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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설화(雪化)

sOda |2004.02.11 18:57
조회 1,029 |추천 0

설화(雪化)

 

 

4.  설화(雪花)


담이는 뒤뜰에 앉아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열다섯이 된 담이의 모습은 앳띠고 청순한 동시에 성숙한 여인의 향기로 *아려했다. (아담하고 곱다:작자주)

 

원이는 뜰문앞에서 담이의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담이는 생각에서 깬 듯 고개를 들더니 이내 원이를 발견했다.

 

담이 얼굴이 반가움으로 밝아지자, 원이의 가슴역시 환해졌다.

 

담이의 미소는 언제나 따뜻하고 부시다.

 

 

“오라버니!”

 

“그래...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고 있었던게냐?”

 

“언제 오셨어요? 담이 보러 오신건 아니죠?”

 

 

담이의 입이 귀엽게 오무려진다. 삐진듯하고 있지만 사실은 애교섞인 투정이라는걸 알고있다.

 

 

“허허... 내가 마을까지 올일이 뭐있다고... 또 투정인게야?”

 

“아버지를 뵈러 왔겠죠, 뭐. 담이보러 더 자주 오면 좋잖아요.”

 

 

어찌 그러고싶지 않겠느냐...

 

하지만 원이는 보고싶은 마음을 자제하고 있었다.

 

왠지 자주보면 볼수록 그리움이 더 사무칠 것 같았기에...

 

원이는 마음을 숨기고 호탕하게 웃으며 담이의 머리를 쥐어 박았다.

 

 

“요런 앙큼한 것, 사실은 오라비를 기다리고 있었던게 아니라, 궁금한 것이 많았던게지?”

 

“아얏...! 에이 오라버니는... 내 맘을 너무 잘 아셔~ 깔깔깔...”

 

 

담이는 호기심이 많고 바깥세상을 그리워했다.

 

하지만 또래와는 다른 호기심이었다.

 

네 살때부터 유달리 검을 만지고 싶어했고, 다섯 살때부터 검술을 배운것만 봐도 계집애와는 사뭇 다른점이 많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오라버니, 강술아비의 검을 본 적이 있으세요?”

 

“왜, 보고싶으냐?”

 

“당연하죠- 강술아비의 검은 만들기 전부터 주인이 정해져 있다던데... 제 주인을 알아본다지요? 검이 말을 할리도 없고... 제 주인을 어찌 알아본다는 것일까요?”

 

“글쎄다... 오라비도 눈으로 본적이 없어서 뭐라 답을 못하겠구나. 강술아비는 부족에 정착한 사람이 아니고 여기저기를 떠돈다 들었다. 단지 그의 검을 만드는곳은 절노부 북부 어디라고 하더구나. 그의 검은 계루부와 절노부에 각각 몇점이 있다지만 눈으로 본 사람은 없다.”

 

“휴... 그런 검을 주인으로 가진 자는 과연 어떤 자일까요?”

 

“뭐가 그리 궁금한 것이 많으냐? 검술을 익히는 것은 내가 참견할 일이 아니다만, 칼을 쥔 자가 덕을 쌓기는 힘든 법이다.”

 

“오라버니도 참~ 제가 검술을 배운다고 계집애 몸으로 싸움터에 나가는것도 아닌데요~”

 

 

칼은 곧 살(殺)이다.

 

자신을 지키는것도, 남을 지키는것도 모두 살(殺)로 이루어내는 것이다.

 

이 여린 소녀는 어쩌다 무사의 기질을 타고 난 것일까...

 

원이는 담이가 태어나던 당시로 잠시 기억을 돌렸다.

 

 

담이가 남다른 운명을 타고 났다는 것은 출생만 봐도 알 수 있다.

 

담이의 아비는 비교적 낮은 9등급 관직의 서열이었으나 어머니는 옥저의 높은 귀족출신이었다.

 

어머니는 담이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산후병으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담이는 세상에 나온지 1년도 되기전에 큰 사고를 당했다.

