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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의 가해자 김정선씨, 저를 기억하십니까.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할까요.

우선 당신의 안부를 묻습니다.
김정선씨 잘 지내시는지요.
기억하십니까.
당신의 폭력으로부터 살아남은 우리 모녀를.
전 당신의 첫부인의 살아남은 둘째 딸입니다.

어릴 때부터 항상 마음 먹었습니다.
언젠가는 당신에게 나와 어머니의 안부를 전하겠다고.

어머니는 25살에 결혼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전 올해로 34살입니다. 어머니께서 8살인 저를 데리고 야반도주하여 다시는 돌아가지 않은 그 나이가 됐습니다.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제 언니는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 밑으로 여동생은 유산했지요.

전 그렇게 3명분의 목숨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았고 아직도 받고 있습니다. 전 트라우마로 인해 유년기 대부분의 기억이 없습니다. 부분 부분 기억나는 것은 당신의 폭력뿐입니다.
기억하는 것만해도 끔찍한데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폭력, 온전히 어머니 홀로 안고 가시는 고통들은 얼마나 큰지 짐작도 되지 않습니다.

식칼로 어머니를 찌르셨지요.
병원도 가지 못하게하여 어머니께서 직접 바늘로 한뼘이나 되는 본인의 살을 꿰매셨지요. 아직도 흉터가 선명합니다.
몇해전 허리디스크 수술 받으신 흉터는 이제 거의 보이지도 않는데, 20년도 더 지난 식칼의 흉터는 어머니께서 나이듦에 말라가면서 더욱 더 선명해지고 있습니다.

고무망치로 어머니 머리를 내려치셨지요. 노란색 고무망치. 아직도 기억납니다.
뇌진탕으로 쓰러져도 계속 때리셨지요. 마치 짐승의 그것처럼.

반찬투정을 하는 5살 아이를 위해 어묵을 사왔다고, 500원을 낭비했다고 실신할 때까지 때리셨지요.

제가 기억하는 폭력만 해도 이정도입니다. 아주 일상적인 일이었지요.

당신은 술도 담배도 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저렇게 다정한 남편, 아버지가 어디있나 싶을 정도로
집 밖에서는 상냥하셨지요.
이제와 생각해보면 맨정신에 그 모든 폭력을 휘둘렀던 당신이 너무나도 두렵고 무섭습니다.

집에서 폭력이 심해질수록
집 밖에서는 더 상냥하셨지요.

외할아버지께서 살아계실 때에 어머니는 몇번인지 기억도 안 날만큼 자주 외가로 저를 데리고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제가 5살 되던 해에 외할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시고, 외할머니께서는 안타깝게도 고지식한 분이셨지요.
여자가 맞을 짓을 해서 맞았다, 너가 잘하면 김서방이 왜 때리겠느냐, 딸만 줄줄이 낳아서 아들복이 없어서 그렇다.

외할아버지의 그늘도 없어진 어머니께서는 저를 데리고 31살이란 젊은 나이에 남의 집 입주가정부로 들어가셨습니다. 24시간 쪽방에서 저를 돌보며, 그집 손녀를 돌보며 제대로 된 돈도 받지 못하고 모든 허드렛일를 다 하셨지요.

저 하나 때문에.
아빠없는 자식으로 키우고 싶지 않다는 그거 하나 때문에 또 당신의 거짓된 사탕발림을 한번 더 믿어보겠다고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갔고 몇달도 채 버티지 못하고

제가 국민학교를 입학한 그 해에. 봄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도망쳤습니다.

기억납니다. 제 생일에 케이크를 외갓집으로 보내며 제발 다시 돌아와 달라고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던 전화너머 당신의 목소리가.
오래된 검은 다이얼 전화였죠. 꼬이고 꼬인 전화선을 푸는 척하며 당신의 울부짖음을 듣고 있었습니다.

8살된 제 목에 가위를 들이대며
너가 딸이라서, 너가 재수가 없어서 엄마가 사랑받지 못하는거라고 죽으라고 죽으라고 했던 외할머니께서는
몇해전 세상을 뜨셨습니다.

마지막까지도 저를 용납하지 않으셨고
저도 마지막까지 할머니를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엄마의 엄마라고, 할머니도 불운한 시대에 태어난 피해자라고, 수고 많으셨다고 잘 가시라고 다음 생엔 고생하지 마시라고 마지막 말 전하고 보내드렸습니다.

