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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하고 믿는 복음은

주품이 |2018.06.03 20:16
조회 98 |추천 0
마가복음 8:22~26
행하고 믿는 복음은
주품이 큐티 ^ ^

22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하거늘
23 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24 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25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26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이르시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


@원어사전:
뱃새다:Bhqsai>dav(966, 베드사이다)
벳새다 Bethsaida(지)
베드사이다는 아람어 베트 차이야(고기잡이의 집), 또는 베트 차이야(어부의 집)의 음역이며, 한글 개역 성경에서 '벳새다'라고 음역했다.
(a) 벳새다는 갈릴리 북쪽 해변 요단강 근처의 마을이다. 플리니(Pliny)와 제롬(Jerome)은 이곳이 요단 동쪽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막 6:45에서 제자들은 요단 동편에서 벳새다로 보내진 것이다(참조: 요 6:17). 그렇다면 요단 서쪽의 두 번째 벳새다, 곧 '갈릴리 벳새다'로 주장되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옳지 않다. 벳새다가 요단강의 동편에 있었는지 서편에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요세푸스의 기록이 분명하게 밝혀준다. 어촌인 벳새다는 생산물이 풍부한 이 호수 일대의 여러 성읍들의 지명일 수 있었다 요세푸스는 헤롯 빌립이 '게네사렛 호수에 위치한 벳새다 마을을 도시로 승격했으며, 이 도시를 시이저의 딸과 동일한 이름인 줄리어스(Julias)로 불렀다'고 기록했다. 요단강 서쪽 기슭의 줄리아스의 교외가 막 6:45과 가장 잘 어울린다.
만일 좀 더 일반적인 의미로 요단강의 동쪽과 갈릴리 바다의 북쪽에 이르는 갈릴리를 이해한다면 '갈릴리의 벳새다'(요 12:21)라는 표현은 분명해진다.

안수의 안:
ejpitivqhmi(2007, 에피티데미)
두다, 놓다, 더하다, 주다.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동사 에피티데미(Homer 이래)는 에피(ejpiv, 1909: 위에, 에)와 티데미(tivqhmi, 5087: 놓다, 두다, 정하다, 고정하다)에서 유래했으며,
(a) '~위에 놓다, 두다, 내려 놓다',
(b) '더하다, 적용하다, 부과하다, *공급하다, 주다(어떤 이름을), 채택하다, 씌우다'를 의미한다.
(b) 안수 의식은 이 단어에 의해 20회 나타난다. 치료시에 안수하는 것과 복을 빌 때 안수하는 것-특히 세례(침례)와 성례전에서 성령을 부어주기 위한 안수(특별히 구약성경과 유대교에서 전해 내려온 것)-사이에 구별을 해야 한다. 그러나 한편 두 의식은 하나님과 인간의 손이 치료와 축복의 능력을 전달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라는 사실에서 다시 일치된다. 따라서 안수는 능력을 전달하는 여러가지 방식-손을 움직이거나, 만진다거나, 붙잡는다거나 기름을 붓는 방식-가운데 한 형태이다

안수의 수(손수):
ceivr(5495, 케이르)
손hand.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케이르(Homer 이래)는 '손'을 의미하며, 상징적으로 '쪽, 편, 능력, 손으로 씀, 군대'를 나타내기도 한다.
(a) 손은 사람의 몸의 한 지체로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손에다 굉장한 중요성을 부여하였다. 손은 동작이나 행동의 도구이다. 손은 각종 도구를 다룬다. '손으로 손을 잡다'와 같은 여러 가지 표현들이 손으로 하는 행동을 묘사한다. 사람들은 서로 손을 잡고(악수로) 인사를 한다. 일과 자신의 방어에 손을 사용한다. 인간의 힘과 에네르기는 이 손을 통하여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b) 신들도 손으로 보호하기도 하고 개입하기도 한다. 축복을 하거나 치료, 구원을 할 때도 손을 올려 놓는다. 기적 행사자들은 손을 올려 놓음으로, 안수로 치유의 능력을 전달한다.


# 22절 한맹인이 주님께 다가옵니다. 물론 주위 사람들의 도움이기는 하여도 본인의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으면 나올 수 없습니다. 그 맹인 스스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는 것을 봅니다. 침상채 메여 오는 사람들의 예화를 보고 본인의 믿음보다는 도와 주는 중계자의 믿음으로 사람도 구원되는 것이 아니냐는 분이 계신데 믿음은 최초와 최종 본인의 믿음의 동의가 없이는 하나님의 역사가 없는 것입니다. 한사람의 구원은 중계자보다는 본인 스스로의 믿음이 가장 중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행동에 타인 먼저보다는 내가 먼저 믿음을 보이는 자가 됩시다.

