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지금껏 살아온 날들 중의 3분의2를 오롯한 고통 속에서 보냈습니다.
그 고통과 잊으려 노력한 기억들에서 나온 갖가지 감정들의 잔여물들 속에서 또 다시 1년씩 1년씩 하루하루 아무 생각없이 버티고 버텨 시간을 보내고있습니다. 유치원 다닐적 어린시절부터 떠올리면 아음 아픈 어머니의 시집살이 속에서 함께 묶여 눈칫밥을 먹고 살았어요. 이제 막 타인을 배려하고 입장을 생각하기 시작한 7살에 일찍이 등록한 초등학교 입학식날 부터 내 어머니는 불쌍하고 아픈 사람이었어요. 흔히들 보는 네이트 판의 결시친속의 흔한 주인공이셨습니다. 눈치없고 중재 할 줄 모르며 내자 편들줄 모르는 우유부단하고 능력없는데 오지랖만 넓은 남편에 엄마바라기 아들에 사고뭉치 딸을 둔 어머니는 남과는 확연히 다르고 별난 사고방식을 가져 툭하면 미아가 되고 툭하면 크게 다치거나 툭하면 장난치다 생사를 오가는 둥 사고를 쳐대는 딸을 수습하며 시댁의 구박 속에서 가족을 보듬으며 그리 살다 악성 말기 암 시한부 선고를 받으셨습니다. 종종 어른들께 애새끼 같지않은 징그러운 년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어머니를 옹호하고 가끔 위로하다 다시금 그 손으로 사고들을 몰고 다니며 어머니를 힘들게 했고 별난 덕분인지 어머니가 병원에서 시한부 선고를 받으신 그날 낮부터 이상한 예감에 새벽 2시경 잠들지 않고 옆방에서 잠못드는 부모의 대화를 뜬눈으로 엿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피아노 학원 레슨을 마치고 집으로 와 문갑을 뒤져 어머니의 병원 진단서를 읽고, 확인했습니다. 암이라고 적혀 있었고 나는 암이라는 병을 글자 그대로 이해했지만, 당시에는 불치병이며 살아날 가망이 없고 나의 엄마는 영원한 나의 슈퍼우먼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자본주의적 권력구도의 친가에서 지긋지긋할 만치 몸으로 겪은 가난을 조금씩 헤쳐나가던 화목한 가정은 순식간에 불모지에 내쳐진 난민마냥 내동댕이쳐졌습니다. 다니던 학원을 모두 끊었고 집을 팔고 시골로 이사를 했고, 어머니는 독한 항암주사와 방사선치료에 망가진 몸으로 한적한 시골에서 조용한 날들을 보내며 폭격처럼 쏟아지는 갖은 압박과 스트레스를 피해 피신하셨습니다. 악마같은 말을 내뱉는 승냥이같은 친지들을 피해 도망하였습니다. 우유부단하던 아버지가 그 순간은 철이들었는지 어머니를 공기좋고 물좋은곳에 피신시켜 밤낮으로 약초를 캐와 어머니를 돌보았고 틈틈이 공사판 막일로 입에 풀칠할 돈을 구하시며 어머니를 살려내고자 바둥댔습니다. 들여놓은 보험도 소용없어 맨땅을 파내 돈을 벌었습니다. 공부에는 관심없이 책을 읽고 읽고 읽다 못해 읽을 책이 없어 고민을 하던 나날을 보내며 같잖은 자부심을 가지고 우쭐대던 나는 어머니의 고민과 슬픔과 절망을 억만개의 조각들 중 단 하나도 공유하지않고 이해하지않고 받아들이지 않고 외면했습니다. 같잖은 변명하자면 우리 엄마는 슈퍼우먼이었으니까요. 공부도 잘하고 그림도 잘그리고 손재주도 좋고 여름방학 숙제는 엄마가 다 해줬어요. 공부안하고 사고치면 거꾸로 들고 회초리로 흠씬 두들겨 혼내던 엄마는 영원히 내 엄마였습니다. 사실은 노랗게 뜬 얼굴, 퉁퉁 붓던 몸 초점없는 눈, 생기없는 모습에서 다 느끼고 다 알고있었으면서. 9살에 6살 동생을 하원시키고 밥솥에 쌀밥을 짓고 동생 챙겨 먹이고 빨래를 하면서도, 누군가의 빈자리를 완벽히 알면서도 모른척하고 공부에서 해방된 자유를 누리며 광년처럼 쏘다녔고, 어느날 아주 갑자기 아바타 스티커를 모아 붙인 스프링 노트를 가지고 신이 나 놀다 퉁명스레 부르는 어른들 손에 차를타고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빨간 바지를 삼베치마로 갈아입고 계단을 올라 네모난 액자 안 긴 머리의 어머니를 보고서 깨달았습니다. 