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소망 사랑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어.그치만 고향 구경을 한 것은 10년 정도 지나서였던것 같아.나를 낳자마자 바로 서울 근처에 작은 시골 마을로 이사를 했기 때문이야.이사라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네.. 우리 집은 아니 우리 가족에겐 집이 없었거든.
내 첫 기억은 어떤 교회의 복도 끝에 있는 작은 방에서 시작돼.그 방안에는 나와 우리 부모님이 있지.이유는 모르겠는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둘은 나에게 웃어 주더니 방 문을 잠그고 나갔어.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지 .그저 그 방 문이 열릴 때 까지는 갇힌 채로 있어야했어 .
나는 많이 울었데, 그 곳은 우리 가족의 첫 보금자리였어.그 방안은 엄청 작았는데 우리 셋이 살기에는 딱 맞았던것 같아. 물론 내 생각이겠지만 ㅎㅎㅎ그 때의 기억 이후에는 어디선가 친구 둘이 생긴다.우리는 동네에서 알아주던 개구장이였어. 물론 나만..그 친구들 지금은 조금 멀어졌지만 진정한 의미의 ㅂㄹ친구들이지.
동네 형들도 때리고 빼앗고.. 물론 내 친구들 것은 빼앗진 않았던것 같아강제로 빌렸다 당일에 주곤 했지.....지금 와서의 생각이지만 이건 유전적인것 같아. 한 번도 물어본적 없지만 그랬을거야.
어느 날 내 친구의 새 찍찍이 운동화를 빌려 신었는데, 분명 새 것이었는데 내가 신다가 찍찍이가 끊어졌어.. 그 이후로는 누군가의 것을빌리지 않았다 거의.
그 친구 둘과는 늘 함께였던것 같아.친구들이 나와 놀다가 삐져서 나를 한동안 따돌리기 전까지는..물론 뒤로 금방 풀렸지만 ㅎㅎㅎ 그 뒤로는 여러가지 이유로 조금씩 멀어지기만한 것 같아
그 때는 유치원 때였어 물론 유치원은 다니지 않았지만 지금이라면 다닐 나이였지.나는 쭉 교회에서 자랐어. 집도 부모님의 직장도, 물론 부모님이 다니는 교회도.
내가 처음으로 다른 세상을 접한것은 병설 유치원을 다니면서 부터였어.내 첫기억의 장소인 언덕 위의 작은 교회 그 아랫동네, 지금은 길이 되어버린 반대쪽 동네가내 삶의 전부였는데 말야.어느새 30분은 걸어서 유치원이란 곳을 다니게 되었어.그 때 처음으로 티비에서만 보던 구부러진 거울을 영접하게 되었어.아마 그 때의 내 꿈은 과학자였던것 같아. 나도 그 거울을 만들고 싶었거든.
그 당시 개나리반 내 담임 선생님은 내 눈에 너무 예쁘고 착하고.. 천사가 있다면 이 사람이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그 분을 좋아하게 되었어.그치만 그 분은 그 해에 결혼을 했어..나는 들러리를 섰지.그 때 부터 나는 감정 표현을 많이 했었나봐. 다들 그 선생님을 좋아하는걸 알아서 내가 결혼식을 같이 하게 해준거야..ㅋㅋㅋㅋㅋㅋ
들러리가 뭔지는 알지? ...........요새는 그런게 없어서 모를지도 모르겠구나.나는 그 들러리를 끝으로 유치원을 그만뒀어.그 때 부터였나봐 쉽게 그만두는게.
그 때는 축구공이 동네에 별로 없던 시절이라 탱탱볼..지금은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고무 공을 가지고 축구를 하고 있었어 그 언덕에서..한 번 못 막으면 가장 아랫 집 뒷 마당 텃 밭까지 뛰어 내려가야 했지.물론 텃 밭이 망가져서 걸리면 혼나는데 매 번 거기서 했던거같아 큰 운동장 놔두고.아 교회는 작았는데 운동장은 엄청 컸어. 지금 가보면 엄청 작은데.....그 땐 엄청 컸어.
그게 아마도 옆집에 있는 동생이랑 집 앞에서 해서 그런거 같아 ㅋㅋㅋㅋ집 구조가 잘 기억이 안난다고 하려했는데 기억이 나버렸다지금도 있어 처음 살던 그 집이 30년은 더 된건데 아마 겉모습은 똑같을거야......
그렇게 유치원을 그만두고 친구들은 다 유치원에 가서 몇 살 어린 동생들이랑 놀다가갑자기 어딘가로 끌려가게 되었지.알고보니 태권도장이었어. 그 때는 태권도 + 유치원 느낌으로 하는 곳이 있었어.지금도 있겠지? 거기서 나는 한글이랑 덧셈 뺄셈을 배웠던것 같아.물론 태권도도..거기 관장님은 업계에서 꽤 유명한 분이셨지태권도로 칼든 강도를 제압해서 표창장을 받으셨어.
