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나온 인생 나열하기 하자! 당시에는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웠는데 그냥 담담히 쪼르륵 나열하니까 되게 별거 아닌거 처럼 보인다 ㅎㅎ
1세. 서울에서 태어남.
2세. 부모님 가난하셔서 반지하 사셨다함. 나는 기억 안남.
4세. 남동생 태어났는데 얘는 누구냐고 갖다 버리라함.
5세. 가족 다 같이 어느날 거실에서 쪼르르 누워서 잠. 문득 눈을 떳는데 눈 바로 앞에 거실 천장 조명이 보였음. 그리고 밑을 내려다 봤더니 가족들과 내 몸이 누워서 자고 있는거임. 나는 둥둥 떠서 천장에 있었음. 내 몸으로 들어가려고 발버둥치는데 안되서 엉엉 울었음. 이대로 거실을 벗어나면 절대 몸으로 안들어가질 것 같아서 계속 내 몸 주위를 헤매며 울다가 순간 확 몸이 일어나면서 깸. 진짜 무서웠음.
6세. 충남 시골로 이사.
7세. 엄마아빠 너무 바빠서 크리스마스 유치원 학예회에 못오심. 그때 모든 어린이들이 부모님이 미리 유치원에 보내 주신 크리스마스 선물을 산타로 분장한 원장님께 받는데 나는 엄마아빠가 까먹어서 선물을 못 받을 뻔함. 근데 선생님이 어떤 친구한테 문구세트 작은거는 나 주자고 해서 선물 나눠 받음. 진짜 고마웠는데 너무 슬펐음.
8세. 시골 작은 분교 초등학교에 들어감. 그때 93년생이 제일 많아서 그나마 11명이 같은 학년이었고 나머지 전교생은 29명이였음. 학교가 너무 작아서 어떤 학년은 2명인가 그랬음.
10세. 학교 폐교 직전이었는데 '대안학교' 라고 좀 특별한 학교 만들기 운동을 해서 유명해져서 학교 폐교 막음.
11세. 학교 꿀잼이었음. 거의 기본 공교육은 안받고 맨날 놀았음. 예를 들어 아침에 등교하면 뒷산 산책하고 돌아와서 오늘 느낀 감정, 산에서 뭘봤는지 등을 시도 쓰고 몸으로 표현하기 등을 했고 속독법도 배우고 책읽고 토론하기 등이 수업이었음. 수학이랑 영어 배우긴 했는데 딱히 그런것 보단 오후에 학교앞 시냇가 나가서 물놀이하고 돌아와서 우리가 심은 수박도 먹고 전교생이 가꾸는 텃밭 거름주고 밭 갈고 그랬음. 봄 여름 가을 겨울 다 프로그램이 달랐는데 봄엔 대체로 쑥 캐다가 떡해먹고 밭갈고 거름줘서 텃밭 정리하고 작물 심고 여름엔 작물관리하고 시냇가에서 놀고 가을엔 작물 학년별로 심은거 예를들어 고학년은 좀 어려운거 심고 저학년은 쉬운거 심는데 그거 수확함ㅎㅎ 방울토마토 이런거 심은 학년 작물은 수확 할 것도 없었음. 애들이 토마토 열리면 바로바로 다 따먹어서 ㅋㅋㅋ고구마심는게 짱이였는데 겨울에 석유난로에 맨날 구워먹을 수 있었음. 그리규 겨울엔 배추 심은걸로 김장해서 보쌈해먹음. 이런식으로 졸업할때까지 한 4년 놀았음.
12세. 같은 반 여자애가 영어지문을 후루룩 읽는 걸 보고 감동 받음. 집가자마자 엄마 졸라서 영어 공부함. 윤선생 영어 교실도 하고 엄마가 영어 동화책 사다줘서 그거 테이프 받아쓰기하고 그랬음.
13세. 졸업 다가올수록 일반학교 가는거에 대한 두려움이랑 기대감이 동시에 들었음.
14세. 일반 여중을 갔는데 진짜 너무 힘들었음. 맨날 놀면서 학교다니다가 하루종일 책상에 붙어 앉아있으려니 고통이였고 시험보는것도 줄 띄어서 컨닝방지하고 등등 너무 어색했음. 게다가 첫 학기부터 어쩌다 반장이 되서 적응하기 바빳음. 공부도 못함ㅎㅎ
15세. 시에서 주관하는 미국 2주 단기 어학캠프에 당첨됨. 영어인터뷰로 시험봤는데 운이 좋아서 준비한 질문만 나옴. 어떨결에 1등으로 합격해서 미시간 주립대에서 2주정도? 지냄. 근데 기숙사 샤워실에서 녹물 나오고 막 찬물만 나와서 너무 싫었지만 시골에서 살다가 미국와보니 세상 너무 넓었음. 미국 다시 꼭 와야겠다고 다짐함.
