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혹시 시간 괜찮으면 이야기나 한번 들어줄래?
chp. 1 모든게 새로운 스무살새로운 낭만이 시작되는 3월의 캠퍼스였다.대학동기였는데 난 본가가 학교 근처였고 그 애는 우리집이랑 같은 동네에서 자취를 했지
굉장히 이국적으로 생긴 친구였는데 스무살이라 풋풋하고 화장기 없는 그 얼굴이 마냥 좋았다.1학년때는 학교에서 시간표를 짜주니까 시간표가 같아서 늘 집까지 같이 걸어갔지
지금도 생각나는건 같이 걷는 그 시간이 굉장히 빨리 흘렀다는것늘 가방끈에 손을 올리고 걸었다는것 정도??
한번은 자취방 주방등이 나갔다고 해서 꼴에 남자라고 큰소리치며 전등을 갈아주러간적이 있었는데 아무런 티도 없이 이런것도 못하냐고 핀잔을 줬지만사실 여자방에 들어가본건 그때가 처음이라 심장이 엄청 쿵쾅거렸다.샴푸냄새 가득한 그 방에서 우린 자장면도 시켜먹고 과제도 했던것 같다.
chp. 2 가질수 없는 너정말 수수하게 생긴 그 친구는 여름방학 때 고향에 돌아가서는
살도 좀 빼고 화장도 배우고 앞머리도 길러서 넘기고 안경대신 렌즈를 끼고 치마도 입기 시작하더라고
절세가인이 된건 아니었지만 달라진 그녀의 주변엔 나 말고도 항상 사람이 많아졌고
내 정체성은 그냥 그애랑 약간 친한 애 정도가 되버림..
사실 그렇게 되기 전 그애와 같이 걷는 그 길에서부터 좋아하고 있었지만 친구라는 가면을 쓰고 복학생 선배와 사귀게 된 그애를 축하해줬다.그 후 나는 군대를 갔고 훈련병때 받은 편지 2통과 전역하면 꼭 보자는 미니홈피의 방명록이 전부였다.
chp. 3 가슴절절한 사랑은 아니었음을..전역 후 다시 돌아온 캠퍼스는 여전했지만 나는 더 이상 주인공은 아니더라고..복학신청을 한 후에야 그애가 자퇴한 걸 알았지만 궁금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기에나는 나대로 학교생활을 이어갔지. 물론 다른사람처럼 CC도 하면서 말이야
chp. 4 지금 알고있는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우연은 생각보다 늦게 찾아오더라.졸업을 1학기 남기고 취업준비를 위해 서울에 가있던 시절 모든게 낯설어 고향과 예전 20살때가 막 그립기 시작할 무렵 부산행 KTX를 기다리는데 누군가 다가와서 고개를 빼곰 내밀더라. 더욱 화려해지고 이뻐졌지만 한눈에 알아볼수 있는 그녀..
서울에서 방송쪽 아카데미를 다니고 있다는 그녀는 초라한 나와 다르게 세련되고 멋졌어무엇에 홀린듯 나는 기차를 타지 않았고 그녀가 지내고 있다는 강남으로 함께 가서 이름모를 선술집에 앉았습니다. 살아온 얘기, 만났던 사람 얘기 등을 하면서 웃고 울며 시간가는줄 모르고 술을 마셨고 연락처를 교환하고 자주 보자고 약속을 하며 마지막 잔을 기울이던 그녀가 술기운인지 뭔지 이렇게 말했어 "얼마 살지도 않았지만 스무살의 봄이 제일 좋았던거 같다"고아련한 첫사랑에게 뭔가 보상을 받는 듯한 기분이 들며 눈시울이 붉어지더라.
chp. 5 남자의 첫사랑이란..그 후로 걔를 다시 보진 못했어궁금한건 사실이었지만 그땐 살아가는게 우선이었기에..마지막 만남 후 벌써 9년이 지났고 그 사이 난 결혼을 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도 얻었지.무서운 마누라지만 세상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내 여자도 있고.
다만 그냥 그때 그 시절과 그시절의 내가 그립기는 하다. 세상을 잘 몰라 더없이 순수했던 그 시절..과거의 그녀와 나는 아직도 여전히 그 골목길을 함께 걷고 있을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