23절 주님은 그 맹인의 손을 잡고 마을 밖으로 가십니다. 그 원인은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야로 보는 자들의 선동을 막으시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대속의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히브리인의 선동으로 예수님이 왕으로 추대 받고 로마인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의가 될 수 없습니다. 백성의 죄를 대속하려는 메시야가 아닌 정치적 야망과 욕심으로 이 땅에 오셨다가 실패가 자로 오인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속이 아닌 실패자의 예수님이라면 많은 사람들의 믿음을 뿌리채 흔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죽음으로 우릴 섬기러 오신 분입니다. 오해맙시다.

이후 구절과 25절까지를 보면 주님은 눈에 침을 뱉으셔서 눈에 신경을 깨우시고 머리에 안수 하셔서 뇌의 시신경을 깨우시고 혼을 깨우셔서 보게 하심을 봅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맹인은 눈뿐만 아니라 예수님과 예수님의 기적을 보아 영적으로 하나님을 믿게 됩니다. 즉 육혼영의 믿음이 깨어나는 것을 봅니다. 즉 영혼육의 순서로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닌 육혼영의 순서 같습니다. 믿음의 생활도 그러한거 같습니다. 하나님을 영적으로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혼과 육이 움직여 주님의 뜻대로 삶을 사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내가 주님의 삶을 먼저 행할 때에 주님의 숨겸과 은혜를 경험 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지금 섬기는 교회를 섬길 때입니다. 우편함에 전도지 꼽는거 별거 아닌거 같습니다. 하지만 엄청난 파워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종종 이것을 배포 후에는 새로운 성도들이 오는 것입니다. 오후에 돌려도 오후 예배가 되면 뭔가 좋은 일들이 있습니다. 안나오시던 청년들의 아벗님이 나오시고 전에 교회를 떠났던 분들이 오시고는 합니다. 학생청년회 예배를 드린 후 칼라이기도한 주보전도지는 자신들 집에 다른 식구들이 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그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기도 합니다. 본문의 맹인같이 일단 주님께 그 육체가 나아가고 육체가 회복이 되고 뇌의 신경이 회복되어 혼이 회복이 되고 주님을 보고 기적을 경험하고 그 영이 새로워지듯이요 하나님의 일이 우리 앞에 있습니까 망설이지 말고 그 일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은혜를 즉시 그 이후에 경험하기도 할 것입니다. 역으로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뜻대로 행하는 우리 삶의 아름다운 체험도 있을 것입니다.

26절을 보면 주님이 기적을 잘 안 알리시는 이유를 들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꼭 숨어서 할 필요는 없다고 느낍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 기적을 보면 믿으려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주님의 기적을 전하는 일들은 매우 바람직한 일입니다. 예수님 시대와 같이 이런 기적 때문에 역효과가 일어나지는 않을거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기적과 선행들을 통해 예수님이 아닌 자신이 드러나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모목사병원재단 모목사의 선행 이야기 영웅모목사 부흥성회 예수님의 교회인지 모목사 교회와 선행인지 전혀 구분이 되어지지 않습니다. 다만 예수님은 이용 당하는 나귀요 그 위에 탄 모목사는 부와 명예를 검어쥔 교회의 주인공 같습니다. 모목사 복음인지 예수님 복음인지 사실 구분되어지지 않습니다. 결국 최후 심판날 모목사의 복음으로 지옥에 가거나 모목사의 이름으로 교회 일을 하였기에 천국에서 아무 상급이 없거나 둘중 하나일거 같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숨기시는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주객이 바뀌는 것을 방지하시는 것이라 봅니다. 환란 중에라도 예수님 자체를 믿는 것인지 예수님을 통해 얻는 그 뭔가만을 믿는 자기유익의 믿음인지 구분을 해야 합니다. 뭔가 얻을게 있으면 몰려들고 아닌 날 같으면 배신을하고 그런 자기취향의 믿음은 진짜 믿음은 아닐 것입니다. 주객이 바뀐 것이 지금에는 예수님이 아닌 자기 이름이 높아지기를 바라는 우상의 신앙일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한결같이 주님을 알고 주의 뜻을 행하기도하고 주의 뜻을 먼저 행하여 주님을 알아가는 역동적인 신앙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오직 우리의 모습은 감춰지고 주님만을 믿으며 주님의 위대하심만을 드러내는 천국에서 열매 맺는 신앙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도 많지만 순종하지 못할 때도 많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여 순종하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우리 주님의 만져 주심과 안수하심으로 주님의 능력을 우리의 영혼육에 전달하여 주시고 진정으로 우리 자신과 이웃과 식구들에게 그 복음이 전달되어 생명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얻고 더 얻고 얻어 우리 주위의 생명의 삶들의 풍성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을 부끄러워지 않고 입을 먼저 열어 구원의 열매를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각교회의 교역자들 있습니다. 그들을 보호하여 주시고 매년 주어지는 스케쥴도 복음의 스케쥴이 되어 실수가 없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주위 나라와 열강사이 화평의 시대를 활짝 열어 주시옵시오며 자비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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