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이유는 다름아닌 집안에 아빠때문이야. 지금 우리집에는 부모님 누나 나(남자) 이렇게 네명 있어. 누나는 본가에서 직장을 다니고 나는 대학교를 타지역에서 다녀서 지금은 학교 앞에 자취하는 중이야. 생활비는 알바해서 썻지만 매달 월세나 통신비 등은 부모님이 내주시고 있는 그런 상황이네.
나는 개인적으로 가정 폭력을 받으며 자라왔다고 생각해. 어머니는 내게 큰 폭력을 가하지는 않는데 아버지는 순간 눈알이 휙 돌아버리면 주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그 순간이 되면 인격을 모독하는 말이라던가 손찌검을 하기도 해. 그런데 신기하게도 본인 주변사람들에게는 안 그러고 딱 가족들한테만 그래 가 족 들 한테만.
모르겠어 주변 사람들에게는 항상 아부 섞인 목소리 아부 섞인 표정 가식적인 웃음. 그런게 내 눈에는 뻔히 보이는데 인간 관계를 항상 그렇게 맺으시더라고. 그러니까 자기의 본모습은 딱 처자식들 한테만 보여주는거지. 그중 가장 주 타겟이 되는 사람은 처자식중에 유일한 남자인 나야.
전부 다는 기억 안 나지만 옛날 기억중 하나를 더듬어보자면 가족끼리 같이 등산엘 갔는데 중간에 물을 떠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는거야. 나는 당시에 너무 목이 말랐기에 아빠 물마시고 엄마 물 마시고 누나보다 물을 빨리 달라고 했었나봐. 그 말을 듣고 눈알이 돌아버리더니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소리를 꽥꽥 질렀던 기억이 있어.
이까지 들었을 때는 그러려니 할 수 있을 것 같아.
본격적으로 기억 나는 것은 중학생때부터. 중학교 등교하는 첫 날이었어. 같이 등교하자고 친구가 우리집에 찾아 왔는데 그 친구가 그냥 자기 집에 있는 목티를 입고 우리 집에 온거야. 그걸 우리 아빠가 보고 그 친구가 보는 앞에서 니는 목티 얻나 내다 버렸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었어. 중학교 1학년. 당시 친구앞에서 이런 취급을 받았을때 정말 큰 모욕감을 느꼈던 것 같아. 거기서 더 기억나는 것은 바로 내 앞에 있는 친구에게는 세상 상냥하게 말을 걸면서 나에게는 눈알이 뒤집어져서 화를 내더라.
우리 집에는 성당엘 다녔는데 성당 다니는 사람들은 아마 알거야. 토요일에는 주일학교 라는게 있어. 주일학교 가기 전에 집에서 짜장면을 시켜 줬는데, 내가 덩치도 작고 음식도 잘 못먹는데다가 늦게 먹는 편이라 짜장면의 면만 먹고 짜장 건더기는 많이 남겼어. 울 아빠는 그걸 보고 또 눈이 뒤집어져서 손찌검을 하더라고. 짜장면을 시켜줬으면 똑바로 처먹으라고. 그말을 듣고 눈물 흘리며 성당에 간 기억이 난다.
이런식으로 눈깔이 돌아가는게 보편적인 가치가 아니야. 그냥 본인이 뭔가 기분 나쁘면 꼬투리를 잡아서 자식에게 해소하는것 같았어.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다가 어느 순간 한번씩 눈깔이 홱홱 돌아. 주기는 하루에 한번에서 이틀에 한번 정도. 학창 시절 수 없이 많은 폭력을 당하며 가슴속에 못이 많이 박힌 것 같다. 당시에 우연히 티비를 보다가 ‘정신 분열증’이라는 병을 알게 되었는데 울아빠 성격이랑 비슷하더라고. 딱 보고 울 아빠는 저 병에 걸린 정신병 환자구나 생각을 했어.
매일같이 이런 살벌한 분위기속에 어떻게 살아갔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어느 순간 가정에서 받은 이런 폭력을 학교 친구들에게 투사를 하고 있는거야. 지금은 정말 반성하지만 그때 나보다 약하다고 생각했던 애들을 괴롭히기도 했었어. 그렇다고 쎄게 때리고 이런게 아니라 일부러 뽀뽀하는 모션을 취해서 친구가 당황해하는걸? 보고 웃고 그랬던 기억도 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들 중 하나는 나 중학교 졸업식 날이야. 그날은 아침부터 눈깔이 돌더라고. 9시에 졸업식이 시작이었는데 8시까지 준비가 덜 되었다고 소리를 치더라고. (학교까지는 10분정도 거리) 몸만 가면 되는 졸업식날 뭘 그렇게 준비를 했었어야 했었나 싶다. 졸업식 당일 기쁜날인데도 아침부터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어. 그런데 압권은 졸업식 한 직후였어. 당연히 그렇듯이 졸업식 끝나면 친구들이랑 사진 찍곤 하잖아? 친구들이랑 사진 조금 띡는다니까 그때도 눈알이 돌더라. 내가 졸업식 하는 날이 3살 더 많은 누나의 고등학교 졸업날이기도 했는데, 빨리 가족끼리 만나서 밥 먹어야 됀다고 전교생이 다 보는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라고. 내 인생에 있어서 아마 가장 수치스러웠던 순간이 아닌가 싶다. 아빠한테 한 소리 듣고 따라 나가는 길에 친구들이 안쓰러운 얼굴로 내 등을 토닥여 주었는데 그때 박힌 내 가슴의 못이 아직도 울리고 있다 ㅅㅂ..
