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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가 나보고 정신과 가보래

이혜란 |2018.04.29 14:01
조회 450 |추천 2

이 얘기를 왜했는지 설명하려면 좀 길어

읽기 싫다면 읽지 않아도 좋아

 

먼저 나는 노래 하는걸 좋아하고 꾸미는거 좋아하는 그때 당시 20대 초반이였어

일하는건 지루했고 흔히 말하는 배짱이 처럼 그냥 백수였거든

 

엄마는 혼자서 다큰 자식들 먹여 살리느라 바빳어

또 하나의 자식은 유학 보내달라 해서 그 힘든 생활에도 결국 유학을 갔지

 

나는 그냥 집이 싫었고 답답했고

배고프지도 않은데 밥짓는 소리가 들리고 청소하는 소리도 들려

좀더 자고싶은데 잘 수 없다는게 짜증났던것 같아

그런 엄마에게 짜증을 냈고

 

그 이후로도 내가 원하는게 되지 않으면 윽박지르고 날 좀 내버려 두라고 소리쳤어

그렇게 서울로 나는 집을 얻어 독립을 했지

청소, 빨래, 설거지, 음식

모든걸 혼자 해야 하는 생활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나 혼자만의 집이라는 생각이 좋았어

 

한달은 좋았는데 모든게 귀찮더라구 그저 옷장을 열어보면 향기로운 피죤냄세가 나는 옷들과

배고프지 않아도 맜있는 밥이 있는 다시 집으로 가고 싶었어

 

단지 그뿐이였던거 같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서울로 올라왔으니까

적어도 지방보단 서울이 돈벌수 있는 환경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어

예전에는 하고 싶은걸 위해 서울은 갔다면 이제는 돈을 벌러 서울에 왔다고

나 스스로 철들었다 생각했어

 

그러다 가끔 엄마가 보고 싶으면 지방으로 내려가곤 했지

서울에서 계속 일을 하다가 안좋은 루머는 순식간에 퍼지게 되서 결국

그만두게 됐고 이 사실을 엄마가 알면 엄마있는 집으로 가게 될까 무서웠어

 

그래서 휴가를 냈다고 거짓말 치고 지방으로 갔지

엄마는 알았을꺼야

무슨 휴가를 한달씩이나 주겠어

 

엄마는 이왕 내려온 김에 치료를 받자 했어

아참 나는 어릴때 크게 차사고가 나서 허리가 좋지 않았거든

뼈가 잘못붙어서 오래 앉아 있질 못했어

 

그게 엄마한테 마음이 걸렸나봐

그래서 집보다는 병원에서 자유로운게 좋으니까 알겠다고 했지

그 시기가 대략 13년도 인가 14년도 쯤 겨울이였을꺼야

 

병원밥 먹기 싫다고 그래서 인지

엄마는 음식을 해줬어

우리 엄마 음식은 진짜 맛있었거든

 

조미료는 몸에 안좋다고 조미료 안쓴다더니

몰래 주방에서 다시다를 넣던 엄마였어ㅎㅎ

 

한참 나는 병원에서 티비를 보고 있는데 엄마한테 전화가 오더라

울먹이는 소리로 울고 있는걸 들키지 않으려고 최대한 밝게 통화하는데 그게 다 들렸어

 

무슨일이냐고 화를 내며 물어봤어

엄마는 이렇게 말했어 우리 딸하고 맛있는 밥먹으러 딸 입원해 있는 병원 앞이라고

 

일단은 엄마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 들어보고자 옷을 갈아 입고 밖으로 나갔어

엄마 친구분들도 나와 있더라

 

친구분들 얼굴은 울었는지 눈이 부어있었어

식당가는길에 물어봤어

무슨일인지

 

소세포폐암이라고 하더라

초기라서 금방 나을거라고

처음엔 무서웠는데 지금은 괜찮다고

 

문득 이런 생각이 났어

집에 있을때 기침하면서 조금 피를 흘렷던 엄마 그런 엄마보고 난 이렇게 말했지

 

자꾸 담배피고 가래 뱉으니까 피가 나온다고

목에 염증있는거 아니냐고

 

별수롭지 않게 말했어 그때 생각이 나니까 미치겠더라

이혼한 아빠에게 전화 했더니

차라리 죽어버리라고 엄마에게 그렇게 말하래

 

