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곧내다.
난 반말이 편하기에 그냥 반말하겠다.
2002년은 내게 있어서 붉은 물결의 나날이였다.
태극기를 망토 삼고, 빨간티에 손바닥은 얼얼하고 목소리는 곧잘 나가곤했다.
치킨에 밥먹길 좋아하고 항상 잘땐 거실에 모기장을 치고 홈메트를 키고 동생이랑 같이 자던 시절이였는데,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일기 쓰는걸 강요했다. 뭐, 이건 다른 학교도 매한가지겠지만서도..
일기라는게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쓰는 자기만의 이야기가 아닌, 뭔가 숙제의 일종이 되어버리고, 사생활이 없는 일기가 되었다. 아침 조례가 끝나면 언제나 담임 자리에는 일기장을 수북히 내야했고, 내지 못한 아이들은 남아서 반청소를 하게 했다.
청소를 분담하는 1분단 2분단 이런게 있음에도 담임의 명령에 가까운 지시로 그렇게 했다.
당시에는 그게 당연한거고 일기를 못낸 아이는 칠판에 반장이 따악, 딱 하며 이름을 적었다.
우리에게 있어선 그건 놀림감이고 형벌이였다.
자. 그러면 2명이 일기장을 못냈다? 그러면 그 2명이서 교실은ㆍ 다 청소하는거다. 그리고 남아서 담임이 보는 앞에서 일기를 쓰게했다. 그러니까 5월 8일에서 21일까지의 일기를 못썼다고 하자. 그럼 그걸 다 채워야한다.
뭐. 그날은 나 혼자 못냈다.
그래서 나 혼자 청소를 다했다.
10일치의 일기를 쓰게 생겼지만 내겐 연필도 공책도 없었다.
어디다 잃어버렸는지, 아님 누가 가져갔는지 모른다.
그래서 10살인 내가 할 수 있는거라곤 반아이들이 없는 교실에서 내 책상에서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는 것 뿐이다.
흘러가는 등 뒤의 땀.
째깍이는 초침.
담임은 자기 책상에서 뭔가를 계속 끄적이다가 내게 지껄이든 말했다.
"니는 그냥 가."
그게 어떤 의미고 날 어떤 취급하는지 알면서 모른척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년은 날 학생 취급이 아닌 혐오스러운 무언가에게 대하듯이했다.
내가 처음에 말귀를 못알아듣자, 그년은 괴성을 지르며 두루말이 휴지, 샤프, 자, 삼각자, 커터칼, 볼펜, 연필깎이를 던져댔다. 그것을 맞을 때마다 나는 무서웠다.
어른이 휘두르는 폭언과 폭력이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고 울음이 터졌다.
그 여자는 애 우는 소리가 그리도 싫었던지 10살 아이의 멱살을 잡고 뺨을 날리고 밀쳤다.
16년이 지나도 그 기억은 잊을 수가 없었다.
5시가 되서야 나는 쫓겨나듯이 타의에 의해 하교를 했다.
나는 눈물 범벅이였고, 처음으로 학교에 가기 싫어졌다고 느껴졌다. 그 이후 나는 이 일로 집중력이 저하되고 5학년땐 ADHD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서야 어머니께 털어놨다. 그랬더니 어머니는 내게 하나의 사실을 말해줬다.
그 망할 여자가 우리 어머니께 촌지를 요구했다는 것.
촌지가 어떤거냐면 좀 사는 집안의 학부모께 아이교육에 더 힘쓰고 보답하겠으니 가끔씩 학교로 찾아와 돈이 든 봉투를 건내는 걸
말하는 거다.
아무튼 인성 사형된 그년이 감히 부모님께 그따위 요구를 하니까 내 안에는 분노와 증오가 날 채워갔다.
나는 내 삶의 이유가 그 순간 또렷해지고 하나의 목적으로 좁혀졌다.
복수하지 말라고 조언 같은거 하지마라..
다만,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부모고 아이가 학교에 갈 나이라면 행여나 관심을 가져주고 학교 생활이 어떤지 자주 물어봐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