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독일사, 통일이 되면 여자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기부장제도와 개독교의 빻음, 독일식 양공주, 독일식 김치녀, _국의 미개함, 독일오빠가 허락해주는 페미니즘까지 다 알려주겠다길어도 후딱 읽어봐라.
1.전쟁
전쟁이란건 남자들이나 할만한 1차원적으로 단순한 폭력적, 야만적이고 비효율적인 행동이다. 만약 모계 사회가 지금까지 이어져왔다면 전쟁이란것은 없었을거다.
안타깝게도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 모계 사회는 이어지지 않았다. 19세기 초 당시 국가를 비유하는 말이였던 “아버지 국가 / father state” 만 봐도 알 수 있다.(차별 단어지만 한국은 아직도 종종 아버지 국가라는 말을 쓴다)
그렇다면 전쟁은 왜 일어났던걸까? 이유는 다양하지만 남성성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남성이라는 강박관념에 휩싸인 증거다.
남성들은 아버지 같은 존재의 조국, 조국의 여자와 어린이를 풍족하게 하기위한 의무가 있는데, 자신있는건 남성성과 몸뚱이뿐.
자국의 남성성이 그 어떤 나라보다 뒤쳐지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넘치는 남성성을 담보로 전쟁을 일으킨거다.
그 어떤 나라도 진다는 가정하에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이긴다는 가정하게 전쟁을 벌인다.
그냥 한마디로 말하면 전쟁은 남자들 강약약강 서열 문화에 서양 남자들은 서양 특유의 기사도 여혐, 한국은 그냥 ___에 불과하다
지금 북한을 생각해봐라. 6.25때는 먼저 공격했으면서 왜 지금은 도발로 아가리만 털고 진짜 전쟁을 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지.
6.25때는 중국과 소련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거고, 지금의 상황은 자국민의 남성성이 부족하다는 증거다.
대부분의 군인들이 병들어있어 쓸모가 없고, 북한 여자들 또한 북한남이 무능력해서 버리기 시작했다. 전쟁을 할 수가 없다.
그리고 한국의 남성은 한반도 역사 내내 남자답지 못하게 여자 바쳐 연명하고 자국의 여자를 지킨적이 한번도 없다.한국이야말로 최저, 최악의 남성성을 가진 증거다.
일제 강점기 3.1 운동 당시 독립운동남들 페이강간소(=성매매)에 있었던 주제에, 그남들 아마 미국 남자 없었으면 독립도 못했을거다 독립하더라도 한국여자들이 나서서 독립했을거다.
2. 패전과 기만당한 여자들, 바닥친 남성성 회복의 남성의 시간
알다시피 독일은 세계대전에서 2번이나 져버렸다.자기 객관화가 안되는 남자들인지 2번이나 져서 제 주제를 알게되었다.여기에 독일 남자들은 전쟁에서 져서 거의 죽어 인구수가 별로 없고 살아있더라도 다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잉여인간이었다.
그남들 때문에 나라 상황만 더 악화되어서 전쟁이 끝난 이 당시 독남 체면은 바닥이였음.
많은 독일 여자들은 2차 대전 당시 상대 군인들에게 성희롱과 강간을 당했지만 전범국이기 때문에 문제가 논의되기도 힘들어서 그 일들은 없는 듯이 취급되었다.
하지만 여성들은 전쟁의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나라의 재건은 피치 못한 상황이라 여자들이 직접 손으로 황폐화된 독일의 전쟁잔해를 다 치워야했다.
황폐한 몸과 정신으로 여자들은 늘 그랬듯이 그남들의 뒷바라지를 하고 몰락한 독일을 떠받쳐야했다.
이런 여자들을 독일 재건을 위해서 ‘잔해청소여성’이라고 아이콘화 하며 국가적으로 선전해 성모 프레임을 씌워 칭송해 독일 재건에 힘쓰도록 만들었다.
6아버지 국가9를 위해 피해자인 여자를 갈아 재건했다. 참고로 이때 여자들의 활약이 커서 이때를 '여자의 시간'이라고도 부른다.
한국도 여자 갈아 발전하는데 꿀리지 않는거 알고있지?
이때가 독일 1950년대다. 1950년대 한국은 뭐하고 있었을까? ___로 한국전쟁 하고 있었다. 참고로 한국전쟁 후 남한남의 남성성 또한 무너졌다.
생각해봐라 남한남들은 자기 국토 하나 지켜내지 못하고 부산까지 밀렸다. UN, 특히 미군의 개입이 없었으면 우리는 동무동무하고 있었을거다.
그리고 미군뽀이들이 들어오면서 서양문화도 같이 들어오게 되었다. 전장에서 바로 옆에서 서양놈들을 지켜봤을 한국놈들 열등감은 대단했을거다
자기들이 나라를 못 지켜서 바다 건너 양놈들까지 데려오니 얼마나 부랄이 달달달 떨렸겠나? 또, 6양공주9 라는 말이 이때 나왔을거다.미군과 서양놈들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이로인해 한국남자의 민족성(유구한 한국 가부장, 한남 문화)에 금이 가버렸다.
하지만 한국남자들은 여성인권 개선은 커녕여자를 후려쳐서 떨어진 남성성을 회복했다.
* 1950년대 한국 여성인식의 실제 :http://congress.aks.ac.kr/korean/files/2_1393908915.pdf어떤 분이 쓴 논문이다. 관심있으면 읽어봐라.
그 뒤, 1970년도에는 외화벌기 위해 독일에 간호사 보내고, 박정희희희 독재 시절 정부 주도하에 미국기지 페이강간, 산업화 시절 바늘로 오는 졸음 깨기 위해 몸 찔러가며 신발, 가발 등 제조 공장에서 일하고.근데 이런 여자들이 뭐라고 불렀는지 아냐?6공순이9, 6새마을 부녀9, 6호스테스9
* 호스테스는 당시 일본 관광객이나 상류층의 성적 노리개로 이해됐다.그에 비해 제조업에서 일하는 냄져들은 산업 역군이라고 불렸다.다 여자들이 희생해서 지금의 한국이 있는거다.
우리 한국여자도 기만당해왔다. 다만 아무도 우리를 챙겨주지 않았다.
다시 독일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나라의 상황이 어렵고 당시의 사회 사상이 이러니 피해와 노력에 대한 보상받지도 못하고 금욕적 자세로 자기 자신을 희생하며 재건을 위해 노력했지만,
남자들이 수용소에서 돌아와도 여자들의 공은 알아주지도 않았다.오히려 여자를 깔아 뭉개 버렸다.
그리고 바닥친 남성성 회복을 위해 여자의 시간은 '남성의 시간'으로 귀신같이 역으로 뒤집어졌다.
이 시기의 여자들은 영웅적 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보상받지 못해 “기만당한 세대”라고 불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