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용구 31살 제 아들의 이름 입니다.
이제는 불러도 대답이 없습니다.
늘 웃음이 많은 스마일 맨인 착한 아들 친구같은 아들이었습니다.
대학 졸업후 군대 다녀와 대기업에 취직도 하였습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잘살겠다고 해서 좀 이른 결혼 이었지만
28살에 결혼도 하였습니다.
시간을 되돌릴수만 있다면 정말 말려야 했습니다.
제 아들은 결혼후 불과 얼마 안되어 잘다니던 직장을 갑자기 그만두고 인천에 장인이 하는 설비 가게에서 일을 배워 장인 가게를 물려 받겠다며 장인이 살고 있는 2층으로 처가 살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말리고 싶었지만 행여나 제 아들 맘 불편할까 사이좋게 내아들이 행복하기만 하면 돼
하는 맘으로 그냥 지켜 보기만 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얼마전 6월 손주의 첫돌이 었고 돌잔치도 했습니다.
그리고 10월19일 하나밖에 없는 동생 결혼식 준비를 하며
9월 28일 뷔페 시식을 하러온 아들의 모습이 마지막 모습으로 평생 남고야 말았습니다.
동생 결혼 일주일을 남겨두고 자상하게 챙겨주며 문자를 보내던 아들
동생 결혼식에 보기로 하고 헤어졌던 아들이 다시 돌아올수 없는 길을 가버렸 습니다.
나중에 전해들은 말로는 10월9일 큰 소란이 있었고 그날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사람이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으면 걱정이 되서라도 찾아야 하는데 아들을 부탁해라는 문자를 했슴에도 아이아빠를 찾지도 않았고 죽음을 방관만 하고 있었습니다. 10월11일 전화를 받고 가보니 아들은 몸에 온기가 사라진 후였고 옆에 장인이란 사람은 술냄새를 풍기며 내아들에게 쌍욕을 하고 있었고 며느리는 잠깐 상복을 입더니 몸살기가 있어서 집에 들어간다고 가버리고 이건 정말 말이 안되는일 드라마에서나 접하던 일이 나에게 일어 날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도대체 그집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서 내 아들이 어려운길을 선택했는지 정말 알수가 없습니다.장례식에 와서 슬피울던 많은친구들 선후배들 170명 정도 저는 제 아들이 이렇게 성격좋고 사람이 많은줄 장례식에서 알았습니다.
결혼식에서도 이상하리만큼 신부친구가 보이지 않았고 아이 돌잔치때도 친구들을 초대하지 않아서 좀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뭔가 퍼즐이 하나씩
맞춰지는 느낌이 이제와서 듭니다.
도대체 그집에서 무슨일이 있었기에
동생결혼식 일주일 남겨두고
한참 재밌게 살며 아이재롱 보며 꿈도 많았던 아들이
어떤일을 겪었기에 그길을 선택했는지 정말 알고 싶습니다.
얼마나 내아들이 죽기를 바랬으면 장례 치를 생각도 없었고 장례비 운운하며 장례식 참석도 안하였고 유골함이 식기도 전
장례다음날 삼우제가 끝나기도 전에 뭐가 그리 급하다고 사망신고를 서둘러 한걸까요? 아들 이름 앞으로 거액에 보험이라도 들어 놓은걸까요?
정말로 의문투성이지만 알수가 없는 이 답답함
내 아들이 죽었다는게 아직도 믿겨지지도 않습니다.삼년동안 살았던 처가집 그집은 침묵으로만 일관 하고 있습니다.
자식까지 낳았는데 그래도 한아이의 아빠인데
어떻게 그럴수가 있는지
내아들 편히 살라고 전화도 자주 못했는데
전화라도 자주해서 목소리라도 실컷들어둘걸 그랬습니다.
처가집 하는 태도는 내 아들을 빨리 죽기른 바랬나 봅니다.
너무 억울하고 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