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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작가, 정지훈이 '고맙습니다'
감동 남긴채 막 내린 '고맙습니다'
공효진, "못 보는 동안 봄이도 훌쩍 크겠죠"
이경희 작가인터뷰 i
착한 드라마 ‘고맙습니다’의 시간이 있었다. 이제 그 시간은 다른 드라마가 차지했다. 하지만 ‘고맙습니다’가 남긴 잔향은 좀처럼 쉽게 지워지지가 않는다.
궁금증을 풀 길이 없었다. 그래서 이경희 작가 측을 조르고 졸라, ‘고맙습니다’ 종영으로 지칠대로 지친 작가의 모습에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을 억지로 외면하면서 작가를 테이블에 모셔 앉혔다.

한국 드라마라고는 지난 1년간 ‘연애시대’와 ‘하얀거탑’ 밖에 본 적 없는, ‘미드’와 ‘일드’에 더 열중하는 한 친구는 왜 ‘고맙습니다’와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미친 듯이 봤을까. 이 작가 드라마는 마니아 취향이 강한가? 작품마다 ‘폐인’들이 양산되는 것을 보면 그런가 보다. 그렇다면 이번 ‘고맙습니다’를 비롯, 대중적인 인기 드라마를 의미하는 시청률 20%선까지도 종종 넘어서는 경우는 어찌 설명할까.
이 작가는, 그의 작품 세계는 그런 점에서 궁금하다. 이 작가는, 그의 작품 세계는 이번 ‘고맙습니다’가 한국 드라마 공식에서 꺼리는 착한 드라마, 열린 결말, 판타지 모두를 갖고 있으면서도 대중적인 인기까지 얻었다는 점에서 불가해한 괴력까지 느끼게 한다.
많다고 할 수 없는 6편의 장편 드라마를 마친 상태에서 뚜렷한 색의 자기 세계를 갖고 있다. 대중과 마니아 모두를 잡고 자신의 이름 앞에는 ‘대가’라는 표현보다 훨씬 더 얻기 힘들 수도 있는 ‘완소’라는 수식어를 단단히 부착하고 있다. 송지나 작가 정도를 제외하면 이런 작가를 한국에서 또 찾을 수 있을까. 궁금증은 두 시간 반 가량 끊임없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 작품을 마쳤습니다. 어떤 기분이신지요.
▲ 지금은 개운한 상태에요. 나름대로 후유증이 좀 있어요. 아쉬움에 대한 후유증이죠. 제가 제대로 쓰지 못했던 부분, 하고 싶었으나 못했던 것들…뭐 이런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죠.
- 작품을 좋게 봐서 그런가 그게 뭘지 딱 떠오르지 않네요.
▲ 작가만이 느끼는 아쉬움이 있어요. 예를 들면 드라마 마지막에 기서와 영신, 봄이 해변가에서 만나는 장면은 시간상 일년이 지난 거예요. 제가 조절을 잘 못해가지고 기서가 바로 뒷날 나타난 줄 아시더라고요. 사실은 일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거든요. 기서가, 석현 엄마가 자기들한테도 기회를 달라고 했잖아요. 기서나 석현 엄마는 봄이와 영신을 소유하겠다는 게 아니라 사랑을 베풀고 못 받은 정을 베풀고 꼭 아버지, 할머니로서가 아니라 인간의 정을 베풀 수 있는 어떤 시간을 준다는 느낌으로 일년을 주는 것이었는데 그게 제대로 보여지지 못한 게 아쉬움이죠.
- 이번 작품 끝나고 드는 느낌이 이전과 특별히 다른 점이 있나요.
▲ 만족도를 묻는 것이라면 사실은 제 드라마 중에서 가장 만족도가 높았던 드라마는 ‘상두야 학교가자(이하 상두)’ 였구요.
- 조금은 의외네요.
▲ 네. 지금도 변함 없고…’상두’는 제가 새벽 세시쯤 끝을 냈는데 끝내고 나서 그 먹먹한 느낌에 더 이상 내가 다시 쓰더라도 더 이상 잘 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새벽 세시부터 그냥 가만히 있었어요. 동이 터올 때까지. 동이 딱 터오는데 눈물이 좀 나더라고요. 나는 그냥 최선을 다했다.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을 것 같다. 남들이 뭐라고 그러던 간에 나는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더 이상 잘 쓸 수 없을 것 같다. 그게 이제 5년 정도 흘렀지만 지금 다시 ‘상두’를 쓴다면 그보다 잘 쓸 자신이 없어요. 하지만 ‘미사’나 ‘꼭지’나 ‘이 죽일 놈의 사랑(이하 이죽사)’이나 이런 드라마는 다시 쓰면 훨씬 더 잘 쓸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고맙습니다’도 마찬가지고. ‘상두’는 시청률이라는 잣대로 평가하기에 애매한 부분도 있었어요. 국민 드라마라는 ‘대장금’이랑 붙었거든요.
