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정신을 잃고 있는 건지 우리가 방에 들어가면서 꽤 큰 인기척이 났음에도 원철씨는 눈을 뜨지 않았다.
얼굴은 야윌대로 야위어서 나한테 소리지르던 원철씨라고 보이지 않고 낯선 사람 같았다.
그리고 이상한건 표정은 이상하리 만치 밝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앓고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꿈을 꾸고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이런 상태로 며칠동안이나 있었던 거죠?”
“4일정도요. 병원에 가봤지만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하더라구요. 손 쓸 방법이 없으니 더 답답하고.”
여자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그간 마음 고생을 한 모양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도사가 금방 고쳐줄 거니까.”
그래야 할텐데 온몸에 이미 온몸에 땀이 흐르고 초점도 흐려져 사실 가까이 있는 멀대의 모습도 잘 보이지 않았다.
‘잘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아저씨 좋은 꿈 꾸나본데.”
“언니랑 꿈 속에서 만나고 있나봐. 아마도 좋은 꿈을 꾸게 해줘서 깨어나기 싫게 만드는 모양이야. 더 자세한 건 봐야 알겠지만.”
“이게 뭐야? 난 바들바들 떨고 있을 줄 알았는데. 기분은 좋겠구만.”
“아마도 무서운 형상으로 다가갔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냈겠지. 떼어 낼려고 애를 썼을테니까. 이게 더 무서운 거야. 제를 드리더라도 본인이 떨쳐내려고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이건 더 힘들겠어. 빨리 시작해야겠다.”
“뭘 말이죠?”
참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해대는 우리가 이해가 안가겠지.
“사령제를 드려야겠어요.”
간략히 설명을 했다.
“또 여자문제라니. 이젠 죽은 여자한테까지 시달려야 한다구요?”
‘그간 원철씨가 여자문제로 속 꽤나 썩인 모양이군.’
“자리가 불편하시면 잠시 나가 계셔도 좋아요.”
“네. 나가있겠어요.”
화가 많이 난 모양이었다.
목소리가 무지 쌀쌀 맞았다.
“잘 부탁드려요.”
그래도 앓고 있는 남편이 측은했는지 부탁은 하고 간다.
“나는 결혼해서도 절대로 여자문제로 속 안 썩인다. 그건 너한테 약속하지.”
‘그게 지금 할 대사냐 멀대야?’
“너도 나가 있는 게 좋겠어.”
“아니야. 여기 있을 거야. 일 끝나면 바로 놀러가기로 한 거 잊었냐?”
“그것 때문에 있는 거야?”
“그래. 너 도망갈까봐.”
“나 너한테 이런 모습 보이기 싫어. 도망 안갈테니 나가 있어줘.”
‘너무 가까이 오지 말란 말이야. 너두 나 싫어하게 되는 거 싫어.’
“쨉쓰구 있네. 그런 말에 안속아. 빨리해. 시간없어.”
뒷통수를 팍 때리는 멀대.
단순한 게 때로는 장점인 멀대였다.
사령제란 죽음의 사예(死穢)를 벗기고 방황하는 무령(巫靈)을 달래어 저승 즉, 극락세계로 보내는 행사를 말한다.
“근데 사령제가 뭐냐?”
‘빨리도 물어보네. 방금 설명했는데.’
“전설의 고향 같은 거 보면 귀신 들었다고 굿하지? 그런 거야.”
“아하. 그런 거.”
“지노귀 굿이라고 하는데···”
“이름이 뭐 중요하냐? 빨리 하기나 하라고.”
‘그래. 해보자.’
정신을 집중해서 언니와의 대화를 시도했다.
원래는 정식 굿판을 벌여야 하지만 언니니까 쉽게 대화할 수 있을거란 계산이었다.
[언니. 빨리 나와. 갈 시간이야.]
[싫어...]
생각보다도 더 순순히 대화에 응해주었다.
[갈 길이 달라. 언니 세상 사람 아니라고.]
[이사람... 나랑 있는 게... 좋대.... 세상에.... 미련... 없다고...]
[이미 다른 여자의 남자야. 언니도 봤잖아. 가자. 좋은 곳으로 보내줄께.]
[아냐..... 나랑.... 간다고.... 나랑 간다고 했어]
‘보내는 내 맘도 아파. 가지말라고 잡고 싶다구. 외로울테니 같이 가라고도 하고 싶어. 하지만 안되는 걸.’
[네 이년. 남자 때문에 미련을 못 버리고. 냉큼 가거라]
할아버지였다.
너무도 크게 호통을 쳐서 나도 놀랐다.
[할아버지.... 데리고 왔네..... 그래두 안돼... 나 내버려둬... 지금.... 행복해...]
‘언니, 행복해 지금? 그런 나쁜 남자 옆에 있다고 행복해진거야?’
[못난 년. 남의 남자나 홀리고 있으면서 행복하다고 실실대다니. 니가 안가겠다면 내가 보내주마]
할아버지의 기는 엄청났다.
이정도라면 언니도 어쩔 수 없겠지.
[싫어....싫어...]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둘의 싸움이 되어가고 있었다.
집안의 물체가 조금씩 흔들리고 온 방안에는 겨울날씨나 될 법한 싸늘한 기운이 돌았다.
“야, 혜림아. 이거 왜 그래?”
