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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고쳐쓰는거 아니라죠

ㅇㅇ |2018.07.30 01:30
조회 2,992 |추천 6
그냥 신세 한탄 겸 생각나서 써봐요.
저랑 정반대 환경에서 자란 남친과 2년 사귀고 헤어진지 한달 가까이 됩니다.
성인 되고 첫 연애였고 처음으로 오랫동안 애정 쏟아부었어요.
저는 부모님 밑에서 제가 행복하고 자부 할 정도로 사랑 받으며 자랐고,
그 사람은 아버지 밑에서 자라다가 탈선으로 가출하고 그 길로 쭉 독립한 케이스입니다.
사귈 때 초반만 해도 콩깍지가 씌어서 제가 무슨 평강 공주라도 된 마냥
'내가 저 사람 바꿀 수 있어', '몇 번 말하면 알아서 고쳐지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1년 반 넘게 바뀌지 않는 거친 언행에, 툭 하면 입에서 나오는 그 놈의 "귀찮은데"라는 소리...
전 첫 연애라서 하고 싶은 것도 정말 많았고 보통 커플들이 SNS에 올리는 벚꽃놀이, 바다구경, 전시회 등등 많죠? 저희 커플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저도 물론 같이 가고 싶었지만 "귀찮아" 소리에 '그래, 어제 일해서 피곤하겠지', '사람마다 취향이 다를 수도 있으니까' 라는 생각으로 굳이 조르지도 않고 항상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제가 일정에 코스까지 다 짜둬도 남친이 늦잠 자기 일쑤였고요.
매번 하는 데이트는 집에서 뒹굴거리는 것, 집 근처에서 외식하는 것.
아무튼, 그렇게 서운한게 쌓이고 점점 싸우는 횟수도 늘었습니다.
연상인 남친은 항상 나이 내세우면서 본인은 화낼 때 욕설 섞어가며 언성 높이고, 저는 조금만 짜증을 내도 적반하장으로 지금 사회생활 더 많이 해본 오빠한테 화내는거냐고 해서 주눅 들 때가 많았네요.
남친 잘 못된 점을 지적해도 건성으로 '몰랐네, 다음엔 안 그럴게' 라는 말, 수없이 들었습니다.
점점 지치기 시작하다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정을 떼고 있었습니다.
그 즈음부터 생각해보니 그 사람 화내는 포인트도 이상하고 저한테 한 행동들도 이해가 되지 않고...
한 가지 일화를 들자면 제 자취방에서 혼자 맥주 마시고 자고 있는데 눈 떠보니 깜깜한 방 안에서 벌거벗고 누군가와 관계를 하고 있었습니다.
자다가 깬 것도 있었고 취중에 몽롱한 상태에서 몸도 못 가누고 당황하고 어쩔 줄을 몰랐는데 다시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깨니 남친이더라구요.
순간 배신감과 함께 '어떻게 자는 사람 덮쳐서 할 생각을 하나' 란 생각도 들고 한편으론 '남자친구라서 다행이지 다른 사람이면 어쩔 뻔했어' 라는 말도 안되는 합리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갈 수록 저에게 의지하는게 커지면서 제가 남친의 스케쥴에 진로까지 걱정해주고 있었습니다.
제가 여자친구 뿐만 아니라 엄마, 여동생, 친구,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모두 떠맡은 것 같았어요.
정말 저를 좋아해서 사귀는 건지, 제가 본인 생활을 편하게 만들어줘서 사귀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하고, 제가 있는 자존심 버리고 울면서 "나 좀 좋아해줘" 라고 빌 지경까지 됐습니다.
그러다 1년 반 쯤 사귀었을 때 제가 헤어지자고 얘기 했습니다
그 사람이 쿨하게 받아들였고 그렇게 끝날 줄 알았는데 몇 주 뒤에 연락와서 자기가 바뀌겠다, 더 잘해주겠다 라는 소리에 혹해서 다시 만났네요.
진짜 바뀔 줄 알았습니다. 반성하고 변할 줄 알았어요.
다시 사귀고 잠깐은 변한 모습 보여주더니 얼마 안 가서 다시 거칠어지는 말투에 또 시비 거는 말도 안되는 핑계
싸울 때 "내가 너 못 때릴 것 같지? 맞으면 아프다. 적당히 해." 라는 소리가 제일 실망스러웠어요.
솔직히 맞을까봐 무서웠긴 하지만 그냥 웃기고 한심하더라구요. 내세울게 주먹 밖에 없는 건가 싶고.
전부터 어느 정도 실망했다가 다시 만나니까 정리하기도 쉽더라구요. 물론 그 뒤에 집까지 찾아오려나 하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다음 헤어질 때는 정말 깔끔하게 헤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문제는 저를 좀먹는 우울함입니다.
아직까지 저를 힘들게 하는건 그리움 같은게 아니고, 그 사람과 과거의 저에게 화가 나요.
전에 제가 화 못내서 참았던게 이제야 터져나오는 느낌이고, 제가 왜 그 당시 화를 내지 않았나, 왜 일찍이 헤어지질 않았나 후회만 느껴져요.
거기에 자연스럽게 남친에 대한 원망으로 너무 우울해집니다. 하루에 몇 번이고 갑자기 생각나서 눈물이 나요.
혼자 갑자기 우울해져서 훌쩍거렸다가 다시 괜찮아지고, 몇 번 반복하다가 생각이 안 날 때도 있고
친구들한테라도 상담하고 싶은데 제 얼굴에 침 뱉기 같고, 너무 푸념만 늘어놓는 것 같아서 친구들한테 미안해져 말하기가 무섭습니다.
제가 선택해서 사귄 사람이고 제가 바꿀 수 있다고 멍청하게 굴어서 일찍 헤어지지 않은 잘못이니까 인과응보로 벌 받는단 생각도 들고요.
시간이 다 해결해 주겠죠? 혼자서 우울함 조금 더 떠안고 가야겠어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수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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