죽어가는 순간도 못지켜드렸고, 아픈틈을 타 쏘다니던 것 들켜 또 어른들께 다 죽어가는 사람 쓴소리듣게 만들었고, 부은다리 주무르는것 팔아프고 힘들다고 면전에서 건성대며 불퉁거렸고, 그리고 어머니는 죽었고. 다시는 못만난다는 것. 그렇게 엄마는 떠났고 나는 3일장 내내 철없어도 저리까정 없을 순 없는 쥐어 패 죽이고픈 망할년으로 장례를 끝냈습니다. 부려먹던 세월 미운정이 죽으니 터져나온건지 다들 그렇게 울어댔는데 나는 눈물이 안났어요. 액자 속의 엄마를 보고 한 10분 한창울다 야단을 맞고서는 눈물이 쏙 들어갔습니다. 제 엄마 죽어졌는데 눈물 한 방울 안흘리는 년이란 소리를 들어가며 장례를 끝냈습니다. 나는 천하의 __이었습니다. 어째서 그랬는지 지금도 몰라요. 시집살이 매섭게 치르고 오는날이면 엄마 손 꼭 잡고 위로하던 9살 어린 효녀는 어디갔는지 몇년 사이 머리털끝 하나 안보이고 사라졌습니다. 그러고서 집안의 홀아비를 둘 수 없다, 젊은 놈이 애가 둘인데 혼자 못 둔다는 핑계로 중매를 놓아 새어머니가 오시고, 생지옥이 시작됐습니다. 하루하루 피가 말랐습니다. 동이트고 해가 뜨는 아침이 죽기보다 싫었고 냉랭한 식탁이 숨이 막혔습니다. 집에 가기 싫어 죽어라 학교에 남아 시간을 보내고자 거짓말을 해댓습니다. 가족에게 왕따를 당했습니다. 왜인지는 지금도 몰라요. 제법 관계를 회복한 지금도 집안에서는 금기라 묻지도 못했습니다. 학교에서도 말 수 없어 친구가 없는데 돈이 백원도 없어 친구와 주전부리 한번 못하고 친밀한 대화한번 제대로 못한채 학교를 다니는데 집에 가면 더욱이 냉한기운만 저를 반겨주었습니다. 내게는 마지막인 따듯해야 할 보금자리가 되려 서릿발 날리는 전쟁터였습니다. 지겹고 또 지겨웠습니다. 죽지못해 살았고 더럽게 가늘고 썩어빠진 희망 한줄기로 연명했습니다. 어머니 그리보낸 죗값인가 생각하며 6년을 그리 살다보니 남들이 울거나 웃으면 이해하질 못했고 그 어떤 슬프고 우스운 영화를 봐도 같잖았고 무섭게 부정적인 시선으로만 관망하기 시작해 각종 자살, 고문, 고어, 흉악범죄등에 빠져들며 사이코패스와 필적할 만한 사고방식을 내돌리다 고3 졸업을 코 앞에 두고 뛰쳐나왔습니다. 억눌렀던 감정의 자유를 만끽하길 바랏지만 이미 어딘가 나는 망가져있었습니다. 날카로운 것을 보면 살을 내리긋고픈 충동에 주저하지 않고 응했습니다. 이제는 감시할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그어내린 흉한 손목은, 쥐어뜯고 내려앉은 딱쟁이도 재차뜯어 수두자국 아니냐는 소릴듣는 팔뚝은 소름끼치고 흉살스럽게도 남들의 관심에 목메어 매달리고, 나는 죽어라 그것들을 뜯어 발겨 감추어 댔습니다. 내 모습이 눈물도 비웃거리낄만치 추악하고 우울했어요.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고 절대로 들키진 말아야한디는 생각이 공존하고 철없는 모르는 이들에게 내가 이리 힘들었다 훈장으로 내보이고. 추했습니다. 돈이없어 대학은 포기하고 일찌기 뛰어든 일선에서 벌은 돈은 친구들과의 술값으로, 싸구려 유행하는 보세 도떼기 시장 옷값으로, 싸구려 시전 악세사리값으로 써댔습니다. 결국 흐지부지 쓴 돈들은 씀씀이가 잦아져 빚이되고 빚이 커져 대부대출로 2300만원 가량 빚을 만들었으며 지금도 갚고있습니다. 1700만원이 남았네요. 써재낄거면 큼직 큼직 좋은것들 사다 쓰지 버릇들어 가격표에 집착했더니 남는건 싸구려 잡기들과 유행지난 옷과 악세사리들이네요. 2300만원 쓰면서도 브랜드 메이커하나 사지않고 여행도 간적이 없고 저 돈들은 다 어디갔을까. 저 돈으로 차라리 대학이나 학원을 갈 것을. 한도가 안돼 힘들었겠지만 이 악물고 평일주말야간 알바하며 다니는 페이스북의 누구들처럼 해볼 것을.