16세. 공부 짱 못해서 수학 10점 맞은 적도 있음. 근데 국사는 너무 좋아서 95점 맞은거 기억남ㅎㅎ 근데 이때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음. 반에 진짜 이게 사랑인가 싶을 만큼 좋아했던 여자애가 있었음. 레즈는 아닌데 여튼 얘때문에 학교가는게 행복하고 방학이 싫었을만큼 좋았음. 이 친구 덕에 1년간 학교 즐겁게 다녔고 또 이때에 반 친구들 모두 단합이 좋았어서 다같이 공부안하고 잘 놀았음.
17세. 여고를 갔는데 공부하려니 너무 힘들었음. 기본적으로 머리가 빠가임. 노력은 하는데 공부법을 몰랐음. 엄마아빠가 책 많이 읽고 두 개 신문 사설 노트 만들고 하는걸 더 중요하게 여기셔서 그냥 맨날 하루 한권 책읽는것 만 함. 중학생때부터 거의 하루 한권씩 읽고 신문 읽기는 중2때부터 해서 사설노트가 쌓였음.
19세. 여전히 공부 못하고 내신 거의 3.5였나? 반에 운동부여서 오전 수업만 하는 애보다 성적 안좋았음. 빠가인데 그래도 매년 한번씩은 꼭 반장도 하고 방송부도 해서 이것저것 찔끔찔끔 뭘 하긴 함. 공부빼고. 그러다 내신으로는 대학을 갈 수 없다는 걸 알아서 수능 준비함. 우리 시골학교에서 수능 준비는 좀 무리수 였지만 언어 2등급 왓다갔다 하고 외국어도 2등급 왓다갔다 해서 한번 도전 해보자 해서 도전함. 오전 7시에 일어나서 학교가서 공부하고 독서실가서 공부하고 집오면 새벽2시, 잠들면 3시였음. 하루 4시간 정도 자면서 열심히 해봤음. 머리를 너무 많이 쓰면 잠들기가 어렵다는 걸 처음 알았음. 그래서 수능특강 수리 영역 틀어놓고 잠. 5분만에 잠드는 기적ㅎㅎ수리는 애초에 포기했기 때문에 나머지로 승부수를 던졌는데 수능 결과 똥망. 언어가 그때 좀 어려웠어서 멘탈 붕괴하는 바람에 그 뒤로 쭉쭉 망함. 집와서 가채점 하니 언어 1개 틀렸었음. 멘탈 잡고 나머지도 잘했으면 좋았을 걸 언어1등급이랑 사탐 두개1등급 빼고 다 쪽망했음. 그래서 동네에 사립대 간호학과 어찌저찌 들어갔음. 원래는 정치 관심많아서 북한학과 가고 싶었는데 미국이나 외국 나가려면 전문직종 하나는 우선 가지고 시작해야할것 같아사 간호학과감.
20세. 그래도 이제 전공공부만 하는거니까 잘 하겠지 했는게 경기도 오산. 여전히 공부못함ㅎㅎ 근데 무엇보다 과군기가 있어서 선배들 보면 인사해야하고 인사 제대로 안하면 집합당고 욕먹고 좀 힘들었음. 멀리서 간호학과 과잠만 보이면 벌벌 떨었음.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애들끼리 뭐하는 짓인지 어이없음.
21세. 공부 열심히 해도 성적 안좋음. 그래서 그럼 그냥 아예 공부를 하지말자 노선으로 바꿈. 그래서 조금씩 공부를 아예 안함. 그리고 남는 시간에 여기저기 시위도 다니고 정치공부 열심히 함. 어머니가 민주노총지부에서 일하셔서 노동공부도 하게되고 역사공부도 하게됨. 여튼 대학교 공부 아예 안하고 성적도 안좋으니 차라리 후련했음. 알바도 하고 바쁘게 지냈는데 여전히 과군기 무서웠음. 아직 저학년이라 쭈꾸리로 다녀야했음.
22세. 병원 실습다니기 시작. 실습하면서 케이스스터디도 하고 퀴즈도 보고 눈치도 많이 봐야하고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졌고 체력도 건강도 안좋아짐. 삶의 희망이 없었음. 간호학과 공장에서 찍혀나오는 간호사가 되는 것 같았음. 근데 4학년들이랑 마주치는 일이 많이 줄어서 그나마 학교는 눈치안보고 다님 ㅎㅎ한달 두달 한학기 버티는게 낙이었음.
