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4살 대학생입니다.
방탈인 거 아는데 결시친이 가장 많은 분들이 보는 걸로 알고 있어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적 부터 이모네와 사이가 좋아 나름 왕래가 잦았습니다.
아들 둘인 그 집의 첫째가 저를 성추행 했습니다.
10년도 훨씬 지났네요. 제가 초등학교 2~3학년 때였으니까요.
시골집 거실에서 가족 모두가 바로 옆에서 잠들어 있을 때 제 몸을 만진 게 처음이었어요.
바로 옆에 외삼촌, 저희 부모님, 이모들 모두가 주무시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사촌 오빠는 제 몸을 만졌어요.
악 소리도 내지 못 했습니다. 어렸지만 너무나도 수치스러웠거든요. 사실 그럴 용기가 없었어요. 바보같지만 저는 10살도 채 되지 않은 어린 아이였고.. 후에 벌어질 일들이 너무나도 두려워 그냥 모른 척, 자는 척 해버린 것 같아요.
그 후에 이모 댁에서 잘 때도 바로 옆에 저희 부모님이 주무시고 계셨는데 제 윗옷을 풀고 몸을 만졌습니다. 생생히 기억 나요.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때의 그 수치스러움, 분노, 억울함 등 당시 느꼈던 감정은 여전히 생생합니다.
두 번 당하고 엄마를 깨워 말씀드렸어요. 오빠가 방에 들어 왔고 내 옷이 풀어져 있었다구요. 엄마는 내일 아침에 다시 말씀하자 하셨고, 집으로 돌아와 저를 따로 불러 물어보셨습니다.
너무 어려서였는지 멍청해서였는지 어제 했던 말이 기억이 안 난다고 해버렸어요.
알아요. 제가 잘못한 거라는 거. 저도 살면서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그때의 제 결정을 후회하고 제 자신을 원망하며 살았어요. 그러니 이 부분에 대해서 질책은 하지 말아주세요..
어린 나이에 참 두려웠습니다.
누군가가 내 몸을 만졌다는 걸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설령 내 아빠고 내 엄마더라도 너무나도 수치스러웠고
이 일이 밝혀지면 엄마와 이모의 사이는 어떻게 되는 것이며, 엄마와 다른 형제들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참 많이 고민했죠. 그러다 제가 내린 결론은 그냥 덮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 당한 것은 덮되 더이상 당할 수는 없었어요.
혹시라도 가족끼리 모여 같이 자게 되는 날에는 오빠가 잠들 때까지 절대 자지 않았습니다. 자는 척도 안 했어요. 쏟아지는 잠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두 눈 뜨고 음악 듣는 척, 문자 하는 척, 친구랑 전화하는 척... 참 애썼죠.
그렇게 나만 입 다물면 모두가 행복할 거라는 생각에 그놈 얼굴을 보면 치가 떨리고 성추행을 당한 일들이 떠올라 많이 괴로웠지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지냈어요.
그렇게 저는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중학교도 졸업했고, 고등학생이 되었죠.
참고 참으면서 잘 버텨왔는데.. 고등학생 때 언제부턴가 잠을 못 자기 시작했어요. 악몽도 참 많이 꿨구요. 아마도 제가 성장하고 가치관이 자리가 잡으면서 그때 그 일이 정말 잘못 된 일이라는 거, 그리고 내가 피할 이유가 없다는 것 등을 깨달았던 것 같아요.
하루하루 울며 잠들었어요. 어떻게 복수를 하지 생각하면서요.
당시에도 네이트 판에 글을 올렸던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셨지만 몇몇 분들은 당할 때는 잠자코 있어놓고 왜 이제와서 그러냐, 이미 늦었다 라는 말도 하셨네요. 틀린 말은 아니죠.
그런데 제가 살아 온 인생의 절반 이상을 괴로움에 시달리며 살았기 때문에 그놈의 행복도 제가 꼭 빼앗아 버릴 거라는 다짐을 했어요.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그놈에게 결혼할 여자가 생기면 그 결혼을 망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성범죄자랑 결혼하려는 여자 인생도 구제하고 그놈에게 가장 소중한 것도 빼앗을 거란 생각이었죠. 결론적으로 아직까지 그놈은 미혼이라 제가 복수할 기회는 없었네요.