아빠한테 수십년동안 맞아가면서도 자식 때문에 쉽게 이혼을 하지 못한 엄마였거든

물론 시간지나 이혼도 했고 지금은 아빠랑 인연을 끊었어

 

다시 그 시점에서 얘기하자면

밥이 넘어가지도 않았고 인터넷을 뒤져서 소세포폐암이 먼지 어떻게 하면 완치 될 수 있는지

검색하고 공부했어

 

누가보면 의대생인가 싶을 정도 였을거야

엄마는 괜찮다고 지인분 소개로 요양병원 갈거라고 거긴 치료도 해주고 다른 환자들하고

즐겁게 있고 싶다고

 

아프면서도 끝까지 자식한테 짐이 되기 싫었던 거지

나는 방법이 없었어 내가 엄마를 치료해줄 수 없으니까

엄마를 요양병원에 입원시키고

 

나는 서울로갔어

정말 돈을 벌기 위해서

 

(유학가 있는 내 핏줄 이야기는 안할게 이해해줘)

 

서울에 있으면서 조금이라도 돈을 벌기 시작했고 돈만 있으면 완치 될 줄 알았어

돈이면 못할게 없으니까

 

근데 한통의 전화를 받았지

병원으로 오라고 대학병원이였어

 

환자 본인 말고 보호자와 면담해야 한다고

덜컥 겁이 났지만 암 초기 환자는 치료가 잘받아서 완쾌할 확률이 많다고 들어서

최대한 긍정적으로 면담을 하러 갔어

 

의사 선생님은 어머니가 소세포폐암이고 흡연이나 다른 매체로 암에 걸린 경우다

이미 말기이기도 하고 소세포폐암 자체는 수술도 안되는 암이다

 잘 기억은 안나지만 엄마는 말기 환자이며 수술이 안되는 암이라는건 똑똑히 기억해

 

눈물이 안났는데 면담 끝나고 병원1층 구석에서 엄청울었어

엄마는 초기 라고 했는데..

 

대부분 말기 환자는 정신과 치료도 받는걸 처음 알았어

자실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살 가망이 높다고 희망을 주는거

 

나는 원래도 엄마와 통화를 자주했어

근데 의사선생님과 면담 이후 더 통화를 했고

 

좋은곳 맛있는곳 엄마랑 같이 했고

나는 더 돈을 벌러 가야했어

입원비, 병원약, 치료비 모든걸 엄마 부담주지 않으려고 했어

 

요양병원은 시설도 나쁘지 않았고

아줌마들의 친화력이 엄청나다 보니 엄마 친구분들도 많았고

배부르다며 치킨 한마리 다 먹는 엄마라서 계속 그렇게 건강한 모습처럼 지내달라 기도하면서

 

돈을 벌고 있었지 1년동안 서울에서 돈만 벌었던것 같아

1년동안 중간중간 엄마보러 지방으로 갔고 통화도 자주 했어

 

그러다 한통의 전화를 또 받았어

그때 당시 모르는 전화번호로 전화가 오면 무섭기까지 했어

암에 걸린거 초기가 아닌 말기였다는거 다 전화로 들었잖아

 

이번엔 먼지 더 나빠질게 있을까 걱정도 되면서 괜찮은척 전화를 받았고

여보세요 이 한마디로 더는 할말고 없었어

 

수화기 넘어로 이제 길게 살아야 2년이고 짧으면 1년

서울 직장을 그만두고 엄마 옆에 더 있기 위해 지방으로 내려와서

지냈어

 

모든 아줌마들의 헤어스탈이이였던 곱슬 머리는 머리카락 없는 대머리로 변했고

엄마는 나에게 그 모습 보여주기 창피했는지 뜨개질된 모자나 아님 털모자를 썼어

 

엄마는 항암치료 받는거 힘들지 않다고 암세포 줄었다고 웃으면서 말했고

암이 다 나으면 놀러가자고 그동안 못해줬던 맛있는 음식도 많이 해준다고 했어

 

그런 엄마보는게 힘들었어

그래서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척 일을 알아봤고 우울해할 시간조차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했어

 