23세. 4학년 1학기 마치고 호주 워홀감. 이미 성적 똥이라 대형병원 갈 수도 없었고 가기도 싫었음. 그래서 미국이나 호주로 훌쩍 가고 싶었는데 우선 호주비자가 잘 나오니까 호주 워홀을 가봄. 혼자 퍼스라는 시골의 작은 공항에 내리고 나니 갑자기 현타옴. 졸라 나 무슨 짓을 저지른거지 싶었음. 먹고는 살아야해서 이튿날 부터 알바를 구함. 이때 호주 간호사들은 어떻게 사는 지 궁금해서 병원 내 카페테리아 알바만 찾으러 다님. 그래서 대학병원이랑 중소병원이랑 두개 카페에서 주 5일 바리스타로 일해봄. 이때 간호사들 많이 만나서 이야기도 해보고 닥터도 만나봄. 먹고 놀고 뚱땡이로 반년 잘 살다가 한국 와서 아이엘츠 공인영어 시험 보고 오버롤7.0 따고 대학교 복학함.
24세. 복학해서 남은 4학년 2학기 딩가딩가 다니다가 국가고시 공부를 하는데 4년내내 공부한 기본도 없고 게다가 호주에서 놀다 와서 머리가 텅텅 비었음. 이러다 국시 떨어질 것 같아서 백만원주고 국시 인강까지들음. 울며불며 두달 공부해서 국시 통과하자마자 미국갈 준비함. LA 어느 컬리지에 미국 간호학과 학위 받는 프로그램으로 유학길을 오름. 부모님 가난하시지만 마이너스 통장 땡겨서 천만원정도 도와주심.
25세. 미국와서 처음에 힘들었음.컬리지도 다녀야하고 생활비도 벌어야하고 공부도해야하고 미국 간호사면허증도 따야하고 바빴음. 차도 없어서 뚜벅이로 좀 고생함. 이때 피부도 죽고싶을만큼 안좋아져서 밖에 나가는것도 싫었는데 알바도해야하고 학교도다녀야하고 밖에 나갈일이 많아서 너무 힘들었음. 후반기엔 진짜 피부때문에 죽고 싶었음. 그러다가 간호사 면허증 겨울에 따고 피부도 조금씩 원상 복구 됨. 나는 진짜 피부때문에 죽고 싶다는거 너무너무 이해감.
26세. 면허증 딴 뒤로는 좀 생활이 널널해져서 컬리지 다니고 성형외과에서 알바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냄. 그러다 지금의 남편만나서 연애하고 컬리지도 졸업할 날이 점점 다가오고 생활에 여유라는게 생김. 하반기에 졸업 하고 인턴 비자 발급받아서 재활센터에서 취직해서 일했는데 병원이 정말 체질에 안맞는건지 한국 병원이나 여기나 똑같이 일끝나고 집오면 우울하고 슬펐음. 시체같이 살고 있으니 남편이 그만두고 성형외과 쪽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용기를 줌.
27세. 상반기에 백인동네 성형외과에 취직함. 미국은 레이져 치료, 보톡스, 필러같은 시술이 간호사 잡임. 한국은 의사만 할 수 있지만 미국은 간호사부터 가능. 그래서 이런 메디컬 스파 라는 성형클리닉? 피부관리실? 한국에는 없는 개념인데 여튼 이런곳이 많고 간호사가 많이 필요함. 첫 스타트를 성형외과로 시작하게 되서 이쪽으로 쭉 경력쌓고 계속 일하게 될것 같음. 나중에 처방 전문 간호사가 되서 내 클리닉을 열고 싶음. 미국은 닥터 처럼 처방전문 간호사라고 대학원 나오면 본인 의원을 개원할 수 있는 직업이 있음. 주마다 법이 조금씩 다른데 골자는 비슷함. 사주에 평생 공부만 하는 팔자라더니 빠가머리로 내년에 대학원감. 어찌저찌 성적 컷트라인 걸려서 들어가게 됨.
28세. 내년에 이제 28살 되는데 28살이면 엄청나게 많은 걸 이뤗을 줄 알았는데 별거 없음. 하지만 확실한건 학생때보단 직장인이 나음. 학생은 그냥 돈 없는 방랑자임. 근데 직장인은 그나마 돈은 있어서 방향이라도 잡고 어디로든 달릴 수 있음. 결론은 살아보니 직장인이 낫다 ㅎㅎ그리고 덕을 많이 쌓으면 그 덕이 돌아온다. 또 멍청해도 노력을 많이하면 한계를 넘을 수는 있다.
미국에서 외노자로 살고 있지만 항상 우리 나라 사랑하고 우리 국민이 최고라고 자부하며 살고 있음. 우리나라 사람들 어딜 가든 대우 받고 1등함. 진짜로. 여기서 많이 배워서 한국을 자랑 할 수 있는 국민이 되도록 노력하겠음. 급 국뽕이지만 대한민국 사랑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