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년생 96학번 입니다.
나혼자 산다를 보다가 진짜 77년생을 모르는 건가 싶기도 하고.
나도 이제 늙었구나 싶기도 하고 참 많이 변하긴 했구나 생각이 들어서.
77년생 전현무 소학교 다니던 시절 그때 그 시절 이야기 좀 풀어보렵니다.
국민학교.
소학교 아니고 국민학교 다녔습니다.
초등이란 말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학교만 국민학교고 초등이란 말은 지금처럼 똑같이 초,중,고 초등교육, 교회 초등부, 다 똑같은데 딱 학교만 국민학교라 불렀습니다.
실은 국민학생때 저도 이상하다 생각했습니다.
보통 한학급에 60명 이내였구. 한 학년에 12~15반 정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1학년때는 오전반, 오후반으로 1학급을 두반이 같이 썼습니다.
관악구청(서울대입구역) 맞은편에 살았는데, 인헌국민학교(낙성대역) 배정 받았습니다.
무슨 산골소녀도 아니고 초1이 정말 멀고 먼 거리를 하염없이 걸어 등교했습니다.
다행이 2학년때 야산이던 관악구청뒤에 청룡국민학교가 개교해서 인헌반띵 원당반띵해서 옮겨줬습니다.
요즘은 그 야산이던 곳이 핫플레이스가 되어서 샤로수 길인가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처음 인헌국민학교 입학했을 때, 화장실은 푸세식이였고. 학교 건물밖에 따로 있어서 항상 화장실 참는게 너무 힘들었어요.
학생운동이 잦아서 해질무렵은 늘 최루탄 냄새가 가득했어요.
국민학교 4학년때 처음으로 대통령 직접선거를 했고, 5학년때는 88올림픽을 했습니다.
박남정의 '널 그리며' 코춤, 이상우의 그녀를 만나는 곳 100m전 피노키오 댄스는 안춰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 춰본 사람은 없었지요.
지금처럼 국딩때부터 학원도 여러군데 다녔습니다.
영,수학원은 6학년때부터 다녔고, 과외도 했습니다.
그 당시는 과외가 불법이라 걸리면 큰일났습니다.
급식
급식의 1자도 모름. 한번도 먹어 본적 없습니다.
난로에 도시락 올려놓고 하지 않았냐 하지만, 저희때는 보온도시락이 있었습니다.
난로 위에는 주전자만 가능했고, 간혹 난로 보호막이라고 해야하나? 너무 가깝게 오지 못하게 스댕다이라고 해야하나? 스테인레스 틀이 있었는데, 보온 도시락이 아닐경우 거기에 올려놓기는 했습니다.
아침이면 주번이 정해진 양의 조개탄을 배급 받아오는데, 완급조절해서 적당한 시간에 하교시까지 소진하는 것이 관건 이였습니다. 초반 러시 들어가서 오후에 꺼지면 얄짤없이 달달떨며 있어야 합니다.
간혹 수위아저씨와 친분이 돈독한 친구들은 더 받아오기도 했지만, 정해진 양이 있기 때문에 쉽지는 않았습니다.
체벌
거의 모든 선생님들이 체벌용 막대기를 갖고 다니셨습니다.
전 성적 중상위권의 지극히 평범한 학생이였음에도 제법 많이 맞았습니다,
특히 체벌 연죄제가 있었기 때문에 가만히 있다가도 맞는 일이 많았습니다,
1분단 왜 떠들어? 1분단 다나와. 그리고 맞고.
너희 왜이리 소란해. 다 책상위로 올라가서 의자들고 있어.
선생님은 저마다 체벌특징이 있었습니다.
어떤분은 따귀, 어떤분은 종아리. 어떤분은 자세워서 손바닥 때리기, 어떤분은 출석부 세워서 머리찍기.
때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것도 60명 전체를 때린다고 하면요.
보통 스킬이 아니죠. 보기엔 손목만 까딱까딱 톡톡 때리는 것 같아보여도.
맞아보면 순간파워가 장난 아닙니다. 종아리 허벅지 맞는 즉시 핏줄이 터지고 피멍이 듭니다.
선생님의 체벌은 당연한 것이였기 때문에 아이가 그렇게 온몸에 피멍이 들어도 부모는 니가 잘못한거라 하였습니다.
기억에 남는 체벌로는 출석부 세워서 머리를 막 찍었던 것.
폐품, 우리때는 폐품을 자주 냈는데, 폐품에 있는 잡지를 보는데(여성동아였던 걸로) 순간 어디서 나타나셨는지 학생부 선생님이 풀스윙으로 따귀를 때렸던 것.
체육복은 학교앞 문방구에서 팔았는데. 여름체육복이 하늘색 반바지에 하늘색 카라가 있는 흰티였고, 그냥 아무 무늬 없는 흰티도 입곤 했는데 어느날 체육선생님이 사제 티셔츠를 일괄 다 잡음.