 

어느날 유모가 담이가 잠든 방에 젖을 먹이러 들어갔다가 담이를 칭칭 감고 있는 백사 두마리를 보았다고 한다.

 

담이는 팔뚝과 어깨를 모두 뱀에게 물려있었으며, 유모가 소리를 쳐도 백사는 마치 담이몸의 주인이라도 되는냥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온 집안 사람들이 뛰어 들어오고 소란을 떨어도 백사의 크기와 위엄에 눌려 누구 하나 선 듯 담이를 구해낼 엄두를 못냈다.

 

전갈을 듣고 달려온 아도님의 인도로 백사는 담이 몸에서 미끄러져 사라졌고, 백사에게 두곳이나 물린 담이가 살아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담이의 아비는 한가닥 희망이라도 붙잡고자 담이를 아도님에게 맡겼고, 꼬박 두달동안이나 사경을 헤매던 담이는 몸의 독을 모두 정화시키고 살아났다고 한다.

 

그 일이 있은후 담이의 아비는 온 마을의 뱀이란 뱀은 모두 불태우거나 토막을 내 없애버리라는 명을 했다.

 

하지만 수백마리의 뱀속에 백사만은 없었다.

 

아도님은 범상치 않은 이 일에 대한 함구령을 내렸고, 담이는 자신에게 닥쳤던 위험을 까맣게 모른채 탈 없이 곱게 자라났다.

 

처음에는 이 일을 알고있는 마을 사람들은 담이를 경계하고 혹은 두려워 했지만, 워낙 밝고 예쁜 성격에, 사랑스러운 소녀인지라 지금은 모두 아끼고 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담이는 설화로 널리 불리워졌다.

 

유독 희고 깨끗한 살결에 붉고 탐스러운 입술이 마치 눈 속에 핀 한 송이 꽃같다고 지어진 애칭이었다.

 

원이가 아무리 고요한 심성을 가졌다고 하나, 이렇게 아름답게 성장해가는 담이를 보고 어찌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담이 역시 어려서부터 접한 사내라고는 원이밖에 없었다.

 

무남독녀 외딸인데다 밖에 함부로 나다니지도 못하는 처지에 외로움이 많은 담이는 원이를 무척 따랐다.

 

담이에게 원이는 바깥세상의 냄새를 담뿍 담고오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원이 나이 올해 스물.

 

담이가 열여섯이 되기전에 아내로 삼으리라 오래전부터 다짐하고 있었다.

 

이미 어른들께는 허락을 구했다. 담이 집안이 낮은 관직이라 하나 아버지의 성품이나 그 신망을 아는 부모님께서도 흔쾌히 여기셨다.

 

열여섯... 복숭아 꽃이 만발할때, 그 아래에서 담이를 맞으리라...

 

 

“오라버니, 무슨 생각을 하시길래 얼굴이 그리 붉어져요?”

 

“아, 아무것도 아니다... 난 이만 아버님께 가보아야겠다.”

 

“치잇... 거봐요. 담이 보러 온게 아니잖수.”

 

“지금은 관노부에서 사신이 돌아올 시기이기 때문에 내가 좀 바쁘다만, 이번일이 끝나면 자주 들르도록 하마. 그리고 그때쯤 함께 나들이도 가자구나.”

 

“우왓! 정말이에요? 거짓말 아니죠?”

 

“내가 언제 헛말한적이 있더냐-”

 

“우우왓! 기뻐라! 어디로 갈건데요? 아버지께는 뭐라고 말씀드리죠?”

 

“내가 다 말씀드려 허락을 구할테니 걱정말고, 이젠 오라비한테 심술은 그만 피우거라.”

 

“내가 언제 심술을 피웠다고 그래요~ 전 오라버니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걸요~!”

 

 

비록 연모의 뜻이 담긴 말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원이 가슴은 금세 울렁거리며 기쁨으로 가득찼다.

 

평생 저 웃음을 가슴에 담고 다니리라.

 

웃음으로 차고 넘치는 날들을 만들어주리라...

 

원이는, 담이를 기쁘게 하는일이야말로 자신에게 가장 행복한 일임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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