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서른
이번생에 결혼은 커녕 연애도 접어야겠다
아니 이미 접었다
내 직업은 항해사
배를 타고 전세계 여기 저기...는 아니고
가까이 한중일 멀리는 동남아까지 간다
길면 3주 짧으면 1주에 한번씩 부산에 들어온다
그럼 뭐하나 당직이다 검사다 수리다
정신없이 지내다 보면 어느새 다시 출항
정말 저 멀리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가는 배
타는 동기들보단 낫긴하지
걔네들보다 낫다는거지
땅에 발 붙이고 사는 애들에 비하면 시궁창이긴 마찬가지
돈이야 그럭 저럭 번다
사람들이 아는 해운 회사라 해봐야 한진 현대 밖에 없는 판에
초임한테 최소 월 350씩 꽂아주는 업계가 어딨으랴
그리 받으면 뭐하나 월급 절반 이상이 가족한테 가는데
그놈에 집값 집값 빌어먹을 놈에 집값
어떻게 평생을 모아도 집 한채 살 돈을 못모을까
아부지는 뭔 영광을 보시겠다고
통영 촌구석에서 혈혈단신 서울로 상경하셨는지
그 돈이 아까운건 아니다
그간 고생하신거 속썩인거 생각하면 다 퍼드려도 모자라지
그런데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각이 안나온다
이 일하면 돈을 모으는게 아니라 돈이 쌓인다하지만
지금처럼 달에 30만원만 쓰고 죄다 적금에 쏟아부어도
10년 모아야 결혼식 비용이나 모을 수 있을까
결혼식 비용 걱정하기 전에 결혼 할 여자부터 걱정해야지
세상에 반은 여자니까
이 세상 어딘가에 나 좋다는 여자 하나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산지 어언 십년
하나 둘 청첩장이 날라오고 휴가 나갈 때 마다
꼭 한마디씩 내 결혼을 연애를 걱정하는 친구들
걱정만 하지 말고 소개팅이라도 물어오라고 썩을 놈들아
하긴 지들 코가 석잔데 누굴 신경 쓰랴
하긴 배타는 6달 기다려 꼴랑 휴가 때 두 달만 볼 수 있어
연락이라도 잘 되면 모를까
바다 한 가운데에 있을 땐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몰라
한달에 길어봐야 보름 연락 될까말까하는 남자를
요즘 세상에 누가 좋다고 만나 주겠어
평생을 현장 따라 지방으로 다니신 아부지 덕분에
덩달아 평생을 주말 부부로만 지낸 엄니 고생하는거
평생 보고 살았는데
내가 양심이 있으면 그럼 안되겠지 ㅎㅎㅎ...
요새 비혼이니 욜로니 뭐 많던데
그냥 혼자 독야청청하며 살아야지
달도 밝고 멍하니 바다 바라보고 있으니
아무것도 하기 싫다
정말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기 싫다 ㅎㅎ
왜 사나 몰라...인생에 낙이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