하고싶었던 디자인 공부라도 학원다니며 마음껏 해볼 것을. 재능이 있다, 가능성이 있다 말해주던 사람들 코웃음치며 나 같은 알량한 재능은 길가에 깔리고 넘치는데 돈잡아먹는다 비웃지말고 원없이 덤벼 볼 것을. 누구를 탓 할 거나, 미련하고 아집어려 멍청떨던 내 행동의 결과인데.
술은 끊어도 담배는 죽어도 못놔서 몸뚱어리 병신같이 만들어놓고 그래도 못놔서 몸뚱어리 탓하고 앉아서 궁상떨며 몇 십년 피운 아저씨들도 건강한데라고 변명하고. 더러워라, 추접어라. 그걸 말이라고 지껄이고 앉았니, 병신같은 년아.
그래도, 응원해주고 힘내라고 할 수있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누군가 너는 할 수있다고 말해주고 떠밀어 주었다면 어땠을까, 오물같은 내 행동의 결과물에 절망하면서 늦었다고, 너무 늦었다고 악다구니쓰며 발광하는 나를 동정하고자 변명삼아 지껄여 봅니다. 분명히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쓴다면 내가 누군지 알아채고 머리채잡으려 달려들 인사들이 한 둘이 아닌지라 함부로 그간의 일을 적을 수가 없네요. 내 생일에 걸려온 의절한 누군가의 전화 한통도, 그 전화가 날 또 절망하게 한것도, 어린날 아동성도착증변태는 또 어찌 꼬이던지 11살 꼬맹이를 놀이터에서 침 질질흘리며 입을 부비고 더듬고 만져대던 할아버지도, 12살에 군대에서 휴가받아 집으로 놀러온 친척 삼촌이 밤새 더듬고 찌르고 주물대던 것도. 고2 방학식날 내 가슴에 얼굴묻고 좋다고 볼이 발개지던 선생님도. 스무살에 싸고 나면 그만인 ___ 취급하던 남자친구였던 남자도. 헤어지자하니 몇달을 잘못했다 쫒아다녔지만 정말 후회해서 일까. 나에게 문제가 있는게 아닌가 내가 뭔가 이상한게 아닐까. 남들은 평생 두번 보기 힘들다는 스토커에 1년에 너댓번은 마주친 어둔데 숨어들어 훔쳐보며 헉헉대던 변태들도. 타지역으로 이사하고선 이제 겪지않는 일이 되어 다행이지만 그 기억들이 어제일 처럼 선명한데.
내가 적어 놓고 봐도, 겨우 이것만큼만 적어놔도 소설같고 거짓말같은데 이걸 보는 당신들은 믿어줄까요.
겨우, 겨우 이것들 뿐인데도.
아직도 기억해요. 속내 터놨던 누군가 뒤에서 흘리던 말을. 감성팔이에 훈계질하는 헤픈여자라고 떠들던거, 그만좀 감성팔이 했음 좋겠다고.
그래서 입닫았어. 조용히 다물었어. 종년 취급하는 공주님행세에 나도 지쳐서, 친구로 안보여서 그래서 그만뒀어, 친구.
들어놓은 보험이 엊그제 날짜로 2년이 되었습니다.
또 숭한 마음이 들려해요, 살아나갈 앞이 무서워서 깜깜해서. 매주 병원신세지는 아작난 몸뚱아리에 12시간짜리 업무시간에 적은 월급으로 매달 감당하기 힘든 이자와 월세, 생활비, 약해 빠진 정신상태. 누구는 그래요, 이렇게 말해줬어요. 니 정신상태가 약아빠지고 약해빠졌다고. 하루 서너시간 자고 악착같이 일해서 빚갚고 하고픈거 하면된다고. 하던 일 한지가 7년이 되어가고 이 경력 포기하고 또 다시 빚내가며 맥아리없는 돈잡아먹는 몸뚱이 끌고 악착같이 배워서 나 하나 거뜬히 먹고 살만치 벌어 집도 사고 당당해질 수 있을까. 내게 성공은 돈인데, 무시하던 것들 잡아누르려면 돈인데. 지금 뛰어들어 성공할 수 있을까.
그냥, 넋두리 할데가 필요했어요. 누가 날 봐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자꾸 나쁜 마음이 들어서, 된장녀같은 망상으로 자위하는 삶이 너무 지쳐서 지난날 찌꺼기가 또 내 발목을 잡아서, 내 머릿속에 들어 앉아 나오지를 않아서 그래서 끄적였어요. 읽다 불편하면 안되니까 맞춤법은 지켜야지 고치고 고치면서 횡설수설 문맥 안 맞는 더러운 말들을, 냄새나는 본심을.
끝까지 읽어준 분들 미안해요 이런거 읽게해서. 뭔가하고 봤는데 이렇게 더러워서 미안해요 너무 미안해요 너무 힘들어서 그랬어요 미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