특히 나한테는 목이 많이 파인것 같다며 가슴이 보이나 숙여보라고 하심. (남자 선생님)
그 정도로 파인 옷이 아니였는데 자꾸 확 숙여보라고 시키는데.
그 정도로 숙이면 폴라티 아닌 이상 안보일 수가 없음.
계속 숙여보라 했는데, 이 악물고 그냥 쳐다만 봄.
운동장에 체육하는 반들을 모두 집합시켜서 사제 옷중 맘에 안드는 몇몇 친구들을 앞에 세움.
특히 이 악물고 대꾸 안하는 내가 맘에 안드셨는지 대표로 맞으라고 하심.(참고로 중2였음)
엎드려 뻗쳐서 각목으로 맞음. 몇대 정해놓고 때린건 아니였음.
나는 이 정도로 잘못했다 생각하지 않아서 이 악물고 참음, 그게 더 성질을 돋우게 한 것 같음.
계속 맞다가 순간 한쪽 팔이 꺽였는데 그제서야 각목을 멀리 던지고 끝내심.
그때 딱 드는 생각이. '아....ㅆㅍ 더 빨리 꺽을 껄.'ㅋㅋㅋ
아, 그 체육선생님한테 앞머리 스프레이 걸려서 머리 전체가 흠뻑 젖도록 에프킬라질 당한적도 있음.
교복.
절대 말죽거리 잔혹사 교복 아닙니다.
지금이랑 똑같은 교복입니다.
저희때 다시 교복을 입기 시작했습니다.
타 학교는 1학년 부터 입었는데, 우리는 2학년도 입게 되서 중2에 교복을 입게 되었습니다.
한학년 전체가 교복을 입게 되면 교장 선생님 차가 달라진다. 같은 소문이 있었으나 확실한건 모르겠습니다.
중학교때는 열심히 허리를 두번씩 말아 입었고, 고등학교 때는 힙합스타일이 뜨면서 오히려 길게 입었습니다.
교복을 입기 시작하면서 귀밑2cm 단발령이 떨어졌는데, 단발은 정망이지 세상 관리가 어렵습니다.
그때는 머리가 뻗치는 걸 세상 촌스럽다 생각해서 아침마다 안으로 겁나 마느라 바빴습니다.
수학능력시험
수능2세대 인데, 처음 수능은 2번 보고 더 좋은 점수가 반영되는 식이였나...해서.
그냥마냥 수능날 학교 안가는 것이 좋았습니다. 200점이 만점이였습니다.
IMF
96학번 3년제 나와서 직격탄 맞았습니다.
유류비 급등으로 항공권 값이 너무 올라 졸업여행은 제주도가 아닌 동해로 갔습니다.
아, 병원에 갈 때는 꼭 의료보험증을 지참해야 했습니다.
보험료를 납부하면 보험증에 도장을 찍어주는데, 마치 일수장부 도장처럼.
보험료 납부 도장을 확인받아야 보험 진료가 가능했습니다.
저희는 남매 2명이라 몰랐는데, 산아제한 정책으로 3째는 의료보험 적용이 안되었습니다.
의약분업 전이라 약국에서 임의조제가 가능하여 증상을 말하면 약국에서 약사님이 알아서 조제해 주셨습니다. 항생제도 일반 구입이 가능해서 약국에서 "마이신 좀 주세요."하면 바로 구매 가능했습니다.
약은 작은 색종이 같은 갱지에 한포한포 잘 접어 주셨습니다.
의약분업 전에는 이렇게 개인병원이 많지 않아서 한 동네에 한두 곳이 보통 메인으로 있었는데, 분업후 의보수가가 올라서 개원이 많아졌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20대 후반이면 나이 개많은 노처녀, 노총각이라 생각했는데.
점점 사람들이 젊어진다고 해야하나? 지금보니 20대 후반은 아직도 아가아가합니다.
예전엔 빨리 결혼하면 빨리한다 늦게 결혼하면 다 늙었다. 말이 많았지만 요즘은 딱히 결혼 적령기가 없어진 느낌입니다.
본인만 좋으면 20에도 50에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분들도 많습니다.
저도 서른 중반쯤 결혼해서 올해 아이가 학교에 입학합니다.
초등학교를 세상 1도 모르고 살았네요.
한학년이 120명이더군요. 학급배정은 2월에 홈페이지에 게시된답니다.
1학년도 급식을 먹고, 유기농 식품 무상급식이라네요.
교과명은 뭔가 싶고...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생활. 바른생활 세대는 이제 다시 초등학교를 알아갑니다.
주저리주저리 길어졌네요.
어떻게 마무리 해야 할런지...
끝. 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