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여름은 너무 더웠다.
요새와 달리 교실에 에어컨은 커녕 선풍기 조차 안달려 있던 시절이라, 우리에겐 방학만이 유일한 더위 탈출이었다.
그녀와 내가 나온 국민 학교는 집에서 25분정도 거리였다.
사실, 어른이 된 지금 그 학교를 찾아가 보면 10분정도의 짧은 거리지만, 국민학교 3년 어린 아이의 짧은 다리로는 빨리 걸어야 25분이었다.
애메한 거리다.
버스로는 두정거장 밖에 안됐지만, 걷기엔 빠듯한 거리였다.
그녀와 난 종종 걸어가기도 하고, 버스를 타기도 했다.
당시 그녀는 매일 아침 마왕에게서 왕복 버스비 명목으로 50원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 버스비를 제 목적대로 쓴 적은 거의 없었다.
어린 것이 삥땅의 제 맛을 일찌감치 깨우쳤던 것이다.
"경민아, 학교는 그냥 걸어가자."
"왜? 날두 더운데 버스타자."
"응, 요새 운동 부족이라서."
어이없다.
요새 애들도 아니고, 운동 부족이란 단어를 어디서 줏어 들었는지 원...
핑계한번 영악하게 댔다..
"엥? 알았어. 대신 집에 갈땐 버스타자."
"암..."
'응' 이란 단어가 아니었지만,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난, 그녀와 약속을 하며 등교했다.
"경민아!"
수업을 마치고 학교 교문을 막 나서니,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녀다.
문방구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야, 너 아직 안갔어? 니네 반 가니까, 너 집에 갔다길래 먼저 간줄 알았어."
"어? 어. 가자."
"야! 근데, 너 손에 그게 뭐냐?"
"또뽑기! 히히히... 이거 모양대로 먹구 다시 가져가면 아저씨가 하나 더 준다~! "
그녀는 뽑기를 공짜로 한번더 먹을 생각에 들떠서 마냥 좋아만 했다.
"임마! 그거 사기 아냐?"
"아냐. 바보!치! 거의 다 됐다. 히히히..."
"다 되긴 뭐가...??"
그녀는 나란 존재는 잃어버리고, 작은 바늘에 침을 묻혀가며 조심스럽게 뽑기 모양을 완성하고 있었다.
뚝.
그녀가 좋아하던 나비모양의 뽑기가 부러진 것이었다.
"헉!!"
"이~씨!! 너 때문이야. 거의 다 됐었는데."
"야, 빨랑 버스타고 가자."
"어... 그게..., 저, 경민아. 우리 걸어가자."
"왜또? 아침에 걸었잖어? 혹시...?"
"응, 미안. 뽑기 두번 했더니..."
50원을 날려서 결국 버스를 못타고 집에 걸어갔다.
87년 여름, 뽑기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인기있는 아이스바 깐돌이가 있었다.
난 그리 썩 좋아하던 종류가 아니라 무슨 맛이었는지 조차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초코 맛 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무튼, 그당시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었다.
그 깐돌이 덕분에 그녀는 어린 나이에 일찍부터 딜레마에 빠져 허우적 거리곤 했다.
수업이 끝나고 교문앞에 가보면, 그녀는 날 기다리며 주먹을 쥐었다가 피기를 열두번도 더 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손엔 50원 짜리 동전이 있었다.
아이스크림과 버스 사이에서 고민을 하고 있었던 거다.
"야! 뭐 생각하냐? 그만 하고 가자."
"깜짝이야! 언제왔어? 잠깐, 경민아."
"왜?"
"질문 있어."
"뭔데?"
"있지...나 계속 생각해 봤는데, 잘 모르겠어."
"왜 ?"
" 버스를 타고 집에가면 덜 덥고, 집도 빨리 갈거같아. 근데, 난 깐돌이 먹고싶거든. 깐돌이 먹고 걸어걸까? 아니면, 버스타고 갈까?"
참 신기하다.
시대가 꽤 변해도, 예나 지금이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있었다.
왜 아이스크림 값과 버스비는 비슷할까?
어느 한 쪽이 비싸면 가격차이가 많이나는 쪽으로 기울테니까, 훨씬 결정하기 쉬울 듯 했다.
하지만, 항상 비슷하게 오르거나 내렸던 것 같다.
"그게 질문이야?"
"어. 왜?"
"깐돌이 먹고 걸어가자."
"그래!"
그녀는 기쁜 듯이 씩 웃었다.
한동안 그녀는 그 작은 딜레마에 빠져서 여름 방학이 시작될 무렵 까지 고민은 계속됐다.
"경민아!"
"뭐야? 또야?"
"어. 깐돌이 먹을까? 걸어갈까?"
"야! 넌 왜 맨날 같은 고민하냐? 너 바보아냐?"
"이씨~!! 맨날 고민 된단 말야."
"그러면, 차라리 집에서 생각해오던가. 어휴, 답답해!"
"뭐? "
그녀는 침까지 꼴딱 꼴딱 삼키며 옆에 애들이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을 뚫어지게 쳐다 봤다.
그 추잡스러움이란.
보다 못한 내가 번번히 내 용돈을 희생시켜 그녀의 어이없는 고민을 정리해 주었다.
"야! 여기100원 있으니까, 그냥 깐돌이 먹고 버스타고 집에가자!"
"진짜? 와~!신난다^^"
깐돌이를 먹고 버스를 타던 그녀는 너무 행복해했다.
버스를 기다리며 그녀는 내게 말했다.
"경민아! 넌 어떤 사람이 젤 싫어?"
"글쎄? 거짓말 하는 사람??"
"난, 50원짜리 깐돌이 먹는데 옆에서 300원짜리 빵빠레 먹는 사람이 젤로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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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간 글을 못 올렸어요.
나름대로 사정있었지만^^;
용서해주시구요...
꽃송이님을 비롯하여 댓글 달아주시며 용기 주셔서 감사해요...
나태하고 게을러지지 않도록 채찍질 많이 해주세요...^^
오늘도 간신히 올려서 에피소드가 좀 짤렸네요.
지금 시각 새벽 2시10분.
쉬리릭~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덧니>> 아침에 수정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