전화 사이로 엄마 목소리는 너무 건강했거든

1년이 지나고 제 작년 추석때 엄마는 요양병원으로 오라고 너 좋아하는 음식 했다고

몸도 아프면서 뭐하러 음식하냐고 엄청 화를 냈고

 

엄마는 웃으면서 하나밖에 엄마 우리딸 위해서 못할게 뭐있냐고 와서 맛있게 먹으면

엄마는 괜찮다고 안힘들다고 내가 할 수 있는건 그거 맜있게 먹어주는거 밖에 없었어

 

시간이 더 지나고 엄마랑 같이 요양병원에 있는데 눈이 오더라

나는 눈이 오는게 너무 좋았거든 소리 없이 함박눈이 내리는거

 

엄마도 알아 집에 있을때 눈이오면 자고 있는 날 깨워서

딸 눈온다 너 좋아하는 함박눈 온다 이렇게 눈 오는 겨울이면 항상 그랬어

옆에 없으면 전화로 눈온다고 말해주 정도로

 

아무튼 병원에서 엄마랑 내리는 눈을 바라만 봤어

감기 걸리면 안되니까 병실 안에서 계속 보고 있었던것 같아

 

엄마는 아파도 암이여도 씩씩하게 지내오다 결국은 다시 대학병원에 입원했어

복수가 찼다나 이제 가망이 없데

 

또 하나 있는 자식은 자기가 돈을 벌테니 나보고 간병을 하래

기분이 나쁘진 않았어

저새끼도 엄마는 보러 오겠지

 

바쁘다는 핑계로 잘 오지도 않더라 외국 친구보러 다니고 엄마한테 돈달라 그러고

차 사달라하고 그래서 내가 그새끼 말을 하기 싫은거야

 

복수가 차있는 엄마는 한 일주일은 괜찮았던거 같아 배가 불렀지만 화장실 가거나

산책하는 정도는 괜찮았어

다만 빨리 숨이 차고 움직이려고 일어나는게 조금 버거운 정도였어

 

잠 잘 시간에 보조침대에 누워서 핸드폰 보고 있는데 엄마가 그러더라

우리딸이 옆에 있어서 너무 좋다고 하나밖에 없는 우리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이라고

세상에서 내가 제일 이쁘다고 나도 말했어 엄마가 내 엄마라서 너무 좋다고 

 

일주일이 지나자 거짓말 처럼 상태는 급격히 악화됬어

진짜 너무 힘들었어 24시간 동안 마취재 없이는 잠을 자지 않고 날 괴롭혔어

나가면 안된다는 의사의 말에도 나가고 싶다고 소리치고 이제 거동이 힘드니 소변줄 또는 기저귀

 

착용하라는 말에도 엄마는 버럭 화를 내면서 싫다고 고집 피웠거든

하지만 여자의 몸으로 엄마를 혼자 일으키고 화장실까지 부축하는게 너무 힘들었어

도와달라 그새끼 한테 말했지만 니 남친한테 도와달라 하라는 새끼였거든

 

결국엔 남자친구가 와서 도와줬어 너무 고마운 사람이지

엄마는 하루동안 터디다가 결국엔 소변줄과 기저귀 둘다 착용하고 밥을 재대로 먹지도 못했어

요플레를 좋아하는 엄마는 딸기맛으로 사오라고 해서 딸기로 사왔더니

엄청 흘리면서 먹어

 

갓난 아이처럼 턱받이에 잘 밪아 먹지 못하고 흘리면 얼른 물티슈로 끈적이지 않게 닦아주고

배변했는지 수시로 기저귀 체크 하고 그랬지

 

원래 엄마는 남의 도움을 싫어했고 혼자 하려는 성격이였어 고집도 엄청 났어 내가 그건 엄마를

닮았나봐

 

엄마는 매일 나가겠다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고 날좀 내버려 두라고 아프다고 큰소리 듣고 달려온

간호사들은 진정제와 수면제 주사 놓고 가버려 그럼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잠이 들지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었어 입원해 있는 동안 잠을 한숨도 재대로 잔적이 없으니 내 신경도

날카로워 졌거든

 

아침이면 의사선생님이 회진을 돌아 엄마는 새벽 6시부터 의사선생님을 기다려

언제오냐면서 빨리 안오냐고 10시 다되서 의사선생님이 왔는데 엄마가 그러다라

 

