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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아재가 만든 뉴욕 피자

Nitro |2018.04.12 13:49
조회 64,432 |추천 366

 

뉴욕이 매력적인 도시로 손꼽히는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수많은 이민자들이 섞여 살면서 만들어내는 다양한 문화의 교류와 진화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단순히 장사를 하기 위해 그 나라 문화의 단편적인 부분만을 가져온 게 아니라, 이민자들이 뉴욕이라는 대도시에 녹아들면서 자연스럽게 생활의 일부분으로 자리잡은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피자와 쌀국수와 타코와 김치찌개와 초밥과 팔라펠 식당이 한 골목에 모여서 본토 수준의 음식을 파는 광경을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유일한 도시가 바로 뉴욕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각 나라의 고유한 문화가 뉴욕식으로 변화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하고, 그렇게 재탄생한 문화가 뉴욕 스타일이라는 이름을 달고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기도 합니다. 뉴욕 3부작이라는 타이틀 아래 예로 들었던 뉴욕 치즈 케이크나 뉴욕 베이글, 그리고 이번에 만드는 뉴욕 피자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지요. 

밀가루와 소금, 이스트, 물을 준비해서 도우를 만듭니다. 토핑은 토마토 소스와 모짜렐라, 페퍼로니의 심플한 조합으로 갑니다.


 

따뜻한 물에 이스트를 섞고 거품이 올라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밀가루+소금에 붓고 반죽기를 돌려서 반죽을 합니다.

만들면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진짜 뉴욕 피자는 뉴욕에서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뉴욕에서 피자 장사하던 사람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서 피자를 만들면 예전의 그 맛이 나질 않는데, 그 이유가 바로 뉴욕의 수돗물 때문이라나요. 뉴욕시의 상수도는 북쪽의 캣스킬 산에서 시작되는 수원지에서 물을 끌어오고 있는데, 이 물의 미네랄 함량이나 산성도가 피자 반죽을 하기에 딱 좋기 때문입니다 (Jacobson, 2017). 

그래서 몇몇 피자가게 주인들은 뉴욕의 수돗물을 공수해서 피자 반죽을 만든다고도 하지요. 얼핏 생각하면 그게 무슨 고생인가 싶지만, 또 달리 생각하면 피자 도우 한 판 반죽하는데 들어가는 물의 양이 그렇게 많지 않으니 커다란 통에 담아와서 두고두고 쓰면 홍보도 되고 나쁘지 않겠다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옆 동네인 뉴저지에 사는 입장에서 당장 뉴욕 수돗물을 떠 올 방법이 없으니 아쉬운대로 뉴저지 수돗물을 사용합니다.

도우 반죽이 끝나면 기름을 살짝 바르고 둥글게 모양을 잡아 한 시간 정도 발효시킵니다.


 

도우가 발효되는 동안 토마토 소스를 만듭니다.

올리브유를 두르고 다진 마늘을 볶다가 토마토 통조림을 붓고 으깨면서 졸여주면 끝입니다.

온갖 재료를 넣고 각종 향신료를 뿌리고 육수까지 퍼부어가며 만들던 다른 토마토 소스에 비하면 간단하다 못해 성의없을 정도라 좀 위화감이 들긴 하지만, 사실 이 정도만 되어도 어지간한 피자 가게보다 훨씬 더 정성이 들어간 토마토 소스입니다.

대다수의 가게들은 그냥 걸쭉한 퓨레 형태로 만들어진 통조림을 따서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니까요.


 

뉴욕 피자가 갖는 가장 큰 특징이라면 바로 그 어마어마한 크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집에 있는 피자 팬 중에서 가장 큰 것에 꽉 찰 정도의 크기로 도우를 펴 줍니다. 지름이 대략 14인치 (약 35cm) 정도인데 이보다 작으면 뉴욕 피자로 쳐주지도 않으니까요. 정통 이탈리안 피자는 한 판을 한 두사람이 나눠먹으면 딱 좋은 크기인 경우가 많은데 비해 뉴욕 피자는 한 조각이 일인분인 경우가 많습니다.