대꾸할 수 없었다.
정신을 더 집중해야 했다.
진동이 더해왔다.
내 옆에 찰싹 붙은 멀대.
‘나가 있으라니까 말 안듣구.’
사실 나두 떨고 있었다.
멀대에겐 진동정도만 느껴졌겠지만 내가 본 광경은 1000배나 무시무시했다.
폭풍우를 연상시키는 바람이 계속 불었고 빨간불 파란 불 정신없이 번쩍거리고 있었다.
다케다 할아버지의 기운이 언니를 끌고 방안을 나가려고 하면 언니는 기를 쓰고 나가지 않으려고 바닥에 엎드려 있다가 반격을 하고는 구석에 숨곤했다.
쉽게 끝나리라 생각했던 싸움이 오래가고 있다.
필사적으로 나가지 않으려는 언니의 모습. 너무나 애처로웠다.
다케다 할아버지가 있는 힘을 다했는지 언니의 머리채를 잡고는 끌고 나갔다.
차마 쳐다 볼 수 없어 눈을 질끈 감았다.
[혼자 못간다고 했지. 원철씨가 안된다면 너라도 같이 가야겠어]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나를 잡고 있는 언니.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머리는 풀어헤치고 눈만 빨간.
거기다 나를 행한 살기.
“욱”
“너 왜 그래?”
입에서 따뜻한 게, 피였다.
“혜림아!”
“너 왜 그래? 이건 피잖아.”
쏟은 피가 방바닥에서 조금씩 아래로 흘러가고 있다.
‘멀대가 옆에 있어서 참 다행이야. 이상하게 넌 내가 힘들 때 있어주는구나.’
멀대가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너 어디다 전화해?”
“어디긴. 119지.”
“전화 끊어.”
“왜?”
“도움 청할 때가 있어. 핸드폰 줘봐.”
“누구한테 전활 한다고 그래? 병원부터 가.”
“이런 거 처음도 아니야. 괜찮아.”
‘처음이 아니긴. 너무 무서워 죽겠다. 이모가 옆에 있었다면 나 죽는다고 소리 소리 질렀을 걸. 설마 이러다 진짜 죽는 건 아니겠지. 아닐 거야. 난 명이 아주 기니까.’
“시끄러. 말 하지마. 계속 피나잖아.”
“나 지금 병원가면 이 남자 지금 죽어. 부탁이야. 전화 이리 줘.”
“이런 새끼 살리려고 목숨까지 걸어? 단단히 미쳤구나.”
“제발.”
“안 된다구. 사람 말 못알아들어?”
“사람들 와도 나 병원 안가.”
“남 위한답시구 병신처럼 좀 살지마.”
멀대는 핸드폰을 다시 눌렀다.
“119오기 전에 나 죽는 꼴 보고싶어.”
버럭 소리를 질러버렸더니 멀대도 잠시 주춤했다.
‘뻥인데. 나두 저런 아저씨대신 죽을 생각 없어. 20살 꽃다운 나이 못 해본게 얼마나 많다구.’
“부탁이야. 여봉아. 전화 이리줘.”
“에이씨.”
뻥이 먹힌 모양이었다.
멀대는 핸드폰을 내게 던지고 아저씨한테로 가서는 빰을 아주 세게 후려쳤다.
“야! 이자식아, 일어나. 죽은 척 하지 말고 일어나란 말이야.”
그렇게 한대, 두 대. 말리지 않았다.
내 마음도 조금은 후련했다.
‘뭐 죽도록 때리는 것도 아닌데 뭐. 저러다 정신 차리면 좋은 거고. 남들도 정신차리라고 때리는지 알 거야.’
스스로 정당화 시키며 이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모, 수암선생님 좀 이리로 모셔와.”
이렇게 도움을 청하고 난 멀대에게 기대어 앉아 있었다.
“잠깐만. 일어나볼래?”
“왜?”
“여기 피 좀 닦아야겠어.”
“그냥 냅둬. 이모 와서 보게. 내가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알아야···”
엽기 발언에 놀란 멀대.
동그랗게 뜬 눈이 귀여웠다.
‘뭘 그런 거 가지고 놀라기는.’
“나 어지러워. 그냥 이대로 있음 안 될까?”
상황 수습용 행동을 취했다.
“많이 아파?”
“응. 많이.”
“그러니까 이젠 남 일에 참견 좀 하지 말아.”
“알았어.”
“니가 다른 사람들 못보는 거 본다고 다른 사람들 삶에 책임 느낄 필요는 없어. 그 사람들도 나름대로 판단하고 결정 내리는 건데. 네가 지도 해주지 않아도 되단 말이야. 난 네가 좀 더 편해졌으면 좋겠어.”
‘왜 항상 잘 해주는 걸까?’
“너 왜 나한테 잘해줘?”
“내가 뭘?”
“잘해주잖아. 너 나한테.”
“잘해주는 게 아니라 네가 항상 안 도와줄 수 없는 형편이니까 그렇지. 그리고 이번엔 네가 도와달라고 한거잖아.”
“혹시 너 나 좋아하냐?”
“...”
‘왜 말을 못하는 거야? 다 안다고. 빨리 말해.’
“혜림아! 너 어디 있어?”
멀대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이모가 뛰어들어왔다.
그리고 이모 뒤로 잘 생긴 수암 선생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