처음으로 엄마 입에서 의사선생님 나 좀 살려주세요 살고 싶어요 라고 뭐라고 더말한것 같은데

아무것도 안들렸어 그냥 그말 듣고 펑펑 울어버렸어

 

그리고 오후에 의사선생님이 나를 따로 불러냈어

이제 보내드려야 한다고 가망이 없다고

드라마에서만 봤지 실제로 내가 겪을 줄 몰랐어

 

그걸 이모들에게 말했고 그 이모들 중에서도 가장 엄마를 좋아했고

우리를 아꼈던 이모가 와서 엄마 간병을 했어

 

이모는 집에가서 좀 쉬라고 내 상태가 말이 아니였거든

나도 쉬고 싶었고

 

집에 도착해서 씻고 밥도 먹고 티비도 보고 그러다 잠을 잤어 그때가 여름이라 더워서

에어컨 켜고 정말 좋은 환경이였어

씻어서 상쾌했고 밥도 맛있었고 티비도 모든 채널이 재미있었어 에어컨 때문인지

바람은 솔솔 불었고

 

깊이 잠들었어 그러다 진동소리에 일어나 보니 부재중은 30통이 넘었어

설마설마 아니겠지 학교 빠지고 엄마한테 들켜서 혼나러 집에 갈때도 이렇게 두근거지린 않았어

 

그냥 머리속이 하얗게 됬고 전화 해보니 엄마는 돌아가셨데

새벽에 전화했는데 숨넘어가기 전에 딸 보고 싶다고 해서 이모가 전화했는데

나는 잠이 깊게 들었었거든..

 

안잤어야 했어 아직도 그때를 후회해

장례식장으로 가서 검은색 한복 같은걸 입고 엄마 영정사진을 봤어 갈대밭 사이에서 웃고 있는

우리엄마

 

서있을 힘도 없어서 사진 앞에서 주저 앉아 계속 울었어

아직도 믿기지도 않았어

그래서 더 슬퍼서 운것같아

3일이 지나고 엄마는 화장을 했어

 

그리고 예전 같이 살던 우리집 엄마의 물품을 정리하기 위해 집으로 갔어

돌아가신지 얼마나 됐다고 이제는 추억으로 기억에 남겨야 하는게 싫었어

배고프지도 않은데 주방에선 늘 도마소리, 물소리, 찌개 끓는 소리가 났고

씻고 오면 밥상엔 맛있는 밥이 있었어 입고 벗어논 옷들은 언제나

 

좋은 냄세로 가지런히 옷장에 있고 결벽증 같은 우리엄마 덕분에 집은 너무 깨끗했어

이제 집이든 아니든 엄마는 없다는 생각에 너무 울고 싶었는데

악착같이 참고 정리 했어

 

근데 참으면 안됐나봐

참다보니 죽고싶어졌어 나도 엄마따라 가고 싶었거든 나는 엄마 없으면 못살것 같았어

엄마 없이 할 수 있는것도 없고 든든한 내 편이던 엄마는 없으니까

 자살시도를 여러번 했어

 

약먹고 응급실도 가보고 손목도 그어봤고 죽겠다고 새벽에 칼을 꺼내서 목을 그어야지 했는데

너무 무서워서 그냥 울기만 했어

 

꺼져 있는 엄마 전화번호로 매일같이 답장을 보내

나도 엄마 따라가고 싶다고

그러다 이모한테 전화가 왔어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서 전화 했다고

그때 너무 힘들고 우울해서 이모한테 소리치면서 말했어

나 엄마보고 싶다고 못해준게 너무 많아서 미안하다고 죽고 싶다고

자살시도 여러번 했는데 차마 맨정신으로는 죽기 힘들고 버틸 수가 없다고

 

하루하루 술로 버티면서 살고 있다고

이모가 그건 엄마가 바라지 않는거래 엄마가 원하지 않고 엄마는 하늘나라에서

우리가 잘사는 모습을 보고싶을 거라고

 

그말 듣고 엄청 울면서 말했어 그럼 나 좀 살려달라고 살고 싶게 해달라고

그랬더니 이모가 말하더라 이모도 이모부 돌아가실때 어무 힘들어서 정신과 가봤다고

상담하다 보니 괜찮아 지더라고 물론 지금까지 가보진 않았어

 