워낙 도우 크기가 크기 때문에 펼치면서 구멍이 뚫리지 않게 조심해야 할 정도입니다. 피자 전문가처럼 공중에 날려가며 반죽을 펴는건 꿈도 못 꿀 일이지요.


뉴욕 피자의 크기가 이렇게 어마무시하게 커진 사연은 뉴욕 최초의 피자가게인 롬바르디에서 비롯됩니다.

1905년, 미국 최초로 '피자 레스토랑'이라는 라이센스를 받은 롬바르디는 한 판에 5센트씩 받으며 피자를 판매합니다.

하지만 가난한 이민자들은 그 조차도 살 형편이 안되는 경우가 많았고, 한 손님이 그럴 바에는 한 조각씩 잘라서 팔라는 제안을 하지요. 그래서 피자 도우를 얇게 밀어서 크기를 넓히고 조각으로 잘라서 파는 뉴욕식 피자가 탄생하게 됩니다 (Rosen, 2017).   

그리고 이 크기는 미국 피자의 표준으로 자리잡게 되지요. 그래서 미국식 피자에 익숙해진 사람이 오리지널 이탈리안 피자를 처음 접하면 그 아담한 크기에 실망하기도 합니다.


 

비록 롬바르디가 뉴욕 피자의 기틀을 다지긴 했지만, 오늘날 판매하고 있는 롬바르디 피자는 전형적인 뉴욕식 피자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좀 있습니다. 토마토 소스나 생 모짜렐라 치즈, 바질의 토핑 조합이 마르게리타 피자를 그대로 이어받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간편함과 신속함을 추구하는 뉴욕 스타일은 피자 토핑마저도 점점 더 단순화시켰으니, 이제 뉴욕 피자라고 하면 깡통에서 뜯은 토마토 소스와 수분이 제거된 모짜렐라 치즈 토핑이 기본입니다.

베이직 피자, 혹은 치즈 피자라고 불리는 기본 메뉴에 바로 이 토핑이 올리갑니다. 간혹 모짜렐라 외에도 파마산 치즈와 체다 치즈가 올라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경우에는 트리플 치즈 피자 내지는 쓰리 치즈 피자라는 별도 메뉴로 판매되지요.

영화 "나홀로 집에 2"에서 주인공이 플라자 호텔 특실에 묵고 호화 리무진을 타면서 식사로 주문한 것이 바로 이 뉴욕 스타일의 치즈 피자이기도 합니다.


 

기본 피자만 먹기에는 왠지 너무 심심할 것 같아서 페퍼로니 토핑을 얹었습니다. 뉴욕 어느 지역이냐에 따라 선호하는 피자 토핑의 순위가 다 다른데, 페퍼로니는 지역을 막론하고 가장 인기가 많은 토핑입니다 (Kral & Pereira, 2016).

흔히들 이탈리아 소시지라고 착각을 하기도 하는데, 이탈리아의 살라미 소시지에서 유래된 것은 맞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탈리아 이민 2세 정도에 해당되는 미국 소시지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합니다. 정작 이탈리아에는 페퍼로니라는 이름의 소시지가 없거든요.

이탈리아어로 피망(peperoni)이라는 단어 중간에 p만 하나 더 넣어서 이름붙인 페퍼로니(pepperoni) 소시지는 곱게 간 고기에 각종 양념을 해서 짭짤하면서도 살짝 매콤한 맛이 도는 것이 특징입니다.


 

뉴욕 피자는 아주 뜨거운 화덕에 재빨리 구워내야 그 맛이 살아납니다. 그래서 피자 맛에 목숨거는 사람들은 집에 피자 스톤이라는 도구까지 구입해서 화덕 피자의 맛을 재현하곤 합니다. 돌이나 도자기로 만든 평평한 판인데, 오븐 속에 미리 넣어두고 뜨겁게 달군 다음 그 위에 피자를 올려 굽는데 사용됩니다. 