- ‘고맙습니다’에는 한국드라마가 기피하는 것들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착한 드라마이고 결말도 열렸고 판타지도 등장하고.. 그렇게 쓰실 때 부담은 없으셨나요.
▲ 전혀요. 사실 이번 드라마에서 제 인생에서도 그렇고 작가 인생에서도 그렇고 어떤 화두가 되었던 단어가 ‘믿음’이에요. 저를 믿어준 분들이 많았어요. 드라마 제작사가 싸이더스인데요. 매니지먼트에서 제작을 한다, 다 자기 배우 쓴다, 뭐 그런 부정적인 시각도 있었지만 저는 드라마 만드는 마인드를 보고 이번에 고마웠던 부분들이 있어요. 상업성이나 흥행성에 대해서 작가에게 부담을 전혀 안 주더라고요. 다른 제작사 같은 경우에는 그런 경우가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예를 들어 드라마에 어른들을 줄이라는 경우도 자주 발생하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그냥 마음대로 쓰라고…어른들도 오히려 재미있다고 많이 쓰라고…그렇게 힘을 많이 실어주셨어요. 그런 것이 되게 고마웠고 (드라마 작법에 영향을 미치는) ppl도 없었고 저희는 초코파이 같은 경우 10원도 안 받았고요. 그래서 드라마 제목처럼 ‘고맙습니다’라고 꼭 말하고 싶은 분이 있습니다. 장진욱 싸이더스hq 드라마 사업본부장과 주선 프로듀서님, 그리고 김남원 mbc 부국장님인데요. 이런 분들 덕분에 드라마를 제가 쓰고 싶은 대로 쓸 수 있었습니다. 만약 이분들이 ‘상업적으로 하세요. 작품료 받았고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가 이윤추구인데’라고 했다면 저는 할 말 없는 거죠. 특히 열린 마인드로 제 작품을 대해주시고 제가 방황할 때마다 잡아 주신 주선 프로듀서님께는 한 번 더 감사 드리고 싶어요. 제가 본 최고의 프로듀서입니다.
- 사실 ‘고맙습니다’같은 착한 드라마는 어찌 보면 위험한 드라마거든요. 시청자가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고 잘못 쓰면 위선이나 기득권자들의 강요 같은 느낌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 원래 저희 기획 의도에서는 사람들이 비정하고 이기적이고 그런 면들 좀더 보여주고 싶었었어요. 강부자 선생님도 좀더 지독하게 그리고 싶었고 석현이도 좀더 차갑게 그리고 싶었고 마을주민들도 영신이도 좀더 이기적으로 그리고 싶었고 기서는 더 싸가지로 그리고 싶었는데 인물에 애정이 실리니까 그 인물이 그렇게 안 움직여요. 작가 말을 안 들어요. 그리고 저희 드라마가 어떤 비판을 하자고 쓴 드라마도 아니고 세상의 비정함에 대해서 토론하고자 하는 드라마도 아니고 그냥 정말 고마움에 대한 드라마기 때문에 ‘사소한 거 하나에도 고맙습니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당신이 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그런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 ‘고맙습니다’같이 착한 드라마를 쓰시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 전작인 ‘이죽사’ 때 사실은 좀 많이 힘들었었어요. 비난에 대해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날카로운 비판도 당연히 있어야겠지요. 하지만 조금 더 온화하게 보듬어 주고 ‘당신은 아흔 아홉 개의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래도 이런 빛나는 면이 있으니까 앞으로 더 좋은 것을 써줬으면 좋겠다’라는 말은 왜 없을까 싶었어요. 정말 내가 정말 사랑하는 일인 드라마 작가를 그만해야겠다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데 그때 ‘믿음’으로 이겨냈죠. 주변 사람들의 믿음… ‘이죽사’ 주연이던 정지훈이라는 배우가 나한테 줬던 힘들… 그 친구도 나름대로 상처 많이 받고 여러 가지로 힘들었을 텐데도 내가 최고가 아닌데도 ‘선생님이 최고’라고 그러고 ‘선생님이 소신만 지키면 우리는 그게 최고라고 믿습니다’ 그러고…정지훈은 그 드라마로 인해서 음반도 포기하고 진짜 이경희 하나 믿고 했었던 배우인데 되게 미안하더라고요. 창피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근데 그런 신뢰를 보여줘서 그 친구하고는 지금도 되게 잘 지내요. 배우가 드라마 잘 안되니까 작가를 비난한 ‘마녀유희 사태’도 있더라고요. 그걸 보니까 제가 참 ‘나는 진짜 복 많은 작가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무튼 그 ‘믿음’으로 세상이 고마워지면서. 그 힘으로 버텼던 것 같아요. 그 힘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고. 세상이 그래도 아름답구나. 살만하구나 그런걸 좀 느끼게 됐어요. 그런 ‘믿음’에 대한 작품을 쓰고 싶어졌고 쓰면서도 그악해지지 않고 좋은 드라마를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명대사들이 크게 사랑 받았는데 작가 입장에서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나요.
