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안녕하셨어요? 할머니 일은 참 안되셨어요. 장례는 무사히 끝났나요?”
“네. 덕분에요.”
“하하하하”
사람이 죽었다는데도 웃음이 멈출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아. 나는 사춘기 소녀란 말인가?’
“여기 웃고 있는 분은 누구시죠?”
내 모습이 눈에 거슬렸는지, 당연히 거슬렀겠지만 여자는 나를 날카롭게 쏘아보며 말했다.
“무례했다면 용서하십시오. 우리 수련생인데 조금 전에 웃다 죽은 귀신이 빙의됐습니다. 이 집에 그런 귀신이 살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참 특이한 변명이군.’
“어머나. 어쩌다 웃다 죽었데요?”
여자는 꽤나 놀랐다.
“글쎄요. 자세한 사인은 직접 물어봐야겠죠.”
가까스로 웃음을 멈추고 정식으로 인사를 했다.
며느리란 여자는 나이가 꽤 든 것 같았는데 피부가 너무 팽팽한 것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마치 피부를 누가 억지로 당겨놓은 것처럼 너무도 팽팽했다.
언젠가 일본 소설에서 읽은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숫총각의 오줌을 마시고 씻는 술집 마담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할머니가 원한이 깊으셨는지 저와 저희 집 수련생에게 나타나 억울하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혹시 사인에 대해 아시는 바가 있으신지요?”
“주무시다 편하게 가셨어요. 의사들도 별 고통 없이 가신 것 같다고 하던데요.”
“복상사했다는 소문도 있던데요.”
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죽은 영혼의 원한은 빨리 풀어주는 것이 좋은 법.
원한이 살아있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를 막아야 했기에 눈치를 보다 시간을 끄는 것은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소문이지요.”
여자는 간단히 부인해 버렸다.
하지만 표정은 석연치가 않았다.
“정말입니까? 저희도 외부적으로 알릴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원한은 풀어드리고 좋은 곳으로 가게 해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수암도 뭔가를 얻어내고 가겠다는 생각인지 만만히 물러날 기세가 아니었다.
여자는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망측한 노인네였죠.”
‘아무리 피가 섞인 것이 아니지만 자신의 시어머니를 보고 망측한 노인네라니 정말 망측한 여자네.’
“젊은 남자를 집에까지 끌이다니 너무 창피해요.”
“그 남자는 누구입니까?”
얘기가 얘기인지라 수암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몰라요. 저도 얼굴밖에는. 어디서 주워 왔나봐요. 처음엔 몰골이 말이 아니더니 어머니가 밥 먹이고, 옷도 사 입히더니 사람 몰골이 되더라구요. 그러고 보니 나중에는 꽤나 말쑥해 보였는데. 그 외모에 혹 하셨던 거겠죠. 아무리 그래도 자기 자식보다 어린 애를 집안에 끌이다니 늙은이가 노망난 거죠.”
“집에 자주 왔었습니까?”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요.”
“집에 와서는 뭘 했나요?”
내가 물었다.
“집에 와서는 어머니 방에 둘이 들어가 문을 잠그고 있었어요. 뭐가 좋아 히히덕거리는지 소리가 2층까지 들리더라구요. 그밖에는 아는 것이 없는데요. 더 궁금한 거 있으신가요?”
팽팽한 피부의 며느리는 빨리 얘기를 끝내고 싶은 모양이었다.
전혀 피곤해 보이지 않는데 피곤해 보이려고 안간힘 쓰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피곤해 보이시네요. 저희가 폐를 끼친 모양입니다.”
수암도 눈치를 챘는지 일어설 준비를 했다.
“혹시 그 남자 연락처 있나요?”
내가 물었다.
“음. 어딘가에 적어 놓은 것이 있을 거에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몇 분이 지났을까.
여자가 다시 우리에게로 왔다.
“저는 더 이상은 모르니 찾아오셔도 드릴 말씀이 없네요.”
연락처를 종이에 적어온 여자는 넘겨주기 전에 못 박듯 말했다.
‘알았다고. 그렇게 만사 귀찮은데 피부 관리는 어떻게 한대.’
여자는 그래도 대문까지 배웅을 해주었다.
‘웬일이래.’
“저기여. 그 웃다 죽은 귀신 왜 그렇게 웃은 거래요?”
아까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쫓아온 모양이었다.
“시트콤을 보다 웃게 되었다네요. 조심하세요. 집에 있는 귀신이 사모님을 괴롭힐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여자의 표정은 역시나 굳어졌다.
“아. 시트콤. 조심해야겠네요.”
“네. 만약 갑자기 웃음을 참을 수 없는 일이 생기면 꼭 연락을 주세요.”
나름대로 앙갚음을 하고서는 집에서 나왔다.
‘사람이 집에 왔는데 차 한잔 대접을 안하다니.’
좀 사는 집에 가는 거니 은근히 맛있는 것을 기대했었는데 실망감이 너무나 컸다.
그 후 며칠동안 밤마다 할머니에게 시달림을 당해야했다.
할아버지의 영이 아직 적응을 하지 못한 상태인지라 몸의 기력이 급속하게 떨어지는 듯했다.
‘이럴 수록에 잘 먹어야해.’
비상 식량이 떨어진 지도 벌써 오래전.
양식을 비축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초코렛도 사고, 숏다리랑 빵, 과자도 좀 사와야지.’
대문을 나서고 오분쯤 걸었을까?
멀리서 낮익은 한쌍의 남녀가 보였다.
‘저건 수암이랑 희멀건 여자?’
저녁이라 어두웠지만 하얀 실루엣이 숙희 언니 같았다.
무슨 즐거운 얘기를 하는지 둘의 웃음 소리는 멀리서도 잘 들렸다.
숨어버릴까 고민하는 사이 둘은 금세 내 앞에 와있었다.
“나갔었어?”
화가 나서인지 반말이 나와 버렸다.
수암도 약간은 놀란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