하지만 그 커다랗고 무거운 돌덩어리를 놓을 곳이 없는지라, 그냥 오븐을 최고 온도로 예열시켜서 10여분만에 구워서 완성합니다.


 

피자 프랜차이즈에서 흔히 보는 페퍼로니 피자와의 차이점이라면 소시지들이 오그라들면서 크기가 확 줄었다는 데 있습니다.

피자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페퍼로니 컵, 혹은 "뜨겁고 달콤한 기름으로 가득찬 성배(聖杯): A chalice of sweet, hot oil"라고 부르기도 하는 현상입니다.

고급 페퍼로니는 돼지 창자나 식용 콜라겐을 껍질로 사용하기 때문에 껍질 채로 썰어내는 반면,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저가형 페퍼로니는 비닐에 채워서 굳히기 때문에 썰기 전에 비닐을 벗겨내고 고기 부분만 사용합니다.

그래서 고급 페퍼로니는 고기와 껍질 부분의 수축률이 차이가 나면서 오그라들고, 그 속에 기름이 고이게 되지요.


 

뉴욕 피자치고는 작은 크기인지라 6조각으로 나눕니다. 한 조각이 일인분으로 딱 적당한 양이네요.

다른 피자들과는 다르게 크기는 크면서 두께는 얇고, 그러면서도 도우가 쫄깃하기 때문에 반으로 접어서 손에 들고 먹기 좋습니다. 

실제로 뉴욕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길거리에서 한 손에는 하얀 일회용 종이 접시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넓적한 치즈 피자를 접어 들고 먹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지요.

고소하면서 쫄깃한 도우 위로 토마토 소스, 뜨겁게 늘어지는 모짜렐라, 그리고 짭짤하고 바삭하게 구워진 페퍼로니가 전형적인 뉴욕 피자의 맛을 만들어 냅니다.


맛 자체만 놓고 보자면 솔직히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내는 고급스러운 피자 맛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뉴요커들에게 사랑받는, 뉴욕의 대표 음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재료로 커다랗게 만든 피자는 그야말로 서민들의 즐거움과 애환을 동시에 담고 있으니까요.

파티를 할 때나, 먹을 게 마땅치 않을 때나, 공원에서 산책하며 간단히 간식을 먹을 때나, 일 하던 중간에 잠시 쉬면서 배를 채울 때, 그 모든 경우에 있어서 가장 만만하고 친숙한 음식이 바로 피자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지하철 역에서 알루미늄 호일에 싸서 팔거나, 소풍 도시락으로 싸거나, 전국에 깔린 프랜차이즈 음식점에서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는 김밥과 비슷한 느낌일까요.

이런 소소한 면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심지어는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도 뉴욕 피자라는 이름의 피자 가게가 즐비한 것을 보면 뉴욕이라는 대도시가 갖는 문화적 영향력을 실감하게 되네요.


 

그리고 덤으로... 출판 제의가 많이 들어와서 시간 날 때마다 작업중인 출판 버전 ㅎㅎ

여유 있을 때마다 조금씩 작업하는 거라 언제쯤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르고, 

출판사에 투고할 것인지 텀블벅으로 진행할 것인지 아니면 중간에 아예 엎어질 것인지도 애매하지만 일단은 한 번 만들어 보는 중입니다. 

30대 아조씨가 요리하면서 썰 푸는게 과연 책으로 나올만한 건지는 의문이지만서도...

추천수366
반대수10
베플ㅇㅇ|2018.04.13 16:56
글이 술술읽혀서 책으로 출판되도 손색없으리라봐요 요즘 많은사람들이 요리에 관심도많은추세라..저도 책나오면 사서 보겠습니당 ㅎㅎㅎ
베플|2018.04.13 17:49
토핑으로 올리신 페퍼로니가 조금 탄것같네요. 저한테 버리세요.
베플ㅇㅇㅇ|2018.04.13 17:14
요리 하나하나에 기원과 여러 지식까지 얻을 수 있다니 너무너무 좋은 글이에요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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