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다, 많이 바뀌었구나?? 그 순수한 맘들이!!
밭에서 일하고 지나가는 생선 장수 세워놓고 고무신짝 끌고 온 순둥이네 아줌마
"아가씨 만원만 가져갈껴"
그땐 그랬다. 어느 집에 쌀이 몇말있는지 알고 있었다.
출금전표도 찾아가는 사람이 쓰지 않고 "아줌마 여긴 만원 찾아간다고 썼으니 여기다 손도장 꾹"
후훗 지금은 웃을 거다.자필이 아니라니.. 글자도 모르던 사람들 아니 믿었던 순박함
나쁜 맘먹고 고객의 돈을 꿀꺽하는 은행 직원도 있었지만..
대다수 많은 은행직원들은 새벽까지 그 많은 계정들과 주판을 위로 아래로 흔들면서 새하얀게 비치는 얇은 날개종이위에 총계정 원장을 볼펜으로만 써내려 가야 했다.
동전이 들어오는 날이면 동전판 흔들면서 손으로 세야 했다.
가계하는 분들 전화로 돌리던가 찾아가서 바꿔주는 준비성도 잃지 않았다.
동전 세는 기계 그땐 없었다. 손에 녹물이 물들어 비누로 씻어지지 않아 밥먹을때 눈치 보였지만,
모두 같이 동전을 차곡차곡 키데로 맞춰 금액계산하고 자루에 넣어야 하는 고된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전화요금 지역마다 틀리지만 23일날 정도 마감이지만 혹여 우리 동네에 못낸집 없나 하면서 전화국에 마감될때까지 버티고 버텨 마지막에 수납고지서 넘겼다.
환거래 업무가 들어올때는 십리도 마다하지 않고 고객의 편의부터 살폈는데..!!
그렇다 회계기 통장을 수기식으로 정리하지 않고 기계로 찍는 기계 ,손으로 통장 정리 안할 뿐이지 주판알 흔들며 계산하고 또하고,, 하루에 한번 꼭꼭 !!
입출금이 틀릴시 장부다 뒤집고 , 총계정 원장 누계 틀리면 전원 비상에 집에 못가고 남았다.
그러다 터미널 온라인 기계가 들어오고 온라인화를 위해 각 은행 번호부여 고객의 잔고 계수를 넣어 입력시키는 작업까지(초기 온라인 입력시 주민등록번호 안넣어도 통장개설되었슴) 날 밤을 세웠다.
수기식 통장을 가져오는 고객에겐 온라인 통장을 교환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고 실명제 도입때는 주민등록 번호 오류나면 픽,, 픾 하는 신호음도 지겨웠지만 고객에게 주민등록 번호 잘못되었으니 정정하셨야 된다고 입아프게 설명해야 했지만 늘 웃었다.
왜 선배들의 규율이 너무 강해 "맞는다"(나두 때린적있다)
대부계,증권 업무를 맞으면 발바리가 되면서 위에 눈치 보면서 같이 밥먹을때 선배 빨리 먹고 나갔으면 하는 바램으로 밥알을 세었다. (온라인이 안되어서 이자계산도 어려고 법률도 좔좔 꿰야 하던 시절,, 땅감정 나가면 그날은 살빠지는날)
온라인 되면서 이자 계산도 수기식이 아닌 기계다 다 해주고 인터넷 뱅킹에 발전을 했지만,,
이해가 안된다..
그 옛날 고객을 위해 십리길도 마다하지 않고 산길이라도 걸어서 예금 받으러 가던 그 시절 ,
마을 전체 김장 담글때 외근이라고 찍고 막걸리 한 사발 받어 공과금 받으러 왔다고 하면서 따근한 아랫목에 앉아 방바닥에 펼쳐있는 돼지고기 수육과 김치속을 먹으면서 수다를 떨던 그시절,
실 가끔 그 시절이 그립다.
추수걷이 할때는 민원이라고 낫들고 설치지만 일만 안만들면 된다.속셈은 집에서 담근 막걸리와 삭은 홍어 먹을려고 후배들을 밟고 외근 도장 찍고 나가 얼굴 벌겋게 취해 사무실에서 눈치 보여 근무 못하고 숙직실에 꽁 박혀 자던가 숙직실에 다른 아저씨가 점령하고 있으면 몰래 창고 들어가 밀가루 포대 넓직히 펴놓고 아무도 몰래 자던 그 시절 그립다.(창고에 갇혔던 기억도 있슴, 그리고 숙면을 방해하는 것은 생쥐)
그땐 그 시절엔 새벽을 꼬박 세우는 것은 기본이 었고 ,선후배 기강에 까치발 들고 눈치봐야 하는 것도(혼날때 주판으로 머리를 득득 !!),간혹 섬에 있는 지점은 푹풍우에 갇혀 나오지도 못하고 !!
모든 것이 편해진 이 시대.. 왜이리 편의만 따지고 삭막해 가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