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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파혼을 했더라면.. 조금은 더 당당했을까.

이방이맞는가 |2020.01.20 17:53
조회 1,359 |추천 1

이 곳은 항상 “방탈 죄송합니다.”라고 시작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저의 억울함을 풀기 위함입니다. 일면식도 없는 여러분과 제 지난 일들을 나누려고 하니.. 느낌이 묘하지만, 타인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마음써주시는 분들이 계시기에, 용기를 내어 적어 보려합니다.

그 남자와 저는 한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그런 대기업의 직원이었습니다. 그는 석탄 같은 광물을 트레이딩하던 회사에서 근무를 하였고, 저는, 지금은 옛날의 영광을 잃긴 했지만 당시엔 잘 나가던... 배를 만드는 회사에 근무했습니다.

같이 배를 만들던 회사에 다니던 친구에 서울로 발령나면서 본인이 알고 있는 동기 오빠들 중 한 명을 소개해 준다고 하여 흔쾌히 소개팅 자리에 나갔습니다. 강남의 메드포갈릭이라는 곳에서 만나, 본인을 외동아들이라고 소개했고(나중에 누나가 있음을 밝힘.. 이유는 묻지 말라고함, 상견례 이후에 밝힘), 저는 저 나름대로 제 소개를 하고 점심을 먹고 커피숖에 갔습니다. 커피값만은 제가 내려고 했으나 그는 극구 사양하며 본인이 모두 결제하였고, 식당과 커피숍 직원들에겐 늘, 냅킨 부탁드립니다. 메뉴판 부탁드립니다. 괜찮습니다. 등등을 말하기에 저는 “아... 이 분은 서비스직에 계신 분들도 존중하는 그런 신사다운 남자구나...”하고 호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종종 저녁도 함께하며, 사내 메신저와 카톡으로 대화도 이어나갔습니다. 한번은 회사 메일로 본인이 좋아하는 음악을 몇가지 골라서 보내주더군요. 감성적이고, 섬세하여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강남의 한 와인가게에서 만나 서로 진지하게 만나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날... 기분에 취해 분위기에 취해 둘이 많이 마시게되었습니다. 저는 술이 좀 쎄서 괜찮았으나 그 분은 좀 힘들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강남의 회사 쪽으로 걸어가는데, 길치인 제가 어느 덧 들어서고 있는 곳은 모텔촌이었습니다. 그 남자분은 저에게 같이 들어가자고 하였고, 저는 싫다고 하였습니다. 졸르고 땡깡부리는 그를 달래고 본인은 택시를 타고 가겠다고 하니, 그는 본인의 차로 저를 데려다 준다고 합니다. ??? 음주운전이라 안된다고 하니 기어코 괜찮다며 본인의 집 앞까지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는 차 키를 갖고 나오겠다고 하였고, 저는 제발 택시를 타고 가게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그럼 집에서 잠시 술을 깨고 다시 이야기하자 그래서 서른 넘은 남녀가 뭐... 그래서 별 의심 없이 들어갔습니다. 그는 젠틀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역시나 그 날 밤, 일이 일어났고 우리는 서로에게 미래를 약속하며 불안함을 달래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저희 오라버니 결혼식 날, 11월 10일이 되었고, 그는 마포구의 한 결혼식장에서 저희 친지분들과 지인들에게 피앙세라고 소개하였고, 축의금도 대신 받아주고 정신없고 바쁜 날, 어른들이 따라주는 술도 잘 마셔주고, 참으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 뒤로 상견례를 하였고, 시어머니는 같은 서울 하늘 아래에 63빌딩까지 차를 멋지게 끌고 오지 않은 우리 집안을 무시하며, 그에게 문자로 험담을 하였습니다. (본가에서 63빌딩은 택시로 10분.. 술을 마실 수도 있어서 차를 갖고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못들은 척, 못본 척... 하나뿐인 아들 보내시기 아쉬우시겠지...하고 넘겼습니다. 2013년 설날이 다가오기에 함께 신세계 강남에 가서 과일세트 15만원짜리를 양가에 보냈습니다. 시어머니는 매우 흡족해하셨고, 잘받았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뒤로 스드메 예약을 했기에 드레스투어를 다녔고 피팅비 3만원씩을 봉투에 담아 정성스럽게 샵에 지불하고, 헤어와 메이크업을 하고 피팅까지 할 정도로 준비를 열심히 했습니다. 웨딩홀은 그 남자분이 버진로드가 싫다고 하셔서, 버진로드가 없는 강남의 작은 호텔에서 2013년 4월 19일, 금요일 저녁 7시 반에 식을 올리기로 하였습니다. 결혼식 준비를 잘 하기 위해서 저는 부모님들의 허락 하에 그의 집으로 들어가 함께 살며, 같이 장을 보고 , 살림을 하였습니다. 굳이 전입신고를 하진 않았습니다. 왜냐면, 같이 부동산도 다니며, 회사 근처에 아파트를 알아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말 어느 날 밤, 여느 때와 같이 함께 강남의 이마트로 장을 보러 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남자가 땀을 엄청 흘리는 겁니다. 뭐 때문인지는 몰라도 교감신경이 매우 흥분된거겠지요. 저는 그다지 덥지 않았으니까요. 그는 왠지 날카로워보였고, 덥냐고 묻는 저의 말에 신경질적으로 대답했습니다. 본인은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서 그냥 가만히 있었습니다. 함께 냉동핫도그... 그 외에 다른 것들을 사와 정리를 하고 있는게 그가 갑자기

