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구리 시리게 만드는
그리움 가득한 가을입니다.
왜 인간은 사춘기 이후로 평생토록
막연한 그리움 속에서
어디선가 나의 이상형이 있어
언젠가는 나에게로 와줄 것만 같은
마음으로 살아갈까요.
당신 없이는 못 살 것 같은
사랑하는 이와 결혼을 해서 같이 살아봐도
허한 마음은 채워지지 않고
또 다른 누군가를 그리워합니다.
옆에 배우자가 있고 나를 꼭 닮은 분신인
자식이 있어도 외롭고 허전한
뭔가 채워지지 않는 빈 구석은
나이 들면 이러다 말겠지. 했는데
환갑이 되고 80 노인이 되고
죽는 날이 가까워도 사라지지 않는
이 공허한 고독감은
내 맘에 쏙 드는 상대가 없어서.
이상형을 만나지 못해 그런 거라고 여깁니다.
이 육체를 입기 전에 나는
음도 아니고 양도 아닌.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영적 존재로 완전한 균형 속에 있다가
세상에 태어날 때는
남자 또는 여성으로 갈려 나와
한쪽만 와 있어서
나머지 반쪽이 없어 채우려는 본능입니다.
이 채움은
밖에 이성이 와서 채워지는 게 아닙니다.
내 맘에 쏙 드는 이상형이 오면 다 찰것 같은
생각은 착각이고 망상입니다.
에고 중심으로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업력(카르마의 기운)에 지배되어
이끌려 살아지고 있습니다.
생각과 말과 행동이 거기서 나오고
만나는 인연들도 그것으로 인해서 오고
사람에게 끌리든 어떤 물건에 끌리든
일이나. 취미, 도박이나 여자에 끌리든
뭔가에 이끌리는 마음도 업의 기운 때문에
그 에너지 작용에 끌려서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상대 이성이 아무리 예쁘고 잘 생겼어도
내 안에 입력된 업의 기운과 맞지 않으면
거부감 들고 싫은 것입니다.
잘나고 돈 많다고 다 끌리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인연이란?
서로 에너지가 강력하게 꼬인 것만큼
강하게 운명처럼 끌립니다.
너는 나의 운명이야. 너 없이 나는
한순간도 못살 거 같아. 했던 상대가
콩깍지가 벗겨지는 순간
천하에 없는 원수처럼 나를 힘들게 합니다.
과거에 살았던 결과로
이미 입력된 내면 기운들이
지금 내 삶을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지구가 돌아가는 시스템은?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고 하는 에너지 법칙으로 운행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석가모니는 "연기작용"이라 했습니다.
내가 태어나 지구로 들어올 때
나의 밝기와 무게를
어둡고 무겁게 와서는
사는 동안에 좋은 기운으로 바꿔서
내 존재의 밝기와 무게를
더 밝고 가볍게 만들어
다시 돌아갈 때는 20와트 정도로 높여 놨다면?
다음에 태어날 때는 가지고간 그대로
20와트를 가지고 와서 다시 시작을 합니다.
사람들이 죽을 때 가는 모습을 보십시오.
모두가 하다 말고서 떠납니다.
왜요 ? 다시 와서 그대로 계속 이어가려고
미완성으로 가는 것입니다.
자신이 생명에너지를 충전해 온 만큼만 살다가
기름 떨어지면 서버리는 자동차와 같은 것이
인생입니다.
사는 동안 만나는 인연들은
내 안에 누적된 업력(카르마의 기운)의 힘에 끌려
유유상종 서로 끌리는 인연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으면
내 안에 카르마기운을 먼저 정화해서 바꿔놔야
그 기운에 맞는 사람이 끌어당겨져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악연을 만났다고 상대를 원망하고
욕을 한다면 얼마나 무지한 인생인가요.
내 안에 기운의 상태 때문에
상대가 끌려온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노력이든 기울여서
좋은 인연을 만났다고 해도
내 안에 막연한 그리움은 결코
그 좋은 상대로 인해서 채워지지 않습니다.
내 안에서 대아와 소아가 합일을 이룰 때만이
완전한 균형으로 허전한 그리움은 사라집니다.
대아와 소아는 에고와 진아 라고도 하고
내면 에너지의 음 기운과 양의 기운의 합일
이라고도 합니다.
내 안에 신성과 인성의 합일이기도 하고
여성성과 남성성의 합일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합일을 함으로
내 안에서 불균형한 기운을 먼저 바로 잡아야
그에 맞는 인연이 끌어 당겨져 오는 유유상종이
되는 것입니다. 끼리끼리 노는 것이지요.
밖을 쳐다보지 말고
나를 보고 나를 알아야 길이 보입니다.
내 안에는 어떤 기운들이 작동하고 있는지,
그 영향은 밖으로 어떻게 드러나서
내 인생 환경이 펼쳐지도록 만들어 지고 있는지
에너지 이동 원리를 알고
기운들의 작용 법칙을 알면
내 인생의 답들이 여기서 다 풀리게 됩니다.
다시 만나봐야 다 그놈이 그놈구나
하는 완전한 알아차림이 될 때까지
우리는 실망하고 사기 당한 기분으로
배신감도 경험하고 아픈 상처들을 맛보아야 만이
결국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다 해봐야 합니다.
볼일은 다 봐야 만이
완전한 앎에 이르게 됩니다.
인생은 0. 제로 상태인 바닥에서 시작해
신성(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는 여정은
하늘이 놓은 구도이고
창조주가
한바탕 노는 게임하는 놀이터가
바로 인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