▲ 기억에 남는 대사는 없고요. 좀 민망하구요. 기획 의도를 말한 대사를 묻는다면 저는 신구선생님을 우리 드라마의 화두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민기서의 화두이기도 했고. 선생님이 “니가 개뼉다구니까 세상이 개뼉다구지”라고 하잖아요. 그게 제가 쓰고자 했던 드라마의 의도를 집약한 대사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석현이 대사로는 ‘나하고 봄이는 똑같이 아비한테 버림을 받았다. 봄이는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나는 그래도 아버지가 12년을 살아줬다. 근데 나는 증오로 모든 시간을 버텼고 봄이는 감사함으로 버텼다. 그거는 영신이가 봄이를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이고 내가 이렇게 된 건 어머니가 나를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꼽을 수 있겠네요. 나무가 자라는데 있어서 어떤 햇살을 비춰주느냐가 중요한 것처럼 내가 다른 사람한테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다면 그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를 믿는 사람이 ‘(이)경희 씨 좋은 사람이야’ 하는데 그 말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쁘게는 안 살아지더라고요. ‘이죽사’ 때 여러 사람들의 질타를 받고 힘들 때 정지훈이나 또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이 믿음을 줬을 때, 그 영향력이 이번 드라마를 좀더 따뜻한 시선으로 사람을 믿는 시선으로 쓰게 된 원동력이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사실은 ‘고맙습니다’에서 석현 엄마와 영신이의 차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석현이는 그 엄마 때문에 많은 가치를 버렸잖아요. 소중한 가치들을. 자식의 인생을 굉장히 불안하게 만들었잖아요. 사실은 석현이보다 봄이가 훨씬 불행하죠. 봄이는 죽어가는 아인데. 그래도 세상은 아름답다고 믿잖아요. 반면 석현이는 세상을 이기적으로 살아야 된다고 믿잖아요. 얼마나 관점이 달라요. 석현이 같은 애가 많은 세상하고 봄이 같은 애가 많은 세상은 분명히 다를 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조금 더 작은 것에도 칭찬을 해주고 자꾸 각박하다 각박하다 세상 탓만 하지 말고 내가 좀 변하면 좀더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거죠.
- 미스터 리는 조연이라 보기 힘들 정도로 드라마의 흐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기적을 일으키고 따뜻한 마음을 되찾게 만들고…이런 조연도 있나 싶습니다.
▲ 사실은 미스터 리가 초코파이를 나눠 준 게 아니잖아요. 기서가 대신 했잖아요. 기적을 대신해주잖아요. 그렇게 옮아가는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저희 드라마를 통틀어서 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신(scene)이 기서가 할아버지를 대신해서 초코파이를 나누는 신이에요. 기서는 사실은 그걸 하기 위해 섬에 온 거에요. 멜로가 아니라. 그 나눈 초코파이를 통해 사람들이 영신이에게 돌아왔고 영신이한테 할아버지는 그래도 잘 가르쳐 주셨구나 하는 확신을 갖게 해주고 영신이를 살게 해주는 힘이 됐잖아요. 그리고 당당하게 ‘미혼모는 부끄러운 게, 나쁜 게 아니라 다른 거죠’라고 말하죠. 기서는 그 계기를 통해 정말 천사가 되 버린 거죠.
- 살고 싶은 세상이 궁금하네요. ‘고맙습니다’를 비롯, 다른 기존 작품들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아 궁금합니다.
▲ 농담입니다만 동화책에서 읽은 세상들이 있는데 그런 세상을 꿈꾸죠. 그런데 진짜 저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넘쳐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자기 본성을 잃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저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착하다는 걸 믿어요. ‘고맙습니다’가 수도권에서 더 인기가 있었어요. 그 이유를 굳이 찾자면 시골 사람들에게는 ‘고맙습니다’가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었을 것 같아요. 반면 도시 사람들은 찾고 싶어하던 이야기고 잠깐 잊었던 이야기고 가고 싶었던 이야기고... 그래서 더 좋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나 싶어요.
- 사람도 기계화가 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 세상을 말씀하시는 거죠.
▲ 사람보다는 기계를 믿잖아요. 요즘 사람들은. 기계가 정확하다고 그러고. 사람한테 좀더 중점을 두고 사람이 넘치는 세상이 된다면 훨씬 더 살기가 재미날 거예요. 그래서 ‘고맙습니다’같은 드라마가 좋은 드라마가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인데 시시해’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 밥 굶으시잖아요. 그러면.(웃음)
▲ 밥 굶어도 좋으니까 괜찮아요. 그리고 그러면 제가 그악한 드라마를 써야죠.(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