이후로도 어머니께서는
저에게 제대로 된 평범한 남들과 같은 가정환경을 만들어주시기위해 재혼을 하셨고
그곳에서조차 저는 딸, 아들들에게 구박데기로, 어머니께서는 시어머니와 시누이들에게 구박데기로,
그리고 또 도망치듯 쫓겨났고 이혼을 하셨죠.

그쯤이었습니다.
제가 당신의 재혼소식을 들은 것은.

어떤 어린 과부와 그 자식 둘을 데리고
결혼하여 하나의 자식을 더 보았다고 들었습니다.

어느날 필요하여 가족증명서를 떼어보니
당신의 현주소와 당신의 부인, 자녀들의 이름들이 다 나와있었습니다.

어찌나 가슴이 뛰었는지 모릅니다.
당장에라도 찾아가서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그들에게 도망치라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아직도 그 마음은 여전해서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가슴이 뜁니다.
하지만 제게 그럴 용기는 없습니다. 전 두번 다시 당신을 마주하지 못할겁니다.

매일 거울을 볼 때 마다 저는 당신을 봅니다.
당신의 사진 한장 어머니께서는 남겨놓지 않고 잘라버리셨지만
전 당신을 기억합니다.
신이 있다면 이 무슨 장난일까요, 전 당신의 얼굴을 너무나 빼어다박았습니다.

남자처럼 보이고 싶어서, 아들행세를 하면 할머니께 좀 덜 미움받을까싶어 머리를 짧게 잘라버린 날, 어머니께서는 제 얼굴에서 당신을 보고 두려움에 떠셨습니다.

그리고 전 두번다시 머리를 자르지 않았습니다. 어깨까지, 허리까지, 엉덩이까지 계속 계속 긴머리였지요.

아직도 전 매일 거울 속에서 당신을 봅니다.
한해 한해 나이가 들수록 더 닮아가는 것만 같습니다. 그 두려움, 잊지 않고 살아가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16살. 딱 한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가 당신을 찾아갔었죠.
보고 싶다거나 아버지라서라거나 그런게 아니었지요. 돈이 필요했습니다.
저의 집 근처 버스정류장 아래 언덕에
당신의 차를 세워놓고 그 안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죠. 10분도 안 되는 시간.
왜 찾아왔냐고, 돈을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당신은 딱 한마디 하셨죠. 임신했냐고.
그리고는 저를 차에서 내리게하고 그냥 가셨지요.
30만원. 당시로는 어른인 당신에게도 적지 않은 돈이었겠죠. 거절한거 이해합니다.

제가 왜 어머니 모르게 돈이 필요했는지는 평생 묻고 살아가야할 저의 짐이라 당신에게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일은 잘 처리되었습니다. 걱정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잠깐이라도 당신에게 마음의 짐을 준 것이 아직도 저의 한입니다.

당신에게 닿을지 닿지 않을지도 모를 이 글을 왜 쓰고 있는지 궁금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전 몇해 전 결혼을 하였습니다.
사랑합니다. 사랑받고 있습니다. 시어머니로부터도 과할정도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방금도 전화로 저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신 또 한분의 제 어머니이십니다.

시어머니와 배우자는 항상 제가 아픈손가락입니다. 불우했던 어린시절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삶의 곳곳에서 그것들을 떠올리고마는 저를 너무 가여이여깁니다.

어제 배우자와 무엇을 얘기하다가 가정폭력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전 10집중 5집이 가정폭력이 있을 것이다고 했고 그는 1집이라고 생각했다며, 서로 생각을 나누다가
그가 저에게 말하더군요
우리는 가정폭력이 없다고. 현재 우리의 집은 가정폭력이 없지 않냐고.
왜 아직도 자신을 가정폭력의 환경에 놓여있다고 생각하느냐고.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한번 가정폭력에 노출된 사람은 두번 다시
그것이 없는 가정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저와 어머니는 영원히 가정폭력의 피해자입니다.

당신은 영원히 가정폭력의 가해자입니다.

김정선씨,
가정폭력의 가해자인 당신,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사실 이 재미없는 글을 누가 읽어주고 누가 당신에게까지 전달되게 해줄까요, 일말의 기대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제 마음 정리인것이지요.

전 죽을때까지 김정선씨 당신의 가정폭력 피해자였던 첫부인의 살아남은 둘째딸입니다.



참, 어머니께서는 몇해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예쁜 연애를 하고 계십니다. 결혼은 결코 하지 마시라고 전했습니다만 어머니의 뜻대로 하시겠지요.

추천수2
반대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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