성인이 되면 제게 무슨 힘이라도 생기는 줄 알았어요. 그를 상대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이요. 그래서 성인이 되기만을 기다렸고, 저는 대학생이 되었어요.
스물 두살 때 1년간 해외 연수를 가게 되었어요. 살면서 가족과 처음 떨어져 지내는 것이었고 먼 나라로 떠나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어서 정말 많은 걱정을 했었어요. 혹시나 내가 없는 동안 우리 집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는 거 아닐까 하고요. 가족 사이가 유별나게 좋기도 했고요.
그런데 출국 전날 그놈이 우리 집에 찾아왔습니다. 둘째 오빠랑 함께요. 앞으로 일 년간 저를 못 보니 인사할 겸 찾아왔다구요. 가족과 보내는 마지막 시간에 그놈이 껴있다는 게 너무나도 소름끼치게싫어서 밖으로 나가 혼자 울기도 했습니다.
둘째 오빠는 이미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놈은 도무지 집으로 갈 생각이 안 보이기에 우리 가족이랑 하는 마지막 식사 내가 알바해서 번 돈으로 사겠다고 했어요.
인간이 눈치라는 게 조금이라도 있으면 가겠거니 했는데 자기도 얻어 먹는 거냐며 좋아하면서 이모에게 전화를 걸어 "ㅇㅇ이가 고기 사준대" 자랑하듯 얘기를 하더군요.
네, 그래서 가족과 함께 하는 마지막 식사도 그놈과 함께 했습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정말 당장이라도 테이블 위에 놓인 가위로 찔러 죽여버리고 싶다 라는 생각.. 밥 먹는 동안에 여러 번 했었네요.
그러고 집으로 돌아와 방에 앉아 있는 제게, 굳이 제 방문을 열고 들어와 하는 말.
자기 친구들 중에도 해외 다녀온 친구들 많은데 서양 남자들이 한국 여자를 참 가볍게 생각한다더라. 안 좋은 일 당한 친구들도 많다. 그러니 남자 조심해라.
이 얘기를 듣고도 등신같은 저는 말 한 마디 못 했네요. 그리고 그때 깨달았어요. 일말의 죄책감도 없다는 거. 저는 그래도 아주 조금의 죄책감이라도 갖고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우리 부모님, 그리고 제 동생에게 각별히 더 잘 해주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해외에 있는 일 년동안도 참 많이 생각했습니다. 법적으로도 많이 알아봤고요.
제가 알아 본 결과 공소시효는 제가 성인이 된 이후부터 적용이 되는 거라 공소시효는 아직 지나지 않았는데, 어떠한 물증도 없기 때문에 무고죄로 역고소 당할 수 있다더라고요.
어쨌든 그 후에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최대한 마주치려 하지 않았어요. 저희 집에 놀러 온다고 하면 만날 사람도 없고 약속도 없는데도 밖에서 혼자 시간 보내다 밤 늦게 들어갔구요. 그러고 다음날 아침이면 집에서 나오거나 늦잠 자는 척 방 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명절엔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뭔가 눈치를 채셨는지 엄마가 제게 왜그러냐고 물어 보셨고 저는 10여 년만에 엄마에게 처음으로 털어놨네요.
엄마인데 왜 그동안 말 하지 못 했냐구요?
저랑 엄마랑.. 사이 참 좋아요. 여느 모녀처럼 싸우기도 참 많이 싸웠지만 그래도 가족이니 애틋하고.. 미울 때도 있지만 사랑하고 그냥 그런 평범한 모녀 사이예요.
그런데도 제가 엄마께 말을 못 하고 감춰 온 이유는 어쩌면 엄마도 제 편을 들어주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나봐요.
엄마는 제 얘기를 듣고는 그러시더라구요? 그때 그 당시에 제가 지나가듯이 했던 말. 괜히 한 얘기는 아닐 거라 생각했다구요.
그래서 그때 이후로 엄마는 제게 항상 오빠들이 집에 오면 방 문 잠그고 방에서 자라고 신신당부하셨어요. 저도 느꼈죠. 엄마가 어느 정도는 알고 계셨다는 거...
아무튼 엄마는 엄마도 형부에게 성추행을 당했고, 당시엔 너무나도 수치스러웠지만 그냥 참았다구요. 그런데 여전히 가끔 생각이 난다며.
