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혁필은 또 다시 취조실에 앉게 되었다. 정혁필은 한참동안 조사를 받았지만 사실 모든 것은 원점이었다. 정혁필이 사건현장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살인을 하는 현장이 목격되지 않았다. 그리고 정혁필은 자신이 아닌 자신의 그림자가 한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취조가 마무리 된 그를 창 밖에서 강반장과 최형사가 바라보고 있었다.
“또 같은 얘기군요...”
“그래… 그런데… 하나 걸리는게 있어…”
“뭔데요?”
“정혁필이 말하는 ‘God’라는 이름의 채팅 친구 말야…”
“왜요?”
“저자는 어째서… 그의 말대로… 회사를 옮기면서까지… 그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는 거지…”
“사이버 중독인가요?”
“글쎄… 어쩌면.. 그자가.. 이 사건의 주모자가 아닐까…?”
“한번 조사는 해 보죠… 단서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래… 수고 좀 해 줘야겠어.”
정혁필은 불안한 모습으로 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나저나… 어쩌죠. 직접 죽인 것을 본 것도 아니고... 지문도 없고... 단지 주변에 있었다는 것 만으로 구속할 수는 없어요.”
“일단, 유치장에 넣어둬!”
“그래도 될까요?”
“나가면 자신이 또 살인을 저지를지 모른다고 하잖아.”
“반장님… 설마... 저 사람 말을 믿는 것은 아니겠죠?”
“...”
그날 혁필은 경찰서 지하 유치장에서 밤을 맞았다. 혁필은 잠을 자지 않으려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는 혼자말로 계속 중얼거렸다.
“자면 안돼... 자면 안돼... 자면 안돼... 자면...”
경찰서 본관에서는 강반장이 책상에 스탠드를 켜 놓고 혼자서 책을 숙독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현재몽은 단지 무서운 가면에 지나지 않고, 실제로 전혀 다른 것을 뜻하고 있거나, 또는 그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사람의 대신이며, 우리가 속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는 궁금증에 목이 마른 듯… 침을 발라 책장을 넘겼다.
“우리의 의식생활에서 유래하고, 의식생활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그 무엇과 무의식의 영역으로부터 나오는 그 무엇이 결부되어 꿈이 되는 것이다.”
그는 매우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진화시키고 있었다.
“꿈은 다만 단순한 계획이나 경고가 아니라, 항상 어떤 무의식적인 소망의 힘을 빌려 계획이나 경고 등을 태고적 표현양식으로 번역하여 이 소망을 채우도록 그것을 변형한 것이다.”
그는 점점 더 진지해 져서 책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꿈은 꿈을 꾼 사람 자신의 소망을 비난하고 검열한다. 소망충족이 꿈의 유일한 의도인 이상 꿈은 완전히 이기주의가 될 것이다.”
그는 중얼거렸다.
‘꿈이 아니어도… 인간은 충분히 이기적이야… 그런데… 자신이 절대자인 꿈이라면… 인간은 얼마나 더 이기적일 수 있는거지..’
#31
채연은 새벽까지 자지 않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강반장이 채연을 방문한 것이다. 채연은 강반장을 확인하고 조금은 놀랐지만 곧 문을 열어 주었다.
“꼭두새벽부터 웬일이죠? 제게도 취조할 일이 있나요?”
강반장은 무툭툭하게 안으로 들어와 소파에 앉았다. 그는 소파에 앉자 곧 자신의 궁금증 털어놓았다.
“그 사람 계속 같은 말만 되풀이 하더군요... 꿈 얘기...”
채연은 대답하지 않고 차를 준비했다. 채연이 대답이 없자 강반장은 약간의 초조함을 드러내며 다시 되물었다.
“제말 듣고 있나요?”
그러나 채연은 여전히 강반장을 애타게 하고 있었다.
“그래서요?”
강반장은 다시 자신이 원하는 질문을 되풀이 했다.
“그 사람도 모르는 사실을 알고 싶어서요.”
그러나 채연은 강반장의 기대와는 달리 엉뚱한 질문을 했다.
“커피?”
“네... 블랙으로...”
그 대답으로 채연이 커피를 내려서 가져올 때 까지 두 사람은 서로 말이 없었다. 커피향만이 온 방 안에 가득 퍼지고 있었다.
“그런데, 알고싶은게 뭐라고 하셨죠?”
커피를 가져와 마시면서 마침내 채연이 강반장에게 물었고… 강반장은 자신이 풀지 못한 숙제의 답을 그녀에게 요구했다.
“어째서 다시 어린시절의 꿈이 재발됐느냐 하는거죠?”
채연은 커피향을 한모금 들이 마시며 말했다.
“그 사람 말을 믿나요?”
강반장도 커피를 들며 말했다.
“조금은...”
채연은 커피잔을 내리며 말했다.
“어느정도죠?”
“아주 조금요.”
“그 사람이 살인자로 인정될 만큼만 믿으시겠죠?”
채연은 이말을 하며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그리고 커피의 고소한 향기가 뜨거운 김에 퍼지며 그녀의 시야를 흐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흐릿하게 번지는 잔 위로 강반장의 눈은 노려보고 있었다.
“...”
강반장은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채연은 혼자 생각했다. ‘전혀 미동을 하지 않다니… 내 말이 딱 맞는 모양이군…’ 그렇게 그가 아무 말이 없자 채연은 커피를 내려 놓으며 말했다.
“반장님의 소망은 사건해결 이겠죠? 사건해결을 위해서 반장님은 당신이 지금까지 믿지 않았던 현상들을 조금은 믿으려 하고 있어요.”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혁필씨도 마찬가지예요. 자신이 소망을 성취하기 위해 자신이 인정하지 않던 또 다른 자아와 계약을 했어요. 꿈인데... 무슨짓인들 못하겠어요. 어린시절 잊었던 꿈이 성장한 현재 다시 필요해진 거예요. 직장 상사로 부터 시작된 살인에 대한 충동이 이제는 제어할 수 없는 상황까지 진행되고 있는 거예요.”
“…”
강반장은 다시 깊은 생각에 빠져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