상담 받으면서 괜찮아지기 싫었나봐

 

엄마는 암에 걸려놓고 아픈데도  김치는 직접 담궈야 한다고 마지막 김장한게 언제더라

3년 4년 정도 됐을거야

그 김치는 아직도 있어

 

찌개나 볶아 먹는거 빼고 그냥 먹을때는 너무 익어서 먹지 못하는데

그래도 버리지 못하게 가지고 있어

 

이제는 엄마 음식도 먹지 못하니까

하루하루 그냥 시체처럼 시간을 보내니까 여름이 가고 겨울이 오더라

아무생각 없이 창문을 보는데 울컥 하는거야

 

딸이 좋아하는 눈온다고 잠든 나를 깨워서 알려줄 사람도 없고

눈에 넣어도 안아픈 딸 하나밖에 없는 딸 이라고 불러줄 사람도 없어

방 치우라고 때리던 엄마도 못된짓 하지말고 착하게 살으라고 그래야 복받는다고 잔소리할

엄마도 이제는 없어

우리엄마는 키가 154야 작은데 걸음은 진짜 빨랐어 등산복을 너무 좋아했어 특히 네파

 

그 당시 너무 힘들었고 아팠고 아직도 힘들지만 예전보다는 이제 가끔 보고 싶은 정도야

처음보단 괜찮아 졌거든 이게 아마 그때 남자친구가 지금도 내옆에서 많은 힘이 되줘서

잘 견디고 있는 것같아

 

그러다 몇일 전 전남치친구를 만났어 지금은 아무 감정없이 오빠 동생하기로 했거든

서로 남자친구 여자친구도 있으니까

 

그 오빠가 이렇게 말하더라

서울에 와서 내가 이 오빠를 처음 만나서 사귀기 시작했는데

엄마는 조금 힘들면 내려올줄 알았던 딸이 안오니까 너무 보고 싶었나봐

그게 남자친구가 있으니까

 

안내려오는거라고 생각해서 그 당시 남자친구였던 이 오빠한테 전화를 했데 내 딸

집으로 보내달라고 길게 통화 했는데 이런내용으로 통화를 끝내고

이 오빠는 직접 내려가서 잘 사귀겠다 허락받으러 혼자 지방으로 나 몰래 엄마를 만나러 갔었데

엄마 집으로 찻아가니 엄마가 무릎을 끓으시며 내 딸 어른스러운척 해도 아직 내가 데리고

있어야 한다고

 

아직 잘 모른다고 내가 데리고 있으면서 가르칠게 너무 많다고 제발 헤어지라고

엄마가 그랬었데

 

그말을 끝으로 나는 그냥 덤덤햇어

그리고 집에 와서 울었어

가끔 꿈에 엄마가 나타나 겨울인데도 꿈속은 봄이야 벗꽃이 날리고 벤치에 앉아서 엄마는

나한테 이렇게 말해 엄마는 괜찮다고

 

이제는 엄마는 내 추억속에 있고

자살시도는 안하면서 가끔 엄마 생각나면 울고 그렇게 지내

 

가끔 엄마가 꿈에 나오는데 꿈에서 깨고 나면 항상 베게는 축축해

엄마를 알던 모든 사람들은 이렇게 말해

너희 엄마처럼 악착같았던 엄마는 없을거라고

 

그래서 그런지 아직도 부족한 나한테는 엄마가 너무 필요해

다음생에는 내가 엄마처럼은 못할 것 같아 자신이 없어

대신에 지금보다 착한딸 될테니까

다음생에도 내 엄마 해줄수 있지?

 

항상 사랑하고 지금도 사랑하고 마지막가는거 보지 못해서 미안해

엄마는 하늘나라가면 분명 좋은곳으로 갈거야

항상 미안한게 너무 많아 엄마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긴글 읽어줘서 고맙고 어디에 말하고 싶은데 말할곳도 없어서

이곳에 적었어

지금 언니들 동생들 오빠들 모두 이글 읽고 있다면

부모님께 잘해드려

 

익숙한 환경들과 자식들 먹이려고 아침부터 도마 뚜드리는 소리

언제나 가득차있는 수건 그리고 잘 정리된 옷들

 

모두 엄마의 정성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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