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커플의 연애를 응원하는 마음에 소소하게 글 남깁니다. (소소하게 쓰려다가 잔뜩 길어졌네요.ㅜ
퇴근 후 수유역에 도착해 친구녀석들이랑 한잔 하기위해 역앞에서 친구놈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사람들이 스쳐가는 번화가의 저녁시간 사이에, 덩치있는 체구의 젊은 맹인 한분이 뭐 그리 기쁜일이 있는지, 연신 웃으면서 통화를 하고 있더군요.
그러다 그 맹인 분들이 쓰는 막대기랄까요? (지팡이 같은) 그걸 접어서 가방에 넣고는 혼자 출구 주변 매장들을 왔다가 다시 갔다가를 반복하는 거예요.
처음부터 그런 행동을 지켜본 저는 그저 조심스럽게 바라보았으나, 주변에서 역시 친구를 기다리는 듯한 아가씨 몇분은 갑작스런 맹인의 행동에 불쾌한듯 자리를 벗어 났습니다.
십여분쯤 반복했을때는 '길을 잃었나?' '그럼 지팡이는 왜 넣었지?' '도와 줘야 하는건가?' 등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전화통화를 하는 모습에서 계속 즐거운 미소만 보이기에 잠시 더 지켜봤습니다.
그러자 다시 출구에서는 기다리던 친구놈은 안오고 한무리의 사람들이 지나간뒤, 한 젊은 아가씨가 에스컬레이터로 올라왔습니다.
손에는 맹인용 지팡이가 들려있었고 초록색 자켓, 단정한 치마에 굽이 낮은 검은 구두를 신고있던걸로 기억합니다.
'아 여자친구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든 것도 잠시..
서로에게 다가가 반갑게 손을 꼬옥 잡고는 얘기를 나누더니 방금 전 남자가 몇차례나 왔다갔다했던 매장앞으로 남자가 안내합니다.
그러더니 다시 옆가게로 걸어갔다가 또 갸우뚱하더니 다른 가게로 갔다가...
남자분께서 몇번이나 연습한걸 알기에 그저 속으로 응원하고 있었지만 계속 원하는 매장을 못찾는것 같아 안되겠다 싶어 다가갔습니다.
사실 길에서 마주치는 맹인분들에게 말을 걸어본적이 없기에 앞 쪽에서 말을 걸어야 하는지, 옆에서 말을 걸어야 하는지,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말을 붙여야 하는지, 내 도움이 쓸데없는 측은지심일지...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옆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저 혹시 길을 잘못 드신것 같은데 어느 매장으로 가시나요?" 라고 물어보니 ..
"럽 디 샾 이요" "네?" "덥 디 샾" "네? 덥디샾이요?" 남자분께서 워낙 말을 빨리 하셔서 못알아 들었는데 옆의 여자친구가 피식 웃더니 "더 바디 샵이에요" 라고 합니다.
"아..네" 그러고는 주변 매장을 잽싸게 훝어 보았지만 보이질 않기에
"저 여기 주변에는 없는것 같은데.." "어? 그럴리가 없는데?" "혹시 괜찮으면 한 일분정도만 여기 계시면 제가 저 앞에까지 다녀와 볼께요. 잠시만 계세요."
라고 하고는 급하게 수유역 팔번출구 주변을 빠르게 둘러보았으나 아쉽게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커플에게 돌아가기 위해서 멀리서 부터 다가가는데, 그때 ...
어머니한테인지 형제들한테 도움을 받은건지 참 깔끔하게 옷을 입은 여자친구와, 자신에게 예뻐 보이고 싶은 여자친구의 마음을 아는지 옆에서서 다정히 손을 잡아주고 있는 남자친구가 보였습니다.
너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아니..음...그보다 성스러워 보였다고 할까요?....
서로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상대를 제대로 바라볼 수는 없지만 정말 서로를 깊히 사랑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맹인 커플에게 다가가 더 바디 샵은 이 근처에 없는 것 같아요. 라고 말하려던 순간 그 남자분이 계속 왔다갔다 반복했던 그 간판도 없던 매장 유리문에 '폐점'이라고 써진 글씨를 발견했습니다.
조금 더 앞으로 가 자세히 보니 간판을 떼어낸 자리에 the body shop 이라는 흔적이 남아 있네요.
'아..여자친구 화장품 사주려고 그렇게 혼자 왔다갔다 했던 거구나..'
커플에게 다가가 "여기 폐점이라고 쓰여있네요. 방금 가셨던 곳이 맞는데 여기가 폐점이 되었네요."
"아...... .. 네.. 정말 감사합니다.감사해요." 라는 말을 남기고는 제가 서있는 곳과는 조금 옆으로 연신 꾸벅꾸벅 허리를 숙입니다.
그러고는 커플은 뒤돌아 번화가 쪽으로 여자친구의 막대기 하나에 의지해 서로 손을 잡고 인파들 사이로 사라졌습니다. 평소에는 잘 느끼지도 않던 따듯해진 마음에..문득 오래사귄 내 여자친구도 퇴근 시간인것 같아 전화를 걸어보았습니다.
뚜...뚜.." 어 오빠, 여보세여? "
"퇴근했어? 오늘 힘들었지?"
"아 몰라..다 짜증나 (ㅋㅋ) 병원 선생님들이랑 술먹으로 갈거야."
"어..어 그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드디어 저 앞에 출구에서 거래처와 전화를 하며 올라오는 불알친구놈이 보입니다.
아, 맹인커플님..제 이야기는 보실 수 없겠지만, 덕분에 그날 참 잊고있던 무언가를 얻은 따뜻한 날이었어요.
더욱 열렬한 사랑 응원합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