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네이트판에 오늘 가입하고 지금 글쓰는 97년생 남성입니다.
저는 2017년도 1학기에 일본 삿포로 지역으로 1년간 유학을 갔다왔습니다. 많은 기대와 포부를 가지고 입학을 했고 유학생 신분으로 일본어를 공부하며 일본문화를 즐기며 일본사람과 만나는걸 굉장히 즐겼습니다만 무엇보다도 즐겼던것은 바로 2학기였습니다. 2학기때도 여전히 새로운 유학생이 왔고 거기서 제 첫번째 연애할 중국인 여자를 만났습니다. 그렇지만 일본어 실력차 때문에 반이 나뉘어졌습니다. 저는 레벨6 최상위교실인데 그여자는 레벨3중급 교실로 배정받아서 많이 못나지 못했습니다만. 딱히 일본어수업아니라도 거기 일본대학교는 유학생이 워낙 소수파라(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대만 5개국 총합20명 내외.)유학생들 끼리 결속이 잘되었습니다. 사는곳도 가깝고요. 어느날 그 여자가 먼저 제 라인(일본에서 쓰는 카톡)을 따가고 '제 이름은 ㅇㅇㅇ 입니다' 그리고 귀여운 토끼이모티콘을 보냈습니다. 저도 똑같이 잘부탁해 하고 평범하게 지냈습니다. 그렇지만 저도 그렇고 그여자도 그렇고 서로 서로 불러냈고 같이 유학생신분으로써 이야기도 했고 숙제도 도와주고 요리를 해주고 그 여자가 해준 중국음식을 맛보면서 통칭 썸을 탔습니다. 그렇지만 저희들에겐 한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썸타는 도중에도 한국인과 중국인. 서로서로 모국어는 할수없고 그 여자의 일본어실력은 프로토킹하는데 살짝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가지 결심을 했죠. 사랑하는 여자랑 소통하기 위해 새로운 언어를 배워보겠다고. 그래서 저는 썸타기 시작함과 동시에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유튜브 보면서 중국어 강좌듣고 중국어 회화 듣고 단어를 일주일에 수백개씩 외우고 간단한 문장을 연습하고 간단한 문장을 바로 그여자와 한문장씩 회화 그리고 라인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국인 여자는 내가 쓴 문법적으로 어색한거 어순 등 고쳐가면서 중국어를 매개로 더 친해져 갔습니다. 그리고 운명의 2017년 11월 23일 밤 그 여자의 집에서, 저는 고백을 받았습니다. 그여자가 먼저 이렇게 물었습니다 "혹시 내가 좋아?" 저는 바로 본능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응 좋아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내가 걱정되는 부분이 두가지 있었습니다. 그 두가지 부분때문에 내가 먼저 고백하지 못했고 그 부분을 상담했습니다 "나도 너가 좋아 그렇지만 우리에겐 두가지 문제점이 있어. 먼저 우리는 의사소통이 아직 원할하지 않고 또 한가지는 3개월뒤 내가 한국으로 귀국한다는 점이야." 그여자는 그다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데 언어의장벽 그거는 문제가 되지않는다고 생각해 그리고 여차하면 번역기나 영어등을 활용하면 돼, 그리고 귀국문제는 그때는 장거리 연애가 되겠지만 그건 그때가서 생각해보자. 지금은 사귀어보자." 저는 이말에 납득했고 응 사귀기 시작했습니다. 11월23일 눈내리는 삿포로 저희는 1일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서로서로 첫번째 연애였습니다. 그때부턴 남들 연애하는것처럼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같이 밥도먹고 수업도 도와주고 여행도가고 영화(중국어자막 딸린 한국영화)도보고 즐겼습니다. 하루하루가 너무 재밌었고 소중했습니다. 그 여자가 편의점 알바 끝내고 데리러가는게 너무 즐거웠습니다. 집에서 그 여자 알바하는 곳까지 걸어서 40분 걸렸었지만 보고싶다는 생각에 금방 도착했습니다. 