항상 외유 내강을 중요시 하셨지.가르침은 지금의 태껸에 가까웠던것 같네.보라 띠랑 밤 띠가 없는 옛날 태권도를 가르치셨어.
지금 생각해보면 꽤나 비싼 가격이었는데 거기를 7년정도 다닌것 같아그 돈 모았으면 집 평수가 커졌을껀데..그래도 덕분에 20대 중반까지는 운동 안해도 체력은 어디가도 좋은 편이었던것 같아.어렸을 땐 키도 작고 왜소한 편이었거든 ㅎㅎㅎ지금은 덕분에 키만 작아..........................
관장님은 몇 년 전에 시장에 출마한다는 소식 이후로는 어떻게 지내시는지 모르겠다.그 태권도 학원을 다니면서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됐어.그 전까지 나는 아니 그 이후로도 머리를 꼭 집에서 잘랐어.자른다기 보단 아빠가 바리깡으로 밀어줬지..
그치만 처음 미용실 갔던 날이 기억이 나네...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유치원 때의 선생님을 잊고첫 여자친구를 사귀었어.걔는 내가 봤을 때 정말 예뻤던것 같아. 착하고어린 천사가 있다면 이 사람이구나!
나는 좋아한다는 고백을 하고 집에 얘기했던것 같아.그 다음날 엄마는 아침부터 미용실에 데려갔다..그 미용실은 내 친구가 살던 건물 1층 구석에 있던 곳이야.지금으로 치자면 주상 복합 같은 느낌인거지.. 1층은 상가 2층은 학원 3층은 집 이런 구조였어그 건물도 아직 있는것 같은데..그 1층에는 슈퍼도 있었는데 맞은 편 건물에 조금 더 가까운 슈퍼를 자주 갔어그 쪽은 조금이지만 멀기도했고.. 나한테는 너무 크고 미지의 세계였거든 대신 거기를 용기내서 가면 멜론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가 있었다.지금 남아있는 메로나 이런게 아니라..ㄹㅇ 메론모양에 퍼먹는 존귀한 아이스크림 이었어.
아무튼 그 미용실에 나는 어디서 난지는 모르지만 정장 비스무리한 옷을 입고빨간 나비넥타이를 하고 갔던것 같다..아마 교회에서 누군가가 주신거겠지?
고걸 입고 미용실에 갔더니 원장 아주머니가 머리를 최신 유행 스타일로 해주셨는데무스를 이용한 2대 8 설운도 머리였다.내가 보기엔 설운도 보다는 좀 더 멋있게 된거같았어.내가 자주가던 슈퍼 맞은편에 핀 빨간 장미를 한 송이 꺾어서 등교를 했었지.
가는 길 아파트에는 내가 운동화를 찢어먹은 그 친구네 아파트가 있었어.지금도 있지만..아무리 생각해도 어이없다. 유치원생이 잡아 당긴다고 찢어지는 운동화라니그레이트 다간 운동화였다 월드컵이었을거야 브랜드가.
그 아파트는 또 밑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었는데거기는 뭐랄까..지금 느낌으론 커닝시티 같은 느낌이었어.메이플 유져는 아니지만조금 어두운 느낌의 동네지만 그 쪽으로 가면 오락실도 있고.. 귀퉁이에 조그만 문구점도 있었지.. 장난감이 많은침침한 뒷골목을 가진 빌라도 있었고
동네 친구들이랑 마음 먹고 놀 때는 그쪽에서 놀았던것 같다.거기서 하면 숨바꼭질도 더 스릴있고 넓어서 재미있었어.오락실도 가고.. 가서 뭔가를 하진 않았는데 가끔 들러서 모르는 형들 구경을 많이 했었다.숨바꼭질 하는데 오락실 들어가서 숨는게 또 개꿀이거든뭔가 어린이는 들어가면 안되는 곳에 있는 느낌이었어 그 시절 오락실은그래서 애들도 못찾고 신문물 구경도 하고...
우리가 한창 그 쪽에서 놀 때 쯤에는 미용실 있는 건물에 과자가 나오는 오락기도 있었다.오락을 하는데 과자가 나와!나는 그걸 하고싶어서 집에 있는 십원짜리를 다 주워서 자주 가는 슈퍼에서 바꿔서 했던것 같아... 우리집은 교회니까 사랑의 밥그릇 하면서 기부하는 동전 통이 항상 있었거든아프리카 돕는 그런거였어 그래서 그걸 깨지 않는 이상은 동전이 없는거야................하..........사실 돈도 없었는데 동전은 더 없어헌금 한다고 천원짜리 쌔삥은 항상 바꿔오면서 나를 위한 동전이 없어......
그 때 용돈이 하루에 백원이었나 근데 자주 못받았던것 같아헌금은 일주일에 천원씩 하는데ㅜㅜ그래서 진짜 인생의 큰 일탈은 1년에 몇 번씩 그 헌금을 안내고 친구들이랑 쓰는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