고등학교 갈 차례가 돼었는데 이넘의 집구석에서는 도저히 3년 더 학교를 다닐 용기가 없는고야. 그래서 일부러 주변에 기숙사 있는 학교에 지원해서 고딩때부터 집에서 탈출했다. 물론 고등학교 입학하는 날에도 눈깔이 돌아가지고 씩씩거리면서 학교에 간 기억이 있어. 고등학교가 본가에서 기차타고 40분정도 떨어진 곳에 있고, 집에서 그 기차역까지는 넉넉잡아 20분이면 도착해. 그런데 가 기차역까지 1시간 전에 출발 안했다고 입학식 하는 날마저 소리지르더라. 정말 질리는 사람이구나 싶었어.
어찌어찌 고등학교 졸업하고 군대 전역하고 대학 긱사생활 하고 있어. 다들 예상할지 모르겠지만 그날도 역시 눈깔이 돌았다. 이번 이유는 점심으로 짬뽕을 먹었는데 짬뽕 맛이 왤케 느끼하냐며 음식같지도 않은 것을 주문했다고 머라 그러더라. 참 할말이 없었다.
글고 대학 2학년 끝나고 바로 해외 취업이 된거야. 그래서 오늘 자취방을 뺐는데 자취방에는 내가 1년 반동안 썼던 양말이 있었어. 모양이 촌스러운건 둘째치고 되게 두꺼워. 내가 앞으로 가게 될 나라는 동남아시아 쪽이라서 그런 더운 나라에서는 그런 양말을 신을 일도 잘 없고, 1년 반동안 신었기도 해서 그냥 버리고 갈 생각이었어. 짐을 옮겨 주신다며 아빠도 오셨길래 그렇게 말씀 드렸어. 양말 버리고 갈거라고. 그런데 왜 멀쩡한 양말을 버리느냐고 챙기시더라고. 그러려니 했지. 그런데 집에 오고 나서 아까 그 양말 얘기를 다시 꺼내는거야. 플라스틱 빨래 바구니 안에 그 양말을 쏟아넣고 니는 돈이 땅에서 솟냐? 고 하시며 그 바구니로 내 코쪽을 때릴라고 그러더라고. 나도 여태 계속 참아왔는데 몇일 후에 해외로 가는 아들한테, 어느덧 군대을 전역한 24살 인격체에게 그렇게 모욕적으로 언사를 하니 나도 눈깔이 순간 돌아버리더라. 머리 굵고 아빠한테 대든건 또 처음이다. 중학생때의 나처럼 방에 들어와서 한참을 박혀 있었어. 어느순간 눈물이 팽 돌더라. 24살 나이 처먹고 반항같지도 않은 것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엄마랑 얘기하면서 한참 울었다. 근데 이런 일 한두번 있었겟어? 항상 ㅅㅂ 결론이 어른한테 먼저 사과하는게 맞대. 아빠는 평생 저렇게 살아왓어서 절대 못고칠거래. 우리가 무조건 이해를 해야한대. 그래서 오늘도 나한테 먼저 사과를 하라고 하시더라고.
방에 앉아서 가만히 생각해 보는데 참 엿같은 내 신세인 것 같아. 눈깔 도는건만 아니면 나도 충분히 합격점을 받을 만한 아빠라고 생각을 하는데. 이게 말로도 설득을 해보고, 때리는 대로 맞아도 보고, 반항을 해보기도 했는데 진짜 사람이 변하지를 않는다. 여태 살아오면서 내 가슴에 박힌 못이 수백개는 되는데 왜 못이 박힌 내가 가서 손을 내밀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해외에 2년 갔다 오는데 가서 진짜 돈 빡시게 벌고 그냥내가 내 호적 파버리고 새로운 인생 시작할까 싶다.
스압 길텐데 여태 읽어줘서 고마워
세줄요약
1 글쓴이 아빠는 욱하는 성격이 심함. 모욕적인 언사와 손찌검도 자주 함
2 24년 살아오면서 수백개의 상처를 받아가며 성장함
3 앞으로 지낼려면 내가 아빠를 이해하거나 아니면 완전 남처럼 살거나 해야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