알바 끝나고 사복차림으로 나한테 웃으면서 달려오는 모습은 너무 사랑스러워서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그렇게 생활하던중 저는 한가지 사고를 당했습니다. 삿포로는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이고 몇몇 도로가에서는 낮에 녹이 녹아 다시 밤에 어는걸 반복해 상당히 미끄럽습니다. 저는 학교끝나고 하교하는길 그여자 알바하는 편의점으로 데려다주고 저는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길에 미끄러져 오른팔목 골절을 당했습니다. 뒤로 미끄러질때 순간적으로 오른팔로 모든 체중을 지탱해버려서 그대로 팔목골절당했고 장바구니는 왼손으로 들며 집에 도착했습니다. 오른팔의 상태는 많이 심각했습니다. 부어오르기 시작했고 나는 바로 병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고 집에있는 모든 비상금을 들고 응급병원에 향했습니다. 병원에서 응급접수를 하고 기다리는 시간동안 저는 여자친구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오늘 내가 일이 생겨서 알바 끝나고 데리러 못간다. 혼자서 집갈수있어?" 그러자 전여친은 계속 꼬치꼬치 캐물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걱정시키기 싫어서 처음에는 거부했다가 도대체 무슨일? 답답하게 하지말고 빨리 말해 라고 캐물어서 결국 여기있는 병원의 이름을 말했습니다. 진료를 받고나니 10시정도 되었습니다. 통깁스를 하고 나오자 여자친구가 서있었습니다. 올거라고는 예상은 했지만 막상 진짜 병원까지 왔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차오르더군요. 병원비 결제 완료하고 같이 택시타고 돌아왔습니다. 그때부터 한달간 오른팔이 불편한 저를 도와주고 정말 미안할 정도로 신세 많이 졌습니다. 그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무슨일이있어도 이여자는 행복하게 만들어줘야겠다고요. 그렇게 연애하다가 저는 18년 2월 귀국전날 헤어지자고 통보했습니다. 저는 귀국날이 다가오기전부터 여러모로 생각해봤습니다. 내가 한국에 돌아가면 틀림없이 장거리 연애가 된다. 서로서로 힘들어진다. 내가 원하는건 뭔가? 이 여자를 붙잡아두는것을 원하나 아니면 이 여자를 행복해지는걸 원하나? 저는 한가지 답을 도출해냈습니다 우리는 헤어진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연락은 주고받는다. 평범한 일상얘기도 어떤 사소한거라도 괜찮으니 우리는 연락을 계속한다. 후에 혹시 나보다 잘생기고 나보다 좋은 남자 만나고 너를 사랑해주는 남자 만나면 그때 나를 버리고 사귀어서 행복해져라. 여자친구는 납득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제 폼안에서 울고부는게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결정했습니다. 내가 만약 이별통보 안하고 계속 붙잡아둔다면 이 여자는 새로운 행복을 찾지 못하게 될테니깐요. 그렇게 저희는 원칙상으로는 헤어지지만 연락은 계속하는 관계가 되었고 저는 18년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날 저는 한국으로 귀국했습니다.(그 여자는 아직 한학기 더남아서 일본에 남아있음) 하지만 약속대로 연락은 계속하고 그여자도 일본에서 마저 한학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교환학생으로 돌아와서 3학년이 되었습니다. 1학기 수업때 한국의 대학교 모습도 보여주고 공부하는 책도 서로서로 보여주고 중국어수업도 신청해서 들었습니다. 불과 2년전이라면 발음법도 몰랐던것들이 이제는 술술 읽혀지고 중국어 수업에 흥미 붙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평범하게 연락하다 18년 여름방학때 저는 그여자를 만나러 일본으로 갔습니다. 6개월만에 보는 제 전여친은 여전히 이뻤습니다. 