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부모님댁에서 얹혀 사는데 그러다보니 월세 나가는 것도 없고, 식비 나가는 것도 없어. 부모님은 노후 준비되어 계시고 지금도 소소하게 일하시고 계셔. 연금도 나오고.
그렇다고 부모님이 따뜻한 밥 차려주시는 건 아니야.
아침에는 빵 먹고 출근하고, 점심은 회사에서 나오고, 저녁은 집에 와서 시리얼이나 간단하게 조리할 수 있는 식품이나 후라이해서 햇반 데워서 먹던지 그렇게 해.
그러다보니 지출이 거의 없어.
그리고 더 많은 수입을 위해 열심히 사는 타입이야. 건강관리도 나름대로는 하지. 술이나 담배를 안 하는 건 물론 삼겹살 같은 것도 안 먹고 운동도 거의 매일하려고 노력해.
암튼 나름 열심히 사는 사람이야. 그리고 항상 피곤에 쩔어 잠들지. 수면 시간도 5시간 30분 정도 밖에 안 되고. 예전에는 누워서 잠이 안 올 때가 있었는데 잠을 줄이고부터는 자야지 하면 바로 기절해.
그런데 난 꽤 빡세게 산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환상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추진할 수 있고, 그럴 자금적인, 시간적인 여력이 있고, 내가 하기 싫은 일은 안 해도 돼.
퇴근 후, 주말이 다 내 시간이고, 내 맘대로 조절할 수 있지.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한다고 생각해보면 정말 두려워. 환상 속에 살고 있던 내가 발목을 잡혀 현실 속으로 던져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
현실 속에 나는 돈을 벌어 아내에게 갖다줘야 할 것이고, 아내는 그 돈으로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사겠지. 난 더 이상 아무런 자금도 없을 것이고(집을 샀을테니까) 생활비를 위해 계속 회사에 충성하면서 알랑거릴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그렇게 월급을 받아도 남는 것은 없을 것이고, 난 그 굴레를 관에 눕기 전까지는 벗어날 수 없을 거야.
대체 이렇게 사는 게 지금 죽는 것과 뭐가 다를까? 내가 하고 싶은 것들 아무 것도 못하고 그저 돈만 벌러 집과 회사만 오고 가는 삶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물론 결혼을 하고도 하고 싶은 일 다 하면서 사는 남자들도 있더라. 낚시도 하고, 친구랑 술도 진탕 마시고, 바람도 피고... 등등
하지만 난 결혼을 하고나서도 내가 하고 싶은 생활을 지속하면서 아내와 싸워나갈 자신이 없어. 그러면 집 분위가 항상 살벌하고 안 좋을거잖아. 내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돈 벌어다 갖다주고, 퇴근하고나서도 집안일 하다 지쳐쓰려져 잠들어야 사랑받는 남편이 되는거잖아.
난 결혼한 뒤에 친구랑 만나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고, 딴 여자랑 카풀하고, 안마방 기웃거리고, 내 취미생활에 돈 쓰고... 이렇게 내 권리를 주장하며 살아가고 싶지 않아. 많은 남자들이 이렇게 살잖아. 결혼은 결혼대로 하고, 생활은 총각시절처럼 하고 말야.
난 내 방식이 욕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결혼해놓고 그 이후부터도 자기 맘대로 사는 남자가 이 대한민국에 80%가 넘는다고 생각해. 거의 절대 다수지.
하지만 난 그렇게 결혼해놓고 무책임하고 싶지 않거든. 결혼했다면 1~100까지 희생하며 내 인생 내 시간, 내 돈, 내 권리 따위는 없다라는 마음으로 살 것이고, 그렇기에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거든.
결혼해놓고, 아내 임신까지 시켜놓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 다 하면서 사는 놈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데, 아예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내가, 대체 왜 무책임하다고 욕을 먹어야 하는 걸까?
난 그냥 환상 속에서 살아가고 싶어.
내가 아침에 출근하는 것도, 내가 퇴근하고와서 지친 몸으로 운동하러 가는 것도, 졸려도 이를 악물고 새벽에 일어나 공부하는 것도 다 내 환상 때문이거든. 내가 결혼을 해서 현실로 끌어내려진다면 난 아마 동력을 잃고 쓰러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