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열도 서쪽의 끝에 일본인들도 거의 모르는 군칸지마로 불리는 섬이 있다. 옛날, 섬은 작은 암초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1810년에 우연히 발견된 석탄이 암초의 운명을 크게 바꾸게 된다. 매립이 시작되어 사람이 자리잡고 금, 석탄의 채굴을 계기로 암초는 확장의 일로를 더듬어간다. 그리고 어느덧 주위가 1킬로미터 남짓, 인구가 5,300명인 인공섬으로 성장해, 고층주택이나 광장의 건축물이 빈틈없이 줄서 있는, 콘크리트의 미궁이 해상에 출현했다. 바다로부터 바라보는 그 실루엣은 군함을 지나치게 닮아, 어느덧 섬은 '군칸지마軍艦島'라고 불리게 되었다.
소년 무렵부터의 생각(이상), 계속된 (생각들이) 섬에 도착한 것은 23세의 겨울이었다. 높은 암벽에 둘러 싸여 바다의 요새를 닮은 섬은, 작으면서 나라라고 부를 수 있는 분위기를 감돌게 해서 "이 섬에 없는 것은 없다"고 주민은 호언했다. 확실히 그 비좁아서 답답한 토지에는 뭐든지 갖추어져 있었다. 단 하나 묘지를 제외하고. 그런데 시간의 흐름은 짓궂었다. 그때 섬은, 거대한 묘지가 되는 운명을 임신(잉태)하고 있었다.
이윽고 탄광은 종말을 맞이해 1974년, 세계 제일의 인구밀도를 자랑한 섬은 사람이 살지 않게(무인) 되었다. 다양한 것들을 남겨놓았으나 주민(사람)만은 사라진 섬, 그 섬은 하룻밤 사이에 모든 주민이 실종된(실종으로 처리된) 빈껍질의 도시 그 자체였다.
10년 후, 물과 식료를 가지고 나는 다시 섬에 들어갔다. 섬은 거칠어지고 있었다. 사람의 냄새도 없어져 있었다. 그러나 건물 속에는 사람이 산 흔적이 아직 농후하게 남아 있었다. 섬은 사람이 떠난 이래, 계속 자고 있는, 이상한 분위기에 싸여 있었다.
그러나 거기서 당분간 체류할(있을) 때, 섬의 인상은 크게 변화했다. 섬에는 여러 가지 것이 남아 있었지만 먼지를 뒤집어쓰고, 녹슬어가고, 죽음을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어느 (살아 있던) 때를 경계로 해서 생생하게,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 섬은 깊게 자고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사실은 무인無人이 된 날을 계기로, 무언가에 눈을 뜬 것은 아닐까 생각되었다.
일찍이 사람의 존재에 의해서 성립하고 있던 질서나 가치관은 섬에서는 완전하게 붕괴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에 산란한 것은 맥락도 질서도 없고 모든 것이 등가였다. 그 광경은 버릴 수 있던 것에 의해서 사람과 사물 사이에 성립하고 있던 주종관계가 소멸해, 그것이 사람의 지배로부터 풀어 발해진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버릴 수 있는 것은 모든 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이었다. 섬에 남겨진 것은 주어진 이름도 숙명 지을 수 있었던 사명도, 그리고 존재하는 의미조차 상실한, 단순한 '물체'로써 거기에 있었다. 책이나 시계나 빈병은 더이상 책도 시계도 빈병도 아니었다. 사람에 의해서 길어 올려진 것은 벌써 섬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주민이 섬을 나와 새로운 인생을 걷기 시작한 것처럼, 섬에 남겨진 것들은 사람의 손때투성이가 된 관념을 벗어던지고 '번뇌에서 벗어난 깨끗함 자체인 물체'가 되어 살기 시작했던 것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나가사키항에서 약 18km 바깥에 있는 남북길이 480m, 동서길이 160m, 총면적 6.3ha의 작은 섬 군칸지마는 1810년에 석탄이 발견되었고, 미츠비시에서 이 섬과 석탄 채굴권을 사들임으로서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합니다. 국가의 보호 아래 채굴되었던 군칸지마의 석탄은 미츠비시 제철소의 제철용으로 이용되었지요. 개발이 시작되면서, 메이지 시대 후반, 기반이 튼튼한 섬 중앙의 암반지대에 3~4층짜리 목조주택이 여러 동 들어서게 됩니다. 점점 인구가 늘어나자, 이윽고 이곳에는 공공시설과 함께 7층 높이의 소학교와 중학교가 들어서게 되고요, 곧 매점과 영화관, 음식점, 오락실, 후에는 병원까지 서게 됩니다. 다이쇼(大正) 5년(1917년), 일본 최초의 철근 콘크리트식 공동주택 30동이 이 곳에 건설됩니다. 이로 인하여 군칸지마는 일본 근대 건축사상 중요한 건축물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섬 면적에 비하면 너무나 볼품없는 건물이었지요. 이 섬이 유명해진 것은 다이쇼(大正) 12년(1924년), 나가사키의 어느 일간지에서 이 섬을 소개하면서 입니다. 이전까지 이 섬의 이름은 端島였는데, 마치 건물이 선 섬의 모습이 군함과 비슷하다고 하여, 이 일간지에서 군칸지마(군함도)라 소개하면서 이름이 바뀌어 버렸지요. 절정기에 군칸지마의 인구는 5200명, 인구밀도는 당시 동경의 9배였다고 합니다. 작은 섬의 규모에 걸맞지 않은 호화로움이었지요. 그러나 1970년, 일본의 에너지 전환 정책에 의하여 더이상 석탄의 채굴이 어렵게되자, 미츠비시는 군칸지마의 개발을 잠정적으로 종료합니다. 이윽고 72년 12월에는 채굴이 중단되었고, 1974년 1월 15일에는 공식적으로 섬을 폐쇄하게 됩니다. 그러부터 석 달후, 이 섬을 연결하던 정기 여객선이 폐선되면서, 2200명의 섬 주민들은 모두 섬을 떠나고, 좁은 면적에 볼품없이 들어서있던 높고 튼튼한 건물들은 완전히 버려지게 됩니다. 현재까지 그 건물들은 남아있지만, 이미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 버려진 섬, 이것이 군칸지마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영도나 소록도처럼 어떤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는 섬이 있는 것처럼, 일본에서는 버려진 장소를 의미하는 상징적인 의미로서 군칸지마라는 단어를 쓰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이를 보존하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어서, 무너지는 해안을 보수하는 등의 모습들도 모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군칸지마를 세계유산으로 지정하자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본토에서도 냉장고나 세탁기등의 전자제품이 보급되지 않았던 50년대에 이미 그런 전자제품이 보급되었던 "선진도시"라네요. *태평양전쟁당시 미군함이 군함인줄알고 어뢰를 쐈다는 일도 있었다는... 그리고 또하나! 일제강점기시절 수많은 우리선조들이 군칸지마의 광산에서 노동착취를 당했다는 슬픈 역사도 서려있는곳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