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쓰는 손편지가 될 거 같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는 건 미련을 남긴다든지 후회하는 마음을 전달하겠다든지 그런 게 아니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을 그 시간들을 겪어내고 버텨준 너에게
그냥 내 진심은 몇 마디 전해야 할 거 같아서 이렇게 정말 오랜만에 펜을 들게 됐어.
너가 몇 번이나 얘기한 것처럼 애초에 우리가 만난 경로가 좀 우스웠기 때문에 너랑 나 둘 사이가 아닌 다른 여러 사람들이랑 엮이게 되면서,
우리가 지나온 모든 과정들이 다 순탄치가 않았어.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나 때문에 예민한 너가 참 많이 힘들어하기도 했고 사랑일지도 모르는 감정이 확실하지 않아서 어영부영 내 행동은 엉망진창이었다는 것도 인정할게.
초반에 내가 그렇게 밀어내는데도 열심히 잡아준 너 마음을 별 일 아닌 것처럼 내치고 내 마음만 앞세워서 너만 원망한 것도 정말 미안해.
우린 서로를 미워한 적도 없고 이해는 하면서 항상 타이밍이 어긋났던 것 같아.
같이 있으면 즐거워하고 웃기도 하고 행복해하면서 그렇게 때문에 조금만 서운해져도 그걸 너무 크게 받아들이고 또 금세 지쳐하고...
내가 이-만큼이나 가고 싶을 땐 넌 제 자리에서 멀어져 있고, 내가 도망쳐버리면 넌 다시 다가와 있고. 이건 너나 내 마음의 크기나 깊이 때문이 아니라고 믿어.
그냥 어긋난 거라고 생각하고 싶어.
그래도 정말 오랜만에 마음 열고 만난 사람인데 그 감정까지 별 거 아니었다고 생각하면 너무 오랫동안 슬플 거 같거든.
그런데 이런 생각은 든다. 초반에 내가 자리 이동할 때마다 바로바로 연락 안 한다고 너가 닦달하기 시작하던 그 때,
아직 그런 행동에 익숙치가 않아서 바보처럼 굴던 나한테 그렇게 막 힘들다고 하는 것 대신에...
우리가 서로 마음을 확인했으니까 앞으로 둘이서 뭘 하면서 같이 잘 지내면 좋을까 뭐 그런 좋은 것들을 더 많이 얘기했으면 어땠을까?
나 분명 너랑 만나기로 한 초반에 너랑 같이 여행 가면 좋을 거 같아서 여행 경로도 혼자 생각해보고, 쇼핑할 땐 내 꺼 말고 너 물건도 골라보고, 책도 사보고,
커플 운동화까지 골랐다가 너무 오버하는 거 같아서 내려놓은 적이 있었는데.
난 천천히 사랑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그 때마다 왜 넌 나한테 그렇게 내가 못하는 행동들만 집어내서 왜 사랑에 빠진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못하게 한건지
그건 좀 원망스러워.
그래 물론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도록 원인 제공한 것도 다 나겠지만.
짧은 시간 내에 별 일이 참 많았고
서로 좋은 시간만큼 아프고 힘든 시간도 많았기 때문에
애증으로 얼룩져버려서 너무 아쉽고 슬프지만 우리가 마지막으로 얘기한 것처럼 우리는 섞이기가 힘든 사람들인가봐.
내가 너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긴 어렵겠지만 이제 나한테 너는 오랜만에 정말 깊은 감정을 느끼게 해준 고마운 사람이야.
별 거 안 하고 그냥 커피 한 잔만 마시고 있어도 즐거울 수 있었던 건 진짜진짜 내가 몇 년 동안 해보지 못한 일이었어. 고마워!
살짝 더워지려 하던 그 때부터 이제 제법 쌀쌀해진 이 시간까지 잠시나마 함께 해 줘서 감사해.
혹시나 아직까지 나에게 남은 감정들이 너무 최악일지라도 시간이 좀 지난 후에는 그래도 나 역시 너를 좋아했던 마음만은 진심이었으니까 너무 모질게는 기억하지 말아줘.
아 물론 기억조차 안 해도 상관은 없어.
이제 곧 우리가 함께 했던 짧은 시기와는 완전 다른 온도를 가진 계절이 오겠다
. 너가 맞이할 가을 겨울에는 내가 없을테니까 좀 더 편하게 지내길 바랄게.
앞으로 하는 일도 다 잘 되고, 나보다 훨씬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