 각계각층 너무도 방대하여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안기부에 근무하게된 연유는 , 젊어서 강원도 모대학에 다닐적에 학군단에 지원하여 장교가 되었고 사격을 잘 하여 국가대표사격선수가 되어 국내메달은 싹쓸이를 할 정도로 실력이 좋았다 합니다

 

그래서 안기부에 발탁 되었고 평생을 근무 하게 되었고 몇 년전에 정년퇴직을 했다고 했습니다.

 

(차차 설명 하지만, 이 사람이 자신에 대하여 말 한 것들은 100프로 거짓이 아닌부분이 없습니다. 사실 이사람은 대학에 간 일도 없었고 장교도 그렇고 국가대표도 국정원과장 국정원후배 국회의원 장관친구들 장군친구들....자신의 빵빵한 재력이라든가 기타 모든 것들 전부다 소설일 뿐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평생동안 직장에 다녀본적이 전혀 없으며 독자적으로 경제활동을 한적도 전무 합니다. 그저 아내의 메리야스가게 일 등등을 뒤에서 거들며 일생을 보낸 , 불량품에 불과한 인간 이었던 게지요. 이 사실을 파악 하는데 몇 년이나 걸렸으니 나도참 한심하기 짝이 없었네요 )

 

그러면서 . 자신은 아직 은퇴할 생각은 없는데 무슨 사업을 하면 좋겟느냐고 내게 물었습니다. 정상품사장님처럼 훌륭한 사람을 이런 궁벽한 곳에서 만날 수 잇엇다니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라고도 하였으며

 

이에 내가 답 하기를 고물계에 진출하면 어떠시겠습니까? 이게 보기보다 규모도 엄청나게 클 수 있고 , 실패확률은 제로에 가깝다고 봅니다 햇습니다.

 

그랬더니 이양반, 그렇다면 당장 시작 합시다. 우선 국방부는 자신의 후배들이 안기부 요직에 쫙 깔려 있어서 영향력을 좀 가지고 있으니까 국방부 고철부터 알아 봅시다. 하더군요 .

 

그래서 내가 답 하기를 , 근데 김형.! 국방부 불하 고철은 전부 공매하는건데 그걸 경쟁입찰햬서 낙찰 된다한들 무슨 돈이 남겠소? 그리고 그나마도 낙찰을 어떻게 받는단 말잉교? 했더니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 하기를 . 그런거는 아주 기초적인 문제요. 서류빼기라는 아주 간단하고 확실한 수가 있어요. 다른 사람들 서류들은 무슨 무슨 하자를 잡아서 다 빼버리고 우리서류만 접수시키는거지. 그런거모르고 내가 덤비겠습니까?

 

근데 정사장님! 이런이야기 특히 최농민씨 한테나 누구한테 하지마세요. 일 다 될 때 까지는 좀 더 두고 봅시다. 하더군요.

 

그러면서 대뜸 동업이야기를 하기 시작 하는데 , 사실 그 말대로 하다보면 나야말로 동업이랄 것도 없이 그냥 공짜 꽃가마를 타는셈이었겠죠.

 

이양반 말이 또 동업이라는 걸 할려면 둘이 나란히 집을짓고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이론은 정말 생소하고 기이한건데 이사람이 말 하니까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나란히 집을 짓는 다는 말은

저의 집터가 일견하여 700평이 넘는데 기실 내 소유의땅은 200평인데 국유지사이사이의 자투리땅이 3필지를 합한거임.

그러니까 340평은 내가 점유해 놓은 하천부지인데 맨처음 구입한 땅이 47평이었거든요(용담리79번지) 이땅을 3500만원에 구입 하였는데 하천부지가 300평 넘게 끼워져있어서 그냥 보기에는 온전한 350평짜리 한필지로 보이거든요.

그러니까 궁극적으로 김 **이 노리는 것이 바로 이 79번지와 부속하천부지였던 것입니다. 이사람은 자기가 신통력이 있다고 하면서 지하수맥을 그냥 맨눈으로 정확히 읽으며 어떤사람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일생이 바로 읽힌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말도 안되는 황당한 사기수법으로 나를 현혹 하면서 79번지를 넘겨달라는 식이엿지요. 결국 3500만원을 줄테니 79번지를 자기에게 넘겨주면 나란히 집을짓고 살면서 어마어마한 사업을 동업을 하자 그 79번지는 우리 53년생 계사생과는 합이 잘 맞는 좋은 숫자 라면서요(ㅎㅎㅎㅎㅎ.

 

지나고 보니 김불량품이 그토록 엄청난 거짓말로 저를 현혹하고 결과적으로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 모든 공작들이 79번지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김씨가 이곳에 뿌리가 있는것도아니고 5000만원 전세입자일 뿐이니 싼값에 큰 집터하나 횡재하고 전세빼서 떠나버릴 심산이었던 겁니다

 

나로서는 이사람을 신뢰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 , 어떤날은 국방부나 육군본부를 가서 막강한 후배를 만나야 한다면서(예의 고철 불하건으로) , 정장을 칼같이 차려입고는 콜택시를 불러서 10시쯤 나가서는 밤 늦게 들어오곤 했는데 , 갔다 올 적마다 내게다가 진행상황을 상세하게도 브리핑 하곤 했습니다.

또 당시 숭실대 다니는 저의 아들을 서울대 의대에 편입시켜주겠다고 큰소리 땅땅 치면서 또 정장하고 콜택시타고 몇 번씩 어디론가 갔다오고...육군본부로 간다던가 국방부로 간다던가....

