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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자께서 물을 흐려 놓았다 - 성금모금 제안 자격 없어

imbc21c |2008.02.13 00:00
조회 4,163 |추천 0
table,td{font:normal 12px 돋움;color:#384353;line-height:20px} p{padding:0px; margin:0px; border:0px; font:normal 12px 돋움;color:#384353;line-height:20px} table,td{font:normal 12px 돋움;color:#384353;line-height:20px} p{padding:0px; margin:0px; border:0px; font:normal 12px 돋움;color:#384353;line-height:20px}   흥인지문(興仁之門), 돈의문(敦義門), 숭례문(崇禮門), 소지문(炤智門)의 서울 4대문 중 숭례문 현액만 종액(縱額)인 이유가 남방 화(火)에 해당되는 글씨인 까닭에 불이 타오르는 형상으로 세워 달았는데, 그것은 한강 건너 남쪽 조산(朝山)인 관악산의 불길을 불로 막아, 그 관악의 화기가 서울 도성을 범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타설로는 서울 도성의 정문인 남대문은 귀한 백성이나 손님이 드나들게 되므로 서서 맞이함이 예절에 합당하다 하여 세워 달았다고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어쩌면 우리의 자존심을 세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숭례문, 화재로 소실-예를 숭상한다는 숭례문의 현액이 땅에 떨어지던 순간 우리의 자존심은 무너졌다. 그래서 우리 국민은 가슴이 아프고 허전하다. 공허하고 슬프다. 참담한 심정이다. 한편으론 그 자존심과도 같은 국보1호를 지켜주지 못한 관리들과 책임자들 그리고 어리석은 방화자를 원망하고 있다. 아니 화가 난다.
대통령이란 직은 어떤 자리의 누구보다도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자신의 뜻과 의지대로 이상을 실현해 갈 수 있는 자리이다. 그래서 그 대권의 경쟁은 치열하고도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 막강한 권한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나서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국민의 권리, 마땅히 국민의 몫이어야 하는 일에는 나서지 말고 국민에게 맡겨 두어야할 일이다. ‘숭례문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 성금을 모금하자’는 제안은 하지 말았어야 할 국민의 몫인 것이다. 국민 스스로 세워야 의미가 있고 스스로 세울 능력이 있는 우리 국민의 몫을 당선자가 당선자 스스로의 자존심 세우기에 이용하려는 발상을 해서는 안 되었다고 생각한다.
당선자께서는 우리 국민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분 같다. 우리의 국민성-부정적 측면만을 강조하는 우리 국민이 아닌 것 같은 사람들도 있지만-중에는 자랑할 만한 것들이 많다. 그 중에 하나가 스스로 돕는 일인 듯싶다. 시간이 지나면 누구의 탓도 하지 않고 국민들 스스로 발 벗고 나섰을 것. 재난을 당할 때마다, 긍휼히 살펴야할 이웃이 있을 때마다, 환란으로 나라가 어려울 때도, 독재자의 거짓말로 금강산댐을 축조할 때도, 유조선 기름유출 사고에서도 그랬듯이, 자연스럽게.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바람이 일어, 국민들 스스로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자연스럽게 스스로 제안하고 스스로 참여하여 200억쯤은 수 삼일도 걸리지 않아 가슴으로 만들어 냈을 우리 국민임을 왜 모르실까. 우리 국민을 우리의 지도자가 그리도 모르실까. 국민 스스로 자존심 세울 기회를 가로채고 물을 흐려 놓아야 했을까. 훼방꾼이 되어야 했을까. 자연(自然)-저절로 그렇게 되는 모양, 자연은 마땅히 자연스럽게, 여론도 자연스럽게 그리고 나서지 말아야할 곳엔 나서지 말 것.
이제 그나마 최선의 길은 물 건너갔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복원한다고 해도 단순한 외형의 복원일 뿐 소실된 역사나 원상의 회복은 아니며 새로운 의미도 부여할 수 없을 것이고, 모금을 통해서 복원한다고 한들 순수한 의미의 스스로의 바람으로 부여한 ‘새로운 의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울시장으로서의 관리 책임을 차치하고서라도 나서지 말아야할 때를 알고 국민의 감정을 살피고 기다리기만 했다면, 분명 우리의 국민성으로 짐작컨대 성금모금의 바람은 자연스럽게 일었을 테고 원상은 아니더라도 국민의 힘으로 자랑할 만한 ‘새로운 자존심’을 세우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새로운 의미’를 갖는 우리의 숭례문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그 나마의 선택의 여지를 빼앗긴 느낌이다. 좀 더 신중한 ‘나섬’을 권해드리고 싶다. 끝   http://blog.empas.com/imbc2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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