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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자를 제자로 부르시다

주품이 |2017.08.24 05:11
조회 67 |추천 0
주품이 큐티 ^ ^*
{마가복음 2:13 ~ 17}
[겸손한 자를 제자로 부르시다]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무리가 다 나아왔거늘 예수께서 저희를 가르치시니라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저에게 이르시되 나를 _으라 하시니 일어나 _으니라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저희가 많이 있어서 예수를 _음이러라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원어사전:
didavskw(1321, 디다스코)
가르치다 teach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a) 동사 디다스코(Homer 이래)는 '가르치다'와 '배우다'를 뜻하는 어근 다(스)(da[s])에서 유래했다. 그리고 이 단어에는 '받아들이기 위하여 반복해서 손을 뻗히다'를 뜻하는 어근을 포함하고 있으며, 따라서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것을 받아들이게 하다'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Leui?"(3018, 류이스)
레위 Levi(인)
류이스는 히브리어 레위(결합함)의 음역이며
3. 알패오의 아들, 세리.
눅 5:27 눅 5:29에서 레위라는 세리가 제자로 부름을 받고 예수님을 초대하여 큰 만찬을 베풀었다고 한다. 막 2:14에서 이 레위는 알패오의 아들이라고 하며, 그러므로 혹자는 그를 막 3:18의 야고보와 동일시하며, 또한 마 9:9의 마태라는 견해도 있다. 이 기사는 미움을 받던 세리들도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과 믿음은 신자의 위대성을 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신자에게 생명과 죄사함을 주시는 주님의 위대성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세리들은 자기의 수치스런 과거를 숨길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telwvnion(5058, 텔로니온)
세관 custom house, 세무서 tax office.
2. 신약성경의 용법
텔로니온은 신약성경에서 3회, 공관복음서에만 나타난다. 텔로니온은 예수님이 마태를 부르신 것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지나 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_으라 하시니 일어나 _으니라"(마 9:9 병행구, 막 2:14 눅 5:27). 그의 세관은 가버나움 입구에 위치해 있었던 것 같다. 가버나움에 있는 이 통행세 징수소(텔로니온)는 게네사렛 호수의 동쪽과 북쪽으로 통하는 해로와 또한 다메섹에서 지중해 연안으로 이어진 해로(마 4:15)와 주요 육로에 위치한 요지였다. 따라서 배나 마차로 실어나르는 모든 물건들에 세금이 부과되었을 것이다.

ajkolouqevw(190, 아콜루데오)
따르다, 뒤따르다.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동사 아콜루데오(Homer 이래)는 켈류도스(kevleuqo", 길)에서 유래했으며,
(a) 문자적 의미로 '함께 가다, 동반하다, 뒤따라 가다, 따라가다'이며,
(b) 비유적 의미로는 '(추세나 의견)을 따르다, 동의하다, 순응하다'를 의미한다.

aJmartwlov"(268, 하마르톨로스)
죄 있는 sinful, 죄인 sinner.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형용사 하마르톨로스(Aristoph. 이래)는 하마르타노(aJmartavnw, 264: 죄를 짓다)에서 유래했으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a) 하마르톨로스는 '맞히지 못하는' not hitting, '놓친' missing을 의미하며, 주로 두 가지 의미, 정신적이나 영적 생활의 영역에 한정되어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 단어는,
① 지적인 열등과 부족(보기로 불충분한 교육 때문에),
② 도덕적 결점과 실수(패)를 나타내는데 사용되었다.


# 본문에 예수님은 함께할 동역자를 부르십니다. 예수님도 복음을 전하고 이 복음을 받아 제자인 그도 전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 모으는 과정에는 보호와 위로라는 이유가 있습니다. V자로 이동하는 새들이 서로 끼룩 끼룩 외쳐 힘을 북돋으듯 큰힘이 됩니다. 더 멀리 날아 갈 수 있습니다. 끝까지 목적지에 도착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함께하는 것은 더 많은 시너지 효과와 파워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 동역에 시너지가 되는지 그 시너지의 동력을 파괴하는 지 그것은 그 사람의 겸손에 달려 있습니다.

성도와 교회의 연합은 서로에게 보호와 위로와 또 다른 전도자를 낳습니다. 마침내 주님께 이를 수 있는 강하고 힘이 있는 배를 탄거와 같습니다. 장거리에 혼자 젓는 땟목보다는 대형군함을 타고 감이 편하고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으며 더욱 안전과 기쁨과 즐거움이 있으며 목표에 도달할 확률이 훨씬 높아집니다. 혼자 믿는 거 좋습니다. 하지만 같이 믿는 것이 더 좋습니다.

주님은 그 제자를 부르실 때 겸손하다면 아무런 제약을 두지 않으십니다. 일본 앞잡이 같이 로마의 앞잡이인 당시의 세리를 부르십니다. 그는 세리 중에서도 겸손한 애통해하는 자이기 때문에 부름을 받습니다. 주님은 그 사람의 마음 중심을 보십니다. ‘나 같은 것을 부르시니 주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세리의 외침인 것입니다. 어부 베드로도, ‘나는 죄인입니다 떠나소서’ 하지만 그런 가난한 자의 겸손과 변화를 아시기에 주님은 쓰십니다.