“나, 너같은 여자랑 결혼 못하겠어.” 합니다. 그래서 제가 당황하여 묻습니다. “나같은 여자가 어떤 여자인데?” 그는 바로 “따지지 좀 마.”

사실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전 여친도, 본인이 첫 번째 남자가 아니란 이유로 헤어졌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고, 그에 저는 본인도 처녀가 아니니, 이쯤에서 그만하자. 하니, 본인이 잘하겠다며 오히려 저는 붙잡았기에, 저는 믿고 있었습니다. 아마.. 제가 처녀가 아니기에 저같은 여자랑 결혼 못하겠다며, 이전에 웨딩홀, 스드메를 다 준비하고 마지막으로 결혼반지을 계약한 그 날에... 저에게 파혼을 통보했고, 수치심을 느낀 저는 그 날, 케리어에 짐을 쌌습니다. 앞이 막막했지만, 그런 사람의 집에 더 이상 머무를수가 없었고, 짐을 싸서 나가려는데, 갑자기 그가 붙잡습니다. 잠깐만, 우리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

 하지만.. 저는 시시때때로 파혼과 다시 잘해보자는 그의 말에 더이상 놀아나고 싶지 않아 마무리를 하였고, 그 뒤로 직원들 사이에선 파혼한 아이, 그래서 결핵까지 걸리게 된 직원이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숨어지내기 바빴고, 어쩌다 구내식당에서 마주치면 숨이 막혀왔습니다. 왜 제가... 죄인처럼 지냈을까요? 오히려 전 피해자인데...

 

  사리 우리의 이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를 만나기 전에 끊어놓았던 싱가폴 티켓도.. 제가 싱가폴 도착하자마자 그는 저와의 연락을 끊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올 때 즈음, 연락이 와서는 공항으로 데릴러 온다고 합니다. 일단 저는 그러라했고 이유를 물으니 답을 해주지 않습니다. 아팠다.. 정신이 없었다.. 일이 있었다..하는데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습니다. 연애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너무 참견하는건 제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에도 그는 이상한 행동을 보였고 그 때마다 바쁘다고 해서 그러려니 했습니다.

 또한 저보고.. 저랑 잠자리를 하면 헐거워서 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이 이야기를 들은 제 친구가, 지꺼가 작은건 생각안하고 ㅉㅉ이라고 위로해줬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친구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런 나날들 후에, 신혼여행지인 우붓행인가든을 알아보기 위해 그의 노트북을 켰습니다. 직접 입력한 주소엔 싸이월드의 스토리?같은 게 있었고 클릭했습니다. 전여친의 스토리였습니다. 그는 그녀와 동거도 하였고, 같은 이유로 헤어졌으며(그가 그녀의 첫남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그를 떠날 때 다마스라는 차를 불러야 할 정도로 짐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발톱에 빨간 메니큐어를 했고... 2013년 초 당시, 그녀는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우락부락한 남자분과 국내 여기저기를 여행하는 모습이 담겨져있는 사진첩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결혼자금을 아끼겠다고, 그를 기다리며 커피숍에서 커피 한잔도 시켜놓지 않고 그를 기다렸으며, 그는 그런 그녀에게 화를 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모두 과거의 일이고, 나에게는 잘하겠다고 하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제 생각이 짧았던건지..아니면 모든 과거가 있는 사람을 일단 의심하고, 거르고부터 봐야하는건지... 이제와 다시 생각해보면 뭐가 맞는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파혼 후, 몇 달 뒤, 결핵에 걸렸으며, 그 해에 9월 30일에 퇴사했습니다. 그는 바로 다른 여자를 만나서 제주도를 갔고, 그 다음 해, 2014년도 9월30일에 퇴사했습니다. 소름끼쳤습니다. 정확히 1년 후에.. 설마.. 아니겠죠?