여전히 사랑스러웠어요. 오랜만에 서로서로 여행도하고 밥도먹고 즐겁게 지냈습니다. 그 여자는 이제 마무리하고 조만간 중국으로 귀국하러 간다고 하네요. 솔직히 저는 그때 다시 재결합고백 할려다가 다시 그만뒀습니다. 방학때마다 이렇게 한번씩 그여자보러 일본이든 중국이든 가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만, 한가지 문제점 때문이었죠. 3학년 2학기 마치고 겨울방학때 대한민국 남자들의 2년의 필수코스 바로 군대 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몸에 한부분이 안좋아서 신체등급4급 판정. 사회복무요원 속칭 공익 복무입니다. 현역이나 공익이나 자유롭게 해외로 못다니는것은 매한가지 입니다. 돈도 없었고요. 그래서 저는 다시 재결합고백을 그만뒀습니다. 그렇게 18년 여름에 만나고 시간이 흘러 19년 1월 저는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래도 연락은 하고 있었습니다(중국은 카톡 라인 페북등 모든SNS금지니 위챗으로) 그렇지만 어느순간 연락이 뜸해지고 지금 어디에 있는지 뭘하고 있는지 제대로 안가르쳐 줍니다. 저는 그래도 연락은 완전히 끊긴것이 아니고 사생활 위치 그런것만 안가르쳐주지 간간히 연락은 했었습니다. 저는 공익복무하고 있는 도중에 시간나는대로 중국어 공부를 하고 결과 19년 여름 HSK4급을 합격했습니다. 이기세로 5급 6급도 공부하고 시험칠려고 하는데 갑자기 어느순간 저와의 대화를 무시하기 시작합니다. 그때가 20년 1월 바로 저번달이었습니다. 내가 어떤 질문을 해도 대화를 던져도 무시하거나 차갑게 대답합니다. 평소에 제가알던 그 여자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때 어느정도 직감을 했습니다. "새로운 행복을 찾았구나." 이게 현실로 다가와보니 너무 혼란스럽더군요. 저는 2017년 11월 23일부터 쭉 똑같은 마음이었습니다. 19년도에 한 대학교의 여자동기가 대쉬를 걸어와도 저는 거절하고 철벽을 쳤습니다. 왜냐하면 그여자가 이미 있었으니까요. 저는 계속해서 그 중국여자한테 메시지로 대답을 요구했습니다. 왜자꾸 대답을 회피하냐 왜자꾸 차갑게 대하느냐. 제가 이렇게 까지한 이유는 저의 마음을 죽여줄 한가지 문장을 듣기위해서. 그래서 그 결과 저는 모든걸 납득시키고 끝내줄 하나의 문장 我有男朋友. "나 남자친구 있어." 를 듣게 됩니다. 그 메시지를 보자마자 저는 생전 처음느끼는 감정이었습니다. 희비교차. 냉정하게 머리로 생각해보면 잘된일이고 그 여자가 행복하게 된 2018년도 귀국전의 제가 노린 게 실현이 된 셈인데 마음만은 그게 허용치가 않았습니다. 가슴이 찢어질듯 아팠습니다. 후유증이 어마무시해서 매일매일 한숨만 쉬고 밥도 못먹고 수면도 못취하고 모든일에 의욕을 잃었습니다. 중국어 공부? 그녀를 위해서 시작한 중국어 공부인데 그녀가 사라지니 HSK고 회화고 뭐고 손에 잡히지가 않습니다. 2021년 공익복무 끝나고 중국 어학연수 갈 예정이었는데 그 계획마저 다시생각해볼 정도로 모든게 끝났습니다. 사랑했던 감정이 컸던만큼 헤어질때 반동도 어마무시 하네요. 그래도 만약 시간을 되돌릴수 있다면 헤어지자 라는 말은 안바꿀겁니다. 제가 후회하고 있는것은 진짜로 사귀었던 80일을 더욱 의미있고 값지고 행복하게 만들어주게 하고싶고, 18년 19년도에 조금더 연락 자주해주고 도와주고 행복하게 만들어줄껄. 이 후회만 남아있습니다. 그래도 2018년 2월의 저의 노림대로 그녀는 다른 사람만나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거라 믿고 저도 제 앞길을 찾아가야 되겠죠. 이제 23살이고 이제 첫번째 연애했을뿐인데 걱정이 됩니다. 이 여자의 감정을 넘어 설 사랑이 나한테 찾아올지, 혹여나 그 여자가 이상한남자를 사귀어 상처를 받지 않을지 여러모로 걱정도 되고 요즘들어 코로나바이러스가 기승인데 건강은 괜찮을런지 그것도 걱정이 되네요.
저의 첫번째 연애사 그리고 이별사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도 마음이 많이 심란한건 변하지 않네요.