 

이건 시작에 불과하고 빙산의 일각이었을 뿐 , 이자가 나를 현혹하여 나의 삶을 송두리째 뒤엎어버린 수 많은 일화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생각나는대로 몇가지 적어보면

자기 막내동생이 소위 재계의 거물이라고 하면서(여동생은 새누리당 공천을 받을정도로 정계의 거물이라고 했음) 독일계 세계적 다국적기업의 삼척지점을 설립한다고 하면서 나에게 대표이사를 맡으라고도 했고 ,

대표이사에 걸맞는 싸인을 하나 다시 만들라고도 했습니다.

김씨 이 와중에도 번번히 사람 만나러 간다면서 정장하고 콜택시 불러서 나갔다가오고...또 조만간에 나하고같이 독일에 CEO교육을 받으러 가야 되니까 . 우리늦둥이 학교등교는 어떻게 시킬 꺼냐며 빨리 나의 아내로 하여금 운전면허를 따라고 득달같이 채근하였고

 

결국 이 사람의 말을 믿기 시작한 나는 이사람 이사온 이래로 장사에서 손을 떼게 되었고 그저 모아둔 물건들을 하나 둘씩 헐값에 처분 하여 2년 남짓 허송세월을 보내고 말았습니다.

 

또 자신의 조부가 일정때 강원도지사를 지낸 유명한 친일파 였다고 하며 자신이 상속받은 엄청난 재산(5남매의 장남이라고했음)등은 그 할애비가 가렴주구로 긁어모은 거라고도 했네요.

 

삼척고향에 수십만평의 산이 잇는데 , 바다를 바라보고있는 명당자리라고 하였으며 거기에다가 재테프(중장비밋션을 만드는 세계적인독일계회사)코리아 삼척지점을 지어야 되겠다며 도지사를 만나러 간다고 쫙 빼서입고 콜택시를 불러서 하루종일 어딘가 가서는 어두워지면 돌아오기를 수십차례.. 나보고는 대표이사를 시켜 준다하데요. 그래서 사인도 대표이사에 걸맞는걸로 바꾸라 해서 바꿧다네요.

 

김씨가 우여곡절 끝에 70번지를 사서 집을 짓고 마각이 드러나고난 이후 이사람과 나의 관계는 지금까지도 소름끼치게 끔찍합니다. 이런저런 건강핑계를 대고 머리가 아프다는둥 어쩌고 하면서 내 접근을 막습니다. 대화라도 시도 하여 접근하면 112경찰신고를 한 것만 10여회.. 내 허실을 이**에게 알려서 밀고한게 10여회..

KBS제보자프로에나오는 그 미친 사이비목사와 다를바가 전혀 없습니다

현행법망만 피할 수 있다면, 자신의 이익에만 부합 할 수 있다면 이웃쯤은 그냥 짓밟아도 아무렇지않다는 타고난 냉혈한의 행태에 그 사이비목사가 클로즈업 됩니다.

그와 나는 이미 건널수 없는 강을 건넌 사이가 되었고 이미 죽을때까지 서로 미워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인 듯 합니다.

이사람 집짓고 4년이 넘는 동안에 그 부부가 우리집앞을 걸어서 지나간 횟수가 채 10번이 되지 않습니다. 그나마 최근 일년이상은 한번도 지나가지 못했습니다. 막다른 길이라 우리집을 지나지 않고는 다른 길이 없는데도... 이 사실 하나로 모든 것을 짐작 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나 가란다고 지나가고 가지 말란다고 안 지나가는 겁니까?

방송에는 정말 너무나도 핵심을 비켜 엉뚱하게 나왔더군요. 길이란 만인이 다니는 길입니다. 그 길 옆에 우리집이 있다고 못 지나 가는 건 말이 안되지요.

이건 분명히 뭔가가 있기 때문에 못 지나가는 거겠지요. 죄 짖고는 못 산다는 말이 생각 나네요.

또 이런 동업제안을 나한테만 한 게 아니라 내 지인인 박모씨 한테도 하였다는데 . 그 박씨의 부인이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목사안수를 받앗다는 걸 듣고는

박씨에게 말 하기를 김씨의 막강한 배경을 동원하여 대형교회를 건축해 주겠다고 했고, 김씨스스로도 재력이 꽤 되니까 적당한 투자처 있으면 언제든지 말 하라고 했답니다. 또 한밤중에 전화가 와서는 , 지금 강원도 군 부대에 탱크 몇 대를 고철처분 한다는데 빨리 가 보자고도 했답니다.

그런 교회 지을 돈 있으면 우리 동네 호담교회에다가 기부좀 하지? 그 교회 요새 그 목사가족들만 삐쭉하니 예배 보고 있다카던데..장관 몇놈 오라카고 국회의원 서너놈 낯짝 디밀면 그냥 부흥 할판인데....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말 하기를 왜 저런 뻔 한일에 속았냐고 들 하는데. 사기 안 당해 봤을때는 나도 그렇게 말 하고 다녔습니다. 저런 불량품한테 당했다는게 나로서는 아마 평생토록 깊은 트라우마로 남겠지요.

더구나 이 사람이 차라리 멀리나 가서 살면 좀 나을만도 한데 하필 우리 골짜기 다섯가구중의 한 사람인데는,... 어쨌던 차를 타고서라도 우리 집앞을 지나 다니쟎아요

우리집과 김불량품이 2013년도에 신축한 집과는 200미터 떨어져있고 길이 막힌 외길이라 우리집을 지나지 않고는 밖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고군분투!

정말 나의 삶을 묘사하기에 이토록 적합한 말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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