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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인가?’
환한 빛에 눈이 부셨다.
열은 아직 내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몸이 뜨거웠고, 목도 부었는지 목에 묵직한 것이 걸려 있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
‘내 방인 것 같은데 사람들이 왜 이리 많지?’
“일어났니?”
이모의 목소리였다.
“정신이 드오?”
‘수암도 있네? 주리까지?’
“어떻게 된 거야?”
내가 물었다.
“길에 쓰러져 있는 걸 누가 엎고 왔대. 수련하는 남자라던데. 처음 보고는 청소부인줄 알았단다.”
이모는 거의 울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형광 츄리닝 때문에 청소부로 오인한 모양이었다.
“이모 언제 왔어?”
“어제 밤에 선생님 연락받고 왔지.”
“혜림아. 너 왜 아픈 거야?”
주리도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연기 같았다.
‘주리도 분위기는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겠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생활이니까.
“신열을 다시 앓는 것 같습니다.”
수암이 말했다.
“그건 신을 받은 직후 앓는 것이 아닌가요?”
이모가 아는 척했다.
“원래는 그렇지요. 그 때 며칠을 앓았습니까?”
“하루 만에 일어났지요.”
“하루는 아니야. 이모!”
“그때 충분히 앓아야 했었는데 일어나려고하는 본인의지가 너무 강해 앓다가 말았군요. 그래서 할아버지 신도 혜림씨 몸이 익숙지가 않았겠지요. 그걸 마저 앓는 모양인데. 오히려 잘됐습니다. 앞으로 적응을 하려고 하는 것이니 며칠 앓고 나면 할아버지와의 의사소통도 전보다는 편해질 것입니다.”
“그럼 잘된 거네요. 감사합니다. 앞으로 제가 며칠은 간호를 할께요. 아마 얘가 집밥을 못 먹어서 힘이 안 났을 거에요. 밖의 음식은 입도 못 대는 애라 제가 손수 음식 좀 만들어 먹이면 힘 좀 나겠죠.”
‘여기까지 와서 이모의 밥을 먹어야 하다니. 말도 안돼.’
“이모 바쁜 데 그럴 것 없어. 여기 분들이 얼마나 잘해주는데. 음식도 잘 맞고. 이모 걱정 안해도 돼. 나 금방 나을 거야.”
아픈 와중에도 상황이 급하자 말이 술술 나왔다.
“엄마 손 못 미치니까 그렇지. 나라도 해줘야지. 타지에서 아프면 서러운 거야.”
이모는 따뜻한 눈으로 말했다.
진심을 담아 걱정을 해 주는 듯 했다.
하지만 마음만 고마웠다.
절대 그렇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주리야, 제발 이모 좀 말려줘.’
애절한 눈빛을 주리에게 보냈다.
주리도 이모의 음식을 떠올렸는지 얼굴 안색이 바뀌어 있었다.
우리 집에 놀러왔다가 호되게 당한 주리였다.
“이모. 혜림이가 애도 아니고. 걱정 안하셔도 될 거에요. 그리고 병원에 가서 치료될 수도 없는 신열을 앓는 건데. 여기 분들이 더 잘 아시겠죠. 여기에 맞는 음식으로 다 해주실 거구요. 그렇죠. 선생님?”
“그럼요. 여기 수련생들에게 아픈 동안 잡귀의 장난이 없도록 돌아가며 간호를 시킬 생각이랍니다. 걱정 놓으십시오.”
“거봐요. 이모 선생님도 걱정 마시래잖아요. 이모님은 매일 저랑 오세요. 제가 집으로 모시러 갈게요.”
‘주리 파이팅. 잘한다.’
“그래도...”
“그래. 이모 그렇게 해. 나도 그게 편해. 이모까지 남의 집 신세를 지다니 이집 식구들에게 폐가 될지도 모르고.”
“그래. 대신 매일 올게.”
주리와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수암이 나가고, 이모도 일찍 일어나고, 오랜만에 주리와 단둘이 있게 되었다.
몸이 아프고 눈마저 감겨 오건만 수다를 떨고픈 욕망이 너무나 강했다.
“수암이... 쳐다보니까... 여자가 이렇게... 고개를 숙이는 거야... 콜록 콜록.”
사십 오도로 고개를 비틀었다.
머리를 움직이자 핑 도는 것 같았다.
‘아이고. 하늘이 노랗네.’
“혜림아. 너 너무 힘들어 보여.”
“아니야. 괜찮아. 콜록. 막 수줍어 할 때, 콜록, 알아봤어야 했는데. 에구 콜록 콜록.”
유언을 남기는 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대... 이런 여우같은, 콜록, 여우같은 계집애.”
“혜림아 무리 하지마. 힘들면 말 안해도 돼.”
“얘기 듣기 어헉... 싫어?”
가래가 끓었다.
“그게 아니구.”
“그럼 들어. 콜록 콜록.”
목소리가 쉬어 쇳소리가 나올 때쯤 끝이 났다.
죽어도 여한은 있겠지만 속은 후련했다.
‘에고. 넘 힘들다.’
평소면 5분이면 끝날 얘기가 장장 1시간이나 걸려서야 끝이 났다.
내 이야기를 들은 주리의 몸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전투력 급상승.
남주리이기에 남의 남자를 뺏는 여자들을 세상에서 제일 증오하고 있었다.
“그랬단 말이지. 남의 남자한테 꼬리치는 것들은 다 처형시켜야 돼.”
“너도.. 정우 여자 친구... 있었는데... 만난 거잖아.”
“그건 경우가 틀리지. 정우는 지가 소개팅 한다고 나온 거잖아.”
“그럼 정우가... 나쁜... 놈이네.”
분위기가 이상해지고 있었다.
그 때 수암과 희멀건 여자가 방으로 들어왔다.
“차도는 있습니까?”
진심으로 염려하는 수암의 눈빛.
‘오빠는 내가 그렇게 좋아? 그새를 못 참고. 근데 왜 희멀건 여자를 데리고 온 거래?’
“아프지 마세요. 마음이 너무 안 좋네요.”
숙희 언니는 수암 앞이라고 착한 척을 하고 있었다.
“평소 저한테 그렇게 잘 해 주셨잖아요. 빨리 나으셔야죠.”
잘 해준 것 하나도 없는데 거짓말을 했다.
“차라리 제가 아팠으면..”
언니는 이제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뭐야 하는 주리의 표정.
전투력 상승한 주리에게 기름을 붓다니.
“어쩐 일로?”
내가 물었다.
“할머니 집에서 받아온 연락처 있잖소. 그 청년에게 연락을 취했더니 만나자는 전갈이 왔소. 그래서 나가는 중 소녀의 차도를 보러 들른 것이요.”
‘그럼 저 여자랑 같이 간다는 거야? 말도 안돼. 내가 가야하는데.’
“선생님이랑 문제 잘 처리하고 올 테니 걱정 말고 푹 쉬세요.”
나가면서 나를 돌아본 여자의 눈 속에서 희미하지만 웃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저 여자가 밀가루 반죽이지?”
“내가 빨리 나아야지. 저 꼴을 볼 수가 없구나.”
너무 흥분을 했던 걸까?
잡신 하나가 몸에 들어오려는 것 같았다.
평소 같으면 쉽게 물리칠 일이었지만 지금처럼 몸이 허하고 모신 신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할 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몸이 부르르 떨리더니 눈이 뒤집혔는지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혜림아, 왜 그래?”
간질병 환자처럼 몸이 발작을 시작했다.
“혜림아, 사람들 불러올게. 조금만 참아.”
주리는 사람을 부르러 나간 모양이다.
“억울해...”
내 입에서 나오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