근데 오빠는 그냥 실수로 호기심에 그랬을 거라네요.
실수라니요. 호기심이라뇨. 백 번 양보해서 호기심에 실수 했다 쳐요. 그런데 한 번이 아니잖아요. 한 번은 실수였을 수 있어도 그 다음부터는 고의 아닌가요?
엄마께 그랬어요. 그놈 당시 고등학생이었다구요. 사리분별 못 할 나이 아니었다구요. 법적으로든 뭘로든 제 방식으로 꼭 벌 줄 거라고 했어요.
너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하시더라구요. 뭘 하든 말리지 않겠다구요. 도와주겠다구요.
네, 제가 무슨 짓을 해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제 편에 서주시겠지만 깊은 속마음까지 제 편은 아닐거라는 걸 알아버렸어요.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난 괴로움 속에서 살았는데... 잊어버리라네요. 제 마음만 문드러진다고요.
그러는 사이에 제 남동생은 입대를 했구요.
비슷한 시기에 아빠께서 조금 긴 기간 해외 출장을 가게 되셨어요. 엄마와 저는 운전을 아예 못 하는데 아빠가 안 계셨기 때문에 동생 수료식 때 먼 거리를 갈 방법이 없었어요.
그런데 엄마가 어느 날 그러시더라구요? 기사 구했다구요. 누구냐고 하니까 그놈이라네요.
이모한테 수료식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르겠다니까 그놈에게 연락이 왔답니다. 자기가 휴가 쓰고 가주겠다구요.
저는 그럼 제가 수료식에 가지 않겠다 했어요. 저는 제 동생과 참 각별합니다. 동생이 훈련병일 동안 단 하루도 안 빼놓고 편지를 썼을 만큼요. 서로 정말 많이 의지하는 그런 남매 사이예요. 그런 제 동생을 보러 가지 못 한다는 생각에 너무 분해 울고불고 난리를 쳐서 결국엔 다른 분과 함께 갔구요.
후에 그놈과 둘째오빠, 엄마 셋이서 동생 면회를 함께 다녀왔습니다.
엄마 마저도 제 편이 아니라는 생각에 서글프더라구요. 제 앞에서 호기심에 그랬을거라며 그놈을 두둔하실 줄은 몰랐죠.
엄마도 내 편이 아닌데 누가 내 편이 되어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암 투병으로 편찮으셨어서 야윈 이모와 이모부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약해졌네요. 제가 이 모든 사실을 폭로하면 정말 쓰러지시기라도 할까봐요.
그냥 여기저기 다 알려버리고 그놈 죽이고 나도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셀 수 없이 많이 했었는데... 그런 놈때문에 아까운 내 인생 날려 버리기는 싫어졌어요 이제.
자식들 다 키워놓고 이제서야 남매끼리 여행도 다니고 함께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 엄마와 이모들, 외삼촌.. 이들 사이도 제가 폭로하게 되면 예전같지 않겠죠.
아무리 미워도 엄마는 엄만가봐요. 이 일 제외하고는 저에게 참 좋은 엄마였습니다. 저와 동생을 키우시면서 많은 희생을 하며 살아오신 저희 엄마, 이제서야 형제들과 일 년에 한 두번 시간 보내며 즐거워 하시는 모습을 보니 선뜻 용기가 안 나요.
그치만 악몽에 시달리고.. 불면증에 시달리며 정말 많이 괴롭네요. 24년을 살아오면서 그때 그 날 이후로 단 하루도 편하게 잠 든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매년 생일, 대학에 입학했던 때, 꿈에 그리던 여행을 갔던 때, 준비하던 시험에 합격했던 때 등등 행복했던 날들이 참 많았는데.. 그 행복함을 느끼며 잠든 날은 단 하루도 없는 게, 그런 제가, 제 삶이 참 가엾고 분해요.
전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추석 전이라 혹시라도 그놈을 마주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요새 다시 불면증과 악몽이 시작되어서 글 한 번 남겨봅니다.
혹시라도 법적으로 조언해주실 수 있으신 분 계시면 법적인 조언도 감사히 받겠습니다.
잠도 안 오고 답답해서 두서 없는 글인데... 얼마나 많은 분들이 읽어주실지 모르겠지만...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