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너무 울적한 밤이다
내가 초등 6학년때
태권도 학원을 다녔었는데, 중2 오빠가 있었어
그 어린 나이에 첫눈에 반했다는 표현이 이상하지 않을 만큼
정말 첫눈에 반했어
처음으로 남자를 이성으로 느낀 거지..
이 오빠랑 친해졌지 내가 엄청 노력했어 친해질려고.
정말 잘생겼는데 착하고 태권도만 열심히 하는 오빠였어
그 나이 또래 잘난척하기 좋아하는 다른 중학생 오빠들과 달리
겸손하고 배려심도 깊고 항상 웃고 다니는 오빠였어
이 오빠 때문에
부모님이 태권도 끊고 공부하라고 계속 뭐라 하셔도 들은 척도 않고 꾸준히 다녔어.
중3때까지...
근데 중3 가을 쯤에 오빠가 오토바이 사고가 났어....오빠는 고2였지
큰 사고였나봐 나도 오빠 오토바이 뒤에 같이 탄 적 많았는데...
그래서 중상으로 큰 병원에 입원했어
오빠가 태권도 학원에 나올 수 없게 되니까 나도 학원을 그만뒀지
난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교 끝나자마자 병원부터 갔는데
오빠는 다음해 3월까지 계속 거동을 못 했고 결국에 하반신 마비가 됐어..
친구들 다 중3 겨울방학~고1 개학까지 남은 시간 놀러다닐 때
난 매일매일 오빠 병문안 다니면서 울었어
너무 슬펐고 하루하루 이게 꿈인가 싶었어
그 오빠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을 텐데
병문안 갈때 마다 항상 고맙다고 해줘서 정말 내가 더 고마웠어
오빠는 움직이질 못하니까 날이 갈수록 계속 붓고 피부도 상하고 그러다가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미소도 사라져갔어 점점...
그렇게 밝고 긍정적이었던 오빠도 감당하기에 그 시간이 너무 힘들었던 거야
마음이 찢어졌어
그렇게 6달 정도 병문안 생활하다가 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그때 내가 눈이 멀었는지..
오빠랑 똑 닮은 남자애를 마주치고 나서 걔한테 계속 시선이 가는 거야....
심지어 나랑 동갑이고 바로 옆반 이었어
마치 아프기 전의, 내가 반했던 그때 오빠의 모습이 보이는 거야
계속 걔한테 눈이 가고 걔가 웃는게 좋고..
내가 걔한테서 내가 바라는 오빠의 모습을 찾으려 했던 걸지도 모르지
그러다가 내가 걔한테 그랬어..내 이상형이 너같이 생긴 사람이라고...
그러니까 걔가 나한테 사귀자고 하더라
난 내가 정말 얠 좋아하는지, 오빠를 좋아하는지, 내 마음이 뭔지 너무 헷갈리고 복잡한 심정이었어
근데 그때 내 심정이
오빠가 사고 난 후부터 계속 우울하고
오빠 병문안 갈 때마다 더더욱 망가져가는 오빠 모습 보면서 어느 순간..
오빠랑 있을 때 설렘이란 감정보다 슬프고 속상한 감정밖에 남지 않았다는 거야
사실 아프고 힘들어하는 오빠를 보면서 설레고 행복한 감정을 느끼려하는게 말이 안 되는 건데..
난 걔 고백을 받아들였고
그렇게 그 애랑 연인이 됐어..
얘랑 사귀고 나서부턴
오빠 병문안을 하루 1번에서 1주에 1번..한 달에 3번...2번...1번으로 점점 줄여갔어
그런데 그 애랑 그렇게 오래가진 못 했어
걔를 볼때 마다 오빠가 생각나고
오빠가 건강했다면 이랬을까? 오빠는 안 이랬을텐데..하고 상상하게 돼서
사소한 말다툼을 트집삼아 쉽게 헤어져 버렸어
걔랑 사귀면서 내가 정말 오빠를 여전히 많이 좋아하고 있다는 걸 분명하게 깨달았지
그런데 그 사실이 너무 슬프더라
나도 이제 슬픔에서 벗어나고 싶고
아픈 오빠한테 내 감정을 전한다는 자체가 상상도 되지 않았으니까
빨리 마음을 접고 싶었던 거야..
그래서 그 애랑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는 아예 오빠 병문안을 가지 않았어
연락도 안 했어..
오빠한테 요즘 왜 안 오냐는 문자가 왔는데
이제 고2니까 공부해야돼서, 바빠서 핑계대며 못 간다고 했어
그렇게 연락이 끊어졌어..
그리고 20살이 돼서
웃긴게..아직도 그 오빠 닮은 남자가 내 이상형이였지 오빠를 닮아서 내 이상형인건지, 내 이상형이 원래 그런 남자인건지 이제 분간도 안 되더라
오빠를 잊으려고 해도 계속 문득 문득 생각났어
그래서 정말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요즘 어떻게 지내나 걱정되기도 하고 그래서 홧김에 오빠번호로 전화를 했는데 번호가 바꼈대
병원 가서 찾아보니 오빠가 없는 거야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당연한 건가 싶다가
태권도학원관장님한테 오빠 안부 물어보려고 전화를 해봤어 근데...
오빠가 죽었대..자살했대.....
내가 미안할 일인지 모르겠지만
오빠한테 너무 미안한 거야
그냥 너무 너무 미안해
미안하단 말 밖에 생각이 안 나
미안하고 오빠가 왜 안 오냐고 보고 싶다고 했던 것도 생각나고
이제와서 오빨 보러 가지 않았던게
연락을 끊었던거
내 진심을 말하지 않았던 거 다 너무 후회가 돼...
오빠 잊으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는데
내가 왜 그랬을까 보고 싶을 때 그냥 보러 갈걸
평생 못 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