그런데, 1년도 안되서 또 다른 여자를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그가 SNS에 사진을 올렸기에 확인이 가능했습니다) 전통혼례.. 그가 하고 싶었던 것인데, 저는 서양식을 주장했고.. 결국 그는 그의 뜻을 받아줄 여인을 만났습니다. 솔직히 결혼 전에 알았다면, 그 여인을 말릴 수도 있었겠습니다. 하지만, 페이스북에는 그녀와의 연애 사실이 올라오지 않았고, 나중에 결혼식을 다하고 나서, 결혼 소식을 알렸습니다. 잘나가는 요가 강사였고, 저는 소송을 제기하려다 멈췄습니다. 신세 망친 여자는 저 하나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여인이지만, 다부져보였고, 쳐녀일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조용히..접었습니다. 계속 방황의 연속이었던 저는, 하와이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 때, 2016년 초여름에 그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요새 와이프랑 사이도 안좋고 말끝마다 시비고...나와는 다르게 드세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래도 너랑은 말이 통했던거 같아 얼굴보고 사과도 하고 밥을 한끼하고 싶다고 합니다. 또 싱가폴로 가더라도 가끔 안부를 주고 받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나 돈줘. 오빠가 파혼하자해서 발생한, 스드메 계약금이랑 위약금, 피팅비 해서 200줘”라고 하니, 싱가폴 MBA가느라 돈이 없다며 거절했고, 저는 그냥 와이프랑 잘 살라고 하고 대화를 종료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저는 7년만에 데이트도 하고, 남자도 만나고 결혼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결혼 전부터 계속 제 남자친구를 잃어버리는 꿈을 꾸는겁니다. 이에 저는 결혼 전 스트레스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결혼 후에도 똑같이.. 신랑을 잃어버리는 꿈을 꿨습니다. 끙끙거리는 저를 깨운 신랑이 괜찮냐 묻고, 저는 꿈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화장실에 가서 내가 대체 왜 이런 꿈을 아직까지 꾸어야 하나..하며 펑펑 울다 나오고, 그런 저를... 신랑은 말없이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저는 현재의 신랑이 저에게 고백한 날, 바로 말했습니다.

“저 파혼했어요.”

“괜찮아요. 저도 아픈데 많아요.”하고 연애를 시작했기에, 그도 저를 말없이 쓰다듬어 줄 뿐이었습니다.

너무 억울하여 그의 페이스북에 들어가니, 그는 어느 덧 한국으로 돌아와 여의도 금융가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ㅎㅎ 섬남자가 되어계시더라구요. 그래서 연락했습니다. 이제는, 손해배상해줄때 되지 않았냐고.

그랬더니 대체 얼마길래 그러냐고 빨리 청산하자 그래서, 원래 위자료 청구소송하면 2~3천 만원에 실비를 추가 청구할 수 있는데, 그냥 실비 200만원과 위자료 500만원을 청구했습니다. 바로 계좌번호를 달라기에 줬고 200만원이 입금되었습니다. 500만원은 나중에 천천히 갚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혼했다고 합니다. 흐음... 그래도 그냥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확인해보니 저를 페이스북 메신저에서 차단했더라고요.

 더 알아보니, 그 여인과는 아이까지 두었더군요. 계산상... 아이가 나오자마자 지는 지대로 살겠다고 해외 MBA를 떠났다는건데.. 이건 제가 아는 것만 세 여자와 한 아이의 인생을 망친 파렴치한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이미 이혼녀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며, 그녀가 원한다면... 증인이 되어 싸우려고 합니다. 그리고 500만원은 끝내 주지 않더군요.. 그래.. 니 예전 와이프랑 소송하는데 비용으로 써라...

추천수1
반대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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