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년생 김민지
'초등학생'때 축구를 하고싶었지만 여자가 무슨 축구냐는 대답을 듣고 운동장에 끼지못했다.
잘하는건 남자들보다 못할지몰라도 단지 좋아하는 축구를 하고 싶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남자들의 경쟁터에서 배제되고 말았다.어머님 마저 "여자다리에 무슨 흉터야"라는 말을 하시며 비관적으로 보셨다.
'중학교'에 들어와 처음 교복을 입었다. 교복을 줄여입고 싶어서 짧은 치마로 줄이고 등교를 했는데 교문 앞 학주선생님이 긴 회초리로 치마를 조금 들추며 치마가 짧다고 수치심을 주셨다. 사실 여성교복이 사이즈 자체가 크게입어도 몸에 달라붙게 사이즈가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여성교복 자체가 불편했다.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다양한 진로활동과 공부를 하며 꿈을 키웠지만 "여자는 선생님이 최고야" 라는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는 교대에 지원하게되었지만 교대에서 시행하는 남학생 의무선발 기준에 막혀 실력이 되었는데도 떨어지게되었다. 결국 다른 길을 택하게 되었다.
'대학생'때는 여성이기때문에 군대라는 무서운곳에 대한 두려움등이 없어서 편할줄 알았다. 인생자체는 즐거웠다. 하지만 남자교수님들이 하는 여성에대한 희롱적인 말들, 위안부 비하, 전쟁시 20대 여성들이 매춘을 해야한다는 말들이 너무 가슴에 못이 박혔다. 여성의 성을 낮잡아보시는 기성세대가 싫었다. 그래서 여성에대한 성적 인식에 불만을 품는 운동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페미니즘에 반발하는 남성들이 나를 좋게 보지않았고 패미니스트라는 프레임으로 공격하며 남성을 배척하는 길이라 중단을 요구했다. 난 단지 여성성희롱등과 싸우려 행동했지만 한순간에 페미니스트, 성차별자로 몰린것이다.
대학생활 끝무렵 취업준비에 몰두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각종 공기업 면접을 보러다녔다. 남자들에게는 하지않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결혼여부? 출산의여부? 등등이였다. 나는 내가 꿈꾸는 결혼생활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며칠 후 결과를 보았지만 떨어졌다.
좌절을 한 후 일상을 지내다가 우연히 사회면 뉴스를 보았다. '공기업 채용비리'에 관한 이야기 였다. 재판을 받는 공기업 사장이 "여성은 출산과 육아 때문에 떨어져야한다."라고 말한것이다.
(실제 있었던 일... 가스안전공사 박기동 사장+각종 금융권 서울메트로 여성합격자 고의 탈락사례들)
나는 문뜩 생각이 났다. 내가 결혼과 출산의 꿈을 너무 솔직하게 말한게 아니였나.....
얼떨결에 열심히 취준생활을 한 결과 나는 한 회사에 입사하고 여성도 할수 있다는 당당함을 갖고 열심히 일을 하였다. 남성과의 경쟁서도 뒤쳐질일이 전혀 없었다. 남자친구를 만나고 드디어 결혼에 골인했다. 그리고 임신이라는 축복을 맞이하였다. 나는 쉬는동안 회사에 돌아가서 다시 커리어우먼이 되겠다는 맘을 가지고 열심히 애를 배속에서 다듬었다.
나는 호주제가 폐지되고 성평등한 사회인것을 감안하여 남편에게 아이의 성을 우리집안 성씨로 하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건넸다. 하지만 남편은 머뭇거렸고 시어머니에게 혼이 났다. 내가 힘들게 낳은 애지만 무조건 남편의 성을 물려주는게 너무 불합리하다 느겼다.
시간이 지나
우리나라는 임신부 배려석도 있고 임산부 배찌도 있는 좋은나라라고 생각하며 지하철에 들어갔다.
젊은 친구들은 내게 자리를 양보했지만 보수적인 노인분들은 전혀 눈길을 주지않고 앉을수가없었다. 임산부로서 너무 서글픈 현실이였다.
출산을 하고 나서 나는 회사에 가서 다시 열심히 일을하려 준비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이상한 부서에 배치되고 육아휴직 쓰기 너무 불편한 분위기였다. 아이를 돌봐야하고 어린이집에서 아기를 집에 데려줘야해서 회사일에 지장이 생겼다. 열심히 일하는 가장 남편을 건들긴 미안해서 내가 회사일과 아이 육아, 집안일 등에 몰두했다. 야근도 못하고 자주 회사를 비워 나에대한 시선도 안좋아졌다. 그러자 다른 사원과의 임금이나 대우도 많이 차이가 나기 시작하였다. 결혼하기 전, 애를 낳기전과는 사뭇 다른 생활이였다.
애를 하나 더 낳고 싶었지만 내 커리어에 심각한 타격이 올거같아 포기하고 말았다.(현 대한민국의 경단녀 현실 모티브)
아이를 어머님께서 봐주신다길래 오랜만에 끝까지 야근을 하고 집에 오는길에 낯선 남성이 뒤따라 오고 있었다. 무서웠지먼 설마.. 하며 집에 가고있었는데 그 남성이 내게 오더니 다시 떨어졌다. 나는 빨리 집에 가려 종종걸음으로 집에 도착하였는데 끝까지 그 남성이 따라온것이였다.(신림동 강간미수 사건 모티브)
그리고 며칠뒤 사건이 터졌다. 건물안에서 진짜 성추행을 당한것이다. 남성이 뒤따라와 내 종아리와 허벅지를 만지며 너무 심한 수치심이 들 정도로 강제 추행을 하였다. 그 남성은 추행을하면서 "우리나라는 법이 ㅈ같아서 괜찮을걸?" 이러면서 내게 협박을하고 사진 몇장을 찍어갔다.
나는 남편에게 말하고 용감하게 신고 접수를 하였다. 그 추행남과 나는 다시 만났다. 하지만 그 추행남은 나를 무고죄 가해자로 몰았고 꽃뱀이라 칭하였다. 내가 꽃뱀이라는 증거들 까지 모았다.(실제 우리나라에는 성범죄자를 도와주는 꽃뱀몰이 조작 카페가 있음)
그리고 경찰관이없을 때 음란사이트에 나의 얼굴이 나온 허벅지 종아리 사진들을 유포하기전에 이해관계충돌이라 설명하라 하였다.
나는 그게 너무 무서웠다. 진실을 말해야했지만
내 남편 아이가 힘들어질까봐 참았다. 문뜩 떠올랐다. 20살에 내가 여성성희롱 운동을 했던것을.... 내가 틀리지않았음을....
한해 3만2천건에 성범죄(17년도)에 시달리는 그에 두려움을 느끼는 모든 여성들이 안전한 세상에서 살기 원했던 그 순수했던 마음 다시한번 기억하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