그러나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에 예수님의 제자가 없는 것은 그들이 씌여지면 얼마나 예수님을 사사건건 예수님을 말과 마음 속으로 지적하여 근심의 여정을 하게 하실지 상상이 안갈 정도입니다. 교만한 자는 예수님을 훼방하고 대적할 뿐입니다.
회사에 들어온 교만한 자는 회사를 파괴합니다. 가정에 들어온 교만한 자는 가정을 파괴 합니다. 교회에 들어온 이단은 교회를 파괴 합니다. 그래서 회사는 철저히 분류하여 신입사원을 고용하고 가정은 철저히 기도하여 새로운 배우자를 맞이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단을 깊이 연구하고 분류하여 내쫓습니다.

또한 교만한 자는 겸손한 자의 무리에 들기도 두려워 하고 꺼려 합니다. 그들이 주님의 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혀 뭔가 맞지가 않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동역자를 위해 다시 사람을 모으시고 가르치시고 제자 삼기 위해 레위를 만나시고 제자들을 찾으시나 바리새인은 예수님의 겸손의 정서와 맞지 않아 주님도 그들을 제자 삼지 않으시고 그들도 주님의 제자가 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뼛속까지 긷든 교만의 악 때문입니다.

또 주님과 유대인의 차이는 주님은 죄인을 겸손한 가운데 양육하여 새롭게 하여 쓰시는 분이시고 유대인은 죄인을 만나면 그 사람의 외적 배경을 보고 아예 가까이 가지도 양육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변화되는 미래를 보나 유대인은 눈앞에 그 사람의 외적 모습을 보는 근시안적 시각을 가집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의 미래를 보며 그 사람을 위한 희생과 헌신을 염두 하시지만 교만하고 게으른 자는 바로 눈 앞의 안위함만을 바라보며 이용가치가 있는 사람만을 선택합니다. 조건만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 합니다.

죄인과 지나가는 걸인을 보면 겸손한 자는 그 사람의 미래의 나음을 보며 구제하고 기도하고 친절히 대하지만 교만한 자는 그 사람의 현재 모습만 보며 비판하고 현재 이용가치가 없으므로 버리고 무시하고 멀리 합니다. 사실은 후자는 모든 인간들의 본성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받은 자만이 이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런 교만한 본성을 우리는 버리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겠습니다.

또한 선택 받지 않은 자는 주님의 은혜로 그들을 부를 지라도 그는 오지 않습니다. 교회로 와 라 할 때 지체하지 말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부르시면 우리의 모든 악과 교만을 버리고 주님께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변화될 DNA를 갖춘 은혜를 받은 자는 같은 양들끼리 모이듯 같은 겸손한 자의 모임에 들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뼛속까지 교만한 자는 어울리지 않기에 겸손한 자의 모임에 들 수 없습니다.

어느 공동체이든 죄인은 많습니다. 그렇다고 그들과 완전 벽을 두고는 살 수 없습니다. 언제나 변화 되어 주님의 큰 제자로 쓰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들과 거리를 둬선 안됩니다. 누구든 주님이 오시기 전까지 기회는 주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 진정 변화되는 사람이 누구인지 우리 주님만이 아실 뿐입니다. 변화될 자는 주님이 가까이 하시고 그도 주님의 양이기에 주님께 다가오게 됩니다.

그 가난한 심령을 가진자 레위같이 실수 많은 자라도 하나님의 궁휼을 주기를 원하는 그 한 제자로서 우리도 주님 앞에 부름 받기를 원합니다. 우리도 죄가 많고 실수가 많습니다. 우리의 모습은 마치 공사중입니다. 그 수리는 평생을 다하다가 주님 오시는 날 완성이 됩니다. 두렴없이 주님 앞에 나아가십시다. 시험 중에 주님 능히 피할 길을 주님 주셔서 마침내 승리 하도록 우리 하나님 도우실 것입니다.

우리도 양육되고 제자되어 더 나아가 또 다른 제자를 주님 앞에 삼을 수 있는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시는 열매 맺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어 지시기를 우리 모두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아멘!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연약한 이를 들어 연단하여 사용하시는 위대하신 우리 주님을 찬양 합니다. 우리 삶의 크고 작은 뱡향이 주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데로 합력할 수 있는 선한 일들로 작은 부분까지 모두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 뜻에 불순종하여 멀어져 짐이 더 커지는 삶이 아닌 모든 불순종을 버리고 주님과 더욱 함께하는 제자도의 길을 가게 하소서 많은 세상의 시험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대통령이라도 한순간에 망하는 위험천만의 세상입니다. 아무리 높아져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세상입니다. 그러기에 세상보다 크신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한 순간에 망합니다. 겸손과 온유함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옵시고 세상의 이리와 사나운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보호하여 주옵소서 간절히 소원합니다. 정말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겸손한 제자를 보내 주셔서 소원의 항구에 힘 있게 동역할 수 있는 전도할 주님의 겸손한 제자들을 보내주옵소서 주님의 세력이 우리를 통해 확장되어 흥왕하게 하여 주옵소서 남북관계도 평화속에 